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3세 대해부 - 매경 기자들이 현장에서 전하는 주요 그룹 오너 3세 이야기
매일경제 산업부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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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기업의 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세대별로 특징이 나타난다. 창업세대인 재계 1세대는 '맨땅에 박치기'격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삼성그룹의 이병철 회장과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이 이 세대를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 땅에 설탕, 섬유 등의 공장을 세우고 이후 반도체 공장까지 만든 삼성그룹, 헝그리 정신과 불굴의 추진력을 바탕으로 중화학 공업의 기틀을 마련한 현대그룹 모두 우리나라 재계의 대부인 셈이다.

 



 

삼성 이건희 회장, 현대자동차 정몽구 회장으로 대변되는 재계 2세대는 IMF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우리 경제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공을 세웠다. 세계 1등 품목이 대거 양산되고 그들의 화두는 '글로벌'이었다. 재계 1세대들은 근검, 절약으로 대변되는 헝그리 정신으로 한국 경제의 초석을 다졌다면, 2세대들은 뛰어난 경영전략으로 글로벌 기업과 한 판 승부를 벌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는 3세대가 무대의 주인공으로 등장할 때이다. 기업인으로서 본격적인 경영수업을 받아 유능한 경영자가 되는 것은 물론, 노블리세 오블리주로서의 사회적 역할도 수행해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예전에는 선두를 추격하는 추격자(Fast Follower)였으나 이젠 선두주자(Leader)의 입장으로 변모했다. 예로부터 '부자 3대 가지 않는다'는 말처럼 부를 유지, 계승하는 것이 어렵다. 이들 3세 중 가장 활발한 인물의 활약상을 살펴 보도록 하자.

 







  

삼성그룹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글로벌 기업이다. 유럽여행을 하다보면 여기저기에서 삼성 로고의 간판을 만난다. 삼성은 일제시대인 1938년 대구에서 창업자 호암 이병철 회장이 삼성상회를 설립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되었다.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성장했던 소년이 2010년 12월 그룹 사장단 인사에서 마침내 사장으로 승진했다.

 

1968년 생인 이재용 사장은 경복고등학교 재학시 모범학생으로 통했다.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마을버스를 타고 통학하며 학생회장을 맡을 만큼 리더십을 갖추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경영학이 아닌 인문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4년 내내 할아버지 이병철 회장이 삼성 초기에 사용하던 낡은 갈색가방을 들고 다닌 것은 유명한 에피소드 중 하나이다. 검소한 생활습관을 읽을 수 있다.

 

"키가 크고 한류스타처럼 잘생겼으나 전혀 위엄을 부리지 않는다.

생각이 유연하고 젠틀맨으로 사람들에게 호감을 준다"

<닛케이비즈니스, 2011년 1월 3일자> 중에서

 

이 사장은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시 백의종군을 선언하고 브라질, 러시아, 인도, 독립국가연합, 미국, 일본, 유럽 등지의 주요시장을 다니며 거래선과의 폭 넓은 교류를 가졌다. 이 과정에서 그는 앨 고어 전 미 부통령,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 등 미국 정계의 주요 인사들과도 각종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그의 사무실에는 삼국지의 명장면인 '삼고초려' 그림이 걸려 있다. 이 그림엔 좋은 인재를 널리 구하라는 메세지가 담겨 있다. 고 이병철 회장의 인재 욕심은 재계에서 이미 유명했다. '인재중시'경영은 이건희 회장을 거쳐 3대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다. 우수한 인재를 중시하고 이런 인재를 불러 모아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승부하겠다는 삼성 오너가의 경영철학인 셈이다.

 

한편, 그는 오래 전부터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왔다. 2007년에는 두 차례 서울 영등포역 인근 쪽방촌에 두움을 주고, 2005년에는 마리아수녀회에서 운영하는 '부산 소년의 집'이 예산부족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월급에서 일정액을 떼어내 사비로 매달 낡은 PC 10대를 교체해 주었다. 기부 습관이 몸에 밴 그는 2010년 12월 승진한 임원들의 명의로 정신지체인을 위한 지역사회재활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단체에 기부를 하기도 했다. 글로벌시장에서 존경받는 기업으로 잘 키울 것이라고 기대해 본다.

