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괜찮지 않다 - 자신감과 열등감 사이에서 방황하는 여자들을 위한 심리처방전
배르벨 바르데츠키 지음, 강희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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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식증, 폭식증 등 각종 섭식장애의 기저에는 자존감 부족과 대인관계 장애라는 두 가지 특성이 깔려 있었다. 우선 섭식장애, 그중에서도 특히 폭식증을 앓는 여성들의 반수 이상에서 여성적 나르시시즘이 관찰되었다. 해당 환자들은 자기회의와 깊은 열등감에 빠져 있었고, 그런 문제를 완벽한 몸매나 예쁜 얼굴 등 겉치장으로 상쇄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고 그들은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는 오히려 더 당당한 척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강인함 뒤에는 한없는 외로움과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숨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파트너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등 대인관계에서 다양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작 누군가가 진심으로 자기에게 다가오면 이 여성들은 오히려 그 사람으로부터 도망치곤 한다. 상대에게 자신의 진심을 드러낼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여자들의 내면은 알다가도 모를 일 투성이다

 

저자 배르벨 바르데츠키 1952년생으로, 심리학 디플롬(학 석사 통합과정 학위) 취득 뒤 9년간 바트 그뢰넨바흐에 있는 심인성 질환 전문병원에서 근무했다. 전문 담당분야는 섭식장애와 중독증이다. 현재는 뮌헨에서 심리치료사이자 수련 슈퍼바이저로, 또한 치료사 전문 과정 교수로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이 책에서 주요 연구 분야인 나르시시즘 문제 중에서도 여성들만의 독특한 나르시시즘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침으로써 학계와 출판계에서 '여성적 나르시시즘'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자기 자신을 수용하고 긍정적 자기 경험을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조언한다. 또한 여성적 나르시시즘 환자들이 자신의 몸을 '완벽한 외모와 우월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써, '얼마든지 조종 가능한 도구'로써 평가절하하거나 학대하는 태도를 버리고, 자신의 몸을 온전하게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있는 방법들도 조언한다. 

 

즉 그녀는 독일 그뢰넨바흐 심인성질환 전문 병원에서 10여 년간 각종 심리장애와 중독증에 시달리는 환자들의 임상사례 수천 건을 분석한 결과를 토대로 여성들이 흔히 겪게 되는 심리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하여 <여자의 심리학>(2006년, 북폴리오 초판 출간)을 출간했는데, 이 책은 개정판이다.

 

중독 증세가 있든 없든 여성적 나르시시즘에 빠진 이들은 분명히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언제인지 모르고 자신이 원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은 또한 진심으로 무언가를 원하면서도 겉으로는 아닌 척, 그런 것쯤은 없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것처럼 행동했고, 어떤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저 꾹 참고 견디는 것에 익숙했으며, 자기 일을 뒤로 미룬 채 남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12쪽에서)

 

 

 

 


진정한 자아의 상실


대부분의 아이는 부모의 애정에 크게 의존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마음에 들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나아가 주변 환경에 필사적으로 적응하며 모든 이의 마음에 들려고 애쓴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이 아이의 본모습이 아니게 되는 것이다. 이때 아이의 겉모습이 곧 '거짓' 자아, 탈, 혹은 가면이 된다. '거짓' 자아는 유년기 시절 아이의 생존을 보장해주는 메커니즘이다.

 

그런데 너무 어린 나이에 가면을 쓰기 시작하면 아이는 나머지 자아, 즉 자신의 진정한 모습은 점차적으로 잃어버리고 만다. 이런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신이 처한 상황을 솔직하게 전달할 능력을 갖지 못한다. 그 이유는 첫째, 자신의 감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요, 둘째, 자신의 감정을 남에게 전달할 용기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 앨리스 밀러(1923~2010년)는 '거짓' 자아를 지니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켜 '마치 인양-인격'이라 칭했다.

 

 

내 몸의 주인이 내가 아니다

 

나르시시즘에 빠진 여성들은 자기 몸에 대해 무지하거나 부정적 시각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자기 몸을 오로지 '거짓' 자아의 실현을 위한 도구로 이용한다. 이들은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라면 과다한 운동과 트레이닝, 다이어트, 무조건 굶기, 구토 등 어떤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목표는 날씬해지는 것, 혹은 원하는 수준으로 비쩍 마르는 것이다. 때로는 자기 몸을 한계점에 이를 때까지 혹사시킨다.

 

아니면 그와 정반대로 뭐든지 되는 대로 집어삼키고 전혀 꾸미지 않으면서 자기 몸을 완전히 방치하거나, 자기 몸에 고통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 자기 몸에 대해 자연스러운 시각을 지닐 기회를 오래전에 상실했고, 자기 몸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여성들은 몸이 제안하는 조건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자기들이 몸에 이런저런 조건들을 붙인다.

