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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도시기행 - 역사, 건축, 예술, 음악이 있는 상쾌한 이탈리아 문화산책
정태남 글.사진 / 21세기북스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유럽의 문명은 지중해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지정학적으로 지중해를 품고 있는 나라들은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그리고 이집트와 알제리 등 아프리카 북부지역 등이다. 또한, 레바논, 시리아, 이스라엘 등 일부 중동 아시아국들도 지중해를 마주하고 있다. 이중 지중해 한가운데 위치한 나라가 바로 이탈리아이며, 서양문화의 뿌리를 제공했다.
이 책의 저자는 7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유럽 구석구석을 자유롭게 누비면서 주요 매체에 글을 기고하던 건축사다. 그는 '넥타이를 맨 보헤미안'으로서 자신이 직접 경험한 유럽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들을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건축 분야 외에도 역사,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드는 그의 열정은 2007년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기사훈장을 수상하게 했다.
이 책은 북부 이탈리아의 베네치아, 볼로냐, 베로나, 제노바, 밀라노, 토리노 등 6개 도시와 중부 이탈리아의 피렌체, 피사, 아렛쪼, 시에나, 로마 등 5개 도시 그리고 남부 이탈리아의 나폴리, 폼페이, 소렌토, 아말피 등 4개 도시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시칠리아 섬의 타오르미나, 카타니아, 시라쿠자 등 3개 도시로 그의 여행은 끝을 맺는다.
비록 여행 전문 가이드북이 아닐지라도 이 책은 이탈리아를 여행코자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매매우 유용한 실용서임에 틀림없다. 저자가 건축가라고 해서 건축에 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 등 이탈리아의 전체 모습을 폭 넓게 조망하고 있다. 자, 그를 따라 여행에 나서보자.
베네치아
머나먼 옛날 이탈리아 반도에는 여러 종족이 살고 있었다. 북동쪽 지역엔 베네티라는 종족이 거주하고 있었다. 현재의 베네토주州이며, 주도가 바로 베네치아이다. 영어식 표기는 베니스다. 베네치아의 뜻은 '베네티의 땅'이다.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사람에게 베네치아를 다녀왔냐고 물었더니 베니스는 가보고 베네치아는 바빠서 못갔다는 대답을 듣고 크게 웃었던 기억이 난다.
이곳은 육지에서 약 4km 떨어진 바다 한가운데에 위치하고 있다. 그래서, 물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19세기 전반까지만 해도 이곳에 가려면 배편을 이용해야 했다. 지금은 두 개의 다리가 있다. 하나는 철도용 다리로 1846년 오스트리아가 세웠고, 다른 하나는 1933년 파시스트 정권이 세웠는데 지동차용 다리이다.
다리를 통과한 기차는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한다. 산타 루치아는 '빛의 성녀聖女'다. 이곳 산타 루치아 성당에 성녀의 유골이 보관되고 있다. 역을 건립하면서 이 성당은 헐렸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다. 유골은 유리상자에 보존되어 있는데, 체구가 작은 가냘픈 소녀의 모습이다.
산타 루치아역 앞 광장에서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하는 버스(바포렛토)에 승차했다. 이 버스는 증기선으로 수상버스를 일컫는다. 대운하 카날 그란데를 따라 물살을 가르며 나아간다. 대운하 양편의 우아한 건물들은 밝게 채색되어 물위에 둥둥 떠 있는 듯하다. 특히, 명문가 콘타리니 가문이 소유했던 1400년대의 카 도로는 화려함과 세련됨이 가히 환상적이다.
대운하는 삐딱한 'ㄹ'자 모양으로 베네치아 심장부를 휘감으며 관통한다. 그 폭은 약 30 ~ 90미터이다. 수심은 약 5미터, 총길이는 약 3.8km이다. 베네치아는 약 120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에 약 180개의 작은 운하와 약 410개의 크고 작은 다리들이 놓여있다. 베네치아는 자연스런 물의 흐름을 그대로 수용한 친환경 도시 건설의 모범 사례이다.
바포렛토는 리알토 다리 아래를 지나간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바로 이 지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서로마제국의 국운이 기울어 훈족의 말발굽 소리가 커지자 베네토 주민들은 공포를 피해 배를 타고 이곳으로 피난왔던 것이다. 이후 6세기 후반 게르만족 계의 롬바르드족이 이탈리아를 침공하자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 육지로 피신해왔다. 697년 지도자('도제'라고 불렀음)를 선출하여 공화정체제의 도시국가 기틀을 다졌다.
