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홀릭 - 인터넷오페라로 경험한 천 개의 세상
이보경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여러모로 살아가기 힘든 시대다. 이런 때일수록 심신을 보할 음악을 찾아서 듣기를 권한다. 그중에서도 특히 모차르트의 음악이 좋다는 건 많이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것을 제대로 음미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조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그 세계에 발을 들였으면 싶다. - '들머리' 중에서

 

 

인터넷으로 즐기는 오페라 

 

책의 저자 이보경은 서울대학교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1987년 문화방송에 기자로 입사했으며, 현재 경인지사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우연한 기회에 인터넷오페라를 통해 지금까지 150편 이상을 감상했다. 살아가기 힘든 시절,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좋은 음악과 시를 많은 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소망을 갖고 이 책을 출간했다.

 

그녀는 최근 몇 년 동안 힘든 시간을 통과해왔다. 2012년 총선을 앞두고 MBC의 공정방송을 외치며 진행된 6개월의 파업과 그로 인한 여파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힘들었던 4년여의 시간 동안 인터넷으로 150편이 넘는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심신의 치유를 경험했다. 이 책은 그런 과정의 소중한 결과물인 셈이다.

 

때는 2012년 봄. 이 기자가 한창 MBC의 공정방송을 외치며 파업에 참가하던 시기였다. 곧 끝날 것 같았지만 쉬이 끝나지 않았던 파업, 어느 날 그녀는 이채훈 당시 MBC PD의 초청으로 모차르트 강연을 듣게 됐고 강연 내용을 검색하던 도중 연관 자료로 붙어 있던 오페라 아리아를 듣게 됐다. 아리아를 듣는 순간 '힐링'을 경험했던 그녀가 이후 오페라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오페라를 통해 위로받고 심신의 치유를 경험하는 4년여의 시간이 시작됐다. - '기자협회보(2015년 12월 16일)' 중에서

 

다양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오페라를 '어려운 고전예술'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 심지어 이는 배부른 사람이나 특정한 사람들이 즐기는 '사치스러운 장르'라서 일반인들이 범접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한국에선 오페라의 공연이 다른 것들에 비해 매우 얇은 편이다.

 

그렇다면 오페라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저자는 집에서 편안하게 인터넷으로 오페라를 즐기라고 권한다. 공연장까지 가는 수고와 번거로움, 금전적인 부담이 줄어들기 때문에 이를 추천한다. 유튜브, 중국의 유쿠 등에 이미 많은 오페라 작품들이 올라와 있다. 한국은 인터넷 강국이 아닌가. 방방곡곡 어디든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오페라를 즐길 수 있다.

 

인터넷을 통해 오페라들을 한두 편 접하다 보면, 처음엔 이해하기 어렵고 약간은 부담스러웠던 장면들이 어느 순간 이해되면서 여기에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책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문화적 차이와 기본 지식 부족으로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던 오페라의 세계로 우리를 친절하게 이끌어준다.

 

 

 

 

손바닥 오페라 여기까지

 


오페라는 보통 2~3시간 동안 공연이 이어지니 클래식 가운데 단품으로는 제일 길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인터넷오페라 감상의 큰 장점으로 운동을 병행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제자리 걷기나 실내 자전거를 타면서 오페라를 감상할 경우, 오페라 감상 자체는 마음을 위무하는 약손이 되고 그때 병행하는 피트니스는 약발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말 자막이 있는 오페라 20편,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페라 10편, 오페라로 즐기는 고전 30편 등을 정리함으로써 오페라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의 편의를 도왔다.

 

 

조금 더, 전체 훑기


오페라 남녀 오페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르네상스 말기부터 바로크 시대, 고전기, 낭만기, 진일보한 현대 오페라를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본다. 그 속에서 노래극 흥행사들이 필살기로 내세웠던 무대 위 남녀, 나아가 유명 작곡가들의 무대 아래 남녀 생활을 전체적으로 아우르고 있다. 글룩(1714~1787년)이 작곡한 '오르테오와 에우리디체'는 1762년 10월 5일 빈에서 초연이 올려졌다.

