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인 1
최지영 지음 / arte(아르테)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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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의 조선시대, 하멜 일행이 제주도에 표류한 역사적 팩트에다 서양 뱀파이어를 절묘하게 엮는 기발한 창작 능력을 발휘했다. 이미 KBS 드라마 <추노>와 <공주의 남자> 등 사극 드라마를 책임 프로듀싱했던 작가의 경험이 이 소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조선의 역사에 흡혈귀 고지인高地人이 살았다면 믿겨 지는가?

 

 

제주도에 뱀파이어가 살았다

 

작가 최지영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다. 그는 2012년 대한민국 스토리공모대전에서 <트랜스포터, 표사>로 최우수상을, <북의>로 우수상을 수상했다. 드라마 PD로서 2010년 대한민국 콘텐츠어워드에서 미니시리즈 <추노>의 기획 및 제작자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이밖에 <아이리스>, <공주의 남자> 등

 

1654년 조선 효종 시절, 하멜 일행이 표착한 제주도에서 피가 모두 빠져나간 의문의 변사체가 연이어 발견된다. 이에 조정은 연쇄 살변살변의 조사담당자로 시구문 말단 군관이던 염일규를 종5품 종사관종사관으로 승진 발령해 제주도로 급파한다. 염불보다는 잿밥이라고 그는 섬처녀들과의 육체적 쾌락에 더 관심이 크다. 

 

아무튼 그는 하멜 일행에 사람의 피를 마실수록 강해지는 불로불사의 존재인 고지인이 섞여 있었고, 그 고지인이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이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혀낸다. 범인인 서양 고지인 이고르를 추격하던 중 그는 이고르에게 물려 자신도 고지인의 신세가 되고 만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갈 방법은 없을까?

 

그의 앞에 가족의 원수인 효종을 죽이기 위해 더 큰 힘을 갈망하는 또 다른 고지인 흑도가 나타난다. 염일규의 내공을 노리는 흑도는 염일규를 유인하기 위해 염일규의 아내를 납치하고, 염일규는 아내를 되찾고자 흑도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흑도를 이용해 정권을 장악하려는 서인의 계략에 휘말린다.

 

 

 

 

소설은 역사적 팩트인 하멜 일행의 제주도 표착, 북벌론을 놓고 효종과 서인 간의 정치적 갈등에다가 불로불사의 서양 흡혈귀가 하멜 일행에 섞여 들어왔다는 픽션을 가미한 판타지 팩션이다. 효종의 북벌론을 포기시키려는 인물로 서인의 우두머리 송기문을 설정, '기해독대'와 '정유봉사' 등 역사적 실제 사건에 활약하는 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또한, 서양 하일랜더 전설에서 차용한 불로불사의 뱀파이어 설정과 내공을 쌓고 검술을 연마하는 한국형 무협 장르를 결합해 독창적인 조선의 흡혈귀 고지인을 만들어 냈다. 효종 시대를 배경으로 검 하나에 자신의 운명을 걸 수밖에 없는 고지인의 장렬하고도 섬세한 대결을 다룬다.

 

요한 복음서에 따르면, 서기 원년 로마 총독 빌라도에 의해 예수가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 위에 못 박히던 당시, 형벌을 집행하던 로마 병사는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옆규리를 찬으로 찔렀다고 한다. 그대 예수의 몸에서 쏟아져 내린 선혈을 온몸에 뒤집어쓴 그 병사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여호와의 저주를 받고 말았다. - '프롤로그2' 중에서

 

비록 천형을 받았지만 혜택도 주어졌다. 영원불사永遠不死, 불상불사不傷不死의 운명이었다. 병사는 피의 해갈을 위해 살인을 통해 피를 보충해야만 했다. 목덜미를 물려 피를 빨린 희생자들 중 살아남은 이들도 흡혈 갈증과 영원불사의 운명을 함께 물려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흡혈인의 숫자는 증가했다. 급기야 로마제국은 흡혈인 소탕 작전에 돌입했다. 공교롭게도 기독교 박해와 맞물려 있었다. 로마의 추적을 따돌리고 하일랜드, 즉 스코틀랜드로 숨어들어 점차 세를 불렸다. 이들이 바로 고지인高地人이다.

