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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밤의 비밀 ㅣ 마탈러 형사 시리즈
얀 제거스 지음, 송경은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12월
평점 :
절판
흔하디 흔한 '예기치 않은 살인 사건'이라는 소재를 선정적으로 다루는 것 이상을
보여준다. 시니컬하지만 인간적인 매력을 지닌 형사 마탈러와, 유능하면서도 개성 넘치는 경찰청 소속 팀원들이 앙상블을 이루어 지적이면서도 재치
있게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수사 과정도 흥미진진하지만, 이야기는 단지 여기에 머물지 않는다. 특정 신념에 경도되어 스스로 파멸하면서도 끝내 반성할
줄 모르는 한 인간의 몰락을 '추리'라는 외형에 담아 날카롭게 조감하면서, '누가 누구를 죽였느냐'는 추리 소설의 전형적 질문을 '무엇을 위해
살인을 선택했는가'라는 질문으로 바꿔 놓는다.
무엇을 위해
살인했는가?
파리에서 소규모 극장을 운영했던 70대 노인 호프만, 어느 날 그는 TV쇼에 출연하여
60년 동안 고향인 독일 땅을 밟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는다. 12살 때 나치 대원에 의해 부모가 끌려가는 것을 목격한 이후 그날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오랜 세월 안간힘을 썼던 일을 말이다. 방송이 나가자마자 그에게 전달된 두꺼운 서류봉투 속에는 아버지가 유품으로 남긴 세계적 작곡가의
미출간 친필 악보가 들어 있는데, 그 악보의 가치는 무려 수백만 유로에
달한다.
전작 <너무 예쁜 소녀>에서 경찰 조직의 체계적인 수사와 완벽한 팀플레이로
인상적인 추리과정을 선보였던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강력계가 또 한 번 맹활약을 펼친다. 강력계 팀장인 로버트 마탈러는 특유의 성실함과 냉정한
판단력, 그리고 전형적인 수사반장 같은 인간적인 매력을 발산하며 사건 해결의 중추적 역할을 맡는다. 과학수사연구소장 사바토, 감식팀 팀장 쉴링
그리고 새로 부임한 프랑크푸르트 경찰청 국장 샤로테 등, 여러 인물들이 사건이 미궁에 빠질 때마다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며 마탈러와 환상적 콤비를
이뤄 사건 해결의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방송기자인 발레리는 호프만의 대리인 자격으로 저작권 계약을 위해 프랑크푸르트로 가지만,
약속 장소인 선상 레스토랑에서 다섯 명이 살해되고 그녀는 납치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수사를 맡은 프랑크푸르트 경찰청의 강력계 팀장 로버트
마탈러, 그는 단서를 찾아 범인을 뒤쫓을수록 사건 너머에 도사리고 있는 더욱 끔찍한 실체와 마주하게
된다.
선상 레스토랑에서 잔인한 총격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본격적인 수사에 돌입하지만 좀처럼
범행의 목적도 과정도 잘 파악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용의선상에 두고 탐색하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중, 유력한 단서로
떠오른 것은 사건 현장에서 프랑스 여기자와 함께 사라진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이다.
그러나 악보의 저작권을 차지하기 위한 범죄라고 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 많은
가운데, 금품을 노렸거나 원한 때문에 벌어진 사건도
아니다. 도대체 범인은 무엇을 노리고 이처럼 잔인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작가가 멍석에 깔아놓은 온갖 복선들을 단서로 범인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유추해나가는 과정에서 뜻밖에도 놀라운 비밀이 드러난다. 악보에 얽힌 진실들이 서서히 장막을 걷어내고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한다.
저자 얀 제거스는
스릴러의 새로운 거장으로 불리는 독일의 베스트셀러 작가다. 괴팅엔대학교에서 문학과 미술사를 전공한 그는 추리소설을 쓰기 전부터 에세이와
문학비평으로 많은 팬을 확보한 인기 작가였다. 1992년 <식인종의 사랑>으로 데뷔한 뒤 1997년 <늑대가 있는
풍경>으로 40세 이하의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마부르크 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부터 얀 제거스라는 필명(본명은 마티아스
알텐베르크)으로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고독한 수사관 마탈러를 주인공으로 한 시리즈물 <눈 속의 신부>와 <한여름 밤의 비밀> 등을
펴내며 스릴러 문학의 새로운 거장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마탈러 형사 시리즈물은 독일 공영 방송인 ZDF에서 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리에 방영되기도
했다.
1941년 10월 19일, 동틀 무렵
프랑크푸르트 서부 주택가는 어느 날과 다르지 않았다. 독일의 다른 도시나 시골 마을과 같은 평범한 가을날이었을 뿐. 그런데 바로 그날, 열두 살
사내아이 오르크의 인생이 뒤바뀔 사건이 일어났다. 전날 저녁 어머니가 아이에게 뜻밖의 말을 했다. 그날 밤은 이웃집에서 자게 될 거라는
얘기였다. 그날 이후 64년 동안 살아오면서 게오르크는 그날 밤 부모님의 모습을 기억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이건 악보예요. 오페레타 악보죠. 이 곡의 제목은 <한여름 밤의
비밀>"
호프만 씨는 종이 뭉치를 뒤집었다.
