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과 실천력을 길러주는 인문학 이야기
김경준 지음 / 원앤원북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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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축적한 모든 지식과 마찬가지로 인문학도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다. 또한 지속적으로 확장해나가는 지식체계로서 고체화된 화석이 아니라 액처럼 변화하는 유기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안문적 소양도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해석하는, 유연하면서도 미래지향적인입장을 기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지은이의 말' 중에서

 

 

인문학은 인간을 만든다

 

책의 저자 김경준은 딜로이트 컨설팅 대표를 역임했으며, 현재 '딜로이트 안진 경영연구원' 원장으로 재직중이다. 그는 21세기 글로벌 기업과 산업의 변화를 이해하면서 인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어 이론과 경험을 겸비한 융합형 경영전문가로 평가받고 있으며, 여러 신문과 잡지에 자신의 글을 기고하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기존 지식의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현실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새로운 지식을 흡수하고 해석하는 능력 또한 인문적 소양이라고 강조하면서 총 9부에 걸쳐 세상을 살아가며 꼭 필요한 인문적 소양을 강의한다. 1부(인문학은 등대다)에서는 인간과 세계를 이해하는 창으로서의 인문학을 이야기하면서 광대한 영역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직업 영역을 바탕으로 우선 분야를 정하라고 조언한다.

 
2부(모든 것은 인간에서 시작되었다)에서는 인문학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도와주고, 3부(야만과 문명, 인간과 도구)에서는 문명 발달에 대해 이야기하며, 4부(개인과 집단의 상호관계)에서는 집단을 이루고 국가가 수립되는 과정과 집단 안에서의 개인의 삶을 말한다. 5부 (생산과 교환을 통한 분업과 시장의 형성)에서는 시장이 발생하는 시점부터 분업이 일어나고 전문화되어 사회가 발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6부(경쟁과 혁신의 구조)에서는 생태계와 산업계를 비교해 경쟁과 혁신을 알려주며, 7부(신화와 종교의 출현과 의의)에서는 집단이 형성되며 발생하는 공동체 차원의 신념 체계를 설명한다. 8부(문명의 태동과 정치체제의 형성)에서는 고대 그리스 민주정과 로마의 공화정, 중국의 제국 등을 비교하며 개방과 관용을 강조하며, 마지막으로 9부(과거 화석이 아닌 미래 에너지로서의 인문적 소양)에서는 과거의 시각이 아닌 오늘의 관점에서 인문학을 재해석해 미래의 에너지로 발전시키는 기제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연금술과 불로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은 오래 전부터 연금술과 불로초를 가지려고 노력했다. 연금술이란 물질적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이고, 불로초는 정신과 육체의 한계를 초월하려는 희망이었다. 이를 가진다면 인간은 영생불사永生不死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양 최초의 통일 제국을 창업한 진시황도 방사方士를 동원해 불로초를 구하려 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무튼 연금술은 과학 기술로 연결되었고, 불로초는 인문학으로 추구되었다.

 

기업 경영에 인문학을 접목, 경영의 귀재로 불렸던 고고 스티브 잡스, 그는 시리아 출신의 미국 유학생과 미국인 여대생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결국 입양된 그는 전형적인 미국인 양부모를 만나 성장하면서 자립심과 정직에 대해 교육받았지만 그의 괴팍한 성격으로 인해 삶이 순탄하지 못했다.

 

1970년대 초반 그는 대학교 1학년 때 중퇴를 한 후 환각제인 LSD를 접하고, 동양의 선불교에 심취해 7개월간의 인도 여행을 떠나는 히피 생활을 하는 등 일종의 일탈 기간을 거친다. 이후 1976년 애플을 설립하고 1984년 매킨토시로 대성공했으나 1985년 애플에서 축출된다. 하지만 곧 넥스트를 설립하고 1986년에 픽사를 인수했으나 실적 저조로 위기에 몰리다가 1995년 픽사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의 성공에 힘입어 1996년에는 애플로 복귀한다.

 

2000년대에 들어 아이팟, 아이튠스, 아이폰 등의 연이은 성공으로 정점에 올랐던 2011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전형적인 영웅담의 서사 구조를 담고 있다. 즉 출생의 비밀, 어린 시절의 방황과 고난, 성공과 실패, 재기와 영광에 이은 절정에서의 죽음이다. 고전적 서사에서 흔히 그려지는 영웅의 스토리와 유사한 스티브의 생애는 이제 신화가 되어가고 있다.

