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운명의 숲을 지나다 - 조선의 운명담과 운명론 조선의 작은 이야기 3
류정월 지음 / 이숲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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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기리에 방영중인 MBC의 역사 드라마 [선덕여왕]의 초기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했었다. "어출쌍생, 성골남진" 이란 예언때문에 왕은 출생한 쌍동이 중 한 명을 버린다.

 

10년 전 당신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그때나 지금이나 변화가 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몰라 보게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로또 복권에 당첨되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고, 오히려 복권 당첨이 자신의 인생을 파멸로 몰고간 사람도 있을 것이다.

 

운명은 과연 존재하는가? 그리고 타고난 운명은 따로 정해진 것인가? 이 모든 것들이 미리 짜여진 각본이라면 우리가 땀 흘리며 노력하는 모든 일들이 너무도 허멍하지 않겠는가? 이 책은 인간의 운며을 고찰한 역사서이다. 조선시대의 설화, 점술, 예언과 그리고 동서양의 신화 등을 통해 이를 고찰하고 있다. 동서양을 불문하고 예로부터 운명에 관한 이야기는 다양하다. 이제 오래된 운명의 숲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운명의 존재

 

"너 자신을 알라" 라는 경귀로 유명한 델포이 신전에는 아폴론의 신녀 피티아가 살고 있었다. 피티아의 입을 통해 신탁을 얻기 위해 사람들은 목욕재계하고 공물을 바치면서 신전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고 한다. 델포이 신탁이 적중한 대표적인 예가 바로 오이디푸스 신화이다.

 

"왕은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아들때문에 왕국에 불행이 닥칠 것이다. 왕 자신도 아들 손에 죽게 되리라"

 

삼국사기엔 꿈이 미래를 예시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김유신에겐 여동생이 둘 있었다. 언니인 보희가 꿈에 서악에 올라가서 오줌울 누었더니 온나라에 오줌이 넘쳤다고 동생 문희에게 꿈얘기를 했다. 문희는 비단치마를 주고서 이 꿈을 산다. 이후 열흘만에 유신은 김춘추와 함께 축국놀이(요즈음으로 치면 축구)를 하다 옷고름이 떨어진 춘추를 자기집에 들여 동생에게 옷고름을 고쳐 달게하면서 문희와 춘추간에 자연스런 사랑이 맺어지고 문희는 결국 춘추와 결혼하여 왕후가 된다.

 

용재총화에 의하면 둔갑술에 능한 점쟁이 복진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대궐에 숨어 들어 왕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그러나, 이런 무례한 행동때문에 오히려 목숨을 잃고 만다.

 

인왕산 아래에 왕의 기운이 있다는 말에 광해군은 그 곳에 살던 정원군의 땅을 빼앗아 여기에 명덕궁을 지었지만 인조 반정이 일어나 정원군의 아들인 능양군에게 왕위를 빼앗긴다.

 

제우스 신은 트로이전쟁에 참가한 자신의 아들 사르페논의 죽음을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를 구하지 못한다. 천생연분은 월하노인의 붉은 명주실에 이미 묶여 있고, 과거에 합격하고 출세길이 열리는 것도 운명이며, 심지어 부자가 되는 것도 운명이라고 한다.

 

운명의 인식

 

현재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이며 미래는 현재의 실현 모습이다. 그런데, 점술가나 예언가들이 미래에 대한 천기 누설로 어떤 대가를 받았을까?

 

조선조 명종 때 복술가 홍계관은 맹인이다. 왕의 명령으로 지나가는 쥐의 숫자를 점치는데, 홍계관은 "세 마리입니다" 라고 답하자, 왕은 지나가는 한 마리 쥐를 셋이라하니 그의 목을 베라고 명령했다. 그는 형장에 도착해서 점을 쳐보니 한 시간만 버티면 살 수 있다는 점괘가 나오자 형리에게 형집해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왕은 쥐를 잡아 배를 갈라 보니 뱃 속에 새끼 두 마리가 있었다. 신기한 점술에 놀란 왕은 급히 형 중지 파발마를 보내었지만 형리는 멀리서 보내는 손 짓이 형집행을 서두르라는 것으로 알고 참수형을 하고 말았다. 왕에게 이 결과를 보고하자 왕은 "아차 늦었구나" 하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사람들은 형장이 있던 고개를 "아차고개" 라 불렀다 한다. 이는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에 위치한 아차산의 지명설화이다.

