-
-
바람 불면 다시 오리라 - 소설 법정
백금남 지음 / 쌤앤파커스 / 2016년 8월
평점 :
절판
저자
백극남은 한국 최고의 불교 소설가다. 그는 1985년 삼성문학상을 수상하며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 중편소설 <등대에 불 밝히기>로 KBS문학상을 수상, 장편소설 <십우도>와 <탄트라>가 잇따라 히트하면서
1990년대를 대표하는 베스트셀러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이후 2003년에는 <티베트의 영혼 파드마삼바바>로 민음사 제정 올해의
논픽션상을 수상했다. 2013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관상>의 원작 소설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계속해서 그의 소설을
바탕으로 한 <궁합>과 <명당>이 영화화되고 있으며, 최근에 유마거사의 일생을 그린 장편소설 <유마>를
출간했다.
바람이
분다.
꽃잎이
분분하다.
그분의 넋이 오는
것인가.
그가 살던 산골짝 오두막엔
오늘도
이름 모를 꽃들이 피고
진다.
소설로 되살아난 무소유의 삶
작가는 치밀한 자료
조사와 취재를 바탕으로 법정 스님의 생애를 왜곡이나 과장 없이 담담하게 그렸다. 게다가 법정 스님 입적 이후 세상에 나타나기 시작한 이상한
글들이 정확하지도 않은 헛소문이라는 것을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를 통해 밝혀냈다. 소설에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뿐 아니라 법정 스님의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일화들이 여럿 소개된다. 스승과 도반 등 주변 인물들과의 일화에서 드러나는 법정 스님의 또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는 것도 소설의
숨은 재미다.
책을 사랑했던 청년
재철(법정)은 출가 후 스승인 효봉 스님 몰래 숨어서 습작을 하다가 들켜서 여러 번 혼쭐이 나곤 했다. 그가
어렵게 써놓은 글들은 노트째 아궁이에서 불태워졌다. 그럼에도 글에 대한 열망을 꺾을 순 없었다. 쓰고 또 쓰고, 그러다 마침내
<대한불교> 신문의 독자투고란에 시 <미소>가 실리면서 '시인'으로 당당히 데뷔한다. 그런 눈물겨운 습작의 과정이 있었기에
훗날 정제된 글들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작가는 법정 스님이
입적하기 5년 전부터 그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해, 끈질긴 추적 끝에 스님의 초기작 23편을 발굴하는 데 성공했다. 이 소설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초기작들은 현 <불교신문>의 전신인 <대한불교>에 법정 스님이 1963~69년에 직접 기고한 글들이다. 워낙
초기작이어서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하다가 이 소설을 통해 비로소 온전한 작품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소설에는 법정 스님의 시 12편, 불교설화
7편, 칼럼 4편이 실려 있다. 당시의 그들을 통해 문학에 대한 열망과 산중 수행자의 고독한 내면을 엿볼 수 있으며, <부처님
전상서> 등의 칼럼을 통해서는 불교계에 개혁과 성찰을 촉구하며 직설을 던지는 젊은 수행자의 결기를 읽을 수 있다. 이제, 소설 속의 몇몇
장면으로 들어가 보자.
"너 왜 술 안
마시냐?"
재철이 술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 광순이 물었다. 평소에 술을 좋아하던 친구였기 때문이다. 재철은 서글프게 웃기만 했다.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서럽지 않았다. 이 세상과의
이별이었다. 아니, 이별이 아니라 세상을 제대로 알기 위해 떠나야 할 길이었다. 두 눈 부릅뜨고 당당히 가고 싶었다. 이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고 싶지 않았다. 광순이 술에 취해 횡설수설했다. 끝내
재철만 덩그러니 놓아두고 저들끼리 얼싸안고 울음보를 터트렸다.
"널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꼭 책을 봐도 철학책이나 보고 앉았더니 결국에는 중이
되겠다고?"
잠시 후 방문이 벌컥 열리며 스승이 들이닥쳤다. 스승이 노트를 집어
보더니, 어이가 없는 듯 입을 벌렸다. 스승의 눈이 뒤집어졌다.
"이놈, 여기는 부처를 공부하는 승방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이런 글을 쓰고 있는
것이냐?"
"책을 아궁이 속에
처넣어라"
도반들이 모두
달려들어 방 안을 뒤졌다. 법정의 책이란 책은 다 모아 들고 아궁이로 달려가 활활 타는 불 속으로 던져 넣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먼저 책 두
권이 한꺼번에 아궁이 속으로 들어갔고, 마지막 남은 한 권도 아궁이행이었다. 그리고 그토록 어렵게 써놓은 설화까지 잿더미가 되고
말았다.
