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빈칸 책 (블루) - 개정판 나의 빈칸 책 1
이명석, 박사 지음 / 홍시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들은 [빈칸]입니다. 이 세상 오직 당신만이 우리에게 대답할 수 있고, 우리는 오직 당신만을 위해 채워질 것입니다. 당신이 아니면 영원히 비어있을 칸들입니다" - [빈칸]

 

현대인의 생활은 늘 바쁘다. 바쁘다는 핑게로 기록은 늘 뒷전이다. 인생에서 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면 불가피한 일이기에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에 쫓기듯 달음질쳐야하고, 누군가의 연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화장실에 조차 휴대폰없이 입장하질 못한다. 누군가 이런 현대인의 삶에 빗대어 오히려 역설적인 " 느림의 미학 "을 제안하기도 했다. 느림이란 바로 참된 나를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다.

 

누군가 우리에게 "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하고 질문한다면 뭐라고 답할 것인가. 아마도 대부분은 평소에 이런 질문에 관심이 없었을 듯하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세상을 따라 가기도 벅찬데, 내 눈에 보이지도 않는 나의 내면을 발견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도 않은 일이다. 불가에서도 수행의 목적이 바로 참된 나, 眞我를 찾아가는 길임을 강조한다.

 

이 책은 정말 희한하다. 빈 칸 투성이다. 이 빈칸은 채워주길 기다리고 있다. 예를 들어, 내 인생에 찾아온 하트들은 ? , 내가 나에게 한 제일 중요한 약속은 ? , 내가 즐겨 책을 읽던 곳은 ? , 내가 가장 가지고 싶은 유, 무형의 것은 ? , 나는 어떤 숫자와 친해왔을까 ? 등등 살면서 한번 쯤 생각 또는 경험했거나, 아니면 경험은 했지만 별 관심을 두지 않아 기억이 잘 나지 않는 추억들을 일깨워 준다. 또한, 기쁘고, 화나고, 슬프고, 그리고 즐거웠던 모든 기억들을 빈칸에 채우라고 한다. 빈칸에 빼곡히 채워지는 순간 그것은 바로 나의 역사이며 나의 참 모습인 것이다.

 

나라는 존재가 이처럼 복잡한데 한 두마디로 결코 정리할 수 없다. 빈칸과 조각들을 마치 퍼즐 맞추듯 채워 나갈수록 내가 누군인지에 대한 실체가 느껴지지 시작한다. 그렇다고 빨리 알려고 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아직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이 많기 때문이다. 단지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므로 기억하고 있는 사실들은 사라지기 전에 빨리 빈칸을 채우라고 권하고 싶다. 부모님을 비롯한 어른들이 생존해 있을때 나의 어린 시절에 대한 빈칸을 채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채워진 빈칸들은 나의 앨범이다. 사진만이 남아 흐릿한 기억으로 그 때를 더듬는 것보다 채워진 빈칸은 생생한 추억 앨범이다. 순서도 중요하지 않다. 생각나는 대로 하나씩, 재미있다고 생각되는 것부터 하나씩, 잊어버리기 전에 미리 하나씩, 길가다 문득 떠오르면 재빨리 하나씩, 이렇게 채워 보자. 나중엔 나의 자서전으로 다가 올 것이 분명하다.

 

이 책은 100 가지의 빈칸들이 있다. 빈칸도 채우는 요령이 있다. 혼자 채우기, 물어보며 채우기, 서로 들쳐보며 채우기, 천천히 채우기, 색색으로 채우기, 모자라는 빈칸 붙여서 채우기, 스스로 빈칸 만들어 채우기, 그리고 훔쳐보며 채우기의 여덟 가지 방법을 이 책은 제시하고 있다. 빈칸과 단둘이 대화하면서 추억과 잊었던 친구들을 찾아 보도록, 또는 부모 형제, 소꼽친구, 학창시절 선생님, 그리고 직장 오리엔테이션 동기들에 물어서 나에 대한 흩어져 있는 기억들을 모을 수 있도록, 그리고 친구, 애인, 배우자의 깊은 속도 들쳐볼 수 있도록 나를 도와 준다.

 

어느 TV 프로그램에서 현재 뻐젓이 살아있는 연예인이 죽었다고 가정하여 영안실의 문상 풍경과 고인의 생애에 대하여 좋고 나빴던 기억들을 들추어 내는 것을 시청한 적이 있다. 이를 보며 나의 장래 모습을 그려보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이들과 작별하는 그날이 빨리 찾아오길 굳이 기다릴 필요는 없다. 그러나, 멋지게 이별하는 연습은 해 둘 필요가 있을 듯하다. 아일랜드 극작가 죠지 버나드 쇼는 자신의 묘비에 " 내 인생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지 " 란 유명한 글을 남겼다. 비록 멋있는 말이 아닐지언정 나의 묘비에 새길 글을 미리 준비해 둔다면 남은 생을 더욱 알차게 지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유산과 시신에 대한 처리도 미리 고민해 둘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많이 부족한 나를 발견했기에 더 알차게 나를 단련하고 하루의 반성과 일기 쓰기를 게을리 말자고 다짐해 본다. 나의 빈칸 책은 바로 나의 자서전이기에 지금 바로 채워 나가길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