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자파 스트리트 - 행복유발구역
노나카 히이라기 지음, 권남희 옮김 / 예담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지구촌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를 가상의 세계인 "프랭크자파 스트리트"를 배경으로 이곳에서 벌어지는 여섯 커플의 일상이 우리를 훈훈하게 달구며 행복감을 유발시킨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다가오면 대개는 그 동안 없었던 따뜻한 온정이 되살아나며 길거리의 종소리에 이끌려 구세군 냄비에 작은 정을 넣고 순간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이 책을 덮는 순간 밀려오는 감정이 바로 행복감이리라.

 

하루와 미미

 

프랭크자파 스트리트 89번지 오래된 아파트, 갈색 벽돌의 외벽엔 담쟁이 덩쿨이 무성하다. 케이블 TV의 안테나도 태양력 시스템도 보이지 않는다. 안으로 들어가니 엘리베이터도 없다. 퓨즈가 나가서 정전소동을 빚지만 이 아파트는 인기가 좋다. 방이 넓고, 천장이 높고, 벽장이 크고, 가스렌지의 주방, 앤티크 풍의 욕조가 따린 욕실, 무엇보다 넓직한 베란다가 일품이기 때문이다.

 

사랑이 싹튼지 3년째, 드디어 함께 살게된 미미와 하루. ... 두사람의 사랑이 진실해서인지 생활은 현재 아주 순조롭다. 물론 가끔 싸움을 할 때도 있지만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까맣게 잊어버린다. ...이 아파트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기분 나쁜 일보다 멋진 일이 훨씬 더 맣기 때문이다 (17쪽)

 

영화감독 지망생인 하루군은 동네에 하나 뿐인 극장 트윙클 스타에서 영사기사로 근무하고 있고, 미미양은 레스토랑 다이너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이다. 오늘은 수요일, 미미가 제일 좋아하는 날이다. 근무가 없는 날이다. 침대 주위에 내팽개쳐진 파자마와 속 옷, 밤새 한바탕했나보다. 침대 옆 시계를 보니 10시 16분, 옆에서 자고 있는 하루를 억지로 깨웠다. 식사준비는 하루의 몫이다. 펜케이크와 메이플 시럽으로 둘은 블런치를 즐겼다. 행복은 걸어오지 않는다. 그러니까 걸어가는 거다.

 

브브와 샤벳

 

73 번지의 트윙클 스타는 동네 유일한 극장이다. 귀여운 개 테리어 샤벳양은 극장검표를 하며 매점을 담당하고 있다. 조니 뎁이 주연한 신작 영화가 개봉되어 극장은 손님으로 넘쳤다. 귀를 팔랑거리며 테리어 브브군도 검표를 받으며 샤벳양에게 인사를 한다. 둘이 친하게 대화를 나누자, 늙은 개 퍼그 공골라씨는 눈쌀을 찌푸리며 공공장소에서 왠 연애질이냐고 나무란다. 브브군은 정원사로 일년 내내 흙을 만져서 손은 거칠지만 고객의 정원에 꽃과 식물을 멋지게 꾸미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다. 은근히 샤벳을 좋아하는 공골라씨는 거리에 늘어선 가게와 건물 대부분을 소유한 부동산업자이다. 극장 역시 그의 것이다.

 

샤벳은 공골라씨의 말에 위축되지 말라며 브브를 위로한다. 그런데, 공골라씨로부터 사파이어가 박힌 리본을 선물받았다고 자랑하면서 공골라씨가 남자답고 좋다는 그녀의 말에 브브는 힘이 쑥 빠지면서 바닥에 주저 앉았다. 숨이 가빠지고 정신을 잃었다. 이후 걱정스런 표정의 동네 사람들에게 둘러 쌓인 채 의식을 회복하자 샤벳이 아이스크림 소다를 만들어 브브에게 떠먹여주었다. 잠시의 소동이 진정되고 영화가 새로 상영되었다. 극장 제일 뒷 자석에 브브와 샤벳이 앉았다. "사랑하는 내 마음 때문에 아이스크림이 자꾸 녹아버려서 몇 번이나 다시 만들었죠. 늦어서 미안해요"라는 말에 브브는 화답했다. "나는 당신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을 만큼 당신을 좋아해요" 극장안의 어둠도 이 둘의 사랑을 포근하게 감싸 안았다.

 

자이언트 판더 와이와이의 짝사랑

 

51 번지엔 작고 보잘 것없는 헌 책방이 있다. 여기서 일하는 점원 와이와이는 여자들에게 무척 인기가 좋다. 판다 특유의 몸짓때문에 여자로부터 보호본능을 불러 일으킨다. 그러나, 그는 여자들에게 관심이 없다. 그는 유명한 세계적 슈퍼 모델을 짝사랑했다.

한편, 여자에게 인기 많은 가면남은 이런 와이와이가 싫다. 인기를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악한 꾀를 내었다. 통통한 체형을 여자들이 좋아함을 알고서 그에게 다이어트를 권했다. 슈퍼 모델과 데이트를 즐기려면 날씬해야함이 필수라는 말에 착한 와이와이는 열심히 노력하여 다이어트에 성공한다. 그러자, 살이 빠진 그를 동네 여자 팬들이 외면한다.

