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족의 숨겨진 역사와 인류의 미래 우주인의 사랑 메시지
김대선.카르멘텔스 지음 / 수선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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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산문명紅山文明'은 중국 만주 지역에 존재했던 신석기시대의 문화이다. 시기는 기원전 4,700년~ 기원전 2,900년 경으로 추정되며, 배달국시대의 대표문화로 내몽골 자치구 적봉시 동북쪽에 위치한 홍산홍山 인근 유역에서 발굴된 유적 때문에 '홍산문명'이라고 명명되었다. 이 문화에서는 옥문화가 발달하여 여러 유적지에서 정교한 무늬의 옥기玉器가 대량으로 출토되었다. 또한, 많은 여신상과 여신묘가 출토되었는데 당시는 모권사회였음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러한 홍산문명은 황하문명보다 2,0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중국 중원의 문명과 분명하게 구분된다. 특히, 유적지에서 발견된 빗살무늬 토기는 한반도에서도 발견되는 것이다. 이는 요하를 중심으로 신석기 문화를 주도한 세력이 한반도 선주민들과 연결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고인돌, 적석총, 비파형 동검 등 중원에서는 발견되지 않은 홍산문명의 유물들이 한반도에서는 많이 발견된 사실이 이를 충분히 뒷받침해주고 있다.

 

하지만 중국은 1980년대 이후 '현재의 중국영토 안의 모든 민족과 역사는 중국민족이고 중국의 역사'라는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을 바탕으로, 중원 문화와는 이질적인 홍산문명을 중화문명의 시발점으로 삼아 논란이 되고 있다. 그들은 홍산문명의 주인공이 중국 황제족의 후예라고 주장하며, 그들이 부여, 고구려, 발해 등을 건국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동이족의 최초 국가인 환국을 시작으로 동이족의 고대 역사와 문화유산을 다루고, 중국의 황하문명과 동북공정, 중국의 역할에 이어 북한과 일본 관계, 마지막으로 동이족의 미래와 역할로 마무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동이족의 사라진 역사를 되찾고, 머지않은 미래에 동이족이 역사의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된다.

 

동이족東夷族이란 동쪽 오랑캐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며 일부 재야 학자는 이 명칭의 사용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동이족이란 명칭은 한민족의 고대 언어가 한자로 통일되면서 사용된 명칭이다. '동東'은 에너지가 들어오는 것을 의미한다. 아침에 동쪽에서 환한 기운이 강하게 들어오는 것을 뜻하며 이는 새로운 시작과 출발을 말한다. '이夷'는 큰 활로 해석할 수도 있지만, 큰 몸집을 날렵하게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동쪽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문명이 서쪽에 거주하고 있는 한족에게 들어오는 모습이다. 

 

환국시대는 준비하는 시기라 나라를 직접 세워서 통치하지는 않았다. 이 시기는 신석기시대이다. 환국시대에 이 문명이 여러 나라로 퍼져 나갔다. 그 지역은 동북아시아이다. 동이족 중 일부는 후에 천산산맥을 넘어 서쪽으로 이동하거나, 일부는 중동 지역까지 이동하기도 했다. 중동으로 이동한 부류에서 수메르를 세웠지만 이들이 환국에 포함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그들의 조상이 동이족인 것만은 분명하다.

 

"환웅 선인께서 만주 홍산 지역의 넓은 평원이 배달국에 적합한 것으로 결정을 내리고, 신시神市를 세우게 된 것입니다. 신시는 신과 인간이 하나가 되는 도시를 의미합니다. 즉, 신이 인간의 몸으로 내려오고, 인간이 노력하여 신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도시이지요. 이 신시 배달국에서 본격적인 선계의 문물이 지상에 전수되었습니다" (43~44 쪽)

 

환웅 선인이 태백산 신단수로 오셨다고 전해진다. 태백산은 지금의 백두산이 아니라 홍산문명이 이룩된 요하강 주변이라고 보면 된다. 태백산이 바로 홍산이다. 신단수神檀樹는 한자로 풀이하면 신성한 나무를 의미한다. 이는 차원이 열리는 문 즉 스타게이트를 말한다. 신단수는 하늘의 기운이 내려와 넓게 퍼질 수 있는 구릉 지대였다. 구릉 옆을 흐르는 강물을 따라 많은 기운이 흘러내려 가면서 이곳 주변에 문명을 건설하기가 용이했던 것이다.

 


 다산을 기원하는 모자상.


 

환웅 선인은 지구인의 모습으로 왔다. 천부인 3개의 인을 받아 가지고 왔는데, 이는 일종의 계약서이다. 방울, 검, 거울의 의미를 각각 살펴보자. 방울은 음악이며 파장을 의미한다. 동이족이 노래를 좋아하게 된 것도 파장을 이용한 악기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검은 금속문명을 전수한다는 의미로서 물질을 다루는 능력을 말한다. 거울은 인간의 내면을 바라보라는 것으로 자신을 계속 갈고 닦으라는 가르침을 내포하고 있다. 

 

환웅시대에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요하강 주변에서 산동 지역까지 그 범위를 넓혔다. 황하를 사이에 두고 북쪽은 동이족의 터전이 되고, 남쪽은 한족의 터전이 되었다. 이후 산동까지 동이족이 확장하자 한족은 내륙 쪽에서 더 이상 황하 하류로 확장하지 못했다. 이 지역이 계속적으로 환웅시대에서 고조선시대, 삼국시대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동이족은 홍산 일대를 시작으로 점차 동쪽으로 이동했다. 지금의 요동 지역에 새로운 도읍을 정하고 고조선을 시작했던 것이다.

 

만주 벌판엔 수많은 피라미드가 널려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2001년 7월 만주의 고대 한국 피라미드의 일부를 뉴스로 전했다.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고고학자들이 내몽골에서 5천 년 전의 피라미드를 발견했으며 이 피라미드는 3층의 돌로 만든 건물이고 밑바닥은 30m 이상, 폭은 15m 이상 된다고 한다. 여기서 동이족의 유물이 쏟아져 나왔는데, 황하문명보다 훨씬 오래된 배달문명의 유물이었다. 중국의 유명 고고학자에 의하면 이 피라미드는 5천~6천 년 전의 홍산문화에 속한다고 말했다. 한편, 중국은 이들 피라미드를 철저하게 숨기고 있으며 발굴도 중단하고 학술적 조사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반면 고조선과 고구려를 중국 역사로 편입시키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다. 자신들의 조상이 동이족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사실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 참고 사진 (만주 피라미드들의 일부-독일인 고고학자인 하우스돌프가 찍은 것)

 

일본의 권력층은 한반도에서 진출한 사람들이었다. 초기에는 백제와 가야 세력들이 주도권 쟁탈을 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백제계가 패권을 잡았다. 백제가 당나라에 패망하자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고향을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꼈다. 그래서 언제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는 염원이 대대로 이어졌던 것이다. 일본도 동이족의 뿌리에서 나왔다. 당연히 그들은 한반도와 만주를 자신들이 돌아가야 할 약속의 땅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본래의 동이족 문화는 인디언 문화의 본류로 자연과 함께 하고 식물과 공존하며 동물과 한 가족으로 살았던 문화이다. 물질문명으로 인하여 잠시 잊고 지냈던 본래의 문화를 다시 정착시켜야 한다. 동이족의 조상이 그러했던 것처럼 선문화禪文化를 통하여 인류에게 새로운 문화를 전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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