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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놓아줄게 ㅣ 미드나잇 스릴러
클레어 맥킨토시 지음, 서정아 옮김 / 나무의철학 / 2016년 3월
평점 :
난데없이 자동차 한 대가 나타난다.
젖은 브레이크가 끼익 소리를 내자 다섯 살배기 소년이 쿵 하고 차창에 부딪혀 빙그르르 돌더니 땅에 내동댕이쳐진다. 엄마는 아들을 쫓아 아직 멈춰
서지 않은 자동차 앞으로 달려간다. 그러다 미끄러져 손바닥을 펼친 채 넘어진다. 그 충격으로 숨이 막힌다. 모든 것이 눈 깜짝할 새에 끝났다.
- '프롤로그' 중에서
사람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이를 감추려한다
책의 저자 클래어
맥킨토시는 12년 동안 영국 경찰로 재직하면서 범죄수사과 형사와 공공질서를 담당하는 총경을 지냈다. 어릴 때부터 글쓰기를 좋아해
이미 작가가 되기 전에도 지역 뉴스레터와 잡지에 자신의 칼럼을 연재하다가 2011년 경찰을 그만두면서 전업 작가로 데뷔했다.
영국 언론으로부터 찬사를 받을 만큼 탄탄한
구조가 매력적인 이 데뷔작은 경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옥스퍼드에서 실제로 일어난 미해결 사건을 모티프로, 무엇이 사람으로 하여금 범죄를 저지르고 숨기게
하는지를 강력 범죄의 피해자가 된 어린아이와 그의 부모 그리고 어딘가에 있을 살인자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엄마는 아들 옆에 웅크리고 앉아 정신없이 맥박을 찾으며 한 줄기 흰 구름처럼 허공으로
솟아오르는 자신의 입김을 본다. 자신이 울부짖는 소리가 다른 사람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고개를 들어 흐릿한 차창을 보니 와이퍼가 활 모양을
그리며 어두운 밤공기 속으로 빗물을 밀어낸다. 그녀는 보이지 않는 운전자에게 도움을 청하려고 비명을
지른다.
소설은 제이콥 조던이라는 다섯 살 아이가 뺑소니차에 치어 숨진 사건으로 시작한다. 이
사고는 500쪽에 달하는 소설이 전개되는 동안 이야기를 천천히 넘나든다. 단순한 사고가 아닌 등장인물 각자의 정황을 드러내고 감정을 이끌어내는
수단으로 작동하며 날실과 씨실을 엮듯 그들의 에피소드 낱낱을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낸다.
![](http://book.interpark.com/blog/blogfiles/userblogfile/1/2016/04/29/22/5for10_2966438326.jpg)
책에는 화자가 세 명 등장한다. 첫 번째는 브리스톨 경찰청의 경위 레이 스티븐스, 두
번째는 젊은 조각가 제나 그레이, 세 번째는 제나 그레이의 남편 이안
피터슨이다.
"피시폰즈에서 뺑소니 사고가 났어요,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가 죽었대요"
범죄수사대에 배치된 지 겨우 두 달밖에 안 된 케이트가 손에 유인물을 들고서 이렇게
말햇다. 레이 스티븐스와 케이트 둘은 피시폰즈 뺑소니 현장으로 차를
몰았다. 레이는 관제실에 전화해
5분 뒤에 도착한다고 알렸지만 집에는 전화하지 않았다. 늦을 때보다 제시간에 퇴근하는 일이 드문 그는, 그 드문 경우에만 아내 매그즈에게
전화하곤 했다. 직업상 근무시간이 길 수밖에 없는 그로서는 그러는 편이 훨씬 더 합리적이라고
여겼다.
사고 현장에는 순경이
나와 있었다. 순경이 알려준 연립주택 단지에 도착해 피해 아이의 어머니집을 찾아갔다. 아이 어머니는 무릎 위에 움켜쥔 파란색 책가방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작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필요한 정보를 얻기 위해 간단한 대화를 시도했다. 가해차량의 번호판도 보지 못했고, 차 안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이 어머니는 레이를
바라보았다. "그 사람을 찾아내실 거죠? 제이콥을 죽인 남자요. 찾아주실 거죠?" 그녀 목소리가 갈라지고 말은 불분명해져서 낮은 흐느낌처럼
들렸다. 몸을 앞으로 구부리더니 책가방을 배로 끌어안는 그녀 모습에 레이 가슴이 죄어들었다. 그는 감정을 떨쳐버리려고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할 수 있는 일은 뭐든지 할 겁니다" 그는 뻔한 말을 하는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레이 스티븐스는 제이콥 조던 사건을 맡아 피의자를 찾으려고 브리스톨 전역을 수사한다.
범죄자를 수배하는 프로그램에 의뢰하기도 하고 대중에게 캠페인을 벌여보기도 하지만 작은 단서 하나 제대로 발견하지 못하고 수사는 난항을 거듭한다.
결국 청장은 소득 없는 사건 수사를 종료하고 세간의 이목을 끌 만한 새로운 사건에 착수하라고 종용하고, 레이는 그 명령을 받아들이는 한편 업무
외 시간에 제이콥 조던 사건을 계속해서 수사한다. 다섯 살 아이를 죽음으로 내몬 피의자를 어떻게든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제나 그레이는 브리스톨에서
촉망받는 젊은 조각가였으나 원치 않는 결혼 생활을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인적 드문 해안가로
숨어든다.
브리스톨을 떠나기 무섭게 결심이 흔들린다. 어디로 가면 좋을지 심사숙고하지도 않았다.
데본이나 콘월로 가야겠다는 생각만으로 무작정 서쪽으로 향한다. (중략) 정거장으로 다가서는 버스를 기다리지 못해 추월하려는 자동차들을 보니
두려워서 온몸이 떨릴 지경이다. 한동안 목적 없이 배회하다가 그레이하운드가 일렬로 늘어선 지점으로 가서 매표소 직원에게 10파운드를 건넨다.
