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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정치의 두 얼굴 - 서울대 교수 5인의 한국형 복지국가
안상훈 외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0월
평점 :
품절
그리스의 실패와 스웨덴의 성공을 보면 국가 발전전략으로서 '좋은 복지전략'은 따로 있는 게 분명하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의 '크기'만 얘기한다. 그러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의 문제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들에서 이러한 문제들에 관한 정치적 결정은 국민들의 의식을 따라가는 경향을 보인다. 국민여론이 얼마나 잘 집약되어 있는가는 변화가 필요한 순간 그 나라의 명운을 결정한다. - '서문' 중에서
복지 정치는 두 얼굴을 가졌다
우리 사회의 계층 갈등을 분석하고 사회 통합을 모색한 서울대 사회복지학, 정치외교학, 경제학, 사회학, 언론정보학 교수 5인이 다시 모였다. 이번 주제는 '한국형 복지의 방안과 해법'이다. '성장'만으로 더 이상 '복지'를 해결할 수 없는 지금, 우리나라의 복지 정책은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가? 정치권과 언론계, 국민 모두가 머리를 맞대고 실현해야 할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현실적 해법을 모아 한 권으로 엮었다.
복지는 우리 사회의 뜨거운 관심사다. 더욱이 삶이 팍팍해질수록 우리 사회는 이 주제에 대해 더 열띤 공방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 사회의 고민은 유럽의 고민과는 다르다. 유럽은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 복지국가를 건설할 수 있었지만 한국은 저성장시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스웨덴vs 그리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소통 가능한 나라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만든다', '앞으로 10년,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그들은 어떻게 복지 이슈를 이용하는가', '국민이 행복한 복지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등 다섯 개의 주제로 한국 복지의 현재 모습뿐만 아니라 미래 전망을 함께 다룬다.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간 성공적인 자본주의 국가의 공통점이기도 하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고도성장의 시대가 끝난 한국 경제는 지금 저성장의 국면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새로운 국가발전략의 화두는 '복지국가'다. 현재 이러한 전환은 이미 시작되고 있지만 좋은 복지국가로 갈 수 있을지는 정치권의 행보에 달린 셈이다.
복지정책과 관련해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 그것은 복지정책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2012년 대선 경쟁시 '복지정치'가 본격적으로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공한 스웨덴의 복지국가모델을 한국에 그대로 들여올 수도 없다. 그들은 이미 오랜 세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자기들에게 적합한 방식을 찾았기 때문이다. 책의 다섯 저자들은 한국형 복지에 대한 해법을 모색한다.
1. 스웨덴과 그리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스웨덴과 그리스의 성패는 대조적이다. 한국은 누구와 더 가까운가? 한국이 이미 그리스행 특급열차를 탔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과연 우리 정치인들은 복지와 세금에 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할까?
2. 소통 가능한 나라가 지속 가능한 복지를 만든다 ~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 스웨덴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 반면, 그리스는 현재까지 사회적 합의의 가능성이 매우 낮다. 과연 한국은 정치인과 정부, 국민 간의 합의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3. 앞으로 10년, 우리가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 ~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이중화, 고령화, 민주주의는 각각 심각하면서 동시에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 고령화의 속도를 감안하면 이를 풀기 위해 남은 시간은 불과 10년 남짓이다. 세 가지 문제에 한국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4. 그들은 어떻게 복지 이슈를 이용하는가 ~ 한규섭,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선거 때마다 쟁점이 되는 복지 정책은 왜 구호에만 그칠까. 언론과 정치권의 역학관계에 그 이유가 숨어 있다. 상호 필요한 존재이면서 견제하는 이 둘은 복지 이슈를 어떻게 이용할까?
5. 국민이 행복한 복지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한 나라는 모든 국민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좋은 집이 돼야 한다.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계층 간 격차를 해소하고 '국민의 집'을 건설하는 데 있었다. 복지정치 없는 복지정책에 머물고 있는 한국은 이제 장기적 차원의 복지국가를 모색해야 할 때다.
"복지는 곧 정치다"
선진국들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사정에 따라 차별화되는 복지국가를 꾸려가고 있다. 스웨덴과 그리스, 두 나라의 복지국가 행보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한쪽은 지구촌 여러 나라로부터 성공신화에 박수를 받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망국亡國의 늪에 빠진 모양새이다. 두 나라는 모두 동일한 복지국가를 지향했는데 왜 이처럼 다른 결과가 나타났을까?
복지정책과 관련해 거부할 수 없는 한 가지 진실이 있다. 그것은 복지정책 그 자체가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사실이다. 한국정치에서도 복지가 화두로 등장하게 된 사건은 '무상급식'이었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속설처럼, 무상의 파급효과는 가히 메가톤급이었다. 차별적인 무상급식을 내세웠던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자진사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복지에 대해 우리 국민들이 사전에 깊은 성찰을 해보지도 않은 상태에서 야권에선 2010년 지방선거의 승리를 위해 '무상급식'을 공약公約으로 내세우자, 당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사회보장기본법에 관한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보수파의 합리적 복지확대를 선언했다. 이후 여당은 박근혜식 복지확대론으로 야권을 궁지로 몰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고 만다.
지나간 과거 시대의 복지는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충족되었다. 이른바 성장만능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복지에 관한 국가 차원의 준비 타이밍을 놓친 게 우리의 현실이었다. 이후 그동안 억눌린 복지 욕구가 봇물처럼 터져 나오자 성장주의에 대한 환상은 깨지기 시작했고 압축복지의 시대가 열렸다.
