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것들의 과학 - 물건에 집착하는 한 남자의 일상 탐험 사소한 이야기
마크 미오도닉 지음, 윤신영 옮김 / Mid(엠아이디)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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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기본적인 중요성은 우리가 문명화의 단계를 분류할 때 쓰는 이름을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그리고 철기시대는 인류가 새로운 재료에 의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났음을 의미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알루미늄과 강철의 차이점에 주목할 수 있을까? 나무는 분명히 서로 다르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까? 플라스틱은 헷갈린다. 누가 폴리에틸렌과 폴리프로필렌의 차이를 알까?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다음일지도 모른다. 도대체 누가 상관이나 할까? 나는 상관한다. 그래서 당신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싶다. - '프롤로그' 중에서

 

 

어느 과학자의 사물 탐험

 

사물의 속을 들여다보고 구조나 성질을 상상하는 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저자 마크 미오도닉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

 

그는 <타임스>가 선정한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과학자 100명 중 한 명으로, 현재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의 기계공학과 교수이다. 디자이너, 과학자, 공학자, 건축가와 예술가의 연구 허브이자 지구에서 가장 놀라운 물질들을 보관하고 있는 재료 라이브러리인 UCL 공작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하다. BBC나 TED 등의 매체에서 다수의 강연을 진행한 강연자로, 테이트모던과 헤이워드 갤러리, 웰콤재단 등 여러 박물관과 협력해서 일하기도 했다.

 

재료라는, 보이지 않는 세계를 읽어내고 사물에서 호출하여 그 작은 존재들을 우리들에게 소개한다. 책은 강철, 종이, 콘크리트, 초콜릿, 거품, 플라스틱, 유리, 흑연, 자기, 생체재료 등 10가지 재료를 소개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개별적인 재료의 이름은 그리 생소하지 않지만 막상 이 재료들의 특징을 얘기하라면 우리들은 대체로 몇 마디밖에 못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재료에 대한 저자의 관심은 이미 집착에 가까운 수준임에 틀림없다.

 

그는 자신의 집 지붕 위에서 찍은 사진에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사진에서 열 가지 재료를 골라 이들 재료의 존재 이유, 즉 재료과학을 밝혀낸다. 그리고 이 재료가 왜 중요한지를 중점적으로 설명해준다. 현미경이 없어도 인류의 조상들은 청동이나 강철 같은 새로운 재료를 발견했다는 게 놀라울 뿐이다. 이제 저자의 개성 넘치는 과학 이야기에 빠져보자.

 

 

 

재료의 구조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것 중의 하나는 원자다. 하지만 원자는 중요한 구조가 아니다. 보다 큰 규모로 눈을 돌려보면 전위, 결정, 섬유 구조체, 겔, 거품 등으로 이 책에 나오는 이름들이다. 각각의 구조가 뭔가를 함으로써 전체적인 큰 그림을 완성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스테인리스 스틸 숟가락에서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것은 결정 안에 있는 크롬 원자가 대기 중 산소와 결합해 보이지 않는 산화크롬 보호막을 표면에 형성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스테인리스 스틸 숟가락의 표면에 상처를 낸다면, 이 보호막은 더 빨리 사라져 녹이 생길 것이다.

 

재료를 이런 방식으로 보기 시작하면, 곧 재료가 내부에 공통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우리는 금속이 플라스틱과 비슷한 점이 많고, 플라스틱은 우리의 피부와 초콜릿, 그리고 다른 재료들과 공통점이 많다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모든 재료 사이의 이런 연관 관계를 시각화하기 위해선 러시아 인형 같은 재료 구조 지도가 필요하다. 물질의 내부구조를 보여주는 지도 말이다.

 

 

강철

 

1913년, 유럽의 강대국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앞두고 군사무기 준비에 한창이었다. 헨리 브리얼리는 총의 몸통 부분을 개선하고자 금속 합금을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셰필드의 야금학 실험실에서 일하며, 강철에 다양한 원소를 섞어 합금을 만든 후 이를 주조해 강도를 실험했다. 그는 강철이 철과 탄소의 합금이라는 사실과 특성의 증감을 목적으로 다른 원소들을 추가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당시엔 왜 그렇게 되는지 그 이유를 몰랐기에 그는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그 효과를 알아냈다. 

 

그는 계속해서 세계 최초의 스테인리스 스틸 칼을 만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곧 문제에 부딪혔다. 새로운 금속은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하지가 않았고, 금세 무뎌져 '자를 수 없는 칼'이 됐다. 단단한 성질이 없다는 이유로, 그는 스테인리스 스틸이 총에 사용할 수 없는 합금이라고 일찌감치 퇴짜를 놨다. 그러나 스테인리스 스틸은 복잡한 모양으로 만들 수 있었고, 덕분에 한 세기 뒤에는 가장 영향력 있는 영국 조각품 중 하나가 됐다. 이 조각품은 지금 모든 집에 하나씩 있다. 바로 주방의 싱크대다. 

 

 

 저자가 지붕 위에서 찍은 사진, 그 속에 재료과학이 있다. 

