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하나로 세계를 정복하다 - 온리원 상품을 만들어 롱셀러 상품으로 키워라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와카바야시 가츠히코 지음, 황세정 옮김 / 서돌 / 2012년 3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지방 도시 히가시오사카에 위치한 하드록 공업'절대로 풀리지 않는 나사'를 개발하여 신칸센을 비롯한 고속철도, 세토대교와 같은 교량, 고압 송전용 철탑, 풍력발전, 원자력발전소 등 나사 풀림으로 애로를 겪고 있는 여러 분야에 이를 공급하고 있는 세계적인 강소기업이다. 1974년 3명의 직원으로 시작하여 37년간 단 한 번도 적자를 기록하지 않은 풀림 방지 너트 분야의 일인자다.

 

 

비록 작은 크기의 제품이지만 나사는 거의 모든 산업과 인프라 구축에 사용된다. 왜냐하면, 부품을 분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때 나사를 풀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사는 시간이 경과하면 느슨해지거나 저절로 풀리는 경우가 발생하여 자칫 대형 사고로 이어지기도 한다. 2005년 일본의 사와 도시유키 교수에 의해 하드록 공업이 개발한 '하드록 너트'는 절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면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2007년 뉴스위크 선정 '세계가 주목하는 100대 일본 중소기업

2009년 '제3회 제조업 일본 대상' 특별상 수상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 일본 봅슬레이 대표팀 썰매에 하드록 너트 사용

 

하드록 공업의 창업자 와카바야시 가츠히코는 오사카 어느 신사에서 본 도리이를 보자 아이디어가 떠올라 바로 '쐐기의 원리'를 이용한 제품 개발에 착수했다. 1년의 시행착오를 거쳐 세계적인 '온리원only one 상품'하드록 너트를 만들었다. 그러나, 개발에 성공했다고 돈방석에 앉는 것이 결코 아니다. 꾸준히 팔릴 수 있는 롱셀러 상품으로 키우는 일은 어렵다.

 

(문)창업자의 온리원, 롱셀러 상품을 만드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답)첫째, 생각하는 습관에 익숙해져야 합니다. 둘째, 세상에 있는 상품은 모두 미완성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셋째, 획기적인 발명품도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을 조합해서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인식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상품은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꾸준히 정성들여 돌봐야 할 것이며, 그 상품이 필수품인 동시에 소모품이 되도록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상품이라도 팔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소기업 일수록 영업력을 강화해야 한다. 대기업 같은 브랜드 파워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드록은 50명이 채 안되는 직원 중 영업 담당자가 9명이나 된다. 영업의 총책임은 동생인 세키 상무가 맡고 있다. 이들의 하루 하루 노력이 쌓여 현재와 같은 결실을 맺은 것이다.

 

창업자 와카바야시 씨는 대학 졸업후 오사카에 위치한 밸브 회사가 근무했다. 27살 때인 1960년 오사카에서 열린 국제견본시에 참관갔다가 현재의 풀림 방지 너트의 일종인 '시호스seahorse 너트'에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이 제품의 가격이 워낙 비싸기 때문에 값싼 너트의 필요성이 떠올라 바로 개발에 착수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유니온 너트(U너트)'이다.

 

그 다음해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후지산업사'를 창업했다. 본인, 동생, 그리고 특허사무소에서 일하던 지인 이렇게 3명으로 출발했다. U너트의 판매를 위해 처음엔 도매점을 다니며 제품 소개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일본공업규격을 위반한다는 등 이유를 대며 거의 모두가 퇴짜 놓기 일쑤였다. 겨우 도매상 진열대에 샘플을 진열하고 반응을 기다렸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이후 실사용자인 공장(나사를 실제로 사용하는)을 공략, 샘플을 두는 영업전략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행운도 노력의 결과이다. 어느 공장에서 보유중인 너트가 떨어져 할 수 없이 우리의 샘플 너트를 사용했다며 계산서를 발행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본의 아니게 첫 주문이 된 셈이었다. U너트를 사용한 곳은 꽤나 유명한 컨테이너 제작업체였다. 다른 공장에도 그 대형 업체가 U너트를 사용했다는 영업전략이 효과를 보면서 판매량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소기업의 상품이 아무리 출중해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영업 성공의 핵심이다. 출시 초기엔 경영자가 직접 나서야 한다.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광고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또한, 경쟁사와 차별할 수 있는 특징을 만들어야 한다. 하드록은 '철도 디오라마'를 만들어 회사 회의실 등의 공간에 설치하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미니 증기 기관차는 하드록의 명물이 되었다. 사업의 성공 여부는 자력으로 일감을 구해올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모든 고객에게 기쁨을 주는 것, 이것이 바로 와카바야시 씨가 일하는 목적이다. 고객을 위한 상품에는 마음이 담겨져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하드록의 경영이념으로 실천하는 항목 중의 하나인 '대얏물의 원리'를 소개한다.