 

우리말로 가극歌劇이라고 표현하는 오페라의 역사는 약 420년 정도이다. 악보가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작품은 1600년에 만들어진 <에우리디체>이다. 에우리디체는 신부 이름이고, 신랑은 오르페오다.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에서 따온 것이다. 대본은 오타비오 리누치니, 작곡은 야코포 페리다. 원작은 약 2천년 전에 쓰여진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 실린 10편과 11편이다.

 

그 내용은 이렇다. 결혼식이 벌어진다. 신부는 신랑에게 씌워줄 화관을 만들려고 꽃밭에 갔다가 그만 독사에 물려 죽고 만다. 이에 신랑은 신부를 저승에서 데려오기로 결심하고 저승의 신에게 호소한다. 그는 뛰어난 시인이자 연주자이며 또한 가객이었다. 마침내 저승의 신도 감동해 신부를 다시 데려가라고 허락한다.

 

보십시오 님이시여,

우는 저를 보고 아름다운 부인이 얼마나 한숨짓고 계신지,

얼마나 서글프게

는물 고인 두 눈으로 저를 보고 계신지를.

보십시오 님이시여,

이 그늘, 그리고 어둔 지하의 신들마저

얼마나 저의 비탄에 저의 통곡에

다 같이 슬퍼하고 괴로워하는지를.

 

- '저승의 신에게 호소하는 부분' 중 일부 

 

그런데, 조건이 있었다. 이승에 도착할 때까지 신랑은 절대로 아내의 얼굴을 봐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신화의 뒷 부분을 우리는 이미 안다. 맞다. 어둠에서 벗어나기 직전, 신랑은 뒤따르던 아내를 돌아본다. 신랑은 약속을 어겼기에 저승으로 떨어진다. '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처럼, 비탄에 빠진 신부도 결국 죽고 만다.

 

 귀스타브 모로, <오르페우스>

 

바로크 시대에 하이브리드 인간 카스트라토가 등장했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3의 성이 무대를 뒤흔들었다. 오직 성악용으로 양산된 카스트라토는 성인 남성의 몸으로 꾀꼬리 같은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약 200년 동안 수십만 명이 제조(?)되었지만 이 중 열댓 명 정도만 최고의 진주로 대접받았다. 영화 <파리넬리>를 참고하라.

 

정상적인 사람은 누구나 변성기를 거친다. 하지만 카스트라토는 소년의 미성을 인위적으로 유지한 채 어른의 가창력이 보태진 사람들이다. 1600년대 중반 이탈리아에서 본격적으로 배출돼 1900년대까지 존재했는데, 이들은  한동안 유럽 대부분의 성악계를 휩쓸었다. 마지막 카스트라토 알렉산드르 모레스키가 유일하게 목소리 녹음을 남겼다. 이는 1902년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에서 부른 성가였다.

 

남자아이의 변성이 단절되는 것을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을 것이다. 사내아이가 어떤 병이나 불의의 사고, 또는 사나운 짐승에게 물려 고환의 기능이 상실되었을 경우 변성變聲이 발생하지 않는다. 이를 인위적으로 시행함으로써 만들어진 사람들이 바로 카스트라토이다. 아마도 그 시대에는 항생제나 마취제가 없었기에 수많은 소년의 비명과 절규 속에서 수술이 진행되었을 것이다. 주로 고환 압착이나 제거, 드물게 수정관 차단법 등이 이용되었다.

 

마치 생활용품을 제조하듯 왜 이런 인물들을 만들어냈을까? 그 이유는 다음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교황이 여성의 가창 금지령을 내렸기 때문이다. 둘째, 소년은 수술 후 바로 가창 훈련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필요한 인재를 신속하게 양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성악 교육에 매를 이용해 효율적인 양성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변성 차단은 생식 불능을 초래했다. 이는 바로 작용 반작용의 법칙이기도 하다.

 

      

 

참혹한 수술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불과 0.1퍼센트만이 파리넬리 근처라도 갔다. 수술에는 다양한 요법이 둥원되었다. 이 일은 이발사들이 많이 했다. 이발소 커튼 뒤에서 아이의 비명을 막기 위해 방성구防聲具가 동원되었다. 수술 후 출혈 과다로 사망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데도 로마와 나폴리의 이발소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들이 붙어 있었다.

