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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리더십은 절대 흔들리지 않는다 ㅣ 선비 리더십 2
김진수 지음 / 이야기꽃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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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배운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배우는 것인지 믇지 않을 수 없다는 저자 김진수는 국내 굴지의 현대그룹에서 주요 임원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선비리더십 아카데미 회장으로 재직, 리더십에 대한 외부 강의를 왕성하게 펼치고 있다. 마음을 올바르게 다잡는 것이 먼저인데, 대부분 기술만 배우고 있음을 안타까워 하면서 그는 선비리더십으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촉발된 일련의 금융위기가 최첨단 금융 기법이라는 파생상품때문이었음이 밝혀 졌었다. 한마디로 불량금융상품인 이런 파생상품은 화려한 겉옷을 입었지만 실속없는 허상에 불과합니다. 이는 리먼 브라더스 등 투자은행에 종사하는 리더들의 무책임하고 부도덕한 탐욕에서 근본적인 원인을 찾을 수 있으며 말하자면 선비리더십의 부재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선비리더십의 핵심요체는 仁, 義, 禮, 智, 孝, 忠, 敬, 信이다. 이중 "인의예지"는 개인이 추구하는 덕목이며, "효충경신" 은 조직이 추구하는 덕목이라 하겠다. 조선시대의 대학자들이 16 세기에 완성한 성리학의 기본 정신이 바로 선비사상이다.
淸富사상과 儒家사상
인간의 지식이 발전하면서 목축과 농경에 의한 사회는 쇠퇴하고 상공인들이 경제를 리드하면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장 칼뱅이 세운 칼뱅파는 전통적인 카톨릭에 반기를 들고 개신교를 만들면서 기존의 금욕 사상은 인간의 본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상공인의 사회 발전을 저해한다고 생각하여 인간의 재물욕과 재물의 축재에 정당성을 부여키 위해 "청부사상" 을 만들었다.
유가사상에는 來世가 없다. 오직 인간과 환경을 중시하고, 현실 세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 인가에 주력한다. 공자는 "見利思義" 정신을 주창했는데, 이로움이 있을 때는 먼저 의로움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선비사싱의 모태가 된 유가사상은 유럽의 청부사상보다 2천여 년이나 앞서 만들어진 청부사상이라 하겠다.
정주영과 마쓰시타 고노스케
부자에겐 특징이 있다. 성실성이 강하고, 부지런하며, 결단력이 있고, 목표가 분명하며, 책임감이 강하고, 그리고 스스로 배우기를 좋아하는 여섯 가지의 특성이 있다. 반면에, 빈자는 부자의 특성에 반대되는 특성을 보인다. 세상에 부자가 많다. "견리사의" 정신을 실천한 한국과 일본의 대표적인 부자 故 정주영 현대 그룹 회장과 일본의 마스시타 고노스케 회장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마스시타 고노스케 회장은 초등학교 4 학년 중퇴 학력이지만, 일본 최고의 부자와 "경영의 신" 이라고 불리었다. 9 살에 화로가게 견습생을 시작으로 16 살에 오사카전등에 취직하여 7년 간 월급쟁이 생활을 했다. 24 살에 독립하여 마스시타전기제작소를 창업해서 전기소켓을 만들어 팔았고, 제품 개량으로 히트 제품인 "쌍 소켓" 이 탄생했다. 1925년 자신의 제품에 "National" 를 붙였다. 이 브랜드는 일본의 국민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1930 년부터 생산한 라디오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고, 1943년 조선과 항공기를 설립하여 군용으로 납품했다. 