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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구도 완벽하지 않다 - 실수의 재발견
위르겐 쉐퍼 지음, 배진아 옮김 / 흐름출판 / 2015년 4월
평점 :
이 책은 결코 야무지지 못한 행동에
대한 변론서가 아닐뿐더러, 사기나 고의적인 실수에 대한 변명은 더더욱 아니다. 이 책은 실수 연구의 세계로 떠나는 일종의 탐험 여행이다. 실수를
집중적으로 파고들다 보면 얼마간 위로가 되기도 한다. 인간들이 부와 명성 혹은 깨달음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류와 실패는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인 일이다. - '서문' 중에서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저자 위르겐 쉐퍼는 1965년 생으로, 독일의 다양한
신문사에서 30년 가까운 기자 생활로 잔뼈가 굵은 저널리스트다. 그가 특파원 신분으로 뉴욕과 쿠바 아바나 등에서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인맥을 쌓은
경험은 독일의 여러 신문에 특집 기사로 소개되었다. 2005년부터는 함부르크에서 독일 잡지 <GEO>의 정치, 과학부문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과 관련해서 김정일 사망 5년
전에 북한을 공식 방문하여 비밀리에 북한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영상을 제작한 경험도 있다. 그 영상을 바탕으로 "북한, '김'의
동화"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를 발표해 독일에서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13년, 기발한 사고의 기술을 다룬 그의 첫 책
<아니면 어때>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었다.
'30초 미스 유니버스',
이는 얼마 전 라스베가스에서 발생한 미인 대회의 해프닝이다. 미스 유니버스 대회의 시상식에서 사회자가 왕관을 써야 할 우승자를 잘못 호명하고
말았다. 대회장은 이미 영예를 차지한 콜롬비아 여성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곧이어 사회자가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왕관의 진짜
주인공은 미스 필리핀이라고 정정한 해프닝이었다. 장내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30초
만에 왕관을 벗기는 장면, 2015 미스 유니버스
대회
이뿐이 아니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인간인 이상 심판들이
자주 오심誤審을 한다. 야구 경기에서 주자가 1루에 먼저 진입했는데, 1루심은 아웃이라고 판정하고 투수의 투구는 분명히 높은 볼임에도 주심은
스트라이크 콜을 한다. 축구 경기에선 페널티 박스 내에서 상대가 슛한 공을 수비수가 손으로 막았는데도 페너티킥 휘슬을 불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처럼 헤매고 오류를 범하는 일은 지극히 인간적인
일상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우리들은 좌절을 두려워하고, 승자를 사랑한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완벽과 완전무결을
추구한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게 있다. 모든 성공 앞에는 먼저 수많은 실패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실수를 통해 비로소
성장한다.
서평을 쓰고 있는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초급행원 시절을 경험했었다. 지금은 이런 경우가 좀 드물지 모르나 당시엔 흔히
발생하는 일이 출납 사고였다. 예컨대 출금 전표에는 분명히 5만원인데, 출납 창구에서 이를 50만원으로 잘못 보고 더 많은 돈을 지출하는
경우이다. 양심적인 사람은 즉석에서 잘못을 지적해주지만 대체로 휘파람을 불며 유유히 창구를 그냥 떠난다.
워낙 창구에 많은
사람이 몰리기 때문에 빨리 처리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고의 한 형태이다. 이런 일이 발생했을 경우 영업 시간이 종료된 후 은행
셔터를 내리고 일계표를 토대로 현금 시재를 정산하면 당연히 맞을 리가 없다. 찾다 찾다 못찾으면 몇 명이 이를 분담해 물어내기도 했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에디슨이 말했듯이, 이런 실수를 겪으면서 은행의 업무들은 점점 더 선진화되어 갔던
것이다.