 

 

종이

 

돈은 종이 형태로 있을 때 가장 매혹적이다. 더구나 충분한 양이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세상 어디에서나 돈으로 뭐든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폐는 세상에 만들어진 종이 중 가장 복잡하며, 또한 이래야만 그 존재가 성립한다. 단순하고 만들기 쉽다면 이 돈을 어떻게 믿고서 통용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위조를 방지할 목적으로 지폐는 그 안에 여러 가지 교묘한 장치를 감추고 있다. 우선 다른 종이와 달리 나무 셀룰로오스로 만들지 않고 면섬유로 만든다. 면 셀룰로오스는 지폐의 강도를 더 강하게 하고, 비를 맞거나 세탁기 안에 들어가도 잘 분해되지 않게 한다. 면섬유는 종이가 내는 특유의 소리도 바꿨는데, 덕분에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지폐의 가장 잘 알려진 특성 중 하나가 됐다.

 

면섬유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위조를 방지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나무로 만든 종이로는 위조지폐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사용하는 위패감별기는 면 종이의 특수한 재질을 검사한다. 만약 위로 의심된다면 손쉬운 화학실험으로 판별할 수도 있다.

 

가게에서는 요오드 펜을 사용해 이런 검사를 한다. 셀룰로오스로 만든 종이에 요오드 펜을 쓰면, 요오드가 셀룰로오스 안의 전분과 반응해 색소를 형성하고 그 결과 검은 색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면 종이에 쓰면, 요오드와 반응할 전분이 없기 때문에 아무런 자국을 남기지 않는다. 이런 실험을 통해 가게에서도 칼러복사기로 만든 위페의 사용을 막을 수 있다.

 

 

흑연

 

요즈음은 연필 사용이 과거에 비해 적은 듯하다. 아마도 미술 수업이 없다면 연필이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연필의 심은 바로 흑연이다. 검고 표현력이 풍부하며 기능성이 뛰어난 흑연은 고대부터 고상하고 차가우며 단단하고 빤짝반짝 빛나는 다이아몬드와 서로 격렬하게 다퉈 왔다. 문화적 가치면에선 많은 여성들의 환호에 힘입어 장기간 다이아몬드가 압승이었다. 하지만 변화가 일어났다.

 

세계 최고의 탄소 전문가인 안드레 가임 교수는 흑연의 2차원 버전이자 재료계의 돌파구를 마련한 연구 공로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가임 교수의 연구팀이 그래핀이라는 신소재를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래핀은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의 이동성이 빠르다. 강도는 강철보다 200배 이상, 열전도성은 지금껏 최고인 다이아몬드보다 2배 이상이다. 또한 빛을 대부분 통과시키기 때문에 투명하며 신축성도 매우 뛰어나다.

 

따라서 활용 분야는 매우 다양하다. 초고속 반도체, 휘는 디스플레이, 디스플레이만으로 작동하는 컴퓨터,고효율 태양전지 등이다. 특히, 구부릴 수 있는 디스플레이, 손목에 차는 컴퓨터, 전자 종이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미래의 신소재로 주목받고 있다.   

 

흑연의 구조는 '아프리카의 위대한 별'로 불리는 다이아몬드와는 많이 다르다. 탄소 원자가 육각형 모양으로 연결돼 평면을 구성한다. 각각의 평면은 매우 강하고 안정한 구조이며 탄소 원자 사이의 결합은 다이아몬드의 결합보다 강하다. 이건 놀라운 일인데, 흑연은 너무나 물러서 윤활제나 연필심으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자면, 그래핀은 세상에서 가장 얇고 가장 강하며 가장 단단한 물질이다. 이제까지 알려진 다른 어떤 물질보다 열을 빨리 전달하고, 전기를 더 많이, 빨리 나르며 저항은 더 적게 받는다. 물질 속 전자가 마치 거기 없었던 것처럼 벽을 통과하는 이상한 양자 효과인 클라인 터널링 현상도 허용한다. 이 모든 특성은 그래핀이 계산과 통신의 심장부에 위치한 실리콘 칩을 대체할 수 있는 전자기기가 될 잠재력이 있다는 뜻이다. 그래핀에 탄소막을 추가하면 다시 흑연이 된다.

 

흑연의 결정구조, 다이아몬드의 결정구조, 그래핀의 분자구조(좌로부터) 

 

 

우리의 일상은 재료과학에 힘입고 있다

 

이 책은 우리들을 재료의 세계를 탐구하는 여정으로 인도한다. 집이나 옷을 만들기 위해, 초콜릿이나 영화에 대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해, 재료과학이 동원된다는 사실이다. 이 학문은 수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미술, 문학, 다른 과학보다 덜 중요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인류의 역사가 길기 때문에 재료에 관한 우리의 문화도 복잡하다. 금속을 보고 감탄하는이가 있는가 하면 이에 대해 싫은 감정을 품을 수도 있다. 책의 저자는 재료 앞에다 다양한 형용사를 사용햇지만 이는 지극히 주관적인 것이다. 하지만 우리들은 재료의 세계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고 있음을 부정할 순 없다. 재료과학은 인간의 요구와 갈망을 여러 스케일로 표현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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