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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의 서울 산책 - 오세훈의 마지막 서울 연가!
오세훈 지음, 주명규 사진, 홍시야 그림 / 미디어윌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40년 넘게 서울에서 살아 오면서 서울의 발자취를 돌이켜 보면, 서울의 모습은 정말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로 치솟은 고층빌딩들과 삭막한 회색빛 콘크리트로 뒤덮힌 도시의 구석구석을 풀과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조성한 그린 디자인, 실개천이 흐르고 분수가 샘솟는 블루 디자인,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을 되살린 히스토리 디자인 등을 통해 아름다운 모습으로로 바꾸어 놓았기 때문이다.
어느 멋진 오후에는 전통과 현대가 잘 어울리는 북촌한옥마을과 장터의 재미가 솔솔한 서울풍물시장을, 새로운 날 오후에는 버려진 공장에서 예술이 피어난 금천예술공장과 신진 디자이너들의 아지트인 서울패션창작수튜디오를, 행복한 오후에는 남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북측 산책로와 미처 오르지 않았던 서울타워를, 꿈꾸는 날 오후에는 문화공연을 즐기는 어린이대공원과 젊음과 문화가 어우러진 대학로 등으로 산책을 나가보자.
한가한 오후에는 쓰레기 더미를 명품공원으로 바꾼 노을공원을, 걷고 싶은 오후에는 역사를 느끼며 산책하는 서울 성곽길을, 바람 좋은 오후에는 한강 다리에서 전망좋은 한강의 카페들을, 그리운 날 오후에는 대한민국의 건국 역사가 숨쉬는 이화장을, 심심한 오후에는 옛날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계동을, 상쾌한 오후에는 동식물이 펼쳐진 길동생태공원을, 맑게 갠 오후에는 둔촌동 일자산에 숨겨진 강동그린웨이를, 나를 위한 오후에는 행복감을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도로 등으로 달려나가 서울의 정취를 맘껏 즐겨보자.
전통
한 나라의 발자취를 대변하는 것이 바로 전통이다. 서울시의 한옥보존사업은 2018년까지 10년 동안 총 4,500여 채의 한옥을 보전해 나간다는 종합계획이다. 현재까지 북촌을 비롯해 인사동, 돈화문로, 경복궁 서측, 운현궁 주변 등에 한옥 총 1,100여 채를 추가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서울의 전통과 현재를 잘 보여주는 '북촌'은 이제 서울의 대표적인 관광명소가 되었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서 '북촌'으로 불리던 이곳은 조선시대에 좀 산다는 양반들의 으리으리한 대저택이 모여 있던 곳이다. 북촌의 영광은 조선왕조의 쇠락과 함께 시들해졌다.
세도가들의 몰락으로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를 전후해 그들이 살던 넓은 주택들 대부분이 사라졌다. 대신 이 자리에 서민들을 위한 중,소규모 한옥들로 빼곡하게 들어섰다.
집장수들이 한꺼번에 지으면서 아쉬움이 많지만 그래도 북촌이 전통한옥의 원형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다.
창작
스페인의 빌바오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이라는 세계적인 관광명소가 있다. 빌바오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헤밍웨이가 '무덥고 추한 광산의 도시'라고 묘사할 정도로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곳이다. 빌바오는 도시를 살리기 위해 '빌바오도시재생계획'을 추진했다. 그 중심에 '문화'라는 추진동력을 선택하여 도심 곳곳에 미술관과 극장을 건립했던 것이다.
빌바오 구겐하임미술관
지금 서울에는 남산예술센터, 남산창작센터, 서교예술실험센터, 연희문학창작촌, 금천예술공장, 신당창작아케이드, 문래예술공장, 성북예술창작센터, 관악어린이창작놀이터, 홍은예술창작센터, 장애인미술창작스튜디오 등 11개의 문화창작센터가 마련되어 있다. 모두 낙후된 장소나 버려진 건물을 활용하여 만든 것으로 컬처노믹스를 실천한 것이다.
버려진 공장에서 예술이 피어나니 그 향기가 아름답다. 수십 개의 갤러리와 고급 레스토랑, 부띠끄들이 즐비한 소호는 지금의 뉴욕을 가장 뉴욕답게 만든 문화 예술 공간이다. 소호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뉴욕의 비싼 임대료를 감당 못해 폐허가 된 공장 지대로 몰려들면서 생성되었다. 이젠 소호의 가치가 급상승하여 비싸진 임대료 때문에 그리니치빌리지 또는 브루클린으로 밀려나갔다.
