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구 - 그때 우릴 미치게 했던 야구
시게마츠 기요시 지음, 김대환 옮김 / 잇북(Itbook)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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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슈의 서쪽 끝, 인구 10여만 명의 항만도시인 스오시가 이 책의 배경이다.

20년 전 여름, 10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현립 스오 고교가 고시엔 여름 대회 지역 예선전에서 연전 연승 중이었다.

말이 야구팀이지 학교 역사상 지역 예선 8강이 최고의 성적이었다. 팀의 투수는 지역 일류팀의 2 진급이었고, 4번타자도

다른 팀의 7번타자 급이었다. 남녀공학이라 여학생은 승리를 기원하는 대형 종이학을 만들어 운동장에 내걸었지만, 늘 초반에 탈락했기에 종이학만 잘 만드는 학교로 불리고 있었다.

 

"그렇게 약한 팀이 어떻게 결승까지 간 거야?" (19 쪽)

 

지금 20년 전의 고교야구 시합장면을 당시 투수였던 아버지와 그의 11살 딸이 복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운이 억세게 좋았다. 1회전에 만난 팀은 2년 전에 야구부를 창단한 신생팀으로 1학년과 2학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4대 2로 겨우 승리했다.2회전도 접전 끝에 9회 동점 위기를 잘 넘겨 3회전에 진출했다. 3회전은 동네 야구같았다. 상대팀 에이스가 컨디션 난조로 배트 한번휘두르지 않고 5점이나 선취했지만 4 실점하여 5대 4로 몰린 상황에서 1사 만루의 위기를 맞았다. 그런데, 갑자기 내린 폭우로 강우콜드게임승을 거두었다. 완전 만화같은 이야기이다.

 

"마지막 견제구가 승부의 분기점이었어. 거기에서 타자한테 공을 던졌다면 어떻게 됐을지 몰라. 아빠의 보이지 않는 파인 플레이였지" (24 쪽)

 

도쿄에서 고향으로 왔다. 슈코 야구부 부동의 4본 타자 가메야마를 만났다. 양식집 사장이란다. 가게에 들렀다. 빛바랜 칼라사진이 놋쇠 액자에 들어있었다. 아빠의 얼굴을 발견한 11살의 딸 미나코가 정말 좋아한다. 야구부 3학년이 함께 찍은 사진이었다. 사진아래 여백에 인쇄된 글귀가 눈에 띈다 "열구. 열구 잊지 말지어다."   현재 야구부 감독은 진부가 맡고있다고 한다. 교코도 이혼후 싱글맘으로 트럭을 몰고있다며 고향소식을 전해준다.

 

 지역예선 이야기해달라고 딸이 조른다. 첫 8강진출로       지역신문은 '선풍' 이란 단어를 사용했다. 졸업한 동문 OB 들은 여름휴가를 받아 고향에 오기도 했다. 8강전 상대는 고시엔대회 3년 연속 출전을 노리는 세토 학원 이었다. 기적이 일어났다. 이 기적은 세토학원이 만들어 준것이다. 에이스투수 노자키는 프로에서도 주목하는 선수였다. 그런데 2학년 투수가 등판하여 긴장한 탓에 배팅볼 수준이었다. 우리팀이 3점을 선취했다. 구원투수도 2학년이 등판하여 1득점을 추가했다. 이후 에이스가 등판하여 우린 주자가 9회까지 한명도 출루하지 못했다. 그날 나도 볼컨트롤이 기가막혔다. 추격을 3실점으로 마감, 승리했다. 세토학원감독은 시합 다음날  해임되었다.

 

 다음날 준결승도 행운의 여신은 우리를 선택했다. 치면 텍사스안타, 반대로 상대팀은 잘 맞은 타구가 병살로 처리 되는 등 행운이 많이 따랐다. 9회초 1아웃 말루 위기에서 상대타자의 잘 맞은 공이 내 글러브 속으로 들어오는 행운과 함께 9회말 우리팀 공격에선 2아웃 상황에서 주자를 두고 유격수 땅볼이 불규칙 바운드가 되면스 급하게 던진공이 악 송구되어 결승점을 얻었다. 상대팀의 끝내기 실책이었다. 끝내기로 홈을 밟은 오사무는 이미 고인이 되었다. 시합이 끝나고 오사무와 교코는 현청 소재지인 오우치시에 있는 산부인과에 갔다. 술에취한 오사무는 지역 양아치에게 폭행을 당해 늑골에 금이가고, 이 사건으로 우리의 행운도 끝이났다.

