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스케치 - MBC 헬기기장과 함께하는 특별한 비행
정갑표 지음 / 제이앤씨커뮤니티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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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성장해서 사회로 진출하면 부모님으로부터 '한 우물을 파라'는 가르침을 받는다. 이 책의 저자인 정갑표 MBC 방송 취재용 헬리콥터의 기장도 조종사로서 한 우물을 파고 있다. 그의 이력을 보면 공군사관학교를 나와 공군의 헬기인 블랙호크의 비행대대장으로 근무중 우연히 MBC TV 자막에 나온 조종사 채용 공고를 보고서 밑지는 셈치고 지원했다가 덜컥 합격하여 근무지를 공군에서 방송국으로 옮긴 인물이다.







MBC 헬기는 전국을 누비고 다니며 시청자들에게 보다 더 사실적이고 생생한 현장 화면을 제공하도록 조력자로서의 일에 충실해왔다. 10여 년간의 비행업무 수행중 그가 겪게된 여러가지 이야기를 우린 이 책에서 만나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 가수왕 조용필,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 산악인 엄홍길 등의 저명인사와의 만남, 태풍이 휩쓸고 간 수해 현장의 취재기, 터널공사 반대를 시위 중인 지율스님과 천성산의 취재비행 등이 생생하게 소개되어 있다.



1973년 2월 초,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약 150 명의 무리 속에 섞여 서울 대방동 공군사관학교 정문에서 성무대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 여느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처럼 처음 생각했던 그는 이게 아니구나를 직감했다. 사관학교도 엄연한 군대였기에 겨울 새벽 6시에 울려 퍼지는 기상나팔 소리를 시작으로 뛰고, 뒹굴고, 얻어맞으며 계속되는 훈련 속에서 그는 서서히 군인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러나, 빨간마후라의 조종사가 되기엔 아직도 미흡한 '메추리'였다. 전체 동기생 중 고등비행과정을 수료한 숫자는 40%가 채 되지 않았다. 고등비행훈련을 모두 마치고 전투 비행단으로의 배치를 앞둔 어느 날, 그는 훈련 비행단으로 차출되었다. 공군본부로부터 향후 예상되는 고가의 헬기와 수송기의 도입과 관련하여 헬기와 수송기에도 고등비행수료자를 보내라는 지시에 따라 4명이 차출되었던 것이다.



1995년 겨울, 대한민국 공군의 최신예 헬기인 블랙호크 비행대대장으로 근무하던 어느 날, 야간비행을 마치고 텅빈 관사로 들어가 무료함을 달래려고 TV를 켰다. 아이들의 교육 때문에 가족들 모두 수원에 있었다. 혼자서 텅빈 집에 들어가는 기분은 바로 공허함과 외로움이다. 소파에 누워 TV를 보는데 조종사 채용에 관한 전화번호가 잠시 보였다 사라졌다. 다음 날 대대 아침 브리핑 후, 신기하게도 그 전화번호가 생각나서 재미삼아 대대장실 전화 버튼을 눌렀다.



"이거 미리 다 정해놓고 형식적으로 선발하는 척하는 것 아닙니까?"

"정말 실력이 있다면 한 번 도전해 보시죠?"

(26 쪽)



귤화위지橘化爲枳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강남에 심었던 귤이 기후와 풍토가 다른 강북에 옮겨 심으면 탱자가 된다는 뜻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안영이 초나라에 사자로 파견되었다. 당시 안영은 똑똑하다고 다른 나라에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는 체구가 왜소하고 얼굴이 거무스레했다. 방자한 초나라 왕이 그를 업신여겨 수모를 주려고 작정하고서 미리 짠 각본대로 한 사람을 꽁꽁 묶어 일부러 자신과 안영이 있는 장소를 지나가도록 했다.



"이 제나라 사람은 도적의 혐의가 있습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도적질을 잘하는 모양이오?"