금천예술공장
금천구 독산동에 있던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하여 만든 것이 금천예술공장이다. 서울의 창작공간 중 가장 '소호'스럽다. 지하 1층, 지상 3층의 건물에 예술가들을 위한 게스트하우스 5실과 창작수튜디오 22실이 있다. 상설 갤러리가 있어서 언제라도 방문하면 작품을 만날 수 있는 특징을 가졌다. 이곳은 국내 작가뿐만 아니라 외국 작가들에게도 작업 공간을 내준다. 지역주민들과 함께 한 '사운드 워크숍'에선 각자 못 쓰는 관을 이용해 만든 악기로 다양한 소리를 만드는 협연이었다.
문화
몇 편의 드라마로 시작한 한류 열풍이 이젠 K-POP 이라는 신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유럽을 강타했다. 문화가 곧 국력인 21세기에 전 세계인이 우리의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생활을 느끼고, 우리의 음악을 듣고 따라 부르면서 우리의 언어를 익힌다니 반갑고 기쁜 일이다. 그간 우리들은 '문화'를 가진 자들의 전유물로 여겼다. 관람료와 입장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울시는 세덩문화회관의 '천 원의 행복', 도심과 한강에서 펼쳐지는 '하이서울페스티벌' 등을 통해 부담없이 문화를 누릴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개그맨들이 넉살맞은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준다. 고개를 돌리면 비보이들이 현란한 비보잉을 펼치고 있다. 몇 걸음 옮기니 기타를 치며 70년대 포크송을 열창하고 있다. 대학로의 풍경이다. 이곳은 늘 바쁘고 시끄럽다. 그러나, 불쾌한 소음이 아니라 엔돌핀을 솟게 만든다.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관악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이곳에 마로니에 공원이 들어섰다. 1980년대에 들어 연극과 공연을 하는 사람들이 광화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곳에 공연장을 조성하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대학로는 자유와 예술이 어우러진 젊음의 거리로 변했다.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명소인 이곳 주변에는 카페와 경양식 레스토랑도 많다.
역사
서울의 역사는 한성백제시대로부터 2천 년에 이르는 오래된 고도古都로 세계에서도 그 예를 찾기 어렵다고 한다. 서울 곳곳에는 수많은 역사의 현장이 살아서 숨쉬고 있다. 우리의 조상이 치열하게 살아온 삶의 정신과 철학이 다음 세대로 잘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 우리 세대의 과제이기도 하다. 역사의 현장에는 어김없이 많은 사람들로 붐빈다. 학생들, 엄마 손에 이끌려 체험학습 나온 어린이들,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도 제법 많다.
어처구니 없는 방화로 우리나라 국보 1호인 숭례문이 소실되는 장면이 TV로 생중계되는 날, 우리 모두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역사의 현장은 복원하기도 어려운 데 보존에 소홀하여 한 줌의 재로 날려 버리고 말았다. 역사의 현장은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외관만 회복할 것이 아니라 어둠에 묻혀 있는 역사적인 의미까지도 일으켜 세워야 한다. 서울의 역사가 자부심으로 영원히 이어져야 할 것이다.
낙산공원 바로 아래에 자리잡고 있는 이화장梨花莊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이 1948년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때에 거주햇던 사저이다. 1943년 이 대통령의 아들인 이인수 박사와 결혼한 조혜자 여사가 이 집을 지키고 있다. 대문 안을 들어서면 이 대통령의 동상이 보이고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기와집 두 채가 보인다. 소박하고 아담한 기와집이지만 한옥의 정취가 그대로 느껴진다.
이화장梨花莊
이화장은 조선시대의 명승지로 이름난 낙산의 역사적 경관이 남아 있는 유일한 장소이다. 대통령과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기거했던 본채는 현재 기념관으로 고인들의 유품이 전시되어 있다. 1970년 미망인이 된 프란체스카 여사가 홀로 돌아와 1992년 이곳에서 여생을 마쳤다. 매사에 검소하고 솔선수범했던 두 내외의 삶의 흔적들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멀리서 들려오는 새소리, 드높은 나무, 구절초와 작약이 자태를 뽐내는 아름다운 쉼터이다.
이 책은 서울 산책을 위한 가이드북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전통, 창작, 남산, 문화, 공원, 둘레길, 한강, 역사, 골목, 생태, 캠핑, 자전거 등 12 개의 주제어로 구성하여 모두 44 곳을 저자인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소개하고 있다. 책장을 덮는 순간 카메라를 둘러메고 당장 달려 나가고픈 충동이 밀려온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라도 벗어나 추천받은 이곳을 산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