하루는
불임암에서 난초 잎을 닦다가 갑자기 '왜 이러고 있는가'란 생각이 들어 버려야겠다고 맘을 먹고 있을 때 마침 아는 스님이 찾아와서 애지중지하던
난을 그에게 주고 말았다. 하지만 한동안 아쉬웠다. 잠에서 깨어나도 난 있던 곳으로 시선이 갔다. 그런데 그 빈 마음속으로 가득 차오르는 게
있었다. 무소유의 빛이었다. 드디어 비어도 빈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욕심을 버렸다. 갖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욕심내지 않았다. 소유하지
않으면 마음이 맑아진다는 입에 발린 소리를 하거나 글을 쓰던 때와는 달랐다. 소유하려다 보면 불행해진다고 막연히 외치던 때와는 달랐다. 이제야
자신의 일상에서 소유라는 개념을 무소유로 전환해가는 지혜를 얻고 있었다. 맑은 가난이 넘치는 부보다 못할 게 없었다. 아니, 훨씬 값지고
고귀했다.
욕심 중에서도 식욕이 또한 무서운 것이어서, 부엌에는 '먹이는
간단명료하게'란 글까지 써 붙였다.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늘 찬 두 가지만 해 먹었다. 손이라도 오면 찬을 한 가지 더 하지만
홀로 있을 때는 두 가지면 충분했다. 대통령이 아니라 대통령 할아버지가 와도 세 가지는 엄지 않았다.
선원에서 거울을 바랑 속에 넣어 왔던 법정의 비밀이 밝혀진 것은 과거
미래사에서 함께 수도했던 도반이 불일암을 찾으면서였다. 그는 방송인 이계진이 진행하는 <11시에 만납시다>라는 프로그램에 법정이
출연한 장면을 시청했던 것이다. 법정이 사용하는 방에 들어가 보니 선원에서 가져온 거울이 벽에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왜 법정이 이 거울에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생각하며 그는 무심결에 거울을 뒤집어보았다. 거울 뒷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글을 발견했다.
'처음 삭발한
날'
그 아래 연도와 달과 날까지 정확히 쓰여 있었다.
처음 삭발한 날의 그 모습이 얼마나 대견하고 아름다웠으면 그
거울을 가방에 넣어 왔겠는가, 하는 생각에 도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날 밤 법정은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내 마음이 해이해지면 그
거울을 꺼내 보곤 했다오. 그러면 머리를 깎을 때의 신심이 칼날처럼 일어나곤 했지요"
사람이 홀로 살다 보면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뭘 먹으면 식곤증이 몰려오고
꾸벅꾸벅 졸게 된다.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들고 그냥 쓰러져 한숨 자고도 싶지만, 이건 아니다 싶어 뒤꼍으로 나가 대나무로 수저를
만들기도 했다. 대나무라는 게 생긴 것만큼이나 한 성질 한다. 졸다가는 상처가 나기 십상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피를 보고
만다.
어떤 때는 개울로 나가 돌을 주워 왔다. 흙을 실어다 물로 개어 주워놓은 돌에 진흙을
발라가며 쌓아 올렸다. 그렇게 얼마 후에 해우소 하나가 완성되었다.
돌을 줍다가 손을 다치거나, 허리를 삐거나, 미끄러져 머리를
다치기도 했다. 그때마다 뼛속까지 외로움이 밀려들고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싶어 겁이 덜컥 나기도 했다. 그러면 '아아, 아직도
나는 멀었구나, 생에 대한 미련에 떨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 내 죽으면 물이 되고 불이 되고 흙이 되고
바람이 되어 자연과 하나가 될 터인데.... 그래도 두려웠다. 자연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연으로 돌아가기는 두려워하는 모순. 그것이 산 생명체의
함정이었다.
법정은 불일암에서 강원도 오대산 산골짜기의 오두막으로 옮겨갔다. 그리고는
'수류산방水流山房'이란 현판을 달았다. 오두막을 고치면서도 법정은 오두막 그대로의 모습을 살리려고 애썼다. 양철
지붕을 너와와 굴피로 대체하고 굴뚝도 굴피로 만들었다. 처마 밑에 난초가 새겨진 나무 현판을 달고, 처마에는 풍경을 달았다. 뜰에는 대나무
평상에다 직접 짠 작은 의자를 놓았다.
본채와 떨어진 흙으로 만든 해우소는 그대로 두었다. 들어가기 전에
'나 있다'라고 쓴 널빤지를 하나 달았다. 벽에는 '기도하라'는 작은 푯말을
걸어놓았다. 큰방은 서재 겸 침실로 사용했다. 옆방은 서재로
썼다. 되도록 단순하고 소박하게 꾸몄다. 꼭 필요한 것만 불일암에서 가져다 놓았다. 가능한 한 나답게 살고, 의지대로 자연스럽게 살고
싶었다.
산이건 물이건 그대로 두라
하필이면 서쪽에만 극락세계랴
흰구름 걷히면 청산인 것을.
이는 법정 스님이 남긴 열반송이다. 언젠가
법정은 말했다. 자신이 말한 모든 것 그거 다 군더더기. 이제 꽃을 피웠으니 가야지. 바람 불어 그 꽃잎 져 다시 오려면. 그는 언젠가 자신이
썼던 시 <입석자立席者>를 떠올리다가 눈을 감았다. 그래, 이 세상의 나그네가 되어 세상을 향해 서서 무엇을 했던가. 가자, 다시
오려면. 내가 피운 저 꽃잎들, 바람 불러 지면 그 꽃잎 피우기 위해 다시 오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