 

 

 

 

가깝고도 먼 고전

 

 

지금은 과거처럼 콘텐츠의 절대량이 부족하고 일반인의 접근이 어려운 시대가 아니라,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누구나 정보 접근이 용이한 시대다. 그런 시대이다 보니 전문가와 일반인의 지식과 정보의 격차는 크게 축소되었다. 하지만 전공자는 많은 시간을 투자해 읽고 생각했기 때문에 일반인은 전공자들이 확보한 지식의 우위를 인정하고 이를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으로 삼아 학습을 도와주는 안내자로 받아들이면 된다.

 

 

인문 교양 차원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일반인의 입장에서 원전을 접하면 바람직하겠지만 굳이 원전을 고집해 시간과 노력을 낭비할 필요는 없다. 안내자 역할을 하는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펴내는 다양한 콘텐츠를 적절히 소화하는 것으로 1차적 목적은 충분히 달성된다. 다만 해석자이자 안내자인 전공자들 역시 각자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으므로 이를 의식해야 한다.

 

 

 

 

경험이 지식보다 강하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나라를 창업한 조조는 장만 조비를 후계자로 지명했다. 아버지 조조가 죽자 그는 한한왕조를 폐하고 황제가 되어 위나라 문제로 등극했다. 그는 "가문이 3대에 이르러야 제대로 옷을 입고 음식을 먹는 법을 안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아버지 조조 덕분에 그는 젊어서부터 좋은 술과 음식, 의복 등을 접하면서 안목을 키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입맛에서만큼은 한계를 느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관점, 즉 세계관도 10대 후반에서 20대 후반까지 10여 년간 접했던 학문 분야, 사고방식, 가치관 및 시대사조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이에 더해서 나름대로 문제의식도 생겨나면서 정의감에 불타는 20대 초반에 읽고 접하는 정치 사회적 사조와 유행이 특정세대의 가치관을 형성시킨다. 이때 형성된 가치관은 사실상 30대 이후 평생을 관통한다. 세상을 100% 해석할 수 있는 세계관은 없고, 어떤 입장도 나름대로의 정당성을 가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확립한 프레임으로 세상을 반복-재해석하는 경향이 강하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입맛, 사춘기에 형성되는 노래 취향과 취미처럼, 청년기에 확립되는 세계관과 인간관도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아랍 지역에서 즐겨 듣는 독특한 음악을 서양 음계에 익숙한 우리가 듣고 공감하기 어렵듯이, 성장기를 기독교 문명권에서 보낸 사람과 이슬람 문명권에서 성장한 사람들의 세계관과 인간관은 큰 차이를 보인다.

 

 

 

인간과 동물

 

문명이 시작되고 인간의 삶의 조건이 동물과 구별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직은 과학적 지식이 부족한 상태였기 때문에 인간은 동물과 구별되는 특별한 존재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 이런 배경에서 고대부터 18세기까지 세계를 체계적으로 이해하는 강력한 프레임이었던 대부분의 종교는 공통적으로 인간과 초월자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 설정에 따라 인간을 비록 부족하지만 신과 같은 속성을 지니는 존재로 자리매김한다. 특히 2천 년 전에 시작되어 서양 세계의 지배적 종교이자 세계관이나 다름없었던 기독교에서는 <창세기>의 기록에 따라 우주만물과 모든 생명체는 유일신에 의해 창조되었고, 인간은 유일신이 만드신 특별한 존재라고 믿는다.

 

동물과 같은 위치에서 출발해 문명과 지능이 발달하면서 동물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자신을 규정한 인간은 자연과학적 지식이 확장되면서 인간이 동물과 공유하는 다양한 속성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1859년 찰스 다윈<종의 기원>에서 인간이 미생물로부터 진화한 결과물이라고 발표하면서 인간과 동물에 대한 인식은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공상이지만 빌 게이츠의 딸과 부시먼 족의 아들이 결혼한다면 당연히 자식을 낳을 것이다. 호모사피엔스로서 동일한 DNA를 가졌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는 두 사람이 결혼할지라도 후손을 생산함에 있어서는 아무런 장벽이 없다. 그런데, 빌 게이츠의 딸이 태어나자마자 부시먼 족의 가정에 입양된다면 생물학적으로 빌 게이츠의 딸이지만 사회 문화적으로는 부시먼 족의 딸이 되는 셈이다.