허점투성이 감각
운전중 전화를 할 때, 휴대전화를
귀에 갖다 대는 것과 핸즈프리 장치를 이용하는 것 중에서 어느 쪽이 더 안전할까? 누구나 '핸즈프리'라고 답할
것이다. 과연 정답일까? 아니다, 오답이다. 유타 대학 연구진이 실험 대상자들을 상대로 핸즈프리를 이용하게 했다. 이들이 보인 반응은
혈중알코올농도 0.8인 상태로 운전하는 사람들과 동일한 반응 속도를 보였다.
왜 그럴까? 이는 우리 뇌의 수용
능력 때문이다. 카네기멜론 대학 뇌연구센터 소장인 심리학자 마셀 애덤 저스트는 연구진들과 함께 자동차 운전에
관여하는 뇌 영역을 찾아낸 다음 영상장비를 통해 뇌가 그런 종류의 사고 활동에 얼마만큼 몰두하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장비는 산소 소비량을
감지하는 것이었다. 실험 대상자들은 두 가지 이상의 활동을 수행할 수 잇었지만, 그 속도가 현저히 느려졌다. 여기에다 음주까지 했다면 단연코
최악이다.
"우리가 한 번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에는 한계가 있다. 운전의 질이 그 때문에 저하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 마셀 애덤
저스트
오류
때문에 한 인간의 인생을 수십 년 동안 불행의 늪에 빠뜨리는 경우도 있다. 미국 버지니아 주 리치먼드에 사는 토머스
헤인즈워스, 그는 청년 때 엄마 심부름으로 빵과 고구마를 사려고 슈퍼마켓으로 향했다. 당시 그 지역은 연쇄강간범이 지난 4주간에
걸쳐 젊은 여성 5명을 성폭행하는 사건이 발생해 민심이 흉흉했다. 1984년, 18살인 헤인즈워스는 여태 단 한 번도 경찰과 마찰을 벌인 적이
없었다.
불행하게도 슈퍼마켓으로 향하던 그를
본 한 여성 증인이 경찰차를 타고 순찰을 돌다가 연쇄강간범으로 지목했던 것이다. 증인의 오류 가득한 말만 믿고
그를 범인으로 지목해 법정에 세운 뒤 선고를 내렸다. 어찌 된 영문인지 범인을 감옥에 수감했는데도 불구하고 성폭행 사건이 1년이나 지속되자
상황이 변했다. 헤인즈워스는 무죄 투쟁을 벌였다. 하지만 승소하기까지 무려 27년이나 걸렸다. 엉터리 증인 때문에 부당한 판결을 받는 사람들이
무고하게 평균 11년이나 수감된 뒤 무혐의로 풀려난다고 밝혀졌다.
멀티태스킹, 훈련을 통해 이런 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
<뉴욕타임스>에 실렸다. 이 때문에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직장인들은 멀티태스커가 되어야만 했다. 미리 결론을 말하면, 이는 허구임이
판명됐다. 즉 다수의 정보를 동시에 처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단지 뇌가 순차적으로 작업을 수행할 뿐이다. 분자생물학자 존
메디나는 <뇌의 법칙>을 통해 "멀티태스킹은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라고
단언했다.
양날의 칼,
휴리스틱
우리의 머릿속에서 진행되는 일은
논리적인 사고와는 거의 무관하다. 문제 풀이를 하나 해보자. 우리가 소개받을 여성 린다는 30대 초반으로 독신이며 직선적인 스타일에 매우 똑똑한
여성이다. 그녀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시절 사회 정의 실현과 차별 반대 모임에 적극 가담한 경력이 있다. 자, 이제 문제가
나간다.
린다는 은행원이다.
린다는 여성운동에 적극 참여하는 은행원이다.