섬하면 고립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역발상을 한다면 섬은 사방으로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밖으로 눈을 돌렸다. 육지와의 교역에 눈을 뜨고, 이를 위해 항해술과 선박 건조술에 관한 노하우를 차근차근 쌓기 시작했다. 이후 베네치아는 바다로 진출하면서 국력을 키워나갔다. 십자군 전쟁 때부터 급성장하여 14세기엔 라이벌인 제노바를 굴복시키고, 15세기엔 지중해 동부를 장악하는 황금시대를 열었다. 이처럼 섬은 더 이상>
리알토 지역은 세계 각지의 상품이 모이던 곳이며, 셰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 나오듯 금융의 중심지였다. 리알토 다리는 대운하 위에 건립된 최초의 돌다리인데, 다리 양편에 우아하게 디자인된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본디 이 다리는 목조였지만 자주 무너지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돌다리로 대체했다. 당시 공모전에 미켈란젤로 등 쟁쟁한 인물이 응모했지만 당선작은 무명의 안토니오 다 폰테의 안이 채택되었다. 1592년에 아치 구조로 완공되었다. 관강객들을 태운 곤돌라가 다리 밑을 지난다. '산타 루치아'노래가 들려온다.
산타 루치아역을 출발한 바포렛토가 남쪽을 향해 약 40분쯤 지날 때 오른편 앞에 커다란 돔이 솟아오른다. 바로크 양식의 산타 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이다. 델라 살루테는 '건강의'란 뜻이다. 1629년 초여름 베네치아에 흑사병이 창궐하여 2년간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1630년 10월 베네치아 원로원은 성모 마리아에게 직접 바치는 성당을 지어 이 재앙을 퇴치코자 했다. 디자인 공모를 거쳐 1631년 공사에 착공하자 놀랍게도 흑사병이 수그러들었다. 1681년에 완공되었는데, 베네치아 도시의 유명 건축물 중 하나이다. 이 성당을 짓기 위해 115만 개 이상의 말뚝을 땅 속에 박아 넣었다니 대단한 건축술이다.
드디어 산 마르코 광장에 도착했다. 고딕 양식이지만 이슬람 풍이 가미된 팔랏쪼 두칼레('도제의 궁전')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이 궁전은 베네치아공화국의 정부종합청사였다.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기둥과 창틀이 윗부분을 받치고 있다. 1340년에 착공되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증개축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이는 이슬람 문화와의 교류를 말해준다.
발걸음이 자연히 산 마르코 광장으로 향한다. 먼저 대성당에 눈길이 간다. 산 마르코는 마가복음의 저자 성 마가의 이탈리아식 표기다. 마치 동화 속의 건물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양파 모양의 5개 쿠폴라(돔)는 축제 분위기를 만든다. 베네치아의 중요 행사는 이곳에서 열렸다.
대성당 정면 입구 위에 네 마리의 청동말과 그 아래 5개 아치에 장식된 화려한 모자이크에 시선이 모아진다. 모자이크 중 베네치아의 상인이 산 마르코의 유물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몰래 빼돌려 오는 장면이 흥미롭다. 828년 두 명의 베네치아 상인이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도착했다. 당시 이집트는 그리스도교를 탄압하고 있었다. 산 마르코의 유물이 보관된 수도원에서 두 상인은 유골을 구입하여 출항시 이를 빵 바구니 밑에 숨기고 그 위에 이슬람 신자들이 싫어하는 돼지고기를 덮었다. 가져온 유물을 보존하려고 과수원 옆에 성당을 세웠는데, 976년 이 성당이 화재로 잿더미가 되자 1063년에 베네치아공화국 정부가 착공하여 30년이 지난 1094년에 완공했다. 과수원 자리가 바로 산 마르코 광장이 되었다.
네 마리의 청동말은 복사본이고 원본은 성당 안에 보관되어 있다. 원본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약탈해온 것이다. 비잔틴 제국의 황태자 알렉시우스가 황제 자리에 앉도록 도와주면 엄청난 보상과 동지중해 무역 독점권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여 황위에 앉도록 했지만 약속을 어기자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약탈을 감행했다. 이때 가져온 약탈품인 것이다. 베네치아는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흥하면 망하는 것이 역사의 이치다. 아드리아 해의 여왕으로 군림하던 베네치아도 해상권의 중심이 대서양으로 넘어가면서 서서히 부귀영화의 빛이 바래기 시작했다. 음악, 미술, 연극, 출판 등 문화의 전성기를 거치다가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벌되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일개 도시로 전락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의 남쪽에 카페 플로리안이 있다. 이 카페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다. 1720년 12월 29일에 개업했는데, 원래 상호는 카페 알라 베네치아 트리온콴테, 즉 '개선하는 베네치아 카페'였다. 상호가 너무 길어 주인의 이름을 따 '카페 플로리안'으로 부르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카페는 나폴레옹, 바이런 등 저명 인사들이 즐겨 찾았다. 특히, 이 카페는 베네치아에서 유일하게 여성의 출입이 가능했다. 그래서 바람둥이의 대명사 격인 카사노바도 이 카페를 즐겨 이용했다고 한다.
시라쿠자
시라쿠자는 이탈리아에서 소득수준이 가장 낮은 도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고도고도의 분위기가 도시 곳곳에 자리잡고 있어 역사와 품위가 느껴지는 곳이다. 고대 최고의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의 고향이며, 사도 바울이 전도를 위해 로마로 가기 전에 들렀던 곳이다. 신약성경에는 '수라구사'로 표기되어 있다.