잠시 미 군정에 의해 경영 일선에서 퇴출당했다가 1947년 사장으로 복귀후 군수사업을 접고, 전기 전자 사업에만 집중했다. 1961년 회장에 취임하여 "파나소닉", "JVC" 등의 새로운 브랜드로 세계시장을 석권하는 종합 가전업체로 발전시켰으며, 회사의 직원들에게 청소를 강조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한편, 미래의 젊은 인재 양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1979년 "마스시타 정경숙" 을 설립했으며, 1985년 은밀히 신당 창당을 준비하다 실패한 후, 1989년 95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정주영 회장은 초등학교를 간신히 나와 단신으로 서울에 와서 쌀가게에 취직했다. 16 살에 쌀가게 배달원으로 들어가 22 살에 자신이 취직한 쌀가게를 인수했다. 1940년 자동차 수리업, 1946년 현대자동차공업사, 1947년 현대토건사를 설립했다. 1950년 자동차공업사와 토건을 합병하여 현대건설을 설립하여 현대그룹의 신화가 시작되었다. 정주영 회장의 삶은 도전이었고, 한국 경제 산업화의 과정이었다, 일본의 마스시타 고노스케의 제품 스타일은 "輕薄短小" 型인 반면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은 "重厚長大" 型이었으며 긍정적인 기상과 적극적인 의지 그리고 강인한 추진력의 화신이었다. 1992년 통일국민당을 창당하여 정치일선에 나섰다가 실패, 1998년 두 차례에 걸쳐 모두 1001마리의 소떼를 몰고 방북하면서 남북화해 분위기로 세계적인 이목을 받기도 했다. "시련은 있을지언정 실패는 없다" 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2001년 8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淸富와 濁富
세상엔 두 종류의 부자가 있다. 깨끗한 부자와 더러운 부자이다. 조선 후기 부자의 대명사인 경주 최씨 집안은 360 여 년에 걸쳐 만석의 재산을 보전한 가문으로 일제강점기엔 독립운동에 큰 자금을 보탰으며 정부 수립 후 사회가 안정되자 인재 양성을 위한 교육사업(현, 영남대학교)에 전 재산을 희사한 집안이다. 최씨 가문엔 육연과 육훈이라는 "부의 철학" 이 있었다. 그 내용 중 "주변 100리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하라", "일이 있을 때는 적극적으로 대처하라" 는 등 청부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배려와 나눔을 실행한 진정한 선비 가문이며, 양반이었다. 탁부의 사례는 무수히 많다. 돈을 잘못 번 사람들은 쉽게 망한다. 삿되게 돈을 벌어 들인 사람들의 말로는 하나같이 처량하고 비참한 모습이다.
선비리더십의 요체
첫째, 돈의 씨앗을 받을 수 있는 선비의식을 먼저 만든다.
둘째, 돈에 대한 자기긍정을 각인하고, 자기부정은 마음속에서 축출한다.
셋째,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한 자가 치유 프로그램을 지킨다.
넷째, 풍요의 출발점은 양심의 실행임을 잊지 않는다.
다섯째, 만나는 사람에게 내가 먼저 축복파동을 발신한다.
여섯째, 스스로 확실한 목표를 수립한다.
일곱째, 자신과 경쟁하는 창조는 청부를 만든다.
여덟째,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내가 되기 위해 공부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홉째, 집중과 몰입, 성의와 열정으로 마음을 써야 한다.
열번째, 백번의 위대한 생각보다 한 번의 사소한 실행을 쌓아라.
선비정신의 최대 향유자는 일본이다. 조선의 선비정신을 수입하여 주군에게 충성하는 법, 부모에게 효도하는 법, 신의를 지키는 법, 예의 범절을 갖추는 법, 그리고 도와 신념에 목숨을 바치는 법 등을 사무라이의 가치관으로 수용한 것이다. 우리의 선비정신은 일본의 무사도에 비해 포괄적인 상위개념이다. 조선의 성리학은 이론과 실천을 융합한 사상이며, 선비정신은 행동과 실천의 덕목이다. 궁수는 바람을 탓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원인은 "밖"에 있지 않고, "안"에 있기 때문이다. 선비는 항상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잊지 않았다. 명품인간의 선비정신, 선비사상을 통해 한국형 전통 리더십의 진수를 배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