위의 그림[1-1]을 보면 한국의 불평등이 크게 높은 상황은 아니지만, 복지국가를 통해 불평등이 개선되는 정도는 다른 나라보다 낮은 것으로 나타난다. 향후 성장에 의해 우리의 불평등이 개선될 여지가 없는 상황이라면 복지의 확대가 피할 수 없는 시대적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림[1-2]는 국민소득 수준에서 각국의 복지지출 수준을 보여준다. 첫째, 한국은 복지출 수준이 가장 낮다. 1만불 시점에서 스웨덴이나 독일은 20%선을 넘고 있는데 한국은 5% 대도 한참 하회한다. 둘째, 한국은 지속적으로 비슷한 수준의 복지증가를 보여준다. 앞서 나가던 스웨덴과 독일은 25,000~30,000 불을 거치면서 약간 지체 내지는 낮아지는모습을 보인다.
한국의 복지지출 증가속도가 빨라서 위험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위험한 복지'는 사실 수준이나 속도만 갖고서 얘기할 순 없다. 위험한 복지라는 표현도 옳지 않다. 좀 더 세련된 표현법으로 구사하자면 '지속불가능한 복지'가 되겠다. 한국의 경우 출발부터 복지수준이 워낙 낮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위험수위라고 단정짓기엔 논리적으로 부족해 보인다.
한국의 복지확대가 지나치게 빠르지 않다면 진짜 문제는 무엇일까? 정치가 문제인 듯하다. 보수와 진보 측 양당이 큰 복지를 외쳤지만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가 생긴다는 것이다. 즉 복지확대를 위한 재원을 무엇으로 충당할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맞닥뜨리게 된다. 한쪽에선 '부자증세'를, 다른 한쪽에선 '증세 없는 복지확대'를 약속했다. 과연 이들 정책은 실현가능성이 있을까 싶다.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합리적이고 지속가능한 복지안이 시급하다 하겠다.
복지정치란 무엇인가?
20세기 사회과학의 관시밍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현상이 대두되면서 이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다. 합리적인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복지전략이 도출되려면 정치가 어떠해야 할까? 마치 중국의 '백가쟁명百家爭鳴'시대만큼이나 여러 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이들의 이론은 복지 확대기와 축소기에 다른 모습을 보인다.
초기 복지정치론의 대표주자는 북유럽의 '권력자원론'이다. 이에 따르면 처음엔 자본가들이 모든 권력을 쥐고 정치마저 좌지우지하지만 민주정치가 활성화됨과 함께 유권자들의 의식이 깨어나면서 상황이 바뀌게 된다. 일반 서민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의회에 더 많이 진출하게 되고, 마침내 좌파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해 국정운영권을 잡게 되면 자본주의의 폐해를 수정하는 방향으로 각종 입법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이익집단정치론은 권력자원론이 북유럽과 일부 유럽에 국한되는 얘기라고 말한다. 이에 따르면 복지입법은 여러 이익집단의 요구에 정치인들이 반응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정치인의 생사여탈권을 쥔 유권자로서의 이익집단은 자신들을 위한 복지확대를 요구하므로 정치인들은 이를 결코 거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선거가 복지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거의 모든 나라에서 선거가 있었던 해엔 복지지출을 증가시켰던 것으로 확인된다. 복지국가의 황금기는 1970년대 오일쇼크 무렵 막을 내렸다.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성장가도에 빨간불이 켜지자 몇몇 나라에선 복지축소와 세금감면 등 신자유주의정책이 실시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대처리즘과 미국의 레이거노믹스가 동조하면서 '방만한 복지'에 대한 개혁 조치들이 힘을 받았던 것이다.
사실 먹고사는 게 힘들어지면 남을 돕겠다는 생각이 수그러들기 마련이다. 지난 시기엔 낙관적이었던 모든 전망이 이젠 회색빛으로 변해버렸고, 연금을 깎고, 보험료를 인상해야 하는 일이 선진국 정부의 과제가 되어버렸다. 복지축소와 우선순위 조정의 문제가 공통과제로 자리잡게 되었다.
그림[1-4]는 복지재편기에 각국의 복지지출이 어떤 변화를 껶었는지 보여준다. 첫째, 대체로 복지 후발주자에 속하는 나라들의 성장 기울기가 좀 더 가파르다. 둘째, 신자유주의가 위세를 떨치기 시작한 1980년대에 대부분 나라에서 복지 지출 증가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셋째, 스웨덴 같은 나라에선 1990년대 초반의 상승에 이어 다시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넷째, 독일이나 스웨덴 같은 복지선도국들은 후반으로 갈수록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따라서 스웨덴의 성공과 그리스의 실패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스웨덴은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경제 위기를 극복했지만 그리스의 경우 심각한 난관에 봉착해 있다. 복지 혜택을 줄이고 경제의 생산성을 올리는 방식에서 스웨덴은 사회적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성공한 반면에 그리스는 위기를 당하자 국민들의 의견 차이가 더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흔히 한 사회가 노령화될 때 노인의 증가가 가져오는 재정 부담에 주목하지만 늘어난 노인이 정치 지형도를 바꾼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노인의 비중이 증가하면 복지를 비롯해 개혁을 원하는 사람들이 크게 줄어든다. 즉 그냥 이 상태로 오래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남으로써 복지 개혁을 비롯한 어떤 개혁도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다.
복지정치의 미래는 사회적 대타협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한국형 복지'를 끈기 있게 논의할 공론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