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나남 셰익스피어 선집 5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이성일 옮김 / 나남출판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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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스는 11세기의 스코틀랜드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따라서, 이 책을 한 편의 역사극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튜더 왕조의 마지막 임금인 엘리자베스 1세가 죽고난 후 스코틀랜드의 제임스 4세가 영국의 왕위를 계승, 제임스 1세로 등극해 스튜어트 왕조를 연다. 제임스의 조상인 뱅쿠오는 역사적으로 덩컨 시해에 연루되었다고 알려진 인물이다. 하지만 이 작품에선 덩컨 시해와는 무관하고 맥베스에 의해 살해당하는 모습으로만 그려진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마지막 작품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총 37편의 작품을 발표하면서 런던의 극작가로 명성을 떨쳤던 셰익스피어(1564~1616년)는 <햄릿>, <오셀로>, <리어왕>에 이어 마지막으로 <맥베스>를 무대에 올렸다. 우리들은 이 작품들을 총체적으로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이라고 부른다. 아 작품들은 각각 왕자의 복수, 부하의 간계에 휘말려 사랑하는 아내를 살해하는 용병대장, 왕국 분배를 둘러싼 세 딸의 선악 구도, 야심가인 어느 장군의 권력욕 등 비극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기에 붙여진 별칭이다.

 

가장 나중에 쓰여진 작품이면서 그 길이도 가장 짧은 탓에 일부 학자들은 셰익스피어가 촉박한 공연 일정에 맞추어 서둘러 완성한 작품인 듯하다고 평가한다. 총 5막 9장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주인공이 맥베스가 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오른 악인으로 묘사된다. 그런데, 셰익스피어의 비극 중 악인이 주인공인 작품은 단 두 편뿐이다. <리처드 3세>와 <맥베스>가 그것이다. 리처드는  왕위에 오르고자 비열한 계략을 세우고 조금도 양심에 꺼리낌 없이 이를 실행하는 반면 맥베스는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갈등하고 악행을 저지른 후 고통과 악몽에 시달리는 모습을 보인다.

 

 

 

용서받을 수 없는 죄

 

맥베스가 저지르는 시역弑逆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이고, 그가 부당한 수단으로 왕위에 오른 뒤에 범하는 일련의 비열한 잔혹행위는 그를 더할 나위 없는 악당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악몽의 나날을 보내며 그가 겪는 고통은, 인과응보의 법칙에 따라 그가 당연히 받아야 할 형벌임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에게 혐오감보다는 오히려 연민의 정을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그를 향한 감정이입과 자아투사가 가능하도록 만든다. 이제 작품 속으로 둘어가 보자.

 

참,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져 얼마 전에 국내에서 개봉되었다. 배우 마이클 패스벤더마리옹 꼬띠아르가 각각 남녀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쳤다. 본디 연극 무대에 올려진 작품은 대체로 배우들의 연기와 인상적인 대사에 주목하게 되지만, 영화로 제작된 작품은 주무대인 스콜틀랜드의 자연 풍광을 그대로 옮겨왔기에 색다른 매력이 있다.

 

 

 

덩컨 왕의 사촌이자 충신으로 인정받는 스코틀랜드 최고의 장군 맥베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여 반란군을 진압한다. 코더의 영주가 반란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 소식은 전령에 의해 속히 덩컨 왕에게 보고된다. 보고를 접한 왕은 코더 영주를 즉각 처형하고 그 지위를 모두 맥베스가 승계토록 하라고 하명한다.

 

 

맥베스는 동료 장군 뱅쿠오와 돌아오는 길에 세 마녀를 만나는데, 이들로부터 의미심장한 예언을 듣게 된다. 즉 맥베스가 장차 왕이 될 사람이라고 예언했다. 누더기 옷을 걸치고 말라비틀어진 행색이 사람이 아닌 환영처럼 보여져 무슨 연유로 이런 말을 하는지 말하라고 맥베스가 재촉하자 마녀들은 일제히 사라진다.

 

맥베스 만세! 글라미스 영주님 만세!

맥베스 만세! 코더 영주님 만세!

맥베스 만세! 장차 전하 되실 분!

 

아버지의 사망으로 글라미스 영주를 물려받은 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멀쩡하게 생존하는 코더 영주를 제쳐놓고 자신에게 코더 영주라 부르고 나아가 왕위에 오른다는 말이 과연 가당키나한 말인가 말이다. 심지어 뱅쿠오에게는 "맥베스보단 못하지만, 더 위대하셔!, 임금은 못 되셔도 임금을 낳을실 분!, 뱅쿠오 만세!"라고 말했다. 이에 맥베스는 이 황량한 들판에서 자신들의 앞을 가로막고 황당한 예언을 지끌이는 연유를 밝히라고 명했던 것이다. 드디어 두 사람의 마음 속에 욕망의 불꽃이 일기 시작한다. 맥베스의 비극은 이렇게 시작된다.