큰 글씨로 단어 네 개가 쓰여 있었는데 곧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릴 때 그가 쓰던 말이었다. <한여름 밤의 비밀>. 그가 독일어로
읽었다. 그는 미소 지으며 빙 둘러 있는 사람들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영문을 모른 채 그의 얼굴을 쳐다봤다.
몇 장 넘기니 악보가 나왔다. 그는 계속 미소 지었다.
발레리: "호프만 씨 아버지가 작곡하신 곡이란 말인가요?"
노신사: "아니요. 자크 오펜바흐의 오페레타요"
2005년 5월 29일, 호프만 씨는
그날 저녁 생전 처음으로 TV방송국에 출연했다. 거기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그는 일흔다섯 살로 건강한 편이며 앞으로도 오래 살기를 원한다.
한가지 희망이라면 자신의 여자 친구 블랑슈보다 먼저 죽는 것이다. 그녀는 그가 운영하는 극장에서 처음 무용수로 일을 시작했다. 지금껏 그는
자신이 살았던 이 마을을 떠난 적이 거의 없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파리 시내 페르 라셰즈 공동묘지의 묘비가 햇빛에
반짝였다.
무용수들은 대부분 각지를 떠돌다
행운을 잡껬다는 꿈을 안고 파리까지 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개 스스로 춤에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돈을 벌기 위해 저녁에 남자들을
상대로 춤을 추고 옷가지 벗는 그런 무용수로 전락하게 된다. 블랑슈도 예외는 아니다. 그녀가 그의 침대에 오르기까지 2주 정도 소요됐을 뿐이다.
두 사람은 동거하지도 않고 각자 집에서 살면서도 지금까지 관계가 완전히 멀어진 적이 없었다.
오늘 아침도 바짝 마른 햄 한 조각을
잘라 그녀에게 주려다가 칼에 손을 베이고 말았다. 욕실 수납장에서 반창고를 꺼내 오니손 엄지와 검지 사이에 붙였다. 그는 벨빌 지하철역 교차로
앞 밤나무 그늘에 섰다. 여자 친구는 이미 '라 베외즈' 카페 앞 의자에 앉자 있었다. 두 사람은 몇 년 전부터 매일 오전 그곳에서
만났다.
"손에 든 봉투는
뭐예요?"
"햄 한 조각, 당신에게
주려고"
같은 날 이른 저녁 호프만은 집에서
나와 빈 택시를 잡았다. 파리 북쪽에서 남서쪽 끝 이시 방향으로 향하는 긴 여정, 즉 아르테 방송국으로 가는 길이었다. 택시 기사는 못 미더운
시선으로 그를 훑어봤다. 과연 비싼 장거리 택시 요금을 낼 수 있는지 확인하려는 눈빛이었다. 그리고 타라는 신호를 보냈다. 한 시간 가량 지나
무사히 도착했다. 곧 발레리가 다가와 그를 안내했다. 그의 솔직하고 공감 가는 고백에 방송국 스튜디오는 적잖이 놀란다. 독일인, 유대인, 그의
부모 등 그동안 감추고 있었던 신상을 털어놓았기 때문이다. 방송을 마치고 가는 그를 수위가 불러 세웠다. 크리스틴 들로네라는 부인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내용인 즉 전할 편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에 발레리가 함께 동행하기로 했다.
부인이 말한 주소는 파리 서쪽에서
60킬로미터 떨어진 사비니 지역이었다. 마을 끝나는 곳에 호수가 있고 막다른 길에서 숲길로 접어드니 마치 성城같은 부인의 저택이 있었다. 부인은
60대 후반쯤으로 보였다. 호프만이 레뷔 극장을 정말로 운영했는지 당시 활약했던 인물들을 거론하면서 그를 통해 확인하는 듯했다. 확신이 들자
이제 부인은 방송 팀을 거의 무시했다.
아우슈비츠에서 노부인의 아버지와
호프만의 아버지는 서로 알게 되었고 당시 병원에서 일하던 호프만의 아버지는 환자로부터 감염되어 고열과 설사로 고통받다가 사망햇다는 사실과 언젠가
아들을 만나게 된다면 전해달라는 두꺼운 봉투를 현재까지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노부인의 아버지도 이미 작고한 인물이다. 전달받은 갈색
봉투의 개봉은 호프만의 요청으로 발레리가 했다. 악보였던 것이다.
발레리가
납치되다
아르테 방송국에서 발레리팀이 들로네
부인 집에서 촬영햇던 영상을 특집 방송으로 내보내자 편집국 전화에 불이 났다. 공연 관계자, 음악 출판사 등에서 저작권에 관심을 보인 탓이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호프만 씨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악보의 저작권 계약을 위해 발레리가 대리인으로 나섰다. 프랑크푸르트에 있는 독일
음악 출판사와 약속을 잡았다.
