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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악마다
안창근 지음 / 창해 / 2015년 11월
평점 :
밤은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금요일 밤, 자정이 가까워지는 시간이지만 홍대 앞은
화려하게 비상하고 있었다. 갖가지 색의 네온사인은 계속해서 깜빡거리고, 차량은 끊임없이 몰려들고, 지하철은 순환을 계속하고, 거기서 쏟아진
사람들은 비틀거리며 택시를 잡는 사람들 사이를 뚫고 어딘가를 향해 바삐 걸어가고 있었다. 올해 초 강력계에 들어온 김동영은 이것이 밤에 피어나는
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잔뜩 가시를 머금은 장미 같은 꽃. - '프롤로그' 중에서
연쇄살인범의 예고 살인
한 통의 이메일 때문에 강력계 형사들은 월요일부터 잠복근무 중이었다. 이들 외에도
주변에는 백여 명의 인원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이미 두 명이나 죽인 살인범이기에 추가 범행이 우려되는 지역을 에워싸고 순찰을 강화하며
혹시 있을지도 모를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려고 만반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알파벳이 마구잡이로 나열된 메세지에서 범행 모의 장소가 '홍대'임을 밝혀낸 경찰은 실탄을
장착한 경찰특공대까지 배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해괴한 복장을 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빠른 속도로 도로를 점령하고 있었다. 좀비 가면을 뒤집어
쓴 사람, 해골이나 프랑켄슈타인 가면을 쓴 사람, 늑대인간 가면을 쓴 사람, 커다란 목걸이를 주렁주렁 매단 부두교 신자처럼 보이는 사람들까지
눈에 띄었다.
가히 장관이었다. 가면을 쓴 수백 명의 사람들이 마이클 잭슨의 <스릴러>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플래시몹을 펼쳤다. 눈앞에 펼쳐진 화려한 공연에 정신을 빼앗겼을 때 묘한 엇박자에 웅성거림이 일더니 웃음소리와 함께 노래가
끝났다. 플래시몹에 참가한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소동의 진원지가 명확하게 드러났다. 피투성이로 쓰러져 있는 여자와 피를 잔뜩 뒤집어쓴
채 쓰러진 여자의 지혈을 시도하는 남자, 구경꾼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현장에 구급차가 도착하기도 전에 그 여자의 맥박은
희미해지고 있었다. 피해자의 이름은 김소현, 나이 22살, 주소지는 서울 서초구 방배동, 신분증 뒤에 학생증도 있었다. 반지, 손목시계,
귀걸이, 핸드백이 그대로 있었다. 금품을 노린 범행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소란한 플래시몹의 공연 중에 칼에 찔린 것이다. 잠복근무를
하던 형사와 경찰들이 허를 찔리고 말았다. 예고된 살인은 정말 실행되었던
것이다.
작가 안창근은 부산대학교 공과대학 대학원을 졸업한 석사 출신으로, 제1회
황금펜 영상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블랙>을 쓴 주인공이다. 많은 작가들이 그러하듯 그도 독서광인데, 분야를 가리지 않지만 장르문학을
특히 좋아한다. 마이클 코넬리, 제프리 디버, 할런 코벤, 리 차일드, 헤닝 만켈, 요 네스뵈 등 영미와 북유럽 작가에게서 깊은 영감을 받았다.
언제부턴가 이런 작가들처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는 작품을 적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혀
펜을 들게 되었다. 사회의 부조리한 면을 들춰내는 데 스릴러만 한 장르가 없다고 생각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소설마저도 따라가기 버거운 끔찍한
현실을 개탄한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고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을 구상하기 위해 불철주야 고민 중이다.
한 통의
이메일
살인예고
다음 주 어둠이 내려앉고 화려한 축제가 열릴 때 붉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AABBBABBBAABBABAABBAAAABBAAAAAAABAA
유령은 마치 경찰을 우롱하는 듯한 이 한 통의 이메일로
인해 형사와 경찰 등 수많은 인원들이 잠복 근무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번째의 살인예고는 실제로 거행되고 말았다. 당연히 경찰의 무능에 대해
지탄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경찰은 모험에 가까운 비밀 작전을 수행한다. 고사성어에 '이이제이以夷制夷'라는 말이
있다. 오랑캐는 오랑캐를 활용해
제압한다는 뜻이다. 경찰은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해 수감 중인
연쇄살인범을 이용하기로 한 것이다.
"연쇄살인범이야말로 최고의
프로파일러다"
이 비밀스런 작전을 수행하려면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흉악한 범죄자와 자주 접견을 해야
하는 일종의 메신저가 있어야 한다. 마치 영화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그런 장면을 보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도 여성 FBI 수습 요원이 살인범과의 면담을 통해 살인범의 심리를 밝혀내려고 시도한다. 아무튼 소설에서도 수감 중인 살인범 강민수와의
접견 대상자로 과거 그의 연인 노희진을 이용한다.
영화
<양들의 침묵>중 한 장면
연쇄살인범들은 사람을 조종하는 데
능숙하다. 처음 보는 여자를 아무런 의심도 받지 않고 낯선 곳으로 데려가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들은 그녀가 민수에게 세뇌되어
민수의 말도 안 되는 무죄 주장에 동조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그녀를
보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은 급박했다. 유령은 노골적으로 경찰을 조롱했다. 여론도 결코 경찰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무능의 극치였다. 심지어 범행을 예고했음에도 경찰은 속수무책이었다. 급기야 대통령까지 이 사건을 언급할 정도였으니 경찰총장의 목도
시간문제였다. 수사회의 때 누군가 무심코 던진 '연쇄살인범이야말로 최고의 프로파일러다'는 말이 희진을 여기까지 몰고
왔다.
