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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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널>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완성했던 첫 소설이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무작정 거침없이 노트북 키보드를 두드리며 써내려간 작품이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내 데뷔작인 <비스티 보이즈> 원안 소설보다 훨씬 더 과거에 쓰였던 원고였다. 출판사들에게 흥행할 요소들이 전혀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젊은 열정과 순수, 뜨거운 갈망이 탄생시킨 <터널>은 초고 상태로 깊숙한 잠을 청해야만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론

 

소설가 소재원은 1983년 생으로, 26세에 영화 <비스티 보이즈>의 원작소설 <나는 텐프로 였다>로 데뷔한 후 8년 만에 10작품을 선보이는 열의를 보였다. 그의 작품은 서점뿐만이 아니라 활발히 스크린으로 옮겨지고 있다. <비스티보이즈> 외에도 설경구, 엄지원 주연의 <소원> 역시 그의 작품 <소원>을 원작으로 영화화한 작품이다. 현재 상영 중인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주연의 <터널>이 바로 그의 2013년 발표작인 이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그는 이 소설은 어떻게든 출판하고 싶었다. 한 출판사 대표는 "황당하고 어이없는 내용이며 작위적이고 억지스러워요. 이런 일이 정말 일어날 거라고 보세요?"라면서 거절했고, 계약했던 한 출판사는 막대한 계약금 손실에도 불구하고 출판을 취소했고, 계약했던 또 다른 출판사는 '죄송하다'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우여곡절 끝에 1년 후 '작가와비평'이라는 출판사에서 흔쾌히 계약, 세상밖으로 빛을 보게 되었다. 소설의 줄거리를 간략히 소개해본다.

 

한 아버지가 자식의 생일선물을 준비해 귀가차 터널을 통과하던 중 터널이 붕괴되는 바람에 홀로 갇히는 재난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 사건은 언론을 통해 빠르게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휴대폰으로 자신의 생존을 알린 아버지 정수는 대중들의 걱정과 안전하게 구출될 것이라는 기대를 받으며 암흑 속에서 구조를 기다린다.

 

 

"살아있습니다, 구조를 요청합니다"

 

구조 일정은 자꾸 지체되고, 서서히 사람들의 관심과 기대에서 멀어지는 그때, 구조 작업으로 인해 근처 마을 노인이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고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한편, 휴대폰 배터리가 모두 방전되는 통에 휴대폰을 통해 조난자의 생존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에 대중들의 태도는 돌변하면서 생존도 모르는 조난자를 위해 막대한 손실과 피해를 감수하고 구조하는 행위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다. 시간이 지날수록 여론은 정수를 비롯해 그를 구하고자 하는 전문가와 정수의 아내를 비난하고, 그들에게 결단을 요구한다.

 

한 사람의 재난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만 구조 여부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처음에는 자신의 일처럼 걱정하고 관심을 쏟던 여론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난자에게 공격성을 보이는 이중적인 태도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다수의 이익을 위해 한 사람의 희생을 강요하는 이 사회는 과연 정의로운가? 그리고 희생을 강요하는 대중은 과연 죄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가? 라는 화두를 던진다.

 

 

 

얼굴 없는 여론이 한 가장을 죽음으로 몰고가다

 

이정수가 구조를 기다리며 매몰된 현장에서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 바깥 세상은 희한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사고 발생 28일째, 터널 붕괴와 구조 작업이 진행되면서 교통사고로 피를 많이 흘려 긴급 후송이 요구되는 인근 마을의 노인들이 이 도로를 이용하지 못하면서 죽음을 맞이하자 사고 초기에 이정수 가족을 열렬히 응원하던 수많은 대중들이 이들 가족의 이기심 때문에 억울하게 노인들이 희생되었다는 이상한 여론 몰이를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안티 팬들은 이정수 가족의 집을 포위하고 온갖 비난을 쏟아내며 이정수의 아내 김미진을 대상으로 마녀사냥에 나섰다. 인터넷의 악플은 물론이고 이들은 도를 넘어 돌멩이를 던져 집 유리창을 깨부수고, 심지어 딸 수진이의 감기 치료차 병원으로 나가려던 미진에게 계란을 투척하거나 머리채를 잡아흔드는 할머니까지 있었다. 졸지에 이 사회의 피해자이자 약자인 정수의 가족들이 마치 몇몇 노인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가해자로 바뀐 듯했다.

 

"이년아! 너 때문에 우리 다 죽게 생겼어!"

 

세상에서 가장 간사한 것이 바로 대중의 마음이다. 미진은 어마어마한 대중들에게 유린당하고 있는 셈이다. 진실을 외면한 채 대중들은 자신의 분노를 타인에 대한 욕으로 승화시켜 마음껏 쾌락을 즐기는 잔인한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콜로세움 경기장에서 무자비한 학살이 자행되던 검투사 경기를 관람하면서 열광적인 환호를 보내는 로마 시민들과 같았다. 진실을 떠나 대중들은 이정수 가족을 희생양으로 삼는 일을 즐기고 있었다.

 

31일째, 네티즌들의 댓글은 이미 남편 정수가 사망했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더구나 어린 딸 수진도 이런 대중들의 외침을 알기에 "아빠 오지 말라고 해. 아빠만 안오면 되잖아"라고 울먹였다. 미진은 네 살 아이의 입에서 이런 끔직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 상상조차 못했다. 주말만 되면 아빠에게 잘 보여야 된다며 예쁜 옷을 사 달라 조르던 순수한 아이였다. 어른이 되면 아빠와 결혼하겠다던 딸이었다. 미진의 가슴은 무너져내렸다.

 

"구조를 중단해 주세요"

 

패닉 상태에 빠진 미진은 정수가 밤 10시만 되면 듣게 될 라디오 방송 프로그램에서 남편에게 용기를 주는 긍정적인 멘트를 날렸지만 이번엔 달랐다. 대중들에게 감염되었는지 남편의 생존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여보, 나 힘들어. 수진이도, 나도 너무 힘들어 죽겠어. 어떻게 해야 할지 수도 없이 고민했어. 사람들은 우리를 찾아와 욕을 하고 협박했어. 당신 때문에 억울하게 누군가가 죽었다면서 우리를 저주했어. 모두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따라야 할 것 같았어. 그리고 지금 나는 당신에게 가장 아프면서도 미안한 말을 하려 하고 있어. 만약, 만약에 살아있다고 하더라도, 그만 삶을 포기해. 더 이상의 구조는 없을 테니까"

 

방송을 듣던 정수의 눈에서 한없이 눈물이 흘렀다. 사랑하는 가족이 시달리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는 바로 실행에 옮겼다. 32일째, 구조를 중단하고 터널을 허무는 작업을 진행했다. 이틀 만에 정수의 불타버린 차량이 발견되었다. 사망 추정 시간은 이틀 전으로 확인되었다. 벌서 죽었다고 그렇게 떠들어대던 여론과 언론은 모두 침묵했다.

 

정수가 죽은지 5일째, 미진에게 보상금이 지급된다는 소식이 매스컴을 탔다. 사람들은 정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이 미진에게 있다고 새로운 손가락 놀이를 개시했다. 보상금을 타내려고 남편을 죽음으로 내몬 잔혹한 마녀라는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이었다. 또다시 미진은 민중의 재판을 받아야 하는 죄인으로 재판장에 서야만 햇다. 이후 미진과 딸 수진은 펜션에서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이들이 사망하자 여론은 잠잠해지고 또다른 먹거리를 찾고 있었다.

 

 

과연 '정의'란 존재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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