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니라고 말할 때 - 당신의 감정은 어떻게 병이 되는가
가보 마테 지음, 류경희 옮김, 정현채 감수 / 김영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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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게이버 메이트는 홀로코스트의 생존자다. 나치의 통치를 받던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생애의 첫해를 보냈고 가족들 대부분이 나치에 의해 살해되거나 추방당했다. 극한의 고통을 매일 마주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유아기를 보낸 그는 그 자신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어야 했다. 그는 자기 감정을 억누르고 고통을 참아내며 부모의 고통을 배려하는 것을 자신의 성격으로 삼았다. 내과 의사이면서도 '부모와 자식 간의 애착 관계', '주의력 결핍 장애', '중독' 등 인간 심리와 관련된 다양한 저술들을 펴낸 데는 자기 감정에 대한 성찰과 치유가 배경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자기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먼저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천부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던 영국인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는 1987년 43세의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 합병증으로 숨졌다. 그녀의 생애를 다룬 영화 <힐러리와 재키>가 이를 잘 표현하고 있는데, 즉 힐러리 뒤 프레와 근육마비증으로 요절한 전설적인 천재 첼리스트 재클린 뒤 프레 두 자매에 관한 이야기를 소재로 삼고 있다. 이들 자매는 극성스런 부모 밑에서 자라 어려서부터 음악 교육을 받았으며, 처음엔 플룻을 부는 언니 힐러리가 더 촉망받았으나 이에 자극받은 동생 재키가 첼로를 열심히 연습해 마침내 언니를 능가하는 천재로서 두각을 나타낸다.

 

사람들은 종종 재키의 연주회에서 울었다. 청중과 그녀의 교감은, 누군가의 말처럼, "정말 숨 막힐 정도였으며, 모든 청중을 마법에 홀린 것 같은 상태에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녀의 연주는 열정적이었고 어떤 때는 침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다. 머리를 휘날리며 몸을 뒤흔드는 그녀의 모습은 클래식 음악의 절제미보다 오히려 로큰롤의 현란함에 가까웠다.

 

하지만 재키는 조용하고, 수줍음 많고, 가금은 장난기도 있는 예민한 아이였다. 그녀는 첼로 연주 때를 제외하곤 늘 차분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병이 발생하기 전까지의 전 생애 동안 그녀는 자신의 감정을 어머니에게 감추곤 했다. 언니 힐러리는 재키가 감정이 잔뜩 담긴 목소리로 은밀하게 "언니, 엄마한테는 말하지 마…… 하지만 난 어른이 되면 걷지도 움직이지도 못하게 될 거야"라고 속삭였던 어린 시절의 오싹한 기억을 얘기한다. 이런 소름끼치는 자기 예언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언니 힐러리는 혹시 동생 재키의 병이 스트레스 때문에 생긴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하자 신경과 의사들은 스트레스와는 무관하다고 단호한 입장을 표명했다. 의료계의 전통적인 견해는 "스트레스가 다발성 경화증의 유발 원인은 아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책의 저자는 재키의 질병과 죽음은 감정 억압이 초래한 스트레스의 파괴적 영향에 따른 사례라고 주장한다.

 

동생이 요절한 후, 언니 힐러리는 1973년 BBC 방송에서 주빈 메타의 지휘로 동생 재키가 녹음한 엘가의 협주곡을 주의 깊게 들어보았다. 이 곡은 재키가 대중 앞에서 행했던 마지막 연주였다. "잠깐 정적이 흐르더군요. 그리고 동생이 연주를 시작했어요. 갑자기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그 애는 천천히 템포를 늦췄어요. 몇 소절 더 지나자 연주가 생생하고 선명해졌어요. 저는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늘 그랬듯이 재키는 첼로로 말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애는 자신을 위한 레퀴엠을 연주하며 자기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지혜를 갖고 있다 

 

