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인생의 길을 묻다 - 노년과 나이듦에 대한 여덟 가지 시선
어사연(어르신사랑연구모임) 지음 / 궁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최근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도 2000년 노인 인구가 7% 넘어 고령화 사회에 접어 들었고, 2009년엔 10.5%, 그리고 2018년엔 14%가 넘을 것으로 예측했다. 그간 개발과 성장에 주력하던 우리 사회에 고령화와 노인 복지는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2000년 겨울, 노인 복지를 전공한 3 명의 향기나는 사람이 "어르신사랑연구모임(어사연)" 이란 인터넷 카페를 오픈했다. 지금은 3천여 명의 회원으로 규모가 크게 늘었다. 어사연을 통해 만난 10대에서 80대에 걸친 11명의 필자들이 각각 나이 듦에 대한 자신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펼쳐내고 있다. 

"젊었을 때 최대한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우고, 나이가 조금 들면 그것들을 다음 세대에 물려주고 나눠주며, 늙으면 내가 살아온 삶을 하나하나 곱씹으며 남은 세월을 보내고 싶다. 우리 삶과 함께 흘러가는 나이듦. 굳이 피하려 하지않고 순응하며 발을 맞추어 가고 싶다" 며 17살의 배윤슬은 어떻게 나이 들고 싶냐고 묻는다면 이리 대답하고 싶단다. 

어릴 적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떡국을 먹으면 나이 한 살 더 먹는다는 어른 말씀에 설날 떡국을 두 그릇 후다닥 먹어 치운 단순 무식쟁이 짓도 했다. 이것도 안된다, 저것도 하지마라는 부모님의 불호령에 왜 난 안되냐고 실룩거리며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것 모두 하면서 살 수 있다는 얄팍한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이듦에 모든 초점을 맞추었던 것이다.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여 졸업후 인천의 한 노인요양원에 취직하여 노인의 의미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며 현행 노인복지제도의 잘못을 비판하는 이십대의 조향경씨. 매스컴이 노인문제를 부정적인 이미지만 부각시켰음을 지적하면서 지금의 노인이 만든 사회를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하기에 오히려 노인은 존경해야 한다고 힘을 주어 말한다. 노인복지란 노인이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인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의 시행으로 노인이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아닌 등급으로 취급받는 시대가 되었음을 안타까워 한다. 

결혼해서 아이 낳아 키우느라 정신없고 직장에선 더 많은 일을 맡아 전쟁하듯 일상을 살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30대에게 노년의 삶은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과제 중의 하나일 뿐이다. 삼십대엔 남편의 직장문제나 내집 마련의 꿈들이 대화의 주제였지만, 40대가 된 최근에는 아이들 성적이나 학교생활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이라는 정은숙씨는 "노후에 어디서 살고 싶으세요?" 라는 질문에 건강이 허락하는 한 요양원보다 집에서 살고 싶다고 말한다. 

남편들이 바깥 활동을 접고 가정으로 회귀하는 50대 역시 부부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순간이다. 아내 입장에선 "돌아온 탕아" 를 어떻게 대할지에 대해 남편 못지 않게 혼란을 겪는다. 보통의 오십대 여자들처럼 강의모씨는 "아, 이렇게 여성을 잃어가는구나..." 하고 비탄에 잠긴다.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하여 잠시 고등학교 지리교사를 했다는 60대의 김영수씨는 독서광이다. 아니 수집광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같다. 오래된 책은 옛 친구 만나듯 그 때 그 시절 이야기를 해준다. 실평수 20평이 채 안되는 좁은 집에 여섯 식구가 살면서 책을 사다 모았으니 온 집안이 책천지이다. 살기도 버거운데 책욕심을 못 버려 책을 사 놓고는 눈치 보느라 바로 가져 오지 못하고 숨겼다가 가져오곤 했다. 겨우 창고 하나 마련했더니 눈 비오면 지붕이 새어 보관한 책이 젖기 일쑤다. 그래서, 중형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현재 책이 9천여 권, 음반이 4천여 장이라, 그의 아내는 아파트가 무너지면 어쩌나 늘 걱정이다. 그는 책과의 인연을 "꿈 같은 만남" 이라고 말한다. 

나이를 먹으면, 그것도 70 이 넘으면, 자신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다는 정진홍씨, 그러나 그는 노인은 신선이 아니라고 말한다. 인간이 집착하는 오욕 칠정이 어찌 쉽게 버려지겠는가? "욕심이 조금도 가시지 않았습니다. 가슴앓이도 삭지 않았습니다. 미움도 여전합니다. 고집은 신념이란 이름으로 더 질겨졌습니다." 삶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끊어지지 않는 긴 연속이다. 나이란 마디마디 확인하기 위해 마련된 징검다리인지도 모르겠다. 

다니던 직장을 정년퇴직하고 강남 입시학원에서 古文을 가르친다는 80대의 유재완씨는 늙어가는 것, 나이든다는 것은 한마디로 "철이 드는 것" 이라고 말한다. 인생에서 종종 부딪혔던 힘든 순간 신세를 진 분들, 많은 도움을 준 분들, 은혜를 베풀어 준 분들에게 제대로 인사 한번 못했는데, 사람 도리 못하며 부끄럽게 살아왔다는 반성을 하게 되기 때문이란다. 

앞으로 나이 한 살 더 먹게 된다면 하늘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자. 나이 먹는 일은 일상이며, 심오한 의미를 가진 우리들의 삶 자체이다. 나이 먹는 일을 겁낼 것도 아니고, 피할 일도 아니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쉬지 않고 걷는 것이 바로 나이 먹는 일과 같다. 나이는 우리들의 생의 이정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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