 

 

"이빨에 물린 자국입니다, 나리"

 

염일규는 제주도에 도착하자 마자 살변의 희생자인 공분의 사체를 조사하기로 작정했다. 이미 매장한 상태라 가족의 동의가 문제였다. 워낙 육지인에 대한 텃세가 심한 곳이 제주아닌가 말이다. 이때 관비인 아리가 나서면서 자신이 돕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의원인 아비의 첩비妾婢가 낳은 얼녀 출신이었지만 제주의 풍토뿐만 아니라 의술까지 겸비했으니 안성맞춤인 조력자인 셈이다.

 

아리는 염일규를 조그만 주가酒家로 안내했다. 무덤에서 딸의 시신을 파낸다고 하니까 주모는 완강하게 반대했다. 발을 돌리려는데, 아리는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면서 주모를 설득하기 시작햇다. 혈육을 잃은 슬픔을 염일규는 잘안다. 하루 아침에 역모에 몰린 형이 자살하고 부모는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짐으로써 집안이 몰락하는 고통을 겪었던 터라 주모의 아픔을 충분히 이해알 수 있어 그의 눈가는 촉촉해졌다. 이에 주모는 염일규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동해 파묘를 허락하며 딸의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한다.

 

놀랍게도 공분의 시신은 마치 미이라처럼 온전했다. 시신을 살피던 아리가 목 언저리의 물린 자국을 가리켰다. 분명히 물린 자국이었다. 두 개의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마치 짐승의 날카로운 송곳니에 물린 자국 같았다. 이미 한양에서 수많은 시체를 관리했던 그였기에 더 찬찬히 시체를 살펴봤다. 늑대보다 주둥이가 작은 무언가에 당한 것이 분명했다. 일단 동행한 화공畵工에게 시신의 모양새와 상흔의 위치를 자세히 그리라고 지시했다.

 

나머지 시신들의 검시가 계속 이어지면서 아리의 역할도 계속됐다. 사고 당일 홍모이들에게 갔다가 변고를 당했으므로 홍모이들과의 면담이 필요햇다. 하지만 그들의 말을 몰라 그는 한양 조정에 박연(조선에 귀화한 네델란드인)을 파견해달라고 장궤를 올렸다. 검시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얼음골 계곡에서 아리가 실족하고, 이를 구출하면서 두 사람을 살을 섞게 되고 이후 관계는 급진전한다. 제주 관아를 중심으로 둘의 스캔들은 소문으로 퍼져나갔다.

 

 

아란타 홍모이, 탈옥하다

 

제주 관아에서 큰 사건이 발생했다. 아란타 홍모이들 중 한 명이 옥을 부수고 탈옥을 한 것이다. 소식을 들은 염일규는 급히 관아로 갔다. 제주목사는 나루터 검문검색만 강화하면 더 이상 도망칠 수 없으므로 체포는 시간 문제라고 호언장담했다. 으래서인지 홍모이들을 가둔 옥은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도망치지 않는 게 더 이상할 정도였다.

 

"이고르란 늙은 놈일세. 의원 노릇하던 수염 텁수룩하던 나선인이지"

 

이고르는 홍모이들이 왜를 향해 가던 중 우연히 태운 늙은이였다. 조정에서 홍모이들을 모두 한양으로 압송하라는 명이 떨어진 상태인데 탈옥이 발생했으므로 제주목사 입장에선 고약한 일이 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이고르의 탈옥 이후 연이었던 살변이 감쪽같이 그쳤다. 덩달아 흉흉하던 민심도 안정되어 갔다. 이에 제주 연쇄 살변의 범인은 이고르로 확정되는 분위기였다.