 

빌 게이츠와 부시먼 족의 비유는 비록 극단적 예시이기는 하지만 신석기 시대 농경을 시작하고 문명이 만들어지면서, 특히 산업혁명 이후 세계적 차원에서 기술적, 물질적 격차가 커지면서 나타난 인간이 지니는 특성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즉 1만 년 전을 기준으로 지구상에 존재하는 호모사피엔스들 간의 사회 문화적 격차는 크지 않았지만 문명시대를 거치면서 기술적, 사회 문화적 차이는 벌어졌다. 불과 150년 전 다윈이 진화론을 발표했을 때 다윈도 원시부족과 자신이 동일한 인간이라는 점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정도이니, 문명사회에서 원시부족을 다른 종으로 간주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았다.

 

이러한 격차는 20세기의 기술 발전으로 문명사회 간에도 더욱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진화론과 인류학이 발달하면서 원시부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초기 형태의 사회 구성과 분업구조, 가족관계와 문화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는 점도 밝혀지게 되었다. 인간사회를 문명과 야만으로 구분 짓는 시각은 그 뿌리가 깊다. 로마인들은 세계를 문명의 로마와 야만의 게르만으로 분리했었다. 마찬가지로 고대 중국도 한족 이외의 동서남북은 모두 야만인 오랑캐로 분리했었다.

 

 

문명의 시작

 

역사적으로 문명은 다양한 요소들에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변화, 발전해왔다. 과거 대륙별, 지역별로 단절된 시대에는 권역별로 문명이 발전하면서 나름대로 높은 수준에 이르렀고,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출발해 이집트 문명과 만나고 그리스, 로마를 거쳐 유럽으로 이어지는 흐름으로 문명의 발전을 이어왔다. 또한 고대 중국과 인도에서 출발한 아시아 문명권은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이어가고 있고, 대항해 시대에 유럽인들에 의해 파괴되어 단절되거나 변형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문명도 높은 수준의 기술적, 사상적 기반을 구축했다.

 

고대 국가에서도 문명을 이끌어가는 주도권이 계속 이전되고 있다. 예를 들면 메소포타미아의 페르시아 제국, 이집트의 파라오 왕국,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파르타, 고대 로마에서 근대의 스페인과 네덜란드로 이어지는 흐름, 영국에서 오늘날 미국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그렇다. 동양의 중국에서도 왕조교체를 통한 한족과 유목민족의 세력교체가 끊임없이 발생해왔다. 약자가 강자가 되어 중심으로 부상하고, 다시 강자는 약자로 쇠퇴하고 다른 강자가 탄생하는 변화의 패턴을 보인다.

 

 

액체로서의 인문학

 

기상학자는 날씨를 예측하고 경제학자는 경기를 예측하지만 대개 틀린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면 기상학자는 최소한 현재 날씨만큼은 맑음?흐림으로 분명하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경제학자는 현재가 호황의 마지막인지, 불황의 끝자락인지 정확히 모른다. 이러한 인식의 한계로 경제학자들마다 현상의 진단과 처방이 다양하며, 소위 가장 권위 있다는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학자들끼리도 동일한 경제정책을 두고 불꽃 튀는 설전을 벌인다. 시간이 지나서도 명확하게 판가름 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는 기상학과 경제학이 인간행동과 예측결과의 독립성에서 근본적인 차이를 가지기 때문이다. 날씨라는 자연현상은 인간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반면, 경기변동은 경제주체의 행동과 상호작용한다. 예를 들어 기상학자가 내일의 날씨가 추울 것이라고 예보하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장갑을 끼는 것으로 대응해 몸을 따뜻하게 하지만, 그렇다고 날씨가 따뜻해지지는 않는다.

 

 

 

유연성을 가져라

 

인간이 완벽하지 않듯이 인간의 문명도 나름대로의 문제를 내포하고 발생시킨다. 그러나 인간의 지식과 기술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 더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온 것이 문명의 역사다. 이 과정에서 가장 소중한 자원은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이었다. 인문학도 인간의 지식과 창의성을 확장시킨다는 의미에서 중요성을 지닌다. 그러나 인문학의 아이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면 이는 과거로부터 던져진 화석이 되어 오히려 현재를 구속하는 기제가 된다. 인문학을 포함한 모든 지식이 인간의 삶을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도구라는 관점에서 인문적 소양도 미래적 관점에서 흡수할 필요가 있다.

 

미래 관점의 인문적 소양이 갖추어야 할 첫 번째 요소는 유연성이다. 과학발전도 단편적 지식의 집적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에 도전하는 새로운 패러다임과의 상호 관계에서 진행된다. 인문학적 지식의 축적과 발전도 비슷한 양상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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