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자들의 수다 - 사람을 읽다
김시천 지음 / 더퀘스트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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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논어>가 소중하게 간직해 온 옛날 옷과 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좋거나 나쁜 게 아니라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말하자면, 옛날에 입었던 옷이 오늘날 다르게 변한 내 몸에 맞지 않는 것처럼, <논어>가 현재 우리에게는 맞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죠? 옷을 다시 입으려면 수선을 해야 합니다. <논어> 읽기에서도 바로 그 수선의 과정이 필요한데, 그 출발점이 전통사회에서 갖는 <논어>의 지위나 의미가 현대사회에서의 그것과 다르다는 점을 확인하는 작업입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공자의 12제자, 각자도생에 나서다

 

책의 저자 김시천 숭실대학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양교육연구소 연구교수로 있다. 주로 도가철학과 한의철학, 동아시아 고전의 현대적 해석에 관심을 두고 강의하고, 연구하며 글을 쓰고 있다. 저서로 <철학에서 이야기로>(2004), <번역된 철학, 착종된 근대>(2011), <노자의 칼 장자의 방패>(2013) 등이, 역서로 <펑유란 자서전>(공역, 2011)이 있다.

 

<논어>는 공자가 죽은 후, 그와 관련된 기록들이 모이고 한참 뒤에 편집된 문헌이다. 따라서 기록자의 취지와 편집자의 의도가 개입되어 있는 텍스트라고 볼 수 있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천 2백 년 넘게 거슬러 올라가는 시기에 이루어진 <논어>의 편찬은, 우리가 오늘날 읽는 책과는 무척이나 다른 공정을 거쳐,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비용과 여러 가지 조건을 토대로 일어난 '획기적 사건'이었다. 책을 만들고 그 책에 내용을 기록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일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다양한 얼굴의 <논어>를 만나왔다. 동양 고전으로서, 유교의 경전으로서, 나아가 처세의 지혜를 알려주는 자기계발서의 원형으로서. 이는 누구의 시선으로 읽어 전달되느냐에 따라 빛깔이 오묘하게 달라진다. 동양철학을 인간의 생동하는 삶과 연결해 해석하는 데 오랜 시간을 바쳐온 저자는 <논어>를 공자의 12 '제자들' 관점에서 바라보며 그 옛날 논어가 최초로 편집되던 시기의 관점을 복구해 보고, 나아가 '사람'이라는 존재를 읽는 텍스트로서 재조명하려 한다.

 

공자의 숭고한 어록이라는 관점으로만 <논어>를 읽는 것은 고전의 수많은 틈새를 똑같은 재료로 메워버리는 것과 같다. 이에 저자는 <논어> 속 문장들의 약 55퍼센트를 차지하는 다채로운 등장인물 중 가장 비중 있게 등장하는 열두 제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당대 '공자학단'을 형성한 '개인'들의 철학을 재발견한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현실에 맞게 읽는 적절한 독법 가운데 하나다.

 

 

 

 

<논어> 속의 사람들을 읽다

 

이 책은 모두 5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이 사람을 보라!")에서는 큰 틀에서 <논어>를 새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통계를 인용하면서 우리들이 기존의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읽기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한다. 즉 <논어>에 등장하는 인간들의 발견과 각자도생하는 공자의 제자들을 살펴본다.

 

현대 중국과 한국의 많은 학자들은 <논어>가 증삼과 그의 문하생들이 편찬했다는 걸 거의 정설처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증삼은 이 책에 몇 번 출현했을까? <학이>편에 2번, <이인>편에 1번, <태백>편에 5번, <선진先進>편에 1번, <헌문>편에 1번, <자장>편에 4번으로, 총 6편밖에 출현하지 않는다.

 

특이하게도, 증삼이 5번이나 출현하는 <태백>편의 경우에 다른 제자는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저자는 증삼과 그의 제자들이 편찬했다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은 <논어> 전체가 아니라, <태백>편만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이런 방식으로 <논어>에 접근하다 보니 또 하나 눈에 띄는 점이 있다. <선진>편에는 독특하게도 이 책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 29명 가운데 20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 <선진>편은 '공자의 제자 열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선진>편만 읽어도 공자의 여러 제자 이야기를 한꺼번에 읽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2부("운명이여, 안녕")에서는 공자의 친구이자 제자였던 무인武人 '자로'와 수제자로 알려진 '안회'의 이야기를 다룬다. 나이상으론 공자와 별 차이가 나지 않았던 자로는 공자의 제자가 되어 새 삶을 살지만, 그의 개성과 소신은 변하지 않는다. 반면 안회는 아주 어린 나이에 제자가 되어 공자의 가르침을 철저히 읽히지만 비천한 출신 때문에 벼슬을 포기하고 새 삶을 개척하는데, <논어>에선 홀대받고 <장자>에선 주요 인물로 등장한다. 

