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예언자 오스카 로메로
스콧 라이트 지음, 옥타비오 듀란 사진, 김근수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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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이 학살당할 때 함께 피 흘리는 교회는 존경받습니다" 사회 구석구석에 퍼진 극심한 가난은 현실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얼굴에 그대로 드러납니다. 이들의 얼굴에서 우리는 고통받는 예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질문하시며 도전하십니다. 태어나기 전부터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얼굴에서, 사회에 속할 곳을 찾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젊은 청년들의 얼굴에서, 인디오와 흑인의 얼굴에서, 땅을 빼앗긴 농민의 얼굴에서, 조직도 없고 권리도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에서, 실업자들의 얼굴에서, 하찮은 취급

 

 

 

 

 

 

 

 

 

 

 

 

 

 

 

 

 

 

 

 

 

 

 

 

 

 

 

 

 

 

 

 

 

 

 

 

 

 

 

 

 

 

 

 

 

 

 

 

 

 

 

로메로 대주교의 암살

 

1980년 3월 24일, 로메로 대주교는 디비나 프로비덴시아 병원 성당에서 친구의 기일미사를 드리던 중 암살당했다. 이 병원은 산살바도르 암환자들을 위한 호스피스 병동이자 로메로 대주교가 거처했던 곳이다. 순교는 엘살바도르에서 벌어진 혼란 속에서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이었다.

 

"백성들이 학살당할 때 함께 피 흘리는 교회는 존경받습니다"

- 로메로, 1980년 2월 17일

 

 

로메로 대주교는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이 민주화 운동을 살인으로써 탄압하자 비폭력투쟁으로 저항했고, 1980년 3월24일 프로비덴시아 병원 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하다 엘살바도르 군사독재정권에게 암살당했다. 죽음으로써 불의에 항거한 그의 모습은 전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20세기 순교자 중 한 사람으로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동상이 건립됐다.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는 지난 5월 성인聖人으로 추대됐다. 그의 성인 추대는 그가 종교적 이유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살해당했다는 점에서 그동안 지지부진했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출되자마자 시성 절차가 재개됐다. 2015년 2월3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로메로 대주교의 죽음을 순교로 선포함에 따라 마침내 그해 5월23일 시복식이 거행됐다.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서 열린 오스카 로메로 대주교 시복식엔 25만여 신도들이 함께해 민중의 수호자로 살아온 그의 삶과 죽음을 기렸다.

 

"로메로 대주교는 나에게 하느님의 종이었으며, 그는 여전히 순교 중입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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