 

"사내아이 카스트레이션 싼값에 모심"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났더라도 발군의 실력이면 출세가도를 달렸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딱히 일이 없었다. 성직자나 수도자는 당연히 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 역시 심신이 우수하고 성性적으로 결함이 없어야, 성생활이 금지된 성직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카스트라토는 공무원이나 군인도 될 수 없었다. 취업도 금지되었다. 학업 등 개인적인 성취는 돈이 없어서라도 시작하지 못했다. 결혼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종교적 관념상 결혼은 자식을 낳는 게 주요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모차르트는 <피가로의 결혼>을 전후해 <후궁 탈출>, <돈 조반니> 등 창작활동을 계속함에 따라 계속 빚이 늘어갔지만 창작의 열정은 꺾이지 않았다. 서른 살의 나이에 다양한 장르에서 벌써 500편을 만들어낸 다작왕이었다. 그리고 일생 동안 626편을 작곡했다. 누가 그와 겨룰 수 있겠는가?

 

여러 작품 가운데서도 1786년 발표한 <피가로의 결혼>은 특히 위대했다. 프랑스에서 피에르 보마르셰의 동명 연극이 2년 전 큰 화제가 된 터였다. 혁명을 불러왔다는 후세의 평가를 받는데, '신성로마제국'은 그것의 반입을 금지했다. 그럼에도 모차르트는 대본가 로렌초 다 폰테와 의기투합했다. 다 폰테는 자서전 대필자, 저널리스트 등 15개 직업을 전전한 뒤 대본가로 활동 중이었다.

 

 로렌초 다 폰테(1749~1838년)

 
<피가로의 결혼>은 초야권初夜權의 오래된 관습 등 당시 기득권의 탐욕을 정면으로 비판한 사회 풍자적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음악은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 둘의 신묘한 조화라니....... 그들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라고 눙쳐 검열의 그림자를 피할 수 있었다. <세비야의 이발사> 후편 격인 이 작품의 줄거리는 아래와 같다.

 

난관을 뚫고 결혼에 성공했던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커플이 <피가로의 결혼>에선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에게 눈썹을 치뜨는 전투적인 부부로 등장한다.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커플은 결혼을 앞둔 피가로(전편에서는 이발사, 속편에서는 백작의 하인. 백작의 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하인이 되었다)와 백작부인의 하녀 수잔나다. 바람둥이 행각으로 아내 로지나를 수없이 좌절시켜온 백작은 이제 수잔나에게까지 흑심을 품는다. 이를 알게 된 피가로는 수잔나 및 백작부인과 연대해 희극적인 계략을 써서 백작을 무릎 꿇게 만들고, 백작부인은 사과를 받아들여 남편을 용서한.

 

 

 

19세기에 그린 <피가로의 결혼> 1막의 한 장면

 

 

한 발 더, 비교 감상

 

방법론을 통해 그 결을 드러낸다고나 할까? 오페라마다 예외 없이 등장하는 아모레(사랑)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스카니 작곡의 이탈리아 오페라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빈에서 초연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장미의 기사>를 비교함으로써 작품 속 마초이즘과 페미니즘을 살펴본다.

 

또한 은장미를 거론하는 <장미의 기사> 속 원수 부인과 <돈 조반니>를 비교해 탈선의 가속 페달을 밟아 비극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인간 군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두 프리마돈나, 즉 지구촌 최악의 바람을 맞은 마리아 칼라스와 최고의 섹시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의 삶과 노래를 비교 조망한다.

 

먼저 시칠리아 섬의 비극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의 줄거리를 살펴보자. 주인공 투리두는 평범한 가장이다. 하지만 막이 오르자마자 그가 부르는 아리아는 묘하다. 옆집 부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옆집 남편은 마차를 몰고 이곳저곳 다니는 운송업자지만 아내의 자조를 믿는다.