 



 

 

2011년 4월 12일, 한복 디자이너 이모 씨가 한복을 입고 신라호텔의 부페 식당을 찾았다가 입장을 거절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에 대해 집중포격을 가했다. 그러자, 이부진 사장은 직접 이모 씨를 찾아가 정중하게 사과했다. 이후 네티즌들 사이에는 호텔 직원의 미숙한 대응을 대표이사가 나서서 직접 사과하고 사태가 수습되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2010년 12월 3일, 삼성그룹 사장단 인사 발표를 보고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이건희 회장의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전무가 부사장을 건너 뛰고 사장으로 승진했기 때문이다. 삼성의 인사 스타일에서 이런 파격 승진이 없었다. 뿐만아니라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 사장과 삼성물산 상사 부문 고문도 겸하는 인사발령이었다.

 

"이부진 사장은 어렸을 때부터 꼼꼼하고 똑 부러졌다.

사리판단이 분명하고 스마트하기 때문에 사업도 잘할 것이다" (40 쪽)

 

1970년 생인 이부진 사장은 연세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했다. 대원외국어고등학교에 재학시에도 조용하고 검소한 여학생이었다. 아동, 복지, 문화 등에 관심이 많아 대학에서의 전공도 아동학이다. 1995년 삼성복지재단 기획지원팀에 입사하여 1998년 6월부터 1년간 삼성일본 본사담당 과장으로 근무하다가 그해 8월 당시 평사원인 임우재 씨(현, 삼성전기 전무)와의 결혼으로 세인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호텔신라와의 인연은 2001년에 시작되었다. 그해 여름 전사기획 담당부장으로 입사했다. 그녀의 부임이후 호텔신라는 긴장감과 더불어 변화가 시작되었다. 호텔신라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경쟁사인 워커힐호텔에 직접 투숙까지 하면서 참고사항을 점검했다. 업무의 시스템화를 시도했고, 2006년에는 호텔 로비와 레스토랑, 연회장 등을 리모델링했다. 2년에 걸친 꼼꼼한 공사로 호텔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3~6 층에 신설된 '라이프스타일존'은 호평이었다.

 

이 사장이 언론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것은 2009년 9월 삼성에버랜드가 당시 호텔신라 이 전무를 자사 경영전략담당으로 영입했다고 발표하면서부터이다. 경영상태가 좋지 않은 에버랜드의 경영정상화를 위한 것이었다. 주력사업인 테마파크의 경우 2005년 입장객 865만 명을 정점으로 제자리걸음을 해왔다.

 

이 사장은 철저한 현장주의자이다. 모든 것을 본인의 눈으로 확인해야 직성이 풀린다. 일에대한 욕삼과 승부욕이 강하다는 것이 업계의 평판이다. 에버랜드의 명물인 사파리 스페셜 투어도 직접 체험한 결과, 차량 보호망의 색깔이 은색이어서 승객이 바깥을 관망할 때 눈부심 현상이 나타나는 점을 파악하고 현재의 암녹색으로 변경했다.

 

2010년 11월 루이비통 브랜드를 인천공항 신라면세점에 유치했다. 3년에 걸친 롯데면세점과의 유치 경쟁에서 이긴 것이다. 루이비통의 아르노 회장이 직접 방한하여 롯데와 신라 모두 면담한 뒤 결정을 내렸는데, 루이비통이 공항 면세점에 입점한 것은 신라면세점이 세계 최초라고 한다. 호텔신라의 매출이 4,200억 원(2002년)에서 1조 4,000억 원(2010년)으로 증가했고, 이 중 면세점 매출이 전체 매출의 81%를 차지하는데 이는 세계 7위 수준의 면세점 매출이다. 이만하면 경영능력을 인정받을만하다. 이미 신세계와 한솔이 분리되었던 것처럼, 이부진 사장도 계열분리의 길을 걷게될지 재계의 관심이 쏠린다.