 

 

성녀인가, 창녀인가

 

그림형제의 동화 <성모 마리아의 아이>에는 경직된 도덕관념을 갖고 살아가는 소위 '마리아의 아이들'의 운명이 잘 나타난다. 이런 여성들의 가장 큰 문제는 극과 극을 오간다는 사실이다. 성에 대한 관심도 욕구도 전혀 없는 성녀가 되거나, 창녀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데 문제가 존재한다. 여기서의 창녀는 직업적으로 성을 매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욕으로 똘똘 뭉친 사람, 성욕을 마음껏 발산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동화 속에서 마리아의 아이가 흘리는 눈물은 회한과 반성의 상징이고, 마리아는 이런 노력의 대가로 자식들을 품에 안겨주었다. 왕자와 공주는 그녀 내면의 아이, 즉 진정한 감정과 욕구, 삶의 의미와 충동을 상징한다. 이 내면의 아이는 지금까지 엄격한 도덕적 기준과 초자아의 지배에 억눌려왔지만, 진실을 고백한 후로는 자유의 몸이 되고 그녀 삶의 진정한 일부가 된다.바로 여기에 자기애적 인격장애를 치유하는 길이 숨어 있다. 즉, 진정한 삶을 방해하는 지나친 완벽주의와 도덕심을 버리고 자신의 감정과 진정한 욕구에 충실한 것이 치유의 길이다. 

 

 

나르시시즘의 분리모델  

자존감이 약한 여성들은 완벽주의, 거짓 독립심, 성공, 강인함, 감정의 조작, 지나친 적응, 자만심, 쉴 새 없는 활동 등을 통해 열등감을 상쇄하려 든다. 그런데 그 정도가 지나치다. 이들은 적당한 수준의 성공에는 만족하지 못한다. 걸출한 성과를 올려야만 직성이 풀린다. 외모도 '완벽해야' 한다. 흠 잡을 데가 없는 외모, 자신이 이상적으로 여기는 외모에 가가워야 만족한다. 일에 있어서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 이들은 절대적 완벽을 기하면서 자신을 지치게 만든다. 자기만의 고유한 개성을 발휘할 여지도 갖지 않는다.

 

이들은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이상적 자아상을 설정한 뒤, 이를 기준으로 자기 자신을 판단한다. 자신의 행동이나 외모,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너무 높은 기준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이들의 마음에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기준이 너무 높아서 그 기준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늘 자기 자신에 대해, 주변 사람에 대해, 세상에 대해 실망만 한다. 기준이 너무 높다는 것은 생각 않고 자신의 무능을 탓하고 남들이 칠칠치 못하다고 불평한다. 이에 절망과 열등감에 빠지며, 대인관계에도 문제가 생긴다.

 

자존감이 약한 여성들은 남들에게 거부당할까 봐 두려워한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깨닫지 못한다. 먼저 자기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생각하지 못한 채 남들이 자기를 좋아해주기만 바라면서 남들이 원하는 모습에 자기를 맞춘다.

 

 

 

완전한 인간이 되는 길 

자아의 각종 단면을 통합하는 것은 강점이라는 한 극과 약점이라는 다른 극을 연결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강점과 약점이라는 두 개의 극을 이으려면 '내 감정에 충실하더라도 내 강점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을 지녀야 한다. 이로써 두 개의 극 사이에 새로운 공간이 생겨나고, 이 공간으로 인해 삶은 한결 더 가벼워진다.

 

열등감과 우월감의 의미를 깨닫는 것도 치료 과정의 하나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불쾌한 감정이나 자존감 상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수 있다. 나아가 양극으로 분리된 심리가 결국 방어기제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극단적 감정을 포기하고 한층 더 건설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동화 속 결혼식은 양극의 통합과 더불어 진정한 대인관계를 상징한다.

 

"왕자가 마음에 들었던 백설공주는 왕자와 함께 궁전으로 갔습니다"

 

 

자립심과 긍정적 자기수용

 

견해 차이를 인정하는 것, 남들과 다른 자기만의 의견을 표현하는 것,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표현하는 것도 자립심에 속한다. 자기 자신을 돌보는 능력,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찾아내는 능력,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는 능력, 그것을 성취하는 능력도 자립심의 일부다.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키려는 시도를 처음 해보면 당연히 두려움이 느껴진다. 공격이나 비판을 받을까 봐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꾸준히 하다 보면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고수해도 나쁜 평판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걸 체험할 수 있다. 혹은 상대방이 설득될 때도 있다. 이런 체험은 치유에 커다란 도움이 된다. 

문제는 내면의 무언가가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제어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감정을 인지하고 인식하기만 하면 문제는 사라진다. '나는 내 감정을 느낄 권리가 있고,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존재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기만 하면 된다. 이러한 권리를 인식하는 것이야말로 자존감이 낮은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권리를 부인하기 일쑤다.

 

그러나 이런 권리를 인식하기만 하면 열린 마음으로 타인을 대할 수 있고, 자기 의견을 고수할 힘도 얻게 된다. 이때 '지금 내 모습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이런 말은 지금까지 해온 자기비하와는 대조된다. 이런 다짐을 통해, 자기를 포장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깰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문장은 생각의 일부가 되어 긍정적 방향으로 자존감을 형성시켜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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