우린 소개된 이야기들을 통해 몇 가지를 읽어낼 수 있다. 우선 자로가 공자학단 내에서 이른바 재야在野와 연결하는 모종의 고리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는 점이다. 이 점에서 자로가 야인 출신인 점은 특기할 만하다. 이와 함께 공자학단은 야인의 삶을 부정했다는 것이다. 반면 공자학단에 속했지만 야인의 세계로 넘어가려고 했던 인물이 있었다. 학단 내부에서 다양한 요인으로 따돌림을 당했던 안회가 바로 그 사람이다.

 

 

3부(메멘토 모리, 죽은 자를 기억하라")에선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인 '자공'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 자공은 공자학단이 실제로 유지될 수 있도록 여러 방식으로 지원한다. 만약에 그 시절 이런 인물이 없었다면 아마도 역사적인 인물 공자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특징은 자공의 역할을 중심축에 두고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4부("어디에나 길은 있다")에서는 세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즉 '재아', '염구', '증삼'이 바로 그들이다. 재아는 유가 전통에서 배반자로 취급받았지만, 그는 합리적 사유를 내세우는 새로운 사조의 개척자인 셈이다. 염구는 매우 현실적인 인물로 공자의 바람과는 다른 길을 찾는다. 증삼은 <효경>의 저자로 알려졌으며, 이후 그의 제자 문하에서 맹자가 배출된다.

 

재아가 가장 재아답게 드러나는 이야기를 살펴보자. 


재아가 물었다. "3년상은 1년으로도 충분합니다. [만약 공직을 맡고 있는] 군자가 3년 동안 예禮를 행하지 않으면 예는 분명히 망가질 것입니다. [또 군자가] 3년 동안 음악樂을 하지 않으면 음악은 분명히 사라질 것입니다. 옛 곡식이 없어지고 햇곡식이 올라오는 것과 [계절마다 바꾸어 사용하는] 불씨 얻을 나무를 바꾸는 데도 1년으로 충분합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선생님이 [불쾌한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부모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쌀밥을 먹고 비단옷을 입어도 너는 편안하냐?"
[선생님의 반응이 예상외로 공격적인 말로 돌아오자 재아는 결심한 듯이 이렇게 말했다.] "편안합니다"

[물러설 줄 알았던 재아가 다시 도발적으로 대답하자 선생님도 계속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네가 편하다면 그렇게 해라. 군자는 [부모의] 거상 중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을 모르고, 음악을 들어도 즐거운 줄 모르고, 집에 있어도 편안하지 않다. 그래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금 너는 편하다고 하니 그렇게 하도록 해라"


재아가 나가자 선생님이 [주위의 제자들을 둘러보면서 혀를 끌끌 차며 이렇게] 말했다. "재여(재아는 재여의 자이다)는 어질지 못하구나不仁. 자식이 태어나 3년이 지나야 부모의 품을 떠난다. 3년상은 천하에 통용되는 상례다. 재여는 자기 부모에게 3년 동안 사랑을 받기는 했을까?"

 
여기서 재아는 "생명은 1년을 주기로 순환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지켜야 할 '상'이라는 예의 기간도 자연법칙에 따라 1년으로 하는 것이 순리 아니겠습니까?"라고 공자에게 물은 것이다. 그런데 공자는 "너는 부모가 돌아갔는데도 맛있는 게 입에 들어가느냐?"며 쏘아붙이며, 한마디로 공자가 반칙을 한 거다. 거기다 재아의 뒷담화까지 한다. 만약 공자가 재아의 질문에 바로 "사람이 태어나고 부모 품을 벗어나는 데 3년이 걸린다면, 부모와 헤어지는 것도 3년이 걸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대답했다면, 둘 사이의 이야기는 합리적인 토론이 됐을 것이다.

 

 

5부("나는 나의 길을 간다")에서는 공자가 죽은 후 공자학단이 여러 분파로 나뉘어 여러 나라로 흩어져 유학을 퍼뜨리는 역할을 보여준다. 이들은 사상적 경향도 각각 달랐으며, 대표적으로 자하의 '경학經學'과 자장의 '유술儒術'이 이와 같은 유가의 분화와 개성을 잘 대변한다.

 

 

 

 

십인십색 <논어> 이야기

 

<논어>는 공자가 어떤 완벽한 가르침을 남겼는데, 그보다 떨어지는 인간들이 덜 완벽하게 이해하고 행동했다는 내용을 담은 책이 아니다. 제자들 각각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그 가르침을 각자의 삶 속에 적용하거나 때때로 거부하면서 자기 나름대로의 색깔을 만들어나갔다. 이런 다양성을 어떻게 공유하고 만들어나가는지가 새로운 <논어> 읽기의 출발이자 완성이 될 것이다.

 

그래서 <논어>에서 찾아야 하는 진면목은 공자라는 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라, 네가 되고 내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우리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혼자 살 수 없기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 수밖에 없다. 사람을 읽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 사람의 삶의 이야기를 읽는 것이고, 삶의 이야기는 늘 다른 사람과 포개어지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논어>는 나의 삶, 우리의 삶을 비춰볼 수 있는 하나의 거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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