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내딛는 용기
구리키 노부카즈 지음, 한혜정 옮김 / 문예출판사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신장 162cm, 체중 60kg의 왜소한 체격에다 성인 남성의 평균 폐활량과 근력에도 못미치는 일본의 한 젊은이가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딛고서 등산을 시작한지 3년 만에 6대륙 최고봉 단독 등정에 성공했다. 그의 이름은 구리키 노부카즈, 1982년 일본 홋카이도에서 출생했다. 이후 히말라야 산맥의 8천미터 3개 봉을 무산소 등정하고, 일본인 최초로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에 올랐다가 7,950미터 지점에서 단념했다. 그러나, 현재 학교와 기업체에서 강연 활동을 펼치며 재도전을 준비 중이다.




구리키 노부카즈는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두 살 연상의 이성 친구와 교제를 했다. 여자 친구의 취미는 등산과 스키였다. 이 여자 친구에게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물었더니 첫째로 차를 소유해야 하고, 둘째로 대학을 졸업해야 하며, 셋째로 공무원이면 좋겠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입시준비하여 1년 뒤 삿포로에 있는 공무원 양성 대학에 입학했다. 그러나, 새 차를 막 뽑은 어느 날 그는 절교를 당했다.



"2년 동안 사귀긴 했어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어" (89 쪽)



그날 이후 그는 요괴인간처럼 방에 틀어박혔다. 아침부터 다음 날 아침까지 쉬지 않고 잠만 잤다. 이렇게 일주일 내리 잠만 잤다. 뭔가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그는 망가지고 말 것이다. 다른 대학의 친구를 찾아 갔다가 우연히 그의 눈에 '산악부'라고 적힌 허름한 나무 간판이 들어왔다. 얼마전 이별한 그녀는 왜 그리도 산을 좋아했는지 알고 싶었다. 그는 입부 신청서에 이름과 연락처를 남겼다.



대학 3학년 봄, 그는 매킨리 등반을 준비중이었다. 북아메리카의 최고봉인 매킨리를 혼자 등정하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만류가 극심했다. 심지어 산악부 선배들에게 불려 나가 온갖 협박을 다 들었다. 하지만, 이를 포기한다면 어딘가에 취직하여 평생을 그리 살거란 생각이 들었고 결코 그리 되고 싶지 않았다.



"경험이 없어도 너무 없어. 절대 안돼. 죽을 거라고!" (22 쪽)



2004년 5월 21일



밖에는 폭우가 쏟아지고 신문에는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 기사가 크게 실려 완전히 장례식 분위기였다. 가게 앞에 늘어선 친구들과 선후배들이 만세삼창을 외쳤고, 후배가 건네주는 정종을 단숨에 들이켰다. 마치 훈련소로 떠나는 기분이었다. 모두가 만류하고 아무도 찬성하지 않은 일을 그는 하려고 한다.



2004년 5월 28일



매킨리를 오를려면 제일 먼저 경비행기를 타고 광대한 카힐트나 빙하로 이동하여 베이스캠프를 차려야 한다. 날씨가 나빠 닷새째 전초기지인 타키트나 마을에 갇혀 있었다. 자금이 부족해 가장 싼 세스나를 빌렸다. 한 시간 정도 비행하여 베이스캠프에 착륙했다. 지체없이 바로 제1캠프(2,400미터)까지 올라갔다. 21시 무렵에 도착했다.



"매킨리의 신이여, 나는 당신을 만나러 여기에 왔습니다" (40 쪽)



2004년 5월 29일



낯선 백야 현상과 긴장감 때문에 잠을 못잤다. 매킨리는 환경에 대하여 매우 까다로워 개인 쓰레기는 물론 배설물까지 반드시 하산때 갖고 오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이런 쓰레기 처리용 양동이를 배낭에 매달아 혼자서 짐을 옮겼다. 짐은 배낭에 25kg, 썰매에 45kg 총 65kg에 달했다. 고도 3,145미터에서 짐을 데포하고 다시 2,900미터까지 내려가 제2캠프를 차렸다. 텐트에서 잠을 청하는데 가슴이 저려온다. 고산병 증상이다.



2004년 5월 31일



고도 4,000미터에서부터 본격적인 고산병이 시작된다. 호흡이 가빠지고 속도가 떨어졌다. 두 걸음 걷고 쉬고 하기를 반복했다. 4,150미터 쯤에서 갑자기 쓰러졌다. 고산병 증세가 심해 겨우 숨만 쉴 정도였다. 이럴 때는 고도를 낮추는 것이 최선이라, 서둘러 내려갔다. 17:30 경, 간신히 캠프에 도착하여 침낭 속으로 파고 들었다.