 

 

 

마녀들이 사라진 후 왕의 전령이 도착해 맥베스가 코더의 영주로 임명되었음을 전한다. 이에 맥베스와 뱅쿠오는 함께 놀란다. 마녀의 예언이 적중했기 때문이다. 이에 맥베스는 향후 자신이 왕이 된다는 예언으로 자연스레 연결지으면 '내가 왕이 될 운명이면, 그래, 운명은 내가 가만 있더라도, 내게 왕관을 씌워 줄 것이야'라고 혼잣말을 한다.

 

덩컨 왕은 맥베스의 승전을 치하하며 맥베스의 성을 방문해 하룻밤을 보내고 싶다고 말하며 자신의 장남 맬컴을 차기 왕위계승자임을 천명한다. 맥베스는 왕의 처사에 몹시 마음이 상해 서둘러 물러나 성으로 향한다. 한편, 맥베스 부인은 남편이 보낸 편지를 읽고 마녀들의 예언 중 일부가 적중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욕망이 크다. 남편이 모진 성격이 아닌 것을 알기에 덩컨 왕이 일박을 하는 날 거사를 하겠다고 작심하고 이를 도착한 맥베스에게 이 계획을 털어놓는다. 이를 놓고 맥베스는 많은 고뇌를 하다가 결국 아내의 뜻에 따르기로 결심한다.

 

   

 

담대한 맥베스의 아내는 야심을 부추기는 달콤한 속삭임을 계속하고, 욕망과 양심 사이에서 고뇌하던 맥베스는 결국 왕을 시해하기로 결심하고 그날 밤 덩컨 왕을 죽인 후 반역죄를 침실에 함께 있었던 하인들에게 덮어씌워 이들 또한 모두 죽여 그 입을 사전에 틀어막아 버렸다. 겁을 먹은 덩컨 왕의 장남은 영국으로, 차남은 네델란드로 급히 피신한다.

 

한편, 뱅쿠오는 맥베스가 시해의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의 후손들이 왕위에 오른다는 마녀들의 예언을 떠올린다. 하지만 이미 맥베스는 후환을 제거하려고  뱅쿠오와 그의 아들을 죽이라고 두 명의 자객을 보낸다. 결국 뱅쿠오는 살해되지만 아들은 가까스로 도주에 성공한다.

 

 몽유병에 시달리는 맥베스 부인

 

권력에 대한 욕심 때문에 남편을 부추겨 살인을 유도하고 자신의 손에도 피를 묻힌 맥베스 부인은 몽유병에 시달리며 처참하게 변해간다. 욕망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셈이다. 맥베스도 욕망의 포로가 되어 위협이 되는 존재는 모조리 죽이려고 한다. 이에 도망친 덩컨의 아들 맬컴과 반정을 도모하는 맥더프의 처자식을 무자비하게 해친다.

 

그러나 이후 양심의 가책을 느낀 맥베스는 뱅쿠오의 망령에 시달리며 점점 심약해지고, 마녀들은 여자가 낳은 자는 그를 해치지 못하고 버넘 숲이 진격해올 때까지는 결코 패퇴하지 않는다는 수수께끼 같은 예언을 한다. 과연 그는 맬컴과 맥더프의 도전을 이겨낼 수 있을까?

 

 

 

 

 

성격이 곧 운명이다

 

맥베스는 완벽한 성자도, 그렇다고 파렴치한 악인도 아닌 선과 악이 공존하는 인물이다. 그는 절대적인 신임을 받는 장군으로서 덩컨 왕에게 충성을 다하지만 가슴 한 편에는 왕관을 차지하겠다는 야망이 있었다. 실력이나 왕위계승 서열에서 밀리지 않는 그가 역심을 품은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지만 당시엔 '왕권신수설'이 지배하던 절대군주제 사회였기에 목숨을 건 도전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내면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욕망에 휘둘리는 맥베스의 모습이 악인이라는 혐오감보다는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걸출한 장군이 도덕적으로 추락하고, 점점 위축되어 가는 모습은 잠시나마 욕망을 최선이라고 여겼던 한 인간의 비극을 보여준다. 인간 본성에 공존하는 선과 악의 이중주가 휘몰아치는 맥베스 이야기에서 우리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셰익스피어 식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하고 싶다.

 

 

"선이냐 악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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