심리 테스트에 참여한 사람들의 85%
이상이 두 번째 답변을 했다. 사실 이는 오답이다. 두 번째 답변은 좀 더 타당해 보이지만 이는 논리적이라기 보다 다분히 직관적이다. 어쩌면
린다는 오래전의 여성운동에 신물이 나버렸을지도 모른다. 이 실험을 한 인물이 바로 대니얼 카너먼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두 번째 답이 린다에 대해 처음 들은 이야기와 일관성이 있다고 판닪기 때문이란다. 이처럼, 우리들은 '적절한' 것과 '그럴 법한 '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의사들이 유방암 진단을 했을 경우,
틀릴 확률이 맞을 확률보다 13배나 더 높다. 직관만으로는 가능성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 없음을 보여 준다. 즉석에서 손쉽게 해결하기엔 너무
복잡한 문제와 마주치게 되면 우리들은 감정에 의지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정신적 축약 현상을 '휴리스틱'이라고 부른다. 아래의 문제를 풀어
보자.
야구방망이와 야구공을 모두 합한 가격이 1.10유로다.
야구방망이가 야구공보다 1유로 더 비싸다.
그렇다면 야구공은 얼마일까?
대부분 "10센트!"라고 외친다.
하지만 '땡'이다. 야구공은 0.5유로다. 심리학자들은 스무 개가 넘는 '휴리스틱과 편향성'을 밝혀냈다. 한
연구에서 대학교수들 중 94%가 자신의 연구물이 '평균 이상'으로 훌륭하다고 답변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운전자에게 자신의 운전 실력을
평가하라고 하면 모두 '잘한다'고 말하는 것와 같다. 즉, 자신은 똑똑하다는 편향성을 띤다.
휴리스틱으로 인해 많은 돈을 날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주식 시장이다. 가장 흔하게 발생하는 오류 중 하나는 수익률이 높은 주식은 성급하게 매각하고
대신에 손해 나는 주식을 지나칠 정도로 장기 보유한다. 이때 장기 보유를 하면 본전 이상의 결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맹신한다. 자신이 매수한
주식은 무조건 좋은 주식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기 때문에 상장 폐지되고 나서야 땅을 치며 후회한다. 전문가도
마찬가지다.
완벽보다 실수에 열광하라
이 책의 원 제목은 <실수 예찬>이다.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책을 통해
완전무결함은 결코 인간에게 주어진 특징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류의 진화는 완벽하고 강한 종이 되려는 노력이 아니라 오히려 다양성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실수는 예기치 못한 다른 것을 만들어냈으니 그 속에 기회가 있었던 셈이다.
책엔 두 사람의 케이스가 예시된다.
즉 '에미상' 수상자인 유명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트와 '미슐랭가이드'에서 세 번이나 별을 받은 스타 셰프
베르나르 루아조다. 두 사람은 모두 완벽을 추구했고 성공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자신의 실수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에는 차이가 있었다.
사인펠트는
<뉴욕타임스>기자에게 평생 '우울증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끼며 살아왔다고 고백했다. 편집이 없는 라이브 무대 위의 코미디언은 사람을
못 웃길 수도 있는 위험을 늘 감수한다. 그래서 그는 언제나 완벽한 위트를 추구하지만 자신의 무대를 결코 예술작업으로 간주하지 않았다.
반면 주방 보조원에서 프랑스 최고
셰프가 된 루아조는 음식 평론가로 활동하는 지인에게 자주 "내가 최고야, 그렇지 않나?"고 확인하곤 했다. 어떤 손님이 접시를 다 비우지 않으면
그 즉시 당황하곤 했다. 새로운 요리사들이 나타나 주목을 끌자 정상에서 추락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그는 총을 물고 자살했다. 현재 아내가 경영하는
그의 레스토랑은 오늘날까지 별 3개를 유지하며 건재하다.
실수에 대한 대처는 결국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와 직결된다. 가수 김흥국은 본업보다 방송인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의 방송 실수담은 개그맨 못지 않게 배꼽을 잡게
만든다. 실수를 통해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알게 되고, 다음에는 다른 방식으로, 더 뛰어나게 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좌절을 기회로
받아들이자. 그러면 새로운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