그는 나만큼이나 내 목적지가 어디인지 관심이 없다.
그녀가 버스에서 마지막으로 내린다. 막상 멀리 떨어진 스완지에 도착하니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스완지를 뒤로하고 몇 킬로미터를 걷는다. 여행 가방을 배낭처럼 뒤에 멨다.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 부재중 전화도
확인하지 않고 배수로에 던져버린다. 자신의 과거를 연결하는 마지막 조각을 버리고나자 좀더 자유로워진
느낌이다.
어둠이 내려앉는다. 입술에 느껴지는 소금 맛과 해변을 치는 파도 소리 때문에 자신이 바다
가가이에 와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표지판엔 '펜파흐'로 표시되어 있다. 마을은 너무 조용하다. 집집마다 쳐놓은 커튼이 보인다. 마을을 지나
만灣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까지 간다. 냉기에도 아랑곳 않고 신발을 벗어 발바닥에 모래알의 감촉을 느껴본다.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더니 아침에
피로가 몰려온다. 여느 동네 못지않게 새 출발을 하기엔 좋은 곳 같다.
"휴가
오셨어요?"
"이곳으로 이사하고
싶어요"
그녀는 펜파흐 캠핑카 야영장을 운영하는 배선 모건이라는 사십대 여인을 통해 집을 구했다.
그녀의 남편은 인근에서 농장을 운영한다. 남편 농장 옆에 양을 키우는 이에스틴이라는 농장주는 마을에 휴가용 별장을 소유하고 있고, 위쪽에 위피한
블라인 케디에 오두막집도 소유하고 있었다.
말이 오두막집이지 마치 양치기 움막 같았다. 습기 때문에 외벽엔 얼룩이 번져 있고, 지붕
위의 슬레이트는 군데군데 떨어져 나갔다. 웅덩이에 들어 있는 형상이라 수평선도 만도 보이지 않는다. 1층은 길이가 3.7미터 정도이며 울퉁불퉁한
나무 식탁이 주거 공간과 주방을 구분하고 있고, 2층 공간은 침실과 욕조가 딸린 소형 욕실이 있었다. 거울은 얼룩이 잔뜩 끼고 금이 가 있다.
그녀는 직업이 화가라고 설명하고 계약을 마쳤다.
소파에 앉아 내 숨소리를 듣는다. 바닷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갈매기 한 마리가 내는 구슬픈 소리가 아기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두 손으로 양쪽 귀를
막는다.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그곳에서 오두막집을 하나 빌려 살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하지만 몇 해 동안 그녀를 잠식했던 불안과 두려움은 쉽사리 걷히지 않는다. 해안 마을의 꾸밈없고 따뜻한 이웃들이 제나에게 관심과 사랑을
베풀자 그녀는 서서히 마음을 열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키워본다. 하지만 과거는 그녀를 놓아주지
않는다.
"운전자를
잡았어요"
BT(영국 통신사)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케이트 에반스
형사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용의자 주소를 전달받고 바로 현장으로 출동했다. 제나는 이미 펜파흐 마을에 소문이 날대로
난 연인 패트릭과 함께 집에 있었다. 그는 동물병원 수의자이자 해변 인명 구조소의 자원봉사자이기도 하다. 패트릭이 안으려 할 때 마침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그녀는 아마도 이에스틴일 거라며 문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마자 무슨
일인지 정확하게 깨닫는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그녀가 살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인 양 위장하고 싶었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으리라 스스로를 기만하고 싶었다. 발각된다면 어떻게 반응할지 스스로도 궁금하곤 했다. 다시 돌아가야 한다면 어떤 기분일지, 돌아가지 않으려
애쓸지 알고 싶었다.
"케이트 에반스 형사입니다. 브리스톨 범죄수사과예요. 난폭 운전으로 사망자를 발생시키고 사고 현장에서 정차하지 않은
혐의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지만 질문받고도 대답하지 않은 사항은 앞으로 재판을 받을 경우 당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화자인 이안 피터슨은 이 소설에서 가장 내면이
얽히고 설킨 인물이다. 이안 피터슨 자신과 그를 둘러싼 관계를 통해 작가는 사람이 어떻게 괴물이 되어가는지, 어떻게 폭력과 잔인함에 익숙해지며
그 본질과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한 답을 이야기로 풀어낸다. 사고란 불가항력이며, 어느 누구도 피해자 혹은 피의자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근본적인 심리를 철저히 바라보게 한다.
그의 본명은 이안 프랜시스 피터슨, 65년 4월 10일 생으로 확인되며 음주 운전과
가중 폭행 등의 전과 기록이 있다. 현재에도 접근 금지 명령 대상이었다. 그 대상은 마리 워커라는 여성이었다. 패트릭의 단서 제공으로 제나의
침대 밑에 숨겨진 상자 속에는 제나의 여권이 발견되었다. 영국 여권으로 제니퍼 피터슨으로 등록되어 있었다. 제나와 피터슨은 결혼한 사실이 있는
셈이다. 또한 추가 조사 결과 피터슨은 결혼 당일부터 제나에게 지속적으로 폭행을 가해 왔던 것이다. 소설의 후반부는
급반전이다.
"이안이 제이콥을 죽였어요. 하지만 제가 죽인 것
같았어요"
사고 당일, 제나 소유의 뺑소니 차량을 운전한 이는 바로 피터슨이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제이콥이 피터슨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근무하던 회사의 화장실 청소를 하던 일당 잡부였던 폴란드 여성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다. 마침내 진실이 드러났다. 제이콥의 죽음은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 아버지에 의한 아들의 살해
사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