 

한양으로의 압송일이 가까워오자 머릿수를 채울 수 없은 현실을 개달은 제주목사는 염 종사관에게 한 명은 고을 백성들에게 얻어맞고 수장된 걸로 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망설이던 종사관은 나중에 자신의 부탁을 한 가지 들어주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한다. 이후 종사관은 돈궤를 챙겨 제주목사를 찾아 아리의 신분을 노비문서에서 빼달라고 청한다. 이미 아리의 뱃속엔 종사관의 씨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제주목사로부터 아리 집안과 자신의 형과의 기묘한 인연을 듣게 된다. 아리의 생부가 소현세자를 시해한 어의 이형익이며, 종사관의 형은 소현세자를 왕위에 올리려다 탄로나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이로 인해 가문이 몰락했던 것이다. 그래서 제주목사는 둘의 혼인에는 쌍수를 들고 반대했다.

 

하지만 제주목사의 아킬레스건을 잡고 있는 종사관이 쉽게 포기할리 없다. 결국 홍모이들을 압송하는 배편에 종사관과 아리는 함께 승선한다. 한편, 아리와 종사관의 대화를 듣던 하멜이 자신들의 조난 사고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고백한다. 즉 자바섬에서 출항에 왜로 향하던 상선의 선원들이 일본 해역을 눈 앞에 두고 하나둘 의문사함에 따라 배에 악령이 붙었다고 생각하고 어절 수 없이 배를 버렸다는 것이다. 또한 희생자의 시체가 핏기 한 점 없이 백짓장 같앗던 게 제주섬의 희생자 시체와 동일했다는 것이다. 풍랑은 핑계였고 모든 일은 불청객 이고르를 태운 뒤에 벌어진 사태였던 것이다.

 

제주항을 떠난지 닷새, 압송선은 하동과 구례를 거쳐 섬진강의 곡성 포구에 도착했다. 이제부터는 육상으로 한양까지 이동해야 한다. 제주목사와의 약속을 지키자면 아리를 다시 압송선 편에 제주로 돌려보내야 한다. 때문에 종사관은 아리를 뭍에 남겨둘 궁리를 찾고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그는 강바람을 쇠려고 군영을 잠시 벗어났다. 달이 없는 밤이라 하늘엔 별이 평소보다 많았다. 생각에 몰두한 터라 종사관은 자신을 뒤따르는 인기척을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인기척을 느낀 순간 이미 늦었다. 송곳니가 자신의 목덜미를 파고드는 것을 느꼈다. 이 괴물은 바로 양이洋夷 이고르였다. 종사관은 무관 출신이다. 두 사람 간에 공방전이 벌어졌다.

 

놈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짐승도 아니었다. 날카롭게 벼른 길고 단단한 손톱, 빠른 몸놀림, 게다가 인간의 완력이라고 할 수 없는 괴력, 합에 합을 더할수록 염일규의 뇌리에는 공포가 엄습했다. 게다가 이미 목에 큰 상처를 입은지라 힘이 차츰 부쳐갔다.

 
반면 놈은 싸움이 길어질수록 점점 더 기세가 오르는 듯했다. 이제껏 막아내거나 피하기만 하던 칼날을 두 손아귀로 덥석 움켜쥐었다. 그러고는 상대를 한껏 뒤로 밀어붙였다. 땅을 디딘 종사관의 두 발이 놈의 힘을 버티지 못하고 뒤로 죽 미끄러졌다. 종사관은 놈의 손아귀로부터 칼날을 비틀어 빼기 위해 칼자루를 쥔 손으로 남은 힘을 모두 끌어올렸다. 그렇게 해서라도 놈의 손바닥을 아예 베어낼 심산이었다. 그런데 분명 흘러야 할 피가 놈의 손에서 보이지 않았다. 베어지기는커녕 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오히려 출혈은 종사관이 더 문제였다.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종사관을 구해준 이는 왜인 사무라이 사나다였다. 사나다는 이고르를 제압하고 그의 영기를 모두 흡입함으로써 한동안 흡혈 갈증을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종사관과 아리의 사랑은 해피엔딩으로 마감할 수 있을까? 그리고 이고르에게 목덜미를 물린 종사관도 이미 고지인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 과연 그는 흡혈 갈증을 이겨낼 수 있을까? 또 다른 고지인인 흑도 강무웅과 종사관 사이엔 어떤 인연이 펼쳐지며, 효종의 북벌계획과 이에 맞서려는 서인들 간의 갈등은 어떻게 전개될지 소설의 후반부의 전개가 더욱 빨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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