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이 몸에서, 이 생에서 - 티베트에서 보낸 평범한 삶, 그 낯설고도 특별한 일 년
쑨수윈 지음, 이순주 옮김 / 에이지21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비밀스런 古代 문명길, 茶馬古道는 실크로드보다 200여 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교역로이다. 중국 서남부 雲南省, 四川省에서 티베트를 넘어 네팔, 인도까지 이어지는 육상 交通路로 길이가 약 5 천 킬로미터, 평균 고도 4 천 미터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雪山과 아찔한 협곡이 만들어낸 풍광탓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이 길을 따라 중국의 차와 티베트의 말이 오갔다.
 
티베트 고원은 히말라야 산맥 北方, 곤륜 산맥 南方에 위치한 드넓은 산지이다. 티베트는 인구 약 285만 명으로 이들은 티베트語를 사용하고, 티베트 佛敎를 믿는다. 중국의 漢族과는 분명히 다른 문화를 가졌지만 불행하게도 현재는 티베트 自治區로서 중국의 일부로 되어 있다.
 
1950 년대 말부터 티베트는 독립 운동이 활발했지만 중국은 티베트의 分離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국제여론의 비난에도 내정 간섭을 말라며 일축하고 있다.
 
티베트 고원은 7 세기 初 손첸캄포에 의해 통일되었고, 중국은 당시 이 나라를 토번이라 불렀다. 토번은 동서의 상업로를 장악하고, 국내의 제반 제도를 정비한 후, 8 세기 중반부터 불교를 국교로 삼았다. 이 때 티베트 불교는 라마교로 불리며 티베트 고유의 신앙을 포함한 독자적인 종교였다. 그러나, 9 세기 중반 토번은 남북으로 分裂되고 이후 쇠퇴의 길을 걷는다. 그 후 수 많은 제후들이 分立되어 명맥을 유지하다 13 세기 중반엔 몽고의 지배를 받게 된다. 元의 몰락후 티베트는 독립을 이룩했지만 당시엔 몇 종류의 小勢力으로 분립해 있었다.
17 세기 중반, 라마교의 지도자 달라이 라마 5세가 티베트 불교의 모든 종파를 통일하고 티베트 고원을 무력으로 통일했다. 이후 대대로 달라이 라마가 종교, 정치적으로 티베트의 지배권을 쥐게 되었다. 다시 淸왕조의 간접 통치를 받다가 淸이 쇠퇴한 19 세기 말에 완전 독립을 도모했지만 영국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만다. 중국 혁명 이후 혼란기에 티베트의 독립선언이 제기됐지만 영국 등의 열강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2 차 세계대전 후 중국공산당에 의한 군사적 제압이 감행되어 1951 년 중국 자치구 중의 하나가 되었다.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에게 여러 가지 압력을 가하자, 달라이 라마 14 세는 인도로 망명하여 인도 북부 "다람살라"에 망명정부를 세우고 현재까지도 티베트 독립 운동을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은 베이징 대학 졸업생인 여성 프로듀서의 시각으로 바라본 티베트의 생생한 체험기를 내용으로 담고 있다. 대학 졸업반이던 1986 년 티베트에 근무할 기회가 생겼지만 티베트는 "야만인의 땅" 이라는 아버지의 강력한 만류로 뜻을 이루지 못하다 이후 영국 BBC 방송의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하면서 4040 미터 고지에 위치한 티베트 제 3의 도시 갼체를 촬영하기 위해 2006 년 7 월 부터 2007 년 6 월까지 일 년간 체류하게 된다.
 
이 책은 무당, 鳥葬, 환생, 배움의 길, 적개심, 전통 혼례, 일처다부제, 술, 전통 요법 등 11 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족 중국인 처녀의 이색적인 경험담을 통해 티베트의 전통과 문화를 만나게 된다. 또한, 밀착 취재를 통해 티베트인의 삶의 현장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이 책은 무당인 체텐, 그의 형 돈단과 로가, 이들 삼형제의 공동 아내인 양드란, 이들의 아버지 밀라, 릭진 씨네 가족 이야기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 곳 사람들은 두통, 치통은 물론 상사병에 걸려도 무당을 찾는다. 집에서 기르는 가축이 병이 나도 무당을 찾는다. 심지어 출산이나, 수술받을 병원의 결정도 무당과 상의, 그 결정에 따른다. 집안 대소사도 무당과 상의한다. 이렇듯 무당은 티베트인의 생활 중심에 위치한다. 아프면 병원에 들러 의사와 상의해야함을 잘 알고 있는 저자의 눈엔 무당의 역할이 기이할 뿐이다.
 
이 곳 사람들의 葬事 풍습은 독특하다. 시신을 독수리밥으로 제공한다. 남김 없이 肉보시가 되어야 환생을 한다는 믿음으로 장례 의식을 치룬다. 이를 鳥葬이라고 하는데, 시체를 잘라 죽을 쑤어 아낌없이 독수리에게 생애 최후의 공양을 한다. 독특한 장례 풍습은 자연 환경에 기인한 듯하다. 높은 위치에 있는 땅은 추위로 얼어 있기에 시신을 땅에 묻기가 쉽지 않고 또한 땅도 그리 넓지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은 본디 유목민이었기에 정착의 개념이 다소 희박했을 것이다.
 
이 곳 여성들은 여러 명의 남편을 둔다. 一妻多夫制의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유는 원시적이며 야만적인 풍습으로 여성들이 육체적으로 유린당하고 평등한 인권을 누릴 수 없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저자의 눈에 비친 이곳 여자들은 큰 문제없이 여러 명의 남편들과 평화롭게 잘 살고 있고 오히려 잘 먹고 잘 살려면 남편이 많아야 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다큐멘터리의 현장 갼체는 1904 년 영국이 門戶개방을 요구하며 영허즈번드 대령이 武力으로 진압한 악명높은 대학살의 현장이지만 아직도 고대 요새, 유명 寺院, 전통 가옥들이 잘 보존되어 있단다. 이미 티베트 여행은 칭장철로나 비행기를 이용하기에 붐비는 관광객들로 인해 많은 변화를 겪고 있어서 중국의 의도대로 빠른 속도로 脫티베트化 하지 않을까 하는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역사학자는 앞으로의 전쟁은 민족간의 갈등에 의해 발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거대한 漢族의 국가 중국엔 많은 소수 민족이 살고 있지만, 중국 정부는 대융합을 전제로 몽고 자치구, 티베트 자치구 등을 두고서 변화의 속도를 가속화하고 있다. 이런 변화속에 소수 민족의 전통과 문화가 핍박받는 현실에 당연히 분노가 폭발한다. 최근에 발생한 신장지구 위구르족의 폭동도 이런 맥락이다.
 
티베트는 분명 낙원이 아니다. 티베트는 가난하고 통제가 심한 곳이다. 그러나, 티베트는 색다르고, 장엄하고, 독특한 곳이라며 저자의 다큐멘터리는 끝을 맺는다. 저자와 함께 체험 현장을 누비며 티베트의 전통과 문화, 그리고 티베트인의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달라이 라마의 티베트 독립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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