내과 전문가인 저자는 많은 환자들의 삶과 경험을 통해 스트레스, 트라우마, 그리고 질병 간의 복합적인 관계를 살펴왔다. 그는 자기희생적인 성격을 변화시키지 않는다면 몸이 이를 거부하며 신체를 공격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앞서 살펴본 재클린 뒤 프레의 사례를 비롯해 유명한 메이저 야구선수 루 게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등의 인물을 인용하면서 마음의 상처가 나중에 천식, 알츠하이머, 암 등으로까지 발병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캐나다에서는 근위축성 측색 경화증(ALS) 환자였던 수 로드리게스가 안락사 권리를 위한 결연한 법적 투쟁을 벌여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탔다. 하지만 그녀는 가족으로부터 정서적인 소외를 당했던 사람이다. 10년 안 터울로 줄줄이 태어난 다섯 자녀 중 둘째로 태어난 그녀는 항상 외톨이였다.

 

심각한 문제가 있었던 수 로드리게스의 대인 관계 내력은, 그녀가 사실은 자신의 삶을 결코 통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진정한 자아에 다가가지 못한 채 그저 주어진 역할들만 수행하며 살았다. 법정과 대중을 향해 그녀가 던진 "누가 제 삶의 주인입니까?"라는 고뇌에 찬 질문은, 그녀의 온 인생을 요약한 것이었다.

 

그녀는 맨 처음 ALS 진단을 받고나서 절망에 빠졌을 때, 자신의 가망 없는 상황을 동료 ALS 환자 스티븐 호킹이 지녔다고 생각되는 이점들과 비교해보았다. "그녀는 완화 의료실에서 여러 장의 팸플릿을 받았다. 그런데 그 팸플릿들은 '사랑하는 가족에 둘러싸인' 환자들이나 '정신적인 삶' 속에서 기쁨을 찾는 환자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녀는 '웬 사랑하는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인 삶은 또 뭐야? 스티븐 호킹 같은 천재나 그런 삶을 살지. 하지만 나는, 나 같은 사람은 몸을 못 움직이면 삶도 없는 거야' "

 

 

젊은 시절 스티븐 호킹은 대부분의 ALS 환자들은 가질 수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몸은 파괴시키지만 지능은 손상시키지 않는 ALS라는 병의 특성을 감안할 때, 추상적인 사색가야말로 '정신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상적인 입장에 놓인 사람이다. 암벽 등반가이자 전직 마라토너였던 로드리게스와 달리, 호킹은 신체 기능의 악화가 스스로 선택한 역할을 손상시킨다고 보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로 더 향상시켰는지도 모른다.

 

호킹에게는 있었지만 로드리게스에겐 없었던 필요 불가결한 요소는 사람하는 사람의 무조건적인 정서적 지원과 실질적인 보살핌이었다. 호킹의 경우, 이런 보살핌의 원천이 현재는 전처前妻가 된 아내 제인이었다. 처음 그녀는 자신의 인생을 호킹에게 헌신하겠다고 결심했지만 뒤늦게 이는 너무나도 큰 개인적 희생을 요하는 일임을 깨달았다. 그녀의 헌신적 태도가 없었다면 호킹은 일찌감치 생존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제인이 자기 포기적인 태도를 받아들이고, 아내에게서 남편에게로 일방적으로 흐르는 에너지 흐름을 받아들이던 동안, 그들의 관계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다. 그러나 제인은 결국 자신이 소모된다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자신이 모두 다 빨려버려 메마른 상태로, "고독하고, 쉽게 상처받고, 쉽게 부서지는 텅 빈 조개껍질이 되었고" 자살 직전의 상태에 이르렀다고 느꼈다.

 

호킹은 여전히 자신의 입장만 생각하며 독립을 갈구하는 제인의 이런 분투에, 경멸감과 엄마에게 버림받은 아이 같은 분노로만 응대했다. 결국 제인은 이 과학자와 결혼하기 위해 남편까지 버린 간호사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사실 제인 역시 이미 다른 연인이 있었다. 그나마 그들 부부의 마지막 결혼 생활 몇 년 동안 제인이 스티븐을 계속 도울 수 있었던 것도 바로 이 연인 관계 덕분이었다.

