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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마운틴 스캔들
카린 지에벨 지음, 이승재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4월
평점 :
절판
6월 15일,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는 끔찍한 고문이라도 당한 듯 만신창이가 된 시신을
끌어안고 있었다. 마치 마음대로 가지고 놀다가 처참하게 망가뜨린 꼭두각시 인형 같았다. 이미 몸에서 온기가 모두 사라진 시신. 너무나 소중한
존재였던 시신을 꼭 끌어안은 그는 분노와 절망 사이를 오가며 그렇게 굳은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그토록 사랑했던 대상을 증오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의문의 실족사와 거대한 음모의
실체
카린 지에벨은
1971년 프랑스 동남부 해안도시 바르에서 태어나 지금도 이곳에 거주하고 있다. 연필을 쥘 수 있는 나이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대학에서 법률 및
라이선스를 공부했다. 국립공원관리원, 영화 조감독, 프리랜서 사진작가, 변호사, 아동통학지도 등 다양한 사회적 경험을 쌓으며 소설 창작의
밑거름이 되는 자양분을 얻게 되었다.
데뷔작
<테르미누스 엘리시우스>로 2005년 마르세유 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고, 2006년 발표한
<속죄를 위한
살인>으로 코냑추리소설대상,
2007년 발표한 <너는 모른다>로 코냑추리소설대상과 SNCF독자대상, 2011년 발표한 <빅 마운틴 스캔들>로
코냑추리소설대상, 2012년 발표한 <그림자>로 다시 코냑추리소설대상과 마르세유추리소설대상을 수상했다. 그녀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두루
겸비한 작가로 발표하는 작품마다 커다란 화제를 불러 모으며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여성 스릴러 작가로
통한다.
<빅 마운틴 스캔들>은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심리스릴러로
산악가이드와 여성 군인경찰이 국립공원관리인의 죽음을 둘러싼 의혹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싹튼 사랑과 모험을 다루고 있다. 사람들이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지 등장인물들의 복잡한 심리와 치열한 생존게임을 통해 지켜보는 재미도
각별하다.
"산은 한없이 아름답고 매력적이며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화무쌍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때로는 무시무시하고 잔인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죠. 산의 그러한 모습은 우리가 사는 세상과 인간의 자취를 닮아 있기도
합니다" - '소설 발표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
증에서
"단지
어젯밤에만 내가 필요했던 거야?"
프랑스 동남부 지역에 있는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에서 산악가이드로 일하는 뱅상
라파즈는 5년 전 아내 로르가 관광객과 눈이 맞아 산장을 떠난 뒤 혼자 살아가고 있다. 뱅상은 아내 로르가 떠난 이후 줄곧
하룻밤 욕망을 채워줄 여자들을 유혹해 산장으로 데려오고 다음날 여지없이 차버리는 행위를 반복해왔다. 요즈음은 콜마르여행사의 신입
직원 미리암을 유혹해 하룻밤을 보낼 작정이다. 그녀는 갓 스무 살로 어깨까지 길게 흘러내린 두발이
인상적이었다.
뱅상은 여자들을 하룻밤 잠자리 상태로 여기는 행동을 통해 얻는 건 아무것도 없다. 쾌감을
즐기는 것도 아니고, 지난 과거의 상처를 아물게 하지도 않았다. 단지 허황되고 덧없는 복수심이 지속되고 있을 뿐이었다. 가출한 아내 로르가
치러야 할 복수의 대가를 단순히 여자라는 이유로 아무런 죄도 없는 이들이 대신 치르고 있는
셈이다.
'언제든
전화해'
추위를 무릅쓰고 뜨거운 물을 욕조에 받아 몸을 데운 미리암은 침대에 드러눕자마자 뱅상의
메모지가 눈에 띄었다. 아니 메모지를 찾았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연락오길 계속 기다릴 경우 뱅상이 다른 여자에게 관심을 돌릴 것만 같아 그녀는
용기를 냈다. 이미 그녀는 뱅상 생각 때문에 지난 밤에도 거의 잠을 못잘 정도였다. 휴대폰을 들었다. 집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뱅상도 그러겠다고
맞장구쳤다. 최근 첫사랑과의 아픈 기억이 있는 그녀는 새로운 남자로 뱅상을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남자 경험이 많지 않아 벌써 가속
페달을 밟고 있었다. 그녀의 몸은 마치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쳤다. 뜨거운 불덩이가 심장으로 쏟아져
내렸다.
밀려드는 햇빛을 받으며 미리암은 눈을 떴다. 알몸 그대로 욕실로 향했다. 하룻밤 사이에
훨씬 여성스러워진 느낌이었다. 샤워를 마치고 곧장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뱅상은 없었다. 테라스에 나가봐도 역시 없었다. 식탁 위에 놓인 메모지를
발견했다. 뱅상이 편히 쉬다가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뱅상의 픽업트럭 옆에 차를 세운 피에르 크리스티아니는
조수석에 놓아둔 무전기를 챙겨들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눈길에 찍힌 두 개의 발자국으로 미루어보아 뱅상이 누군가와 동행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신발의 크기가 240밀리미터 안팎인 걸 보면 동행인은 여자가
분명했다.
