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미처 몰랐네 그대가 나였다는 것을 - 무위당 장일순 잠언집
김익록 엮음 / 시골생활(도솔)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우리가 한 평생을 살며 모든 이를 다 알면서 살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 장일순 선생도 내가 이 책을 접하지 않았다면 그냥 그렇게 지나치고 말았을 것이다.

선생은 강원도 원주에 대성학교를 설립한 교육자며, 한살림 운동을 펼친 사회운동가란 사실을 알고서 "아, 그 사람!!"하면서

나의 기억 창고의 녹쓴 문을 열 수 있었다.

 

집에서 시내까지 15분 정도의 거리인 원주천 둑방길을 지나가는데 2시간이나 걸려 다닌다는 장일순 선생의 호는 무위당이다.

또한, 선생은 난초 그림으로 유명한 서화가이며, 1970년대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였다.

凡人이라면 무심코 지나칠 발 아래의 풀들을 보면서 길가의 모든 잡초들이 자신의 스승이요 벗이란 생각에 잠겨 그 길을 걷는다고 합니다. 티베트 수도승의  오체투구만큼이나 진지함이 느껴집니다.

 

무위당 선생은 향기가 풍기는 듯합니다.

암울한 시절 민주 투사들이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기 위해 야밤에 감시의 눈길을 피해 원주로 선생을 찾곤 했답니다. 멀리서도 향기를 풍기니 그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어렵싸리 찾아와 밤새 선생과의 대화로 기를 충전받고 했나 봅니다.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도 선생의 벗이었답니다.

 

"향기가 못가는데 없고 인적없는 골짝에서도 그 향기를 감추지 않는다"(14 쪽)

 

선생은 평생 붓글씨를 쓰셨습니다.

예서에서 해서 그리고 행서까지 두루두루 잘 쓰셨답니다. 특히, 묵으로 난을 즐겨 쳤으며 추사의 "불이선란(不二禪蘭)"과 대원군의 "석파란(石坡蘭)"만큼이나 선생의 "무위란(無爲蘭)"도 한 경지에 올랐습니다.

흔한 잡풀에, 풀 한포기 위에 꽃 대를 치고 꽃 잎을 그린 붓 자국이 마치 사람의 조용한 얼굴 모양입니다. 서화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한 눈에 척 알아 볼 수 있는 그림과 글씨들이 이 책엔 온통 가득합니다. 그래서, 이 책에선 묵향이 은은하게 풍깁니다.

 

"서필어생(書必於生), 글씨는 삶에서 나온다"(31 쪽)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면서 유학과 노장사상에도 해박했다. 선생의 할아버지와 해월 최시형 선생의 영향을 받아 "걸어 다니는

동학(東學)"으로 불리기도 하면서 종교간의 장벽을 허무는데 앞장선 선각자입니다.

 

"모든 종교는 담을 내려야 합니다......어차피 삶의 영역은 우주적인데 왜 담을 쌓습니까? 그것은 종교의 제 모습이 아닙니다.

담을 내려야 합니다"(
93 쪽)

 

불가에선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즉, 티끌 하나에 시방세계가 들어 있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道란 세속에 함께

살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천당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세속에 있는 것이라고 설파하면서 해월 선생의 가르침도 전하고 있습니다.

 

"천지즉부모(天地卽父母)요, 부모즉천지(父母卽天地)니, 천지부모(天地父母)는 일체야(一體也)라"

 

1928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1994년 원주 자택에서 67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한 선생에 대하여 김지하 시인은

이렇게 평합니다.

 

"하는 일 없이 안 하는 일 없으시고

달통하여 늘 한가하시며 엎드려 머리 숙여

밑으로 밑으로만 기시어 드디어는

한 포기 산 속 난초가 되신 선생님"
(134 쪽)

 

이렇듯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갖고 세상을 늘 바로 보았으며 지혜와 용기를 얻기 위해 찾아온 많은 이들을 따뜻한 맘으로

맞이했던 故 장일순 선생은 이 시대의 선각자며 만인의 스승이었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책은 선생의 말씀과 그림을 함께 담은 잠언집입니다. 지난 6월 중순 암투병중 하늘로 가신 제 아버님의 분위기와 비슷하여 읽는 내내 아버님이 생각나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소유하려 하면 경쟁이 생기고 그것은 폭력이 될 수 밖에 없다" (214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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