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테라스에 펭귄이 산다 - 마젤란펭귄과 철부지 교사의 우연한 동거
톰 미첼 지음, 박여진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후안 살바도르는 펭귄이다. 암율하고 불안한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을 매료시킨 펭귄이다. 테러 조직이 미쳐 날뛰고 여기저기서 폭력적인 시위가 일어나는 가운데 금방이라도 무정부 상태로 치달을 듯 위태로웠던 친 페론 정권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위안을 준 펭귄이다. 당시의 자유, 기회, 사상 등의 개념은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젊은 여행지였던 나와 죽음의 바다에서 우여곡절 끝에 구조된 씩씩한 펭귄 후안 살바도르는 더없이 행복한 우정을 나눴다. - '프롤로그' 중에서

 

 

반려동물과 우정을 나누다

 

저자 톰 미첼은 교사이자 화가다. 영국에서 태어나 어머니가 악어 세 마리를 키웠을 정도로 시골인 마을에서 자랐다. 그 덕분에 동물과 새, 식물에 대한 애정이 깊다. 어릴 때부터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친척들이 보내준 편지를 보며 먼 나라에 대한 동경을 키웠다.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고 싶다는 이유로 20대 초반에 아르헨티나에서 기숙학교 교사로 생활한 바 있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당시 혼란과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암울하고 불안한 시절을 살아가던 사람들에게 웃음과 위안을 선사한 펭귄이 있었다. 이 책은 영국인 청년의 집 테라스에 살게 된 펭귄과의 특별한 우정이 담긴 실화다. 하얀 넥타이에 검은색 연미복, 새까맣고 반짝이는 눈동자, 실룩거리는 두툼한 엉덩이, 뒤뚱뒤뚱 걷는 짧은 다리, 호기심 어린 얼굴을 가진 '후안'은 키가 어른 무릎 높이만한 마젤란펭귄이다.

 

톰의 집 테라스에 사는 후안은 학교 제일의 스타다. 녹조 낀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하고 아이들과 계단 빨리 내려가기 시합을 하거나, 럭비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응원도 하면서 아이들은 후안의 열렬한 팬이 된다. 학교 선생님들의 귀여운 술친구가 되고, 세탁실 아주머니의 든든한 지원자도 되어준다. 또한 근심에 쌓인 사람에게는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뛰어난 고민상담가다. 학교에서 주목받지 못하던 한 소년의 수영 코치가 되어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선사하기도 한다.

 

 

 

 

펭귄을 구하다

 

눈에 충격적이고 비통한 광경이 들어왔다.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움직임이 없는 검은색 물체였다. 처음엔 얼마 되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가까이 다가가보니 그 수가 어마어마했다. 마치 검은 색 카펫을 깔아놓은 듯 까만 사체들이 해변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검은 기름을 뒤집어쓴 펭귄들이 해안을 따라 끝도 없이 길게 누워 있었다.

 

문명이라는 얼굴은 이같은 민낯을 드러낸다. 정말 무섭고, 잔인하고, 끔찍한 모습니다. 앞으로도 얼마나 이런 일들을 자행할지 암담하기만 하다. 소위 '죽음의 띠'로 불리는 기름 유출 사고는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다. 그 장소가 어디냐에 따라 죽어나가는 개체만 달라질 뿐이다. 태안 앞바다 기름 유출 사고로 한국에서도 얼마나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띠를 벗겨내려고 노력했던가.

 

스물세 살의 영국 청년 톰은 우루과이 해안의 휴양도시 푼타델에스테에서 휴가를 즐기던 중 이 현장을 목격한 것이다. 그는 죽은 새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가 영 거북스러워 일부러 걸음을 재촉하다가 시야 한편에서 언뜻 미약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이에 그는 걸음을 멈추고 움직임이 느껴지는 곳을 주시했다. 착각이 아니었다. 대견하게도 펭귄 한 마리가 살아 있었다. 온통 죽음뿐인 그곳에서 유일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단 하나의 생명이었다.

