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즐거움 - 절집공부를 통해 여섯 가지 즐거움을 배우다
보경 지음, 최재순 그림 / 뜰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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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포교당 송광사 서울 분원 법련사의 주지인 보경스님이 그간 "법보신문" 의 칼럼에 기고했던 글과 신도들을 상대로 펼쳤던 법문들을 한데 묶어 산문집으로 출간햇다. 저자는 일하는 즐거움, 공부하는 즐거움, 사람을 얻는 즐거움, 베푸는 즐거움, 배우는 즐거움, 함께 사는 즐거움의 여섯 가지로 사는 즐거움을 우리에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동서양의 철학과 일화를 인용하여 우리가 쉽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고 있다.

 

불가에서는 중생들에게 오욕락을 떨쳐내고 깨달음을 얻으라고 가르친다. 오욕이란 재물욕, 색욕(성욕), 식탐욕, 명예욕, 그리고 수면욕의 다섯 가지를 말하는데 인간 대중들은 끊임없이 이 오욕락을 즐기다가 목숨을 다한 뒤 지옥에 떨어져 고통을 당하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오욕락은 순간에 불과하고 깨달음은 영원한 것이다.

 

인생을 살면서 내 의지에 의하지 않고 업의 힘에 이끌려 살아 간다면 이는 소위 "종살이" 인생이다. 세상을 즐거운 마음으로 잘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 탐(탐내는 마음), 진(성내는 마음), 치(어리석은 마음) 인 세가지 업을 잘 다스려야 한다.

 

"저는 일하지 않고 얻은 재물은 스스로에게 재난이 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하늘이 저의 가난을 불쌍히 여긴다면, 자식들이 학문을 성취하도록 도와 주십시요. 이 돈만은 감히 갖지 못하겠습니다"

당나라 때, 이경양의 어머니는 젊어 과부가 되어 살림이 가난했다. 어느 날 집 뒷 담이 붕괴되자 이곳에서 엄청난 돈이 발견되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돈을 다시 묻어 담을 보수하고는 꺼내지 않고 대신 하늘에 기도를 올렸다. 그 후 자식들은 학문의 성취가 있어 높은 벼슬에 올랐다.

 

곤궁한 환경 밑에서는 분발하고 크게 노력하지만, 풍족한 환경에 들면 쉽게 타락하고 나태해진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의 바다이다. 불교철학의 핵심은 괴로움의 소멸에 있다. 불가에선 사성제 즉 고, 집, 멸, 도로 이를 설명하고 있다. 소멸에 이르기 위한 수행 방법으로 "바라보기" 를 제시하는데 이는 몸과 마음의 흐름을 지켜보는 것이다. 

첫 째, 고는 괴로움이다. 그런데, 원인없는 괴로움은 없다.

둘 째, 집은 집착이다. 괴로움의 원인이 바로 집착이다.

셋 째, 멸은 제거이다.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한다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잇다.

넷 째, 도는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말은 한번 지나면 그만이지만 글은 오랜 세월 많은 사람에게 읽히기 때문에 가치가 있다. 

한나라의 왕충이란 학자는 글 읽기를 매우 좋아했지만 가난하여 책 살 돈이 없어서 저잣거리에 있는 책방에 가서 진열된 책을 읽곤 했다. 여기서 유래된 고사가 바로 "탐독완시" 이다. 요즈음도 시내 대형 서점에 들리면 통로에 늘어 앉아 탐독완시를 즐기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독서는 즐거움이자 좋은 습관이다.

 

사람 사이는 미묘해서 오래가기가 쉽지 않다. 누구나 결점이 있기에 오래될수록 상대의 단점이 크게 보이게 마련이기에 처음에 가졌던 마음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연애기간이 길어지면 결혼으로 성공할 확률이 낮아지는 것도 이와 비슷한 경우이다.

"백합 같은 순백" 의 완전무결함은 우리의 꿈이자 이상일지 몰라도 나와 남의 관계에 있어서 가능한 현실은 아니다. 보는 나와 보이는 나는 항상 역방향이다. 만사가 그렇듯, 밖에서 찾지 말고 안으로부터 찾아야 차원의 변화가 생긴다. 상대를 존경심으로 사귀고 오랜 사이일수록 그 마음을 잃지 않음이 오래 유지되는 비결이다. 이것이 사람을 얻는 즐거움이다.

 

부처님께서 길을 가는데, 이때 길을 걷던 행렬 무리 중 한 사람이 부처님을 알아보고는 "죄송합니다. 저는 요즘 장사가 잘되지 않아 조그만 공양도 못 올립니다. 용서하십시요" 라고 말하자, 부처님께서는 괜찮다고 말하며 탁발로 얻은 음식을 이 나그네에게 나누어 주었다. 제자들도 조금씩 공양을 베풀자 나그네에겐 많은 음식이 생기게 되었다.

톨스토이가 길을 가는데 거지가 적선을 호소했다. 주머니를 뒤지던 그는 미안한 표정으로 "형제여, 내 지금 가진 게 없어 다음에 주겠소" 라고 말하자, 이 거지는 "형제" 라는 크나 큰 말을 들었기에 괜찮다며 오히려 미소를 띠었다.

남과 나누는 것에는 물질만이 아니라 따뜻한 마음으로도 가능하다. 이것이 베푸는 즐거움이다.

 

어떤 사미승이 스승과 함께 길을 가다가 땅에 떨어진 금덩이를 발견하고 품에 넣었다. 그리고는 스승에게 "빨리 가시죠. 사람들이 없는 곳이라 무서운 생각이 듭니다" 라고 말하자, 스승은 금덩이를 버리면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을거라고 가르쳤다. 이에 제자는 금덩이를 도로 버리고 자신이 어리석었음을 고하고 용서를 구했다.

두려움의 본질이 무엇인가. 그것은 무언가 잃는다는 생각때문이다. 무소유라면 잃을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우는 즐거움이다.

 

하루는 부처님이 길을 가던 중 한 거처에서 역겨운 냄새가 진동하길래, 살펴보니 움막 흙바닥에 병든 비구가 신음하고 있었다. 그래서, 부처님은 제자 아난존자가 길어온 물로 손수 이 비구의 몸을 씻기고 악취가 풍기는 가사도 세탁하고 움막 안을 깨끗이 청소한 다음 자리를 새로 마련하여 이 비구를 눕혔다. 다음날 대중들의 법회에서 이 사실을 논하며 그 비구를 간호하는 사람이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묻자, 그도 평소에 남을 간호하거나 도와준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답변을 듣는다. 이에 부처님은 "제자들아, 나를 간호하고 공양하고 싶은 이는 병든 비구를 먼저 살피도록 해라" 는 가르침을 주었다.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함께 사는 즐거움이다.

 

세상을 편하고 즐겁게 사는 사람은 결코 파괴적이거나 경쟁적이지 않다. 마음이 평화롭지 못한 사람은 항상 문제를 만들고 시끄럽다. 마치 말만 앞세우는 정치인들 처럼, 자신의 문제도 해결 못하면서 남을 위해 일하겟다고 만용을 부린다. 앞을 못보는 사람이 다른 눈먼 사람에게 길을 안내하는 꼴이다. 문제의 시작은 나로부터 찾자. 정신분석에 의하면, 95%는 어제의 생각과 행동의 반복이고, 새로운 것은 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일생을 자극없이 습관적으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수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비심이다. 자비심은 모든 생명들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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