 

와이와이는 가면남의 제안대로 마법의 재킷을 입고 물구나무를 서서 소원을 세 번 반복했다. "케이트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기를! ..... 오기를! .... 오기를!"

이젠 소원도 빌었으니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그는 단 것의 유혹에 빠져 먹고 또 먹고를 반복하다가 졸려서 잠을 잤다. 잠을 깨어나니 병원응급실이었다. 급성 단 음식 중독이란다. 한꺼번에 지나치게 당분을 섭취하면 쇼크를 일으키는 경우가 드물게 있단다. 다시 본래의 체형으로 돌아왔다. 거울을 본 와이와이는 케이트를 만날 수 없다며 비명을 지르자 옆에서 가면남이 연신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나는 정말 나쁜 놈이야.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너를 질투했어. 너의 순진함과 순수함을"(147쪽)

 

1년이 흘렀다. 와이와이가 슈퍼에서 구매한 버터 비스켓 경품행사에 당첨되어 1주일 파리 여행을 하게 되었다. 센 강을 산책하다 과자먹는 모습이 귀엽다며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자신의 패션쇼에 출연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하룻밤에 신데렐라 맨이 된 것이다. 3개월 후, 와이와이는 파리 콜렉션 무대에 섰다. 핑크색 인조 모피코트를 걸치고, 초콜릿 크루아상을 한 입 가득 물고, 다음 날엔 보그지 표지 모델로 장식했다. 한편, 헌 책방 근무는 가면남이 대신하기로 했다.

 

릴리는 전문 뚜쟁이

 

토끼 릴리가 운영하는 바에는 단골손님이 두 명이 있다. 인테리어 코디네이터인 타조 조세핀과 정신과 의사인 두루미 존 가리이다. 마담 릴리는 다소 천박하게 보이는 외모와 옷차림이지만 술에 대한 철칙만은 명확했다. 우중충한 실내 인테리어에 안주는 냉동 식품을 이용한다. 손님이 이를 불평하면 다른 가게에 가라고 고압적이다. 이 바에서는 손님이 오히려 마담 눈치를 살핀다.

 

원인불명의 불면증에 시달리는 조세핀은 존 가라씨 병원의 고객이다. 릴리는 조세핀의 불면과 가슴 떨림이 사랑병이라며 모든 것은 조세핀이 존 가리를 좋아해서 생긴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릴리의 뚜쟁이 실력은 가히 놀랄만하다. 지금까지 99쌍의 커플을 탄생시켰다. 릴리는 카드 점으로 조세핀의 점괘를 이용해 존 가리의 감정을 확인해 나간다. "상대는 늘씬하고, 스타일이 좋고, 핸섬하고 지적인데다가 포용력이 있고, 유능한 남성이라고 나오네. 누굴까?"

 

얘기를 듣던 존 가라는 그런 남자가 있다면 자신이 갖겠다는 엉뚱 발언을 했다. 분위기가 썰렁해지자 이번엔 녹차 점으로 존 가리의 미래를 점쳤다. "이봐요, 선생님은 게이래요" 그렇지만 운명의 사람을 만나 행복해 질 수 있다는데 상대가 여자라고 점괘를 설명했다. 그런데, 이상한 시츄에이션이 생겼다. 조세핀이 눈물을 흘리며 "실은 난 남자예요. .... 여장 취미가 있는 게이예요"라고 중얼거렸다. 릴리는 현기증이 나는 반면 존 가리는 너무도 기뻐한다. 릴리의 엉터리 점은 이렇게 끝이 났다. 마음 좋은 릴리는 100번 째 게이 커플을 위해 샴페인을 한 병 땄다.

 

고양이 베호와 가면남 그리고 서프라이즈 파티

 

12월 14일은 고양이 베호의 생일이다. 9년 전 이날 굶주림에 죽어가던 새끼 고양이를 가면남이 구했던 것이다. 해마다 둘은 이날 해외로 나가서 생일을 즐겼지만, 올해는 책 가게를 비울 수가 없어서 동네에서 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가면남은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기로 작정하고 이를 레스토랑 다이너 지배인 안토니오와 상의했다. 레스토랑 인테리어와 요리는 지배인이 맡기로 하고, 생일 케이크는 가면남이 준비하기로 했다. 뉴욕에 와있는 와이와이도 초대했고, 참석을 약속 받았다.

 

드디어 오늘이 디데이다. 다이너에도착했다. 한 마디로 입이 쩍 벌어져 다물어 지질 않는다.

"도박으로 빚이 많이 생겨서 유감스럽지만 폐점을 하게 되었습니다. ...안토니오" 란 공고와 함께 가게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화가 나서 문을 세차게 밀었다. 나중에 안에서 문이 열리고 브브가 나타났다. 가게 안에서 들리는 합창소리 "서프라아....아아이즈" 낯익은 얼굴들, 토끼, 코기리, 기린, 얼룩말, 펭귄,인간, 새, 고릴라 등 등. 분위기가 무르익자 이번엔 와이와이가 케이트와 영화감독을 대동하고 파티장에 왔다. 미미는 음악에 맞춰 흥얼거린다. "행복은 걸어오지 않아, 그러니까 걸어가는 거야..." 왁자지껄 행복이 넘치는 프랭크자파 스트리트는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면서 이렇게 밤이 가는 줄을 모른다. 행복유발구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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