 

 

39살의 밴쿠버 시민인 미셸은 지난 7년 동안 가슴에 혹을 지니고 있엇다. 그 혹은 커지거나 줄어들긴 했지만 그녀와 의사들을 한 번도 걱정시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혹이 아주 딱딱해지고, 뜨거워지고, 커지기 시작했다. 조직 검사 결과, 악성종양으로 밝혀졌다. 그런데, 그녀는 그 이유를 안다고 믿고 있다. 바로 스트레스였다.

 

"제가 제 삶을 마구 강타하자 혹이 변화를 일으킨 겁니다"

 

그녀는 실직하는 바람에 병원에 갈 수입도 없는 처지였다. 당시 그녀는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덮쳐 강타를 얻어맞았던 것이다. 결국 그녀는 유방 절제술을 받았고 다행히 림프선에는 암이 없음이 확인되어 안도의 한 숨을 내쉬었다. 수술 후 항암 치료와 방사선 치료가 이어졌다.

 

유방암 환자들이 작성하는 설문지에, 자신의 진솔한 아동기 내력을 빠뜨릴 가능성이 높은 사람을 한 명 꼽으라면 전前 미국 퍼스트레이디 베티 포드 여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자서전 속에 자신의 알코올중독과 남편을 비롯한 가족들의 치료 노력을 용감하게 기술하고 있다. 유방암 진단과 치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녀가 어린 시절을 얘기할 때면 늘 장밋빛 안경을 쓰고 있다. 그녀는 자신과 부모가 평화스러운 목가적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생각을 지키려고 자신의 감정을 억압해버리는 전형적인 사람의 예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야심만만한 정치인과 결혼했고, 남편의 이력에 자신의 인생을 지배당하면서 남편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서적 박탈을 당하며 살았다. 그녀는 여러 해동안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는 요통으로 고생했고, 진통제와 진정제 치료를 받았다. 

 

"이 세상에서 내가 언제 단 한 번이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나는 내가 자신을 의미 있는 사람이라고 믿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마사 그레이엄과 함께했던 내 활동은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나는 무용가로서의 재능은 있었지만 위대한 무용가는 아니었다―그리고 내 자신감은 늘 흔들거렸다. 나는 사람들이 내 본연의 모습 때문에 나를 좋아한다고 인정할 수 없었다. 게다가 학사 학위도 없다는 사실에 열등감을 느꼈다…… 짧은 교육. 결코 안나 파블로바 같은 무용가가 될 수 없는 사람. 어머니의 절반도 못 따라가는 딸. 나는 불가능한 이상형들과 나를 비교하며 좌절했다"- 베티 포드의 자서전 <내 생애의 시간들> 중에서
 

 

 

자기와 비非자기를 구분하는 심리적 능력에 손상이 발생하면 그 손상은 반드시 생리적 기능으로까지 확대된다. 화禍를 억압하면 면역의 교란이라는 결과가 초래된다. 감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하거나 표출하지 못하는 무능감과 자신의 욕구를 생각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의 욕구부터 충족시키려는 성향은 만성질환 환자들의 공통적인 패턴이다.

 

이런 대처 방식은 자기 바운더리가 흐려지고 심리적 차원에서 자기와 비非자기의 혼동이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같은 혼동이 세포, 조직, 그리고 몸 차원에서도 뒤따른다. 자기에 대해 반란을 일으키는 면역 세포들이 파괴되거나 무해한 존재가 되지 않으면 그 면역 세포들이 스스로 몸 조직을 공격한다.


 

때로는 몸이 보내는 신호가 긍정적인 지혜를 발휘하는 경우도 있다. 강직성 척추염 환자인 로버트는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의 유명한 노조 지도자이다. 40대 후반의 그는 서글서글한 성격에다 낭랑한 목소리로 쾌활한 유머를 구사한다. 그는 25세 무렵부터 발뒤꿈치에서 통증을 느꼈고, 그후 12년 동안 어깨 관절과 쇄골 부위에서 지속적으로 통증을 느꼈다.

 

그는 자신의 병이 화禍를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고 증언한다.