연쇄살인범
강민수
강민수는 한때 경찰 최고의
프로파일러였지만 자신의 여자 친구를 포함, 세 명의 여성을 살해한 혐의로 수감된 희대의 연쇄살인범이다. 접견을 하러 간 희진에게 처음엔
비협조적이었으나 유령이라 불리는 이 살인범을 체포했을 때 반드시 자신과의 독대를 허용한다는 조건으로 협조를
약속한다.
한편, 유령은 처음 경찰에 살인에 대한 메세지를 보냈지만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신문사 사회부 기자인 황종철을 통해
암호 방식으로 자신의 메세지를 줄곧 보내왔다. 이 때문에 황 기자는 일약 스타급이 되었다. 그동안 유령이 보낸 메세지를 살펴보면 첫 번째는 '내
이름은 팬텀', 두 번째는 피해자의 시신 위치, 세 번째는 살인 예고였다.
이후 유령에 관련된 자료를 희진을 통해 건네 받은
민수는 프로파일링에 착수한다. 그는 유령이 남긴 단서들을 분석해 유령이 <오페라의 유령>을 유난히 좋아하며, 숫자 5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오페라의 유령은 5번 박스석을 사용하는데다 지하 5층에 살고 있었다. 또 결정적으로 유령의 이름은 에릭인데
수비학적으로 숫자 5와 관련돼 있다고 희진에게 설명했다.
민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눈에 띄는
인물이었다. 그는 심리학 석사학위 소지자로 프로파일러로 특채됐다. 그는 예술을 좋아했고, 책 읽는 것을 즐겼으며, 컴퓨터에도 능숙했다. 거기다
운동능력과 격투실력도 탁월했다. 만약 그가 검거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FBI 행동과학분과에서 연수를 받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그는 촉망 받던
인재였다.
아무리 그래도 하룻밤 만에 실로 엄청난 정보를 알아낸 민수의 분석 능력은 가히
탁월했다. 조사팀이 몇 개월이나 허비한 다음에 알아낸 사실들을 말이다. 희진은 그가 유령과 연관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강하게
들었다. 사실 민수는 높이 올라갔던 만큼 추락의 고통 또한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컸을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향해 복수의 칼을 갈 수도 있지
않을까?
유령에게 희생된 세 여성은 모두 20대 초반으로 170센티 전후의 훤칠한 키에 남자들의
시선을 충분히 끌 만한 미인들이었다. 첫 번째 피해자는 화성시 해운산의 등산로에서 많이 벗어난 개울가의 나무에 목을 맨 상태로 발견되었고, 두
번째 피해자는 무려 스물다섯 군데나 난자당한 상태로 하남시 검단산에서 발견됐다.
예고살인이었던 세 번째 피해자는 다섯 번을 칼에 찔렸다. 그것도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말이다. 사인은 과다출혈이었다. 뒤에서 신장을 연속해서 찔린 게 치명타였다. 이처럼 젊은 미녀들을 범행 대상으로 지목해 아무런 증거도
남기지 않으면서 납치 후 살해할 만큼 유령은 용의주도하고 영리했다. 더구나 범행수법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었다.
연쇄살인범 민수 vs
유령
문 경감의 아이디어로
희진을 내세워 민수와 유령의 대결 구도로 이 사건을 해결하려 한다. 희진은 한때 연인이었던 민수를 속이면서 이 일을 꾸미는 게 떳떳하진 않지만
이참에 유령과 민수는 정말 연결고리가 없는지 확인해보고 싶었다. 문 경감도 사실은 민수가 유령을 조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 때문에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다행스럽게 민수는
기꺼이 유령과의 대결에 나선다. 수사에 혼란을 줄 목적으로 유령이 남긴 가짜 단서들을 가려내고 유령을 자극하려고 유령과 접촉가능한 황 기자에게
인터뷰를 요청한다. 이는 혹시 황 기자가 유령과 공범일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목적이기도 했다. 과거 황 기자는 경찰의 고질적인 상납문화를 고발하는
기사를 방송국 PD와 함께 심층 취재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온 대가로 경찰들로부터 왕따를 당하고 있었기에 경찰에 대한 복수심은 유령과 같은
심정이라고 판단했다.
인터뷰에서 민수는
유령이 외모 콤플렉스로 인해 여자에게 접근하지도 못하고, 성불구자이며, 정신병력이 있어 군대에도 가지
못했을거라고 자극한다. 인터뷰 기사를 보고 화가 난 유령은 군대에
갔다 왔음을 밝힌다. 이는 유령의 프로파일링엔 도움이 되었지만 결국 화를 부른다. 즉 모욕당한 유령은 침묵을 깨고 마침내 네 번째 살인을
예고하는 메시지를 보내온다. 네 번째 살인은 앞선 세 번의 살인과 비교할 수 없는 파괴력이 예상되어 다시 혼란에
빠진다.
눈에 보이는 게 다 진실은
아니다
유령은 노희진을 납치해 "넌 강민수가 정말 연쇄살인범이라고 생각해?"라는 의미심장한 말과 함께 수감 중인 민수에게 자신
있으면 데리러 오라고 자극한다. 탈옥을 부추기는 셈이다. 더구나 찾으러 오지 못한다면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연쇄살인범과 연쇄살인범의 흥미로운
두뇌게임은 과연 어떻게 전개되고 어떤 결말을 가져올까? 희진은 과연 무사히 구출될까? 민수는 유령의 정체를 이미 파악하고 있다. 유령은 오빠에게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한 한 불행한 여인의 아들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