시라쿠자의 역사가 시작된 오르티지아 섬에 들어간다. 이 섬의 초입에는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는 아폴론 신전의 유적이 화석처럼 굳어져 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새로운 땅을 찾아 바다 건너 이탈리아반도 남단의 남서해안과 시칠리아섬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했다.
기원전 8세기너온 사람들이 '쉬라쿠사이'라는 도시국가를 건설했다. 이것이 현재의 시라쿠자이다. 당시로 거슬러가면 그리스의 문화가 이탈리아보다 훨씬 앞서 있었다. 따라서, 시라쿠자는 로마에 비해 문화가 매우 앞서 있었다.
기원전 5세기에 시칠리아 최대강국으로 시라쿠자가 부상하면서 문화의 전성기를 구가했다. 지중해 연안의 문화 중심지로 각광받으며 이곳으로 유명 인사들이 몰려들었다. 여류 시인 사포가 망명 생활을 했고, 아이스킬로스는 자신의 비극을 초연했으며, 플라톤은 이상국가의 건설에 대해 설파했다.
17세기에 발생한 지진으로 시라쿠자는 크게 훼손되었다. 이후 바로크 풍으로 재건되었는데, 이곳의 두오모도 자세히 보면 고대 그리스 신전의 유적 위에 건립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바로크 양식의 건물들 사이 곳곳에 고대 그리스의 흔적을 찾는 재미가 솔솔하다.
고대 그리스의 신화도 곳곳에 있다. 해안 가까이에 있는 아레투사의 샘은 신기하게도 파피루스가 자라고 있다. 파피루스는 민물에서 자라는 식물이다. 이 샘은 민물이라는 의미가 된다. 이런 전설이 있다.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의 아들 알페이우스는 요정 아레투사를 보고 반하고 만다. 하지만 그녀는 오르티지아 섬으로 피신해 샘으로 변한다. 그러자 알페이우스도 강으로 변해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서 바다 밑으로 흘러 오르티지아 섬까지 와 이레투사 샘과 합류한다. 이 신화도 따지고 보면 지질학적 구조 때문이다. 시칠리아 본토에서 흘러온 차네강이 바다 밑 지하로 이곳까지 연결된다.
아르키메데스 광장에 들어섰다. 요정 아레투사의 전설을 묘사한 분수 조각이 눈길을 끈다. 그 오랜 옛날에 발가벗은 채로 질주하던 아르키메데스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의 얼굴은 온통 기쁨으로 충만하여 "헤우레카! 헤우레카!"를 외치며 백주에 달린다. 이말은 고대 그리스어로 '나는 알아냈다'라는 뜻이다. '유레카'는 영어권 사람들의 잘못된 발음이다.
아르키메데스는 당시 학문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유학하고 귀국해서 이곳에서 활동했다. 그의 업적 중 가장 위대한 것은 바로 부력의 발견이다. 시라쿠자의 왕 히에론 2세가 순금 왕관에 싸구려 금속이 섞였는지 알아보라고 명했던 것이다.
303년 로마제국이 기독교 박해에 기승을 부릴 때 이곳 귀족 집안의 처녀 루치아가 갑자기 약혼을 파기하고 지하 동굴에 숨은 기독교 신자들을 찾아가곤 했다. 어두운 동굴이라 그녀는 머리에 나뭇가지 관을 쓰고 그 위에 촛불을 얹어 앞을 밝혔다. 그런데, 배신감을 느낀 약혼자의 밀고로 그녀는 두 눈이 뽑히고 참수형을 당했다. 후세에 성인으로 추대되어 '빛의 성녀'가 되었다.
루치아의 유골은 400년 동안 시라쿠자에 보존되어 있다가 이탈리아 동부 아브룻쪼 지방의 한 성당으로 옮겨졌고, 10세기 후반 프랑스로 옮겨갔다. 하지만 이후에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기록이 없다가 1204년 콘스탄티노플에서 산타 루치아의 것으로 믿어지는 유골이 발견되자, 베네치아의 도제 엔리코 단돌로가 이를 보존코자 산타 루치아 성당을 건립했다. 이후 기차역이 세워지면서 이 성당이 없어지고 유골은 인근 산 제레미아 성당으로 옮겼던 것이다.
이 밖에도 바다를 정복했던 구두쇠들의 고향 제노바, 아르노 강변에 핀 르네상스의 꽃 피렌체, 중세의 역사가 숨쉬는 토스카노 언덕의 소도시 시에나, 매력이 넘치는 로마, 산타 루치아 노래가 흐르는 곳 나폴리, 파도치는 저력 아래에 숨겨진 지상낙원 아말피, 영원히 시간이 멈춘 도시 폼페이 등 18개 도시를 함께 거닐 수 있다. 이탈리아 여행을 꿈꾼다면 이 책을 소지해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