 

"저는 화를 내는 면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유리합니다. 저는 누구에게도 결코 고함을 지르지 않습니다. 그저 호흡만 가다듬어도 상대방에게 확실한 말로 제 뜻을 전할 수 있으니까요. 강직성 척추염의 장점 중 하나는, 그 병이 갈비뼈를 굳게 만들고, 그래서 앞쪽과 뒤쪽 갈비뼈가 모두 고정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목소리를 더 강하게 내거나 말하는 모습을 통제하려면 횡경막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정상인들은 그곳으로 호흡할 수 없습니다. 저는 병 때문에 불가피하게 횡경막으로 호흡해야 합니다. 이런 상태는 더 많이 감정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고, 대화를 제게 유리한 방향으로 이끌도록 해줍니다"

 

또 한 연구는 류머티즘 관절염의 고통스러운 염증조차도 몸을 보호할 수 있는 기능으로 사용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관절의 유연성이 일주일 뒤 스트레스 사건이 감소한 일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었다. "이 결과는 중요한 임상적 의미를 지닌다"고 연구진은 결론지었다. "사회적 갈등을 일으키는 사건과 관절 통증의 역동적인 상호 관계가, 병의 악화를 통해 부정적인 사회관계가 조절되는 항상성恒常性 체계를 설명해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병의 재발이 환자들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대인 관계를 피하라고 강압한다는 것이다. 즉 몸이 아니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 스탠포드대학교에서 일했던 분자생물학자 브루스 립턴의 질병, 건강, 치유에 대한 과학적 통찰은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그는 대중 강연 때마다 "개별 세포의 뇌는 무엇일까요?"라는 질문으로 청중의 의표를 찌르곤 한다. 세포의 뇌는 핵이 아니다. 개별 세포의 일생에서 뇌 활동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하는 곳은 핵이 아니라 세포막이다.

 

그는 "세포는 어떤 주어진 시간에 방어 모드에 들어가거나 성장 모드에 들어가지만, 동시에 두 가지 모드로 들어갈 수 없다"고 설명한다. 환경에 대해 우리가 지각한 내용은 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된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관계를 통해 세상이 사랑할 만하고 인정할 만한 것인지, 아니면 경계 상태를 영원히 유지해야 하는 적대적인 대상인지를 결정한다.

 

아동기의 환경이 미친 영향이 만성 스트레스가 되면, 발달 과정 중인 신경계는 '세상은 안전하지 못하며 심지어 적대적인 곳'이라는 전기적, 호르몬적, 화학적 메시지들을 반복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지각된 내용은 분자 수준에서 우리의 세포 속에 프로그램된다. 아동기에 겪는 경험들이 세상에 대한 태도를 좌우하고, 세상과의 관계를 맺게 될 자신에 대한 무의식적인 믿음을 결정하는 것이다. 브루스 립턴은 이런 과정을 '믿음의 생물학'이라고 불렀다.

 

"나는 강해야 해", "화를 내는 건 내게 옳은 일이 아니야", "내가 온 세상을 다 책임져야 해" 등과 같은 잘못된 무의식적 믿음들은 모두 이런 과정 속에서 만들어진 오해일 뿐이다. 인간의 잠재 능력은 이런 '믿음의 생물학'이 생리적으로 깊이 뿌리박혀 있더라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보증한다.

 

사람들이 전통적인 의료를 선택하든, 대안적 치료 방식을 선택하든, 동양적 치료 행위를 선택하든, 심리 치료를 선택하든 간에, 치유의 핵심은 개인의 적극적이고 자유로우며 정보에 근거한 선택이다. 우리는 스트레스로 가득 차 있는 억압적인 외부 상황으로부터 반드시 해방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해방은 먼저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믿음의 생물학'의 억압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킬 때만 가능하다.

 

 

스트레스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라

 

처방은 외부에서 주엊지지만 변화는 내부에서 일어납니다. 처방이란 무언가를 고칠 필요가 있다는 가정을 전제합니다. 반면에 변화는 본래부터 존재하던 원상태로의 치유, 즉 완전하고 온전한 본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을 가져옵니다. 위대한 생리학자 월터 캐넌의 주장처럼 우리의 신체 내부에는 지혜가 존재합니다. - '독자들에게 드리는 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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