피에르는 샹 리샤르 북측사면에 모여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산양 무리를 바라보며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은 그의 땀과 숨결이 배어 있는 곳이었다. 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하려드는 사람들로부터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 숲을 이루고 있는 동식물들을 보호하는 일이 국립공원관리인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이제 결단을 내려야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모든
사실을 털어놓을지, 아니면 끝까지 입을 다물지 선택해야 하는 기로에 놓여 있었다. 진실을 털어놓을 경우 현재 누리고 모든 걸 잃을 수도 있었다.
입을 다물 경우 파멸이 예정된 길을 갈 수밖에 없었다. 오직 메르캉투르 국립공원만이 그를 도울 수 있었고,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는 그에게
조언을 해줄 수 있었다. 피에르에게 산은 생명과도 같은 곳이었고,
언제나 지혜와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곳이었다.
미리암은 옆에 잠들어 있는 뱅상의 몸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아무리
쳐다봐도 질리지 않는 듯 뱅상의 자는 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여행사 사장 미셸은 "뱅상은 위험인물이야. 맹독을 품은 독사 같은
작자니까 제발 물리지 않게 조심해"라는 충고에 찝집했지만 뱅상을 만나는 순간 모든 의구심이 마법처럼 사라져 버렸다. 반면, 눈을 뜬 뱅상은
어젯밤 연락도 없이 앙콜리에 찾아온 미리암을 돌려보내지 못한 일이 얼마나 큰 실수인지 깨닫자 갑자기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그는 결국 가시 돋힌
말을 내뱉고 말았다. "둘이 잠깐 동안 즐긴 거라고 생각해. 그동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것에 만족하고 관계를 청산하자는 뜻이야" 이 말에 미리암은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여행사의 신참내기 아가씨 있잖아요.
오늘 아침, 집에서 손목을 그어 자살한 시체로 발견되었어요"
하계 성수기에는 등산객들을 인솔해 해발 3천미터 고지의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는 게 뱅상의
주요 일과이다. 드디어 메르캉투르 국립공원에 관광객들이 다수 몰려드는 여름철이다. 하필 이런 성수기를 앞두고 앙콜리 산장에서 하룻밤을 보낸
미리암이 이별 통보를 받자 자살하고 말았다. 그동안 뱅상은 별로 죄의식을 느낀 적이 없었는데 미리암의 자살은 그에게 큰 충격을
안긴다.
한편, 메르캉투르
지역 군인경찰대에 배치 받은 초년병 군인경찰 세르반 브라이덴바흐는 근무지의 지리도 읽히고 일주일에 두 번 주어지는 휴일을 보람 있게 보내기 위해
뱅상에게 가이드를 부탁한다. 두 사람은 함께 메르캉투르 산을 오르내리는 동안 인간적인 신뢰와 함께 차츰 애정이
쌓여간다.
"국립공원관리인 한 사람이 산을 둘러보는 중이었는데
조난을 당했는지 무전연락이 안 되고 있나
봐"
뱅상의 친구이자
국립공원관리인인 피에르가 실족사했다. 20년 넘게 메르캉투르 산에서 일한 그가 실족사라니 뱅상의 입장에선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 이에 뱅상은
인간적인 신뢰가 쌓인 군인경찰대 여자대원 세르반과 함께 의문의 실족사에 얽힌 의혹을 밝히려는 수사를 시작한다.
망원경으로 낭떠러지를 살피던 세르반은 이질적인 느낌을 주는 뭔가를 발견했다.
저게 도대체 뭐지? 자세히 보니 급류계곡으로부터 수십여 미터 떨어진 바위 위에 분명 누군가가 쓰러져 있는 게
보였다. 단지 발끝만 보일 뿐이었지만 사람이라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세르반은 한참 앞서 가고 있는 두 남자를 소리쳐 불렀다.
"협곡
아래쪽에 뭔가 이상한 게 있어요"
"저기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요"
"피에르가 맞아요"
차츰 수사를 통해
놀라운 비밀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피에르와 국립공원관리소의 쥘리엥 망소니 반장의 부인 기슬렌이 연인 관계였으며, 정수장 슬러지 공사장 건립
부지 건으로 부정수뢰, 지질조사보고서 작성 당시의 부정행위 등이 밝혀지고, 망소니 반장은 시장을 협박해 거액을 챙겼다는 사실 등이 드러난다.
그리고 앙드레 시장은 부정축재를 위해 온갖 악행을 저질러온 것이
밝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