"대체 넌 아들이 죽으러 간다는데, 그렇게 순순히 보내겠다는 거냐!" (47~48 쪽)



해외 초행길에 혼자서 무산소통 등반을 계획하자 나뿐 아니라 아버지도 여기저기서 훈계를 들었다. 또한, 산악부 선배들이 단독 등반을 반대했던 이유는 매킨리가 세계 최대의 크레바스 지대이기 때문이다. 매킨리는 미국 알래스카 주 알래스카 산맥에 있는 산으로 높이는 6,194미터로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제일 높다. 세계의 유명 등산가들의 목숨을 빼앗아간 악명높은 산이다. 1979년 한국의 고상돈도 하산길에서 추락사했다. 매킨리는 거대한 빙하로 뒤덮혀 산 곳곳에 크레바스가 입을 벌리고 있으며 깊은 곳은 100미터가 넘는다고 한다. 떨어지면 즉사이다. 홀로 등반하면 구조될 길이 없다.



2004년 6월 12일



고도에 적응했는지 머리가 아프지 않다. 식사를 마치고 공격 준비에 착수한다. 설탕을 듬뿍 넣은 따뜻한 홍차를 물통에 담았다. 데날리패스의 능선을 살펴보았다. 풍속이 20미터, 이 날씨를 놓치면 다음 기회는 없다. 11시 무렵, 해발 6,194미터 정상을 향했다. 한 시간 반쯤 걸려 데날리패스 능선에 올라섰다. 한 걸음 한 걸음 마음의 공백을 메우듯 능선을 밟아갔다. 들리는 소리는 오로지 자신의 심장 소리 뿐. 17시 10분, 등반 16일째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다. '나의 한계'라는 벽을 허물었다.



파일



"대부분의 성공은 장벽이나 실패를 뛰어넘을 때 나온다"

- 스콧 애덤스



2009년 4월, 그는 히말라야에 있는 세계 제7위 고봉 다울라기리(8,167미터)로 향했다. 해발 7,500미터 이상은 데스 존(죽음의 지대)이라 불린다. 산소량이 평지의 1/3 수준까지 떨어지므로 사람이 머물 수 있는 곳이 못된다. 당초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려 했지만 입산 허가를 받지 못해 다울라기리로 변경한 것이었다. 자신의 등반 장면을 인터넷으로 생중계했다. 2009년 5월 15일부터 5월 18일까지의 산행일기는 무척 감동적이다. 5월 18일 새벽 1시 그는 어둠 속에서 설벽을 향해 나아가 14시 정각에 다울라기리 정상에 도착했다.







"여기는 구리키. 베이스캠프 들립니까, 베이스캠프 들립니까?

14시 정각에 다울라기리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128 쪽)



그는 2007년부터 매주 삿포로에서 도쿄를 왕복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서 광고기획사나 방송국 등으로 뛰어다니기 때문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서 인터넷 생중계를 하겠다는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기획안을 만들어 후원 기업을 찾아다니기도 한다. 자신이 기획하는 '모험의 공유'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스태프 인건비, 중계기기 사용료, 위성단말 통신비, 홍보비 등 많은 비용이 소요된다. 그기 이렇게 인터넷 중계를 하려는 이유는 수많은 사람들을 가로막는 '불가능'이란 마음의 벽을 허물고 싶어서다.



초심자에게 적합한 초오유(8,201미터)를 등반하려는 기획안으로 도쿄에서 활동하다가 니혼TV의 유명 PD를 만났는데, 며칠 후 그에게 쌍방향 리얼 다큐멘터리를 만들자고 연락을 해왔다. 초오유 등반 영상을 '제2 니혼TV'에서 매일 업데이트하자는 제안이었다. <니트족 알피니스트, 그 첫 도전 히말라야>가 기획 타이틀이었다. 그런데, 그의 등반 영상을 본 니트족과 히키코모리들이 심지어 '죽어버려'처럼 비아냥거리는 댓글을 무수히 달았다. 그러나, 그가 악천후를 뚫고 정상에 도달하자 그동안 비난했던 많은 이들이 축하한다는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는 이러한 모험을 공유함으로써 누군가에게 '한 걸음을 내딛는 용기'가 되고 싶었던 것이다.





<초모랑마, 에베레스트 정상>



2009년 9월 그는 에베레스트를 등정을 시도했다. 마지막 남은 50미터, 최종 목적지가 눈 앞에 들어왔다. 그런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 위에 있어야 할 태양이 어느 새 어깨 밑으로 내려왔다. 이제 슬금슬금 아래로 저물어갔다. 베이스캠프에서 하산하라고 무선 연락이 왔다. 무리하면 정상에 오를 수 있지만, 거기서 되돌아 올 체력은 되지 않을 것이다. 16시 40분, 그는 하산을 결심했다. 에베레스트 등반 사고의 70퍼센트는 하산 중에 일어난다고 한다. 하물며 심야의 하산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는 서둘러 제2캠프로 돌아가야만 했다. 22시에 무사히 도착했다. 그는 실패한 것이다. 한 번 실패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에베레스트 등정을 준비 중이다. '모험의 공유'라는 그의 도전정신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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