"제가 듣기로 강남 일대의 귤은 향기롭고 달지만, 강북에다 옮겨 심으면 쓰고 덟은 탱자가 된다고 하더군요.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환경이 이유입니다! 지금 제나라 사람이 제나라에서는 도적질하지 않다가 초나라에 와서 도적이 되었으니, 이게 바로 환경 때문이 아니겠습니까?"(28 쪽)



1996년 5월 2일, 기장으로 최종 합격했다는 소식과 함께 MBC는 최선의 배려차원에서 '부장대우'라는 간부 직급을 부여했다. 그의 심정은 귤화위지였다. 방송사 헬기가 하는 일은 다양하다. 공중취재, 스포츠 중계,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 제작, 교양프로그램 등 여러 장르에 활용된다. 요즈음 조종사가 전문직종으로 인식되어 젊은이들이 선호한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 조종사와는 달리 방송국의 조종사는 저공에서 방송업무를 수행하는 등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조종사이면서 동시에 방송인이 되어야 하는 특징이 있다.



MBC는 민영도 공영도 아닌 어중간한 형태의 소유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래서 MBC만이 가지는 프로그램 제작의 장단점이 있다. MBC는 본디 부산의 한 개인의 소유였다가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KBS에 귀속되었다가 전두환 대통령의 언론통폐합 과정에서 '방송문화진흥회'가 소유하게 되었다. 한편, '방문진'의 이사진이 대통령과 국회, 야당과 여당에서 지명하는 저명인사들이 월급을 받는 임기직 이사로 구성되는 독특한 지배구조이다.



1995년 4월 어느 날, 김수환 추기경을 독도까지 모시라는 상부의 지시가 있었다. 용산기지를 출발하여 약 1시간 10분 정도 지나 독도 동도의 중앙 헬기장에 착륙했다. 헬기 승무원 모두를 불러 기념촬영을 제의했다. 독도일정을 마치고 잠시 울릉도 해군기지에 들렀다. 이곳에서 추기경은 천주교 신자인 그를 불러 강복을 주셨다.







2003년 7월 30일 잠실경기장 옆 둔치 헬기장에서 가수 조용필 일행을 태워 속초 음악제 현장으로 비행했다. 발 아래로 청평유원지가 내려보이고 잠시 후 춘천을 지나 설악산 대청봉이 보이자 "야!"하고 감탄사를 날린다. 고도를 7천피트로 올려 내설악을 가로질러 속초로 향하는 빠른 항로를 택했다. 예정시간보다 빨라서 설악산 중청봉 옆 헬기장에 잠시 내려 경관을 감상하도록 배려했다.



2011년 3월 11일, 제주공항에서 산악인 엄홍길 씨를 헬기에 탑승시켰다. MBC창사 50주년 기념 특별프로그램으로 '엄홍길 바다로 가다'를 제작하기 위해서였다. 이틀간 돌고래 무리를 찾다 모슬포 해안에서 이들을 발견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제주 돌고래의 정식명은 '남방 큰돌고래'이다. 인도양과 서태평양의 열대와 온대 해역의 얕은 바다에 분포하는데, 한국에선 제주연안에서만 발견된다. 모슬포나 협제 등 제주서남부지역에서는 이들을 '수애기', 성산포와 김녕 등 동북부지역에서는 '감새기'라고 부른다.







대형화재, 산불, 태풍, 장마로 인해 수해 등 긴급재난이 발생하면 이를 취재키 위해 헬기는 위험을 무릎쓰고 현장으로 날라간다. 2003년 태풍 매미의 피해상황을 촬영하기 위해 수마가 할퀴고 간 경상도 남부지역의 비참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도국에 전송했다. 또한 2004년 3월 100년 만의 폭설, 2010년 1월 41년 만의 수도권 폭설, 2005년 강원도 폭설, 2006년 10월 서해대교 대형 교통사고, 2010년 4월 천안함 침몰 등 크고 작은 취재 비행을 통해 정말 힘든 일임을 느끼게 한다.







한편, 독도 국제요트경기, 춘천마라톤, 동아 국제마라톤 등의 비행 촬영을 통해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TV를 통해 멋진 영상과 함께 스포츠를 즐길 수 있고 그리고 드라마 주몽, 드라마 선덕여왕 등의 촬영 현장을 보니 드라마 명장면의 탄생 배경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헬기가 드라마 PD에게도 꼭 필요한 장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종사 생활이 어떠한지, 그리고 그 과정이 얼마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지 미처 생각도 못하고 사관생도의 제복과 빨간마후라의 동경만으로 성무대 언덕을 넘어설 때부터 지금의 MBC 취재헬기 기장에 이르기까지 그의 비행일기는 흥미와 재미를 뛰어넘어 헬기 비행의 상식까지 알게 해준다. 아울러, 독서하는 내내 방송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를 한꺼번에 이해할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의 무궁한 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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