 

대야에 들어 있는 물은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면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흘러가버리고, 반대 쪽으로 밀어내려고 하면 오히려 자기 쪽으로 흘러오게 된다.

고객이나 사회에 기쁨을 주려고 노력할수록 그것이 자신에게 되돌아온다는 의미이다.  

 

U너트의 판매량이 증가하면서 고객의 클레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판매량 대비 미미한 수준이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결코 풀리지 않는 제품의 개발에 착수하게 되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오사카의 스미요시타이샤(住吉大社)의 도리이를 보고 현재의 하드록 너트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여기서, 도리이와 쐐기가 어떻게 생긴 건지 살펴보자.

 

株吉大社의 도리이

 


하드록 너트의 개발 성공이 너무도 기쁜 나머지 후지공업의 공동 경영자에게 U너트를 무상 양도했다. 특허권에 대한 로열티(매출액의 3%)를 받는게 전부였다. 하드록 공업의 초기에는 경영의 어려움으로 본업이 활성화 되기 전에 계말말이팬, 사각티슈걸이 등을 출시하여 히트 상품이 되면서 숨통을 틀 수 있었다. 이들 상품은 3년이 고비였다.

 

 

하드록 너트는 기존의 U너트에 비해 가격이 비쌌다. 나중에 동생이 합류했지만 초창기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도 한 우물을 계속 팠다. 첫 번재 타겟은 '철도'였다. 國鐵(공기업)을 노크했으나 강력한 노조의 반대에 부딪혀 단념하고, 私鐵(사기업)의 공략에 주력했다. 이후 국철도 JR로 민영화되면서 도전적인 영업 활동에 빛이 들었다. JR은 신칸센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결국 그들로부터 주문이 들어왔다.

 

도호쿠 지방 철도에서 레일 연결용 볼트가 빠져 탈선 사고가 발생했다. 불행한 사고였지만 하드록에겐 행운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동일본여객철로는 모든 구간의 레일 이음매에 하드록 너트를 사용키로 결정한 것이다. 타제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지만 너트가 풀리는 현상이 결코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JR 신칸센에 히드록 너트가 채택된 후로 회사는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이후 영업은 철탑, 교량, 원자력 발전 분야 등으로 공략 대상을 넓혀 나갔다. 하드록 너트가 공급된 주요 건축물은 약 13km의 길이를 자랑하는 '세토대교', 요코하마의 '베이브리지', 하네다공항 신활주로, 후지TV 본사 건물, 금년 5월 중 사용 예정인 일본 도쿄의 새로운 랜드 마크 ' 스카이트리' 등이다.

 

하드록 공업의 역사는 적극적인 도전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문)롱셀러 상품이 탄생하는 비결은 무엇입니까?

 

(답)첫째, 한 가지 주제에 철저히 파고들어야 합니다. 둘째, 특허 사용 기한을 하루라도 더 연장시키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 개발자가 상품에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회사가 위태로울 정도로 무모한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곤란하다. 오늘날의 최첨단 기술 분야로 항공 산업을 들 수 있다. 하드록 공업의 최대 과제가 항공 산업에 진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항공우주방위 산업의 품질관리 시스템 규격인 'JISQ9100' 인증을 취득코자 열심히 준비 중이다.

 

하드록 공업의 경영 이념 

 

1. 풍부한 창의력을 키우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발전시킨다.

2. 아이디어 개발을 통해 사람과 회사, 사회 발전에 공헌한다.

3. 이 사회는 우리 회사를 위한 도장이며, 보고 만지는 모든 것이 우리의 스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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