'2005년 6월 3일 금요일 5시
7분, 운터마인 다리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배, 술탄 레스토랑, 절반 정도 찬 유리잔과 먹고난 접시가 보인다. 눈앞에 다섯 명이 있는데, 의사
말로는 모두 사망이라고 진단했다', 로버트 마탈러는 보이스 펜을 꺼내 이렇게 녹음하고 있었다. 그는 프랑크푸르트 경찰청 소속 강력계
팀장이었다.
마탈러는 배 문을 열고 좀 더 주목할
게 있는지 살펴보려 했다. 그런데 발터 쉴링과 감식팀원들이 더 이상 참아주지 않았다. "일단 여기까지" 그가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사망자 다섯 명, 모두 총상 입음.
지금까지 신원은 밝혀지지 않았음. 사망자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아직 불분명. 아직 범인이 누군지 모름. 범행에 사용된 무기도 모름. 살해
동기 모름. 강도 살인으로 보이진 않음. 이 모든 게...." 말을 하다 말고 그는 녹음기를 껐다. 아직 결론을 내리기엔 너무 이르기
때문이다.
한편, 발레리는 깨어나려 했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깊은 바닷물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수면 위로 나가려 해도 무언가로 자신을 계속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무거웠다. 는꺼풀도 머리도 몸도 다리도, 너무 무겁고 둔했다. 겨우 눈을 떴지만 아무 것도 볼 수가 없었다. 주변은 완전 깜깜했다.
이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처음이었다.
선상 레스토랑에서 잔인한 총격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본격적으로 수사에 들어가지만 좀처럼 범행의 목적도 과정도 쉽사리 파악되지 않는다. 피해자의 주변 인물을 용의선상에 두고 탐색을 벌여가지만
뚜렷한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가운데, 유력한 단서로 떠오른 것은 사건 현장에서 프랑스 여기자와 함께 사라진 오펜바흐의 친필 악보. 그러나 악보의
저작권을 차지하기 위한 범죄라고 하기엔 설명되지 않는 점들이 너무 많고, 새로운 살인 사건이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금품을 노린 것도, 원한에 의한 것도 아닌 살인. 대체 범인은 무엇을 얻기 위해 이처럼
잔악한 범죄를 저지른 것일까. 작가가 깔아놓은 온갖 복선들을 단서로 범인이 누구인지 끊임없이 유추해나가는 과정에서 놀라운 비밀들이 하나둘
밝혀진다. 악보에 얽힌 진실과 괴물이 되어버린 범인의 정체 등이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 속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다
아우슈비츠의 만행을 기록한 아버지의 유품, 자신의 만행이 드러나길 두려워하는 전범,
그로인해 일어나는 연쇄 살인들을 보며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범죄의 속성을 보게 된다. 이 소설의 진짜 질문은 '누가 누구를 죽였는가'가
아니라 오히려 '누가 무엇을 위해 살인을 선택했는가'다. 인간성의 결함이라는 날카로운 주제를
환기시킨다.
현재 호프만이 프랑크푸르트 서류 보관소에서 아우슈비츠
재판 프로토콜을 찾아보고 있다는 사실을 기록 관리 전문가가 알려주었다. 급히 마탈러는 7층 서류 보관소로 갔지만 이미 그는 떠난 뒤였다. 책상
위엔 서류철이 펼쳐진 채로 놓여 있었다. 기록 관리 전문가의 말로는 1964년 3월 19일 이우슈비츠 재판 중 증인 심문 부분이라고
했다.
수석 판사: 그가 페놀 주사로 다른 포로들을 죽이는 것도
보셨습니까?
증인 브란트슈태터: 그는 프랑크푸르트 출신 유대인으로,
이름은 아르투어 호프만이었습니다. 그가 제게 말하기를, 몰래 일기를 쓰고 잇다더군요. 오래도니 악보 뒷면에 암호로 가록을 했다고요. 니호프가
저지른 짓을 빠짐없이 적어두었다고 했습니다.
마인 강변의 살인 사건은 이와 깊은 관련이 있고,
아마도 나치 시절의 만행을 은닉하려는 니호프 박사의 범행일 수도 있다는 가설에 도달한다. 그리고 부인의 증언과 달리 니호프는 현재 생존하고
있으며 그가 노리는 것이 바로 아르투어 호프만의 일기임이 자명해졌다. 수용소 군의관으로서 아우슈비츠에서 수많은 만행을 저질렀기에 이런 사실이
세상에 공개되는 것을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니호프는 사망한 것으로
위장하고 하인리히 슈미트라는 이름으로 살았다. 1958년 한 유대인 포로에게 목격되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그냥 넘어간 사실이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2005년 봄 TV 보도로 우편 봉투 속에 이르투어 호프만의 오펜바흐 오페레타 악보가 발견되었다고 전파를 타자 그는 이를 사전에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여기자 발레리 로샤르도 무사히 구출되고, 주범인 니호프 박사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소설의 마지막은 피아노 연주로 자크 오펜바흐의 녹탄 중에서 <한여름 밤의 비밀>의
선율이 흐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