 

 집을 2세대 주택으로 개축하고 고작보름을 사시다가 돌아가신 어머니, 어느방에나 그녀의 숨결이 깃들어있는 기분이 든다. "니가 스오의 돌아오는게 어머니 꿈이셨다." (51쪽)

고향에서 보내는 하루하루는 담담하다. 오전에 집청소나, 빨래를 하고, 오후엔 중고차센터에서 구입한 차를 몰고 장을 보거나, 날씨가 좋으면 바다로 낚시 나가기도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샤워를 한후 의 밤은 무척길었다.

 

 20년전 오사무가 일으킨사건으로 결승전 진출을 포기하고 고교야구 연맹으로 부터 6개월간 대외시합금지처분을 당했다. "너희들이 가장 억울하겠지만, 또 학교로서도 정말 유감이지만.... 내일시합은 아무래도 .... 포기해야 할것같다." (60쪽)

교정선생의 이 말이 어제일처럼 또렷하게 기억된다.

 

 해가 바뀌자 무면허로 운전하는 친구의 오토바이를 탄 오사무는 도로에 떨어져 즉사했다. 나는 멀리 가고싶었다. 절대로 이 마을에선 살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미나코가 학교에서 왕따를 당한다는 말을 듣고 전체 학부모 회의 참석하기위해 학교를 찾았다. 교코를 만났다. 20년만이다.그녀의 모습은 그대로이다. 그녀는 매일 스오시에있는 냉동식품공장과 규슈의 유통센터를 왕래한다고 한다.

그녀의 아들 고타이도 4학년 2학기에 전학와서 처음엔 왕따를 당했지만 소프트볼 대회에서 4연타석 홈런을 날리자, 주위의 시선이 급변했다고 한다. 고타이의 꿈은 고시엔 이란다.

 

 "아주 열심히 코치를 하고있다며?" 아내한테서 메일이왔다. 아내는 8월에 귀국하여 대학강단에 복귀할 계획이라며 나에겐 어쩔꺼나고 묻는다.

 

 담배한개피를 빼던 아버지가 힘들게 말하셨다. "시골은 남이야기 하길 좋아하는 곳이다..친절한척 쓸데없는 말들을 하지" 이 말을 듣고 홧김에 여름엔 도쿄로 돌아갈꺼란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후회된다.

하네다공항, 아내가 도착할 예정이다. 가족이 함께 보낼수있는 시간은 2박3일 이다.토요일 오후 비행기로 아내가 왔고 일요일은 아침부터 어머니 일주기 법회를 절에서 가진다. 월요일엔 미나코도 학교를 쉬게하고 아내가 저녁마지막 비행기로 출발할때까지 오랜만에 가족휴가를 즐길수있다.

 

 작년 7월 아내 가즈미가 떠났고 지금은 5월, 계절이 세번 바뀌었다. 만남이 어색했다. 어쩌면 우린 가즈미가 없는 일상에 너무 익숙해져버렸는지도 모른다. 아내의 전공은 미국 이민 문화사 이다. 원주민 문화에 관한 자료의 소실이 염려되어 5년후는 늦다는 이유때문에 보스턴으로 유학길에 올랐던것이다. 어머니는 가즈미가 일하는것을 못마땅해했다.

 

 월요일 드라이브에 아버지도 동참했다. 적어도 먹을꺼리에 관한한 딸은 이곳 스오에 동화 되었다. "그리고말이지,공기,음....,공기도 달라, 도쿄와는..... (중략)...바다냄새는 말이지, 소라냄새랑 비슷해" (221쪽)

마을에대해 칭찬일색이다. 마음만 먹으면 사투리도 쓸수있을꺼같다.

 

 "가족이라는 모양을 만들기 위해 아들이나 며느리나 손자의 인생을 바꾼다는 건, 그건 아니라고 봐. 너무 의존적이야, 어리광이고 부모의 에고라고 생각해" (225쪽) 아내가 가즈미의 말이 염치없는 말로 들렸다. " 아버님께 도쿄로 오시라고 할까? 난 그게 제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데" 또 염치없는 말로 들렸다.

 

우리 야구팀의 열렬한 지원자였던 자와 할아버지가 죽었다. 야구감독 진노는 조사를 읽어 내려갔다.

"당신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잘 싸웠다, 잘 싸웠어!' ..... 그 목소리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으며 우리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그라운드에 서서 행복이라는 이름의 백구를.... 아니 열구를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자신을 응원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우리는 당신께 배웠습니다." (25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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