 

어느 날 남자와 여자 중 어느 쪽이 성교시 더 큰 쾌락을 누리는지를 놓고 제우스와 헤라가 다투다가 테이레시아스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양족을 다 체험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에 주저하지 않고 성교의 쾌락을 10로 본다면 여자에게 9, 남자에게 1이 돌아간다고 답했다. 여성의 큰 비밀이 폭로되자 화가 난 헤라는 그를 장님으로 만들어 버렸고, 반면 제우스는 보상으로 그에게 예언 능력을 주었다고 한다.

 

비밀을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계의 대상이 되며, 혹여 그 비밀을 누설할 때에는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델포이 신탁도 메시지를 "드러내지도 않고, 숨기지도 않고, 다만 암시할 뿐" 이라고 한다. 신탁을 잘못 해석하거나 또는 자기가 바라는대로 해석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던 것이다. 아무튼 신탁과 점괘에 대한 해석은 온전히 우리 인간의 몫이었다.

 

운명의 가치

 

운명의 존재 자체를 부정할 수만은 없다. 운명의 존재는 어쩌면 인간의 심리적 기능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운명의 가치는 이미 정해져 있다고 믿는 각본을 어떻게 활용하고 또한 그 효과를 어떻게 극대화할 것인지에 달려 있다고 하겠다.

 

드라마 [선덕여왕]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 647년 선덕여왕 말년, 비담은 반란을 일으킨다. 그 이유는 "여자 임금은 나라를 제대로 다스릴 수 없다" 란 것이었다. 요즈음 이런 말 했다가는 페미니스트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받을 것이다. 왕의 군대와 반란군은 열흘을 대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한반중 큰 별이 왕이 주둔하는 월성에 떨어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비담은 병졸들에게 일장 연설을 했다. "이것은 여자 임금이 패할 징조이다"

 

반란군의 병졸들의 환호성에 두려운 여왕은 어쩔 바를 몰랐다. 이때 김유신이 한 술 더 떠 병졸들에게 연설했다.

"길함과 불길함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오로지 사람이 부르는 것이다. 역사를 보면, 좋은 징조를 얻고도 망한 나라가 많고, 반대로 나쁜 징조를 얻고도 흥한 나라가 많다. 그러니 별이 떨어진 일은 두려워 할 일이 아니다"

 

일본인들이 경영의 신으로 받드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자신의 책 [도전해야 성공한다]에서 "나에게 주어진 운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발전적으로 활용하였기에 나의 앞에 하나의 길이 열린 게 아닌가 싶다" 라고 말했다. 운명을 극복한 이야기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운명을 무시하는 게 아니라 운명을 아는 데부터 시작한다. 알아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은 운명론적 관점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제갈공명은 사마의와의 싸움에서 결정적 승리를 눈앞에 두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서 뜻을 이루지 못하자 "모사謀事는 재인在人이요, 성사成事는 재천在天이다" 라며 안타까워한다. "토정비결" 의 주인공 이지함도 부모의 묘가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방축쌓기에 온 정력을 기울였다. 이 공사를 비웃는 사람들에게 그는 "사람의 힘이 미치거나 미치지 못하는 것은 따질 것 없이 힘이 닿는대로 노력해 봐야 할 것이요. 일이 이루어지거나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하늘에 달렸는데 사람의 아들이 되어 어찌 힘이 부족하다고 뒷 날의 근심을 막지 않으리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선을 다했다는 자기만족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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