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니까 - 고단하고 외로운 아버지의 길
송동선 지음 / 함께북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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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읽는 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아버지라는 동격을 갖고서 읽어 내려갔다. 한편으론 이해와 동정이 가면서 또 한 편으론 무능한 아버지 모습으로 다가왔다. 최선을 다한 아버지의 모습이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좋은 아버지 상은 아닌 것이다. 누구나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최선이라는 두 글자로 자신의 무능함을 모두 커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도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사업이 롤러코스터 같아서 삶의 굴곡을 많이 겪은 사람 중의 한 사람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살던 집에 차압딱지가 붙은 이래 몇 년을 주기로 아버지의 사업은 망했다, 흥했다를 반복하는 사이 역경은 별 것 아니라는 내성은 생겼지만 마음 한 구석에 아버지는 무능하다는 생각이 자리하면서 사춘기의 반항기가 남보다 길었다. 물론 존경받을 아버지였다. 무능이란 말은 항상 경제적 여유와 상관관계를 가지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러로 직장생활을 하다가 명예퇴직을 당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아들 셋을 모두 훌륭히 키워 명문 대학에 입학시켰으나 자식들의 학자금을 대출에 의존해야 할 형편이었다. 한편,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는 지리산의 사찰에서 전통 찻집을 경영하면서 절에 매년 1억원이라는 운영비를 납부했다. 부족한 자금을 아파트 대출로 충당하다가 결국 아파트도 처분하고 마침내 아내와 위장 이혼(독신여성 지원제도를 통한 대출 때문에)을 하게된다.

 

아버지는 한 가계의 장長이다. 회사에 사장이 있고, 나라에 대통령이 있듯이 아버지는 한 가정의 총책임자이다. 그래서 가장이라 부른다. 어느 아버지든 간에 평탄한 길을 걷는 아버지는 아마 없을 것이다. '무자식이 상팔자'를 주장하며 사는 사람은 아버지란 호칭이 없다. 늙으면 외롭고 쓸쓸해진다. 그러나, 이 땅의 모든 아버지는 영웅들이다.

 

"불행은 잇따라 온다"

 - 테렌티우스 아페르/고대 로마 희극작가

 

 

이 책은 저자의 삶이 그대로 드러난다. 르포 형식이다. 아내의 찻집경영 , 30년 동안 근무하던 신문사에서의 명예퇴직, 위장 이혼, 한문서당 개업, 정수기 방문판매, 마트에서의 아르바이트, 건설현장의 잡부, 고기잡이 배의 잡부 등을 전전하여 경험했던 일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한편, 경제적 어려움과 교제하던 여자친구의 배신으로 차남이 투신자살하는 아픔도 소개된다. 이 대목에선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면서 경제적인 생활을 위해 취업의 문을 두드리는 노인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그 문턱은 너무도 높다. 앞으로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사회적 이슈이기도 하다. 비록 지방의 신문사라 할지라도 오랜 기자생활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인데 퇴직후 저자는 왜 하층민의 인생을 자처했는지 정말 의아하다. 물론 직업에 귀천이 있을 순 없다.

 

1981년 1월 그는 국제신문 수습기자로 출발하여 같은 해 12월 언론통폐합 때문에 부산일보에서 근무하다가 국제신문 복간에 참여하여 이후 정치부 기자, 사회부장, 체육부장, 편집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2006년 12월 29일 명예퇴직을 했다. 정년이 만 59세였지만 회사와 노조가 야합하여 정년을 4년이나 단축하는 바람에 그는 첫 희생양이 되었다.

 

"영원히 회사를 지키고 발전시켜야 할 주체는 후배 여러분이라는 사실을 명심했으면 합니다. 이런 때일수록 선후배, 동료간에 동지애를 발휘하시기 바랍니다"

 - <회사를 떠나며> 중에서

 

도무지 정신 차릴 겨를 없이 불행이 잇따라 그에게 닥쳐왔다. 처음엔 하늘을 원망하고 남을 탓했다. 하지만 이게 무슨 소용 있나? 정신을 가다듬고 보니 이 모든 것이 자신에게서 그 원인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맹자>에도 이런 말이 나온다. 행유부득반구저기行有不得反求諸己, 행동에서 어떤 결과가 얻어지지 않더라도 자기자신을 돌아보고 그 원인을 찾아라는 의미이다.

 

차남이 죽자, 그는 패닉 상태에 빠졌다. 몇 푼의 돈벌이에 정신이 팔려 아들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던 것이다. 용돈다운 용돈 한 번 제대로 준 적이 없었던 그였기에 아들은 서울에서 혼자 공부하느라 무척 힘이 들었을 게 분명했다. 서로 미안해서 전화도 자주 못했던 것이 너무나도 가슴아파 회한의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 있고 현명했더라면!

퇴직했을 때 모든 걸 접고 서울가서 아이의 뒷바라지를 해주었더라면..." 

 

흔히 교사들의 퇴직금은 '사기꾼의 도시락'이란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그는 전형적인 화이트칼러 생활을 하다가 퇴직해서 몇 푼 남지 않은 퇴직금으로 창업을 시도하다가 속세의 땟물이 줄줄 흐르는 사람에게 좋은 먹잇감이 되었을 뿐이다. 그는 창업을 포기했다. 스낵바의 바리스타가 되겠다는 그의 야무진 꿈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는 생활정보지의 열렬한 구독자가 되어 구인광고를 이잡듯 뒤졌다. 운전직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고서 바로 그 회사에 방문했다. 60세까지 가능하고, 월급이 260만원, 상여금 500%, 중식 제공, 퇴직금 지급, 토요일 격주 휴무의 근로조건이니 가히 꿈의 직장이었다. 그런데, 국장이라는 여성이 배송기사보다 물류창고 관리에 적임자라며 사흘간 교육을 받으라는 것이다. 교육을 이수하고 가격이 190만원인 정수기 판매원이 되고 만다. 고향 친구에게 1대, 대학교 교수 친구에게 1대 팔고나니 더 팔 곳이 없었다. 한달 동안 2대 팔고 그만 두었다. 통장에 70여만 원이 입금되었다.

 

이후 동네 마트의 아르바이트로 취업하여 축구선수 박지성에 버금가는 멀티 플레이어로 일했지만 쥐꼬리 만한 월급에 사기 당한 느낌이 들어 그만 두었다. 고기잡이 배의 잡부로 취업하여 온갖 잡일을 하면서 온몸에 상처투성이가 되어도 워낙 초짜라 동료들의 시기어린 눈초리를 피할 길이 없어 이 또한 그만 두었다. 건설 현장 노가다판에 뛰어 들었다. 용기와 배짱이 전재산인 그는 건설 노동자의 텃세를 이길 재간이 없었다. 여러가지 일들을 경험한 그는 현재 언론중재위원회 부산중재부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먹고 살기 위해 첫새벽에 지하철을 세 번이나 갈아타고 노가다 현장으로 출근하면서 저자는 이 세상 아버지의 진면목을 보았다. 가족을 위해, 아이들을 위해 눈썹을 휘날리며 꼭두새벽부터 일터로 달려가는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을. 저자의 에세이는 이 땅의 모든 아버지들을 위한 책이다.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식을 위하는 일이라면

섶을 지고 불구덩이라도 뛰어드는

이 땅의 수많은 아버지들을 생각하며 한 자 한 자 글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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