 

온 몸에 타르를 뒤집어쓴 채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몸을 깨긋하게 씻어준다면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위협을 느끼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펭귄에게 그물을 던져 포획한 다음 그는 자신의 숙소로 데리고 갔다. 지난 40년 동안 펭귄의 개체 수가 80퍼센트 넘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심각할 정도의 감소 이유는 환경오염과 무분별한 포획 때문이다. 결국 그 주범은 우리 인간들이다.

 

처음엔 완강하게 거부하던 몸짓이 얌전해졌다. 자신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몸에 묻은 기름을 제거해주려는 것임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는 목욕통 물을 비우고 다시 따뜻한 물을 채웠다. 세제를 부어도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 덕분에 온몸 구석구석을 씻길 수 있었다. 이젠 목욕통에서 똑바로 일어서서 목욕에 적극 협조했다. 한 시간 정도 씻기고 나니 펭귄의 형체가 드러났다.

 

그는 아르헨티나에 신입교사로 일을 해야 하기에 휴양지를 떠나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야만 했다. 문제는 펭귄의 처리였다. 아파트에 그냥 내버려둘 수도 없고 생각 끝에 다시 바다에 풀어주기로 했다. 이게 펭귄에게도 자유로운 삶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 펭귄 또한 동족과 함께 있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

 

사용한 욕실 용품을 채우기 위해 욕조에 펭귄을 둔 채 그는 장을 보러 갔다. 돌아와보니 욕조에 있던 펭귄이 폴짝폴짝 뛰며 날개를 파닥거렸다. 펭귄의 작은 두 눈이 반짝였다. "어디 갔다 이제 와! 한참 기다렸잖아. 도대체 날 여기에 두고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라는 눈치였다. 마치 꼬리를 흔드는 강아지처럼 녀석은 그를 반기고 있었다.

젖은 모래 위에 펭귄을 놓아주고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신나게 바다로 풍덩 뛰어드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웬걸 펭귄은 곧장 그에게로 달려오는 게 아닌가. 이번엔 바위 위에 올려두고는 살펴보았다. 잠시 후 파도가 밀려왔고 녀석이 곧 시야에서 사라졌다.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데 눈 앞에 버둥거리는 녀석이 보였다. 이러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지만 결국 펭귄은 그에게 돌아오고 말았다.  이젠 하는 수 없이 아르헨티나로 데려갈 수밖에 없다.

 

학교로 돌아가야 하는 톰은 커다란 가방 속에 펭귄을 넣고 종이봉투로 머리를 가린 채 몬테비데오행 버스에 오른다. 도중에 펭귄의 배설물 냄새 때문에 버스에서 황급히 내리고, 가방 속 존재를 눈치 챈 구두닦이 소년에게 팁을 두둑이 줘야 했다. 배를 타고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도착했더니 세관을 통과해야 하는 엄청난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국경을 넘어 학교로 돌아온 톰이 자기 방 테라스에 펭귄의 방을 만들어주면서 유쾌한 동거 생활이 시작된다.

 

이 책은 실화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

 

톰의 테라스에 사는 펭귄 '후안'은 학교에서 제일 가는 스타가 된다. 럭비팀의 마스코트가 되어 응원도 하고, 아이들과 녹조 낀 수영장에서 함께 수영을 하며 학교에서 소외되었던 한 소년의 수영 코치가 되어 그의 삶에 큰 변화를 선물하기도 하고, 아이들과 계단 빨리 내려가기 시합도 하면서 아이들을 자신의 열렬한 팬으로 만든다.

 

또 세탁실 아주머니의 든든한 지원자가 되어주고, 학교 선생님들의 귀여운 술친구가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근심에 쌓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줌으로써 '고민상담가'로서의 뛰어난 면목을 보이기도 한다. 개그 같은 얘기지만 아무튼 후안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당연히 펭귄과 인간 사이에 대화란 없다. 오직 느낌과 몸짓으로 나누는 바디랭귀지 뿐이다. 그럼에도 펭귄 후안이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소중한 존재로 자리매김한다는 게 일견 감동적인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론 그만큼 우리들이 상호 간의 대화가 부족하고 정을 나누지 못하고 있는 슬픈 자화상으로 비춰진다. 사람 대신 애완견을 선택한 우리들에게 뭔지 모를 화두를 던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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