 



 

 

1973년 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은 서울예술고등학교와 미국 파슨스디자인스쿨을 졸업했다. 일찌기 패션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2002년 제일모직 패션연구소 부장으로 입사하여 기획담당을 하며 제일모직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켰다. '갤럭시'나 '로가디스' 등 신사복 의존도가 높은 패션사업 구조에 손을 댔다. 2003년 여성복 브랜드 '구호(KUHO)' 인수를 시작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새로 구성하고, 빈폴도 글로벌 브랜드화 전략에 착수했다.

 

2010년 초 이 부사장은 미국 패션디자이너협회의 이사회 멤버로 선정되었고, 그 해 가을에 열린 '2010 F/W 뉴욕컬렉션'기간 중에는 '헥사 바이 구호(Hexa by Kuho)'라는 라벨로 구호의 첫 해외컬렉션을 선보였다. 2005년부터는 삼성패션 디자인펀드를 설립하여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장래가 촉망되는 한국 디자이너를 발굴, 후원하고 있다.

 



 김연아 평창 프리젠테이션에서, 의상은 '구호' 제품임 

 

그녀가 합류하고 제일모직은 질과 양 모든 면에서 크게 성장했다. 매출이 2조 원(2002년)에서 5조 원(2010년)을 돌파했고, 패션사업부의 매출도 8,100억 원(2002년)에서 1조 3,000억 원(2010년)으로 증가했다. 2009년부터는 광고대행사인 제일기획의 경영도 챙기고 있다. 제일기획이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그녀를 기획담당 전무로 영입했었다.

 

2010년 말 부사장으로 승진과 동시에 케미컬과 전자재료 사업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즐겨 찾는 곳은 R&D센터에 있는 컬러랩(Color Lab)이다. 2005년에 설립된 컬러랩은 글로벌 업체의 다양한 컬러 요구에 부응할 목적이었다. 노하우가 축적되어 흰색만해도 현재 2천여 종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이다. 디자인과 컬러의 조화로 시너지를 극대화하자는 것이다.

 

"디자인 역량이 소재사업의 미래를 좌우한다.

최첨단 IT제품의 경쟁력에서 컬러디자인을 빼놓을 수 없다"

(56 쪽)

 

 


올 초 현대차 판매촉진대회에 참석한 정의선 부회장.


 
 



1970년 생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은 정몽구 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이다. 휘문고등학교와 고려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할아버지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권유로 1995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샌프란시스코대 MBA과정 중 현 배우자인 삼표회장의 장녀 정지선과 인연을 맺었다. 1997년 8월 MBA를 마치고 일본 이토추상사에서 근무하다가 1999년 말 현대차 자재본부 구매실장(이사대우)으로 첫 발을 내딛었다. 상하 가리지 않고 직원들과 잘 어울려 평이 좋았다.

 

"직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폭탄주도 마시고 노래방에서 노래 시합을 벌인 적도 있다"(66 쪽)

 

그의 진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다. 상무(2001), 전무(2002), 부사장(2003) 등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여 입사 6년 만인 2005년에 기아차 사장으로 승진했다. 일단 맡겨보고 자질을 검증하는 현대그룹의 전통에 따른 것이다. 그는 '디자인 경영'을 선언하며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꼽히는 피터 슈라이어를 기아차 디자인 담당 부사장으로 전격 영입했다. 이를 발판으로 적자인 기아차를 흑자로 전환시키더니 2010년엔 사상 최대의 실적을 달성했다. 아버지의 그늘에서 벗어날지 주목된다. 

