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들의 주식사냥 1
김건 지음 / 에듀존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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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눈송이가 듬성듬성 휘날리고 있었다. 주식시장이 활기를 잃어 연 사흘째 주가가 폭락하자 로열건설의 주식관리부 엄창수 차장은 죽을 맛이었다. 회사의 최종길 회장이 연일 바가지를 긁어대기 때문이었다. 비서실 미스 한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회장의 호출이란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그는 회장실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회장실엔 긴장감이 감돌았다.

 

"개자식! 네가 주식투자 전문가야?" (20 쪽)

 

고졸 학력의 엄 차장은 현재의 역할을 이용해 20억 원쯤 번다면 미련없이 사표를 던지려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다. 주식관리 업무를 맡다보니 회장의 눈에 들어 비슷한 또래의 동료보다 늘 앞서 나갔다. 로열건설의 본사빌딩은 19층인데, 옆에서는 63빌딩의 신축 공사가 한창이다. 자본금 1억원의 회사가 4년 뒤 공개하면서 80억원이었던 자본금이 지금은 5천억원으로 계열사 10여개를 거느리고 있다.

 



 

간판 한 개조차 임직원의 소신대로 매달 수 없어 모든 일이 회장의 결정에 따라야 하기에 최종길 회장은 임직원으로부터 증오와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고용주이며 상어처럼 약삭빠르고 탐욕스러운 자본가이기도 하다.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단기간에 돈을 버는 것이 그의 목표이며 취미는 오로지 '무능하다', '집에 가서 애나 보라'는 등의 폭언을 일삼는 것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저녁에 술을 사면서 엄 차장에게 주가조작이나 작전 등에 대해여 배우던 사람이 이젠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현재 자민당 원내총무인 양찬식이 안기부 기획실장으로 재직할 때 키 크고 잘생긴 청년을 최회장에게 소개했다. 그가 바로 김혁이다. 그는 명문대 경영학과 출신으로 경리과장으로 입사하여 7년 만에 전무로 승진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최회장의 가지급금 60억원을 임직원 대여금으로 정리하더니 이후 로열건설 소유 부동산을 로열상사에 이중계약 방식으로 매각하여 이를 상계처리한 공로를 세웠다. 지금은 재무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믿을 놈은 너 밖에 없구나" (47 쪽)

 

최회장의 가족사를 살펴보자.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물론 아버지와 어머니도 부동산 투기 또는 돈놀이에 전념해서 자식들의 학교 생활에는 관심이 없었다. 집은 가정부 혼자서 지키고 있었다. 심지어 큰 집과 외갓집 식구들도 모두 돈 버는 일에 혈안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유명한 사채꾼이었고 외할머닝와 외숙모는 달러이자 놀이에 빠져 있었다. 외삼촌 역시 고교 졸업 후 외할아버지의 사채 사무실에 나가 수업을 받고 있었다. 저녁에 귀가하면 모두 돈을 새거나 주판알을 튕기기에 바빴다. 대궐 같은 3층 저택은 사람의 체취가 아니라 오직 돈 냄새 뿐이었다.

 

"내 손주 녀석들, 부자가 되면 이 세상도 돈 주고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느니라" (59 쪽)

 

회장이 전보다 자신을 덜 신임하는 것 같아 불안하던 김전무는 엄차장과 함께 '작전세력 운용 계획'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겼지만 회장은 여전히 그에게 질책만 했다. 그것도 엄차장이 보는 앞에서 벌어진 일이라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비록 틀린 말은 아닐지라도 회장의 날카로운 말은 김전무의 가슴에 칼집을 내고 있었다.

 

"차명 계좌를 만들어 놓고 현찰로 바꿔야 정상 아냐? 돈에 꼬리표를 붙이다니? 네가 경리쟁이야, 뭐야?" (112 쪽)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최회장은 본격적인 작전에 앞서 예행연습을 가졌다. 동원된 임원은 8명, 차명계좌를 활용하여 액면가 500원에 미달하던 종목을 매집하여 루머를 퍼뜨려서 주가가 오를 때 처분하여 회장에게 8억원이 넘는 차익을 안겨 주었다. 최회장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인간 로봇을 가졌다는 사실이 들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대안증권 본사 4층 조사부, 최회장에게 스카우트되어 중앙증권에서 자리를 옮긴 박상민 차장은 아름다운 남산의 풍광을 즐기며 어제 저녁 룸살롱에서의 일을 회상했다. 이미 알고 지내던 작전세력들과 결탁하는 자리에서 그는 그들로부터 사례비까지 받아 챙겼다. 이번 작전에 로열그룹 전체가 동원된다는 정보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최회장이 핫라인 전화로 박차장에게 작전 명령을 하달한 것은 어제 오후였다. 그래서, 그는 이미 회장 몰래 엄차장과 동업관계를 만들며 서울상대파, 공인회계사파, 세무사파 등의 작전 세력들과 큰 손들을 대기시켜 놓은 상태였다. 작전을 개시했지만 박차장과 엄차장으로 인해 결국 최회장은 작전 실패로 끝났다.

 

"개자식들, 모두 배신자야!" (133 쪽)

 

불교신자인 최회장의 어머니를 잘 알고 지낸다는 박순자 여사가 로열그룹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제안을 해왔다. 금리 11%로 로열건설에 자금을 빌려주고 대여금의 2배에 달하는 약속어음을 담보로 제공받는 조건이었다. 붉은 카펫이 깔린 박순자의 사무실은 최고급 호텔 룸을 연상시켰다. 어음 1,150매를 007가방에 넣어 가지고 갔다.

 

"지난 번에도 말씀드린 것처럼 백%현금으로 드릴 형편이 아닙니다. 다른 상장업체의 어음을

절반 정도 섞어 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171 쪽)

 

그 해 봄과 여름 3개월 동안 건설주 폭등 때 박순자와 최종길 회장은 엄청난 재미를 보았다. 박순자가 증권가의 큰 손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때는 1980년 하반기였다. 1981년 3월부터 건설주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건설주의 대량 매수가 2~3일 간격으로 나왔다. 이 중심에는 큰 손 박순자가 자리잡고 있었다.

 

드디어 로열건설의 주식이 활발한 거래를 보였다. 박순자의 작전세력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였다. 상한가를 기록했다. 팔자가 없는 상황에서 사자 주문이 계속 쌓이는 가라 오퍼 전략이 적중하고 있었다. 주가가 7월 초를 고비로 하락세로 전환되었다. 사들인 물량이 총 1억 2천만주, 주당 평균 매입단가가 1천원이라면 무려 1,200억원이 투입되는 해석이 된다.

 

고려토건 손정민 회장은 언제 닥쳐올지도 모를 위험에 대해 병적으로 반응했다. 박순자의 함정에 빠져 사채를 이용하면서 너무나 많은 어음을 발행했기 때문에 늘 불안했다. 그녀는 날이 갈수록 더 많은 어음 물량을 요구했다. 빌리는 돈의 규모 대비 어음 발행의 규모가 많을 때엔 7배나 되었다.

 

로열그룹의 최회장 역시 박순자를 경계했다. 그는 경영 여건이 어렵고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정치권과 박순자에게 더욱 신경을 썼다. 박순자의 얼굴이 머리에 떠오르자 그의 목덜미가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로열그룹의 사채상환일이 도래했으니 연장하려면 어음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던 것이다. 그녀의 오만함은 돈다발에서 탄생되고 있었다.

 

소설의 배경은 '장영자 사건'이지만 사채시장과 주식시장, 정경유착, 기업사주의 비리, 금융비리 등 다양한 이야기가 소재로 다루어진다. 한마디로 지하경제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2권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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