 

축제일을 맞아 성당 주변은 봄기운이 완연하다. 떠들석한 분위기와는 달리 투리두의 처는 표정이 어둡다. 간밤에 남편이 외박했던 것이다. 시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보고한다. 먼 마을에 간다고 했던 남편을 동네에서 본 사람이 있다면서 이웃집 여자를 거론한다. 남편이 군에 가기 전 영원한 사랑을 약속했던 여자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반응은 냉랭하다. 결국 이웃집 남자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이웃집 남자는 투리도에게 과수원 앞에서 결투를 하자고 신청한다. 포도주를 계속 마시던 투리도는 어머니에게 옛날 군에 입대할 때처럼 작별인사를 해달라면서 결말을 살짝 보여준다. 자신이 못돌아오면 아내의 엄마가 되어 달라고 부탁한다. 만취 상태로 그는 결투장으로 나선다. 해가 지기 전 마을 아낙네의 비명 소리 "투리두가 죽었어요!"로 극은 끝난다.

 

시골의 기사도騎士道를 감상했으니 이젠 <장미의 기사>로 넘어가 보자. 때는 1740년대 신성로마제국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女帝의 통치기, 장소는 빈이다. 극의 출발부터 충격이다. 중년 부인이 젊은 백작과 호화 침실에서 뒹굴고 난 아침에서 시작된다. 육군 원수의 중년 부인은 한참 연하인 옥타비안과 불륜 관계를 맺고 있다. 1911년에 초연되었는데, 이 작품은 당시에도 '공연 포르노'로 묘사됐다. 

 

인기척에 놀란 젊은 백작은 급히 커텐 뒤로 몸을 숨긴다. 등장한 인물은 그녀의 무뚝뚝한 사촌이자 방탕한 오크스 폰 레르헤나우 남작이다. 중년의 남작은 갓 수도원에서 나온 15세의 소녀를 신부로 삼으려 한다. 약혼녀 소피에게 은으로 된 장미를 가져다 줄 '장미의 기사'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해 온다. 시녀 마리안델로 변장한 옥타비안 백작이 잠시 시중을 든다. 부인은 옥타비안에게 기사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소피는 부유한 상인 파니날의 딸로 남작은 돈을 노리고 결혼하려는 속셈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미리 짐작한 부인은 옥타비안을 보낸 것이다. 옥타비안과 소피는 첫눈에 사랑에 빠지고 남작은 유혹의 편지에 걸려들고 만다. 남작은 시녀 마리안델로 변장한 옥타비안과의 은밀한 만남 중 발각된다. 부인은 사심 없이 애인 옥타비안을 보내준다.

 

1955년 라 스칼라에 오른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세기의 공연'으로 평가받았다. 주인공 비올레타는 뛰어난 미모의 매춘부였는데, 마리아 칼라스는 그 역할에 심하게 몰입했다. 그때까지 통용되던 드높은 풍의 비올레타를, 베르디가 의도했던 100퍼센트 인간풍으로 전환시켰다는 극찬이 쏟아졌다. 이 역할도 1958년까지 약 60번을 맡았다.

 
그즈음 믿을 수 없는 변화가 있었다. 100킬로에 가깝던 몸무게를 몇 주 만에 55킬로로 감량한 것이다. 키가 172센티였으니 호리호리한 체형으로 거듭난 셈이었다. 지방흡입술 같은 게 있을 리 만무한 시절, 호사가들은 그것에 대해 수군댔다. "저 여자, 촌충을 무더기로 흡입했대" 이렇게 그녀의 엄청난 체중 감량은 촌충요법설로 남았다. 디바의 옷장엔 화려한 의상이 넘쳤고 구두가 300켤레에 달했다.

 

 

처절한 비운의 역설


 

너무 일찍 요절한 빼어난 네 명의 작곡가 모차르트(35세 사망), 비제(37세 사망), 페르골레시(26세 사망), 벨리니(34세 사망) 등의 삶과 음악을 조명했다. 그들이 짧은 생애 동안 남긴 작품의 카타르시스를 통해 우리는 역설적이게도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상처를 회복하고 치유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영혼을 힐링하는 오페라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원전 인용문과 대부분의 가사를 저자가 직접 번역했다. 우리말 자막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 우리말 자막이 없을 경우 조금이라도 편하게 인터넷으로 오페라를 즐길 수 있는 방법 등을 제시한다. 오페라와 관련된 기본적인 용어와 사항들도 따로 정리하고 있다. 특히, 책의 말미에는 인터넷오페라 157편의 감상 목록을 실었다. 이제, 오페라의 세계로 한번 빠져들어 보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