 

그의 누나 셋은 현대차의 경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 이것도 현대가의 전통이다. 단지 사위들이 계열사의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장녀 정성이의 남편인 맏사위 선두훈은 선병원 이사장으로 딴 길을 가고 있다. 둘째 사위 정태영은 종로학원 정경진 회장의 장남인데 현대카드와 현대캐피탈의 대표이사 사장이다. 제일 왕성한 활동을 하며 정몽구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 셋째 사위 신성재 현대하이스코 사장은 현대모비스에 입사하여 현대하이스코로 근무지를 옮겨 영업본부장 시절 1조 원대를 맴돌던 매출을 2조 3천억 원으로 끌어올린 입지전적 인물이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즈의 구단주인 박정원 회장

 

1962년 생인 두산건설 박정원 회장은 두산가 4세 중 맏형이다. 두산그룹은 올해로 창립 115년의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이다. 구 한말 종로에서 '박승직상점'이라는 포목점을 시작으로 OB맥주, 코카콜라, 코닥, 3M 등 외국기업의 국내 비즈니스를 도맡았던 대표적인 소비재 기업이었다. 변신의 움직임이 일었다. 1995년 두산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당시 맥주가 하이트의 추격에 직면하여 적자가 엄청나게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영등포 공장과 을지로 본사 사옥의 매각이 단행되었다.

 

박회장은 어릴 적부터 경영수업을 착실하게 밟아왔다. 고려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두산산업 뉴옥지사에 입사했다. 이후 도쿄지사를 거쳐 미국 보스톤대 MBA를 마치고 일본 기린맥주에 취업했다. 창업주 박승직은 1930년대 소화기린맥주의 주주로 참여하고 있었다. 소화기린맥주는 기린맥주의 한국 현지 생산공장이었다. 2년 후 그는 OB맥주로 복귀했다.

 

"남의 집 밥을 먹어봐야 내 것을 잘 알 수 있고, 경영인으로서의 자질을 갖출 수 있다"

 - 창업주 박승직 경영철학

 

1968년 생인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유명 탈렌트 고현정과의 결혼으로 한 때 세인의 관심을 많이 받았다. 그의 어머니 이명희 회장은 삼성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막내딸이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과 경복고등학교 동기동창이다. 미국 브라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신세계 전략기획, 기획조정실 상무, 경영지원실 등 컨트롤타워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2010년 총괄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승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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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신세계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부사장.




 

2011년 3월 18일 주총에서 신세계는 백화점과 이마트가 별도법인으로 분리되었다. 재계에서는 정부회장과 동생 정유경이 각각 나눠 가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는 성격이 소탈하다. 트위터 매니아인 그는 트위터로 고객뿐만 아니라 친구들과 자유롭게 의사소통을 한다. 최근의 이마트 피자 논쟁의 무대가 바로 트위터였다.

 

"가식적이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보여줘 사람을 끄는 친근한 매력이 있다"(208 쪽)

 

경영 감각이 날카롭다는 평가를 받는 그는 '현장경영'에 나서고 있다. 이마트와 백화점 매장에 직접 나가 상품과 고객의 반응을 살피고 있다. 이마트의 자체 브랜드인 PL 상품에 대한 관심도가 매우 높다. 아직은 어머니로부터 경영독립을 하지 못했지만 멘토인 구학서 회장과 어머니로부터 그동안 많은 경영수업을 받았기에 조만간 경영권을 물려받을 것으로 예측된다.

 

 

이 책에는 범현대가를 포함하여 모두 17개 그룹 50여 명의 리더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회사의 역사가 제일 오랜 두산의 경우는 이미 4세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는 반면, SK그룹의 경우는 아직 2세 경영 체제임을 알 수 있다. 역사가 짧은 탓인지 SK그룹은 신성장동력이 없어서 미래가 불안하다는 증권가의 루머도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국내 재벌의 가계도가 잘 정리되어 큰 도움이 되었다. 호불호好不好가 있기 마련인데 경영자의 좋은 면만 부각시켜 형평성을 잃은 것이 옥의 티 같아 다소 아쉬웠다. 혹자는 물려받은 부富가 뭐 그리 대단하냐고 처음부터 색안경을 끼고 재벌가문을 비난하기도 한다. 하필 왜 그들이 기업을 경영하는지 그점에 대해선 나 역시도 불만이다. 주식회사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부를 승계하고 더 나은 발전을 위해서 남보다 더 많은 공부로 유창한 외국어를 구사하는 등 글로벌 정신을 갖추었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점을 낮게 평가해서는 안되겠다. 아무튼 한국의 기업이 3대를 넘어 100대까지 이어져 세계 기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기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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