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특히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풍요를 이뤘지만, 동시에 세계 최저 수준의 출생률과 사회문제가 될 정도의 번아웃, 치열한 경쟁의 그늘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나라, 우리는 물질의 결핍은 상당 부분 극복했지만, 여전히 '의미의 허기' 앞에서 자주 멈춰 선다. 그래서 저자들의 경고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과 만나지 못한 풍요는 붕괴로 향하고, 지혜와 만나지 못한 지능은 멸종으로 향한다. 진본 발전이란 결국 '더 많은 것'이 아니라 '더 나은 것'이어야 한다는 이 책의 메시지는, 속도를 최고의 미덕으로 삼아온 우리 사회가 가장 먼저 새겨야 할 명제다. - '한국어판 추천 서문' 중에서

책의 공저자인 피터 디아만디스는 실리콘밸리가 주목하는 혁신기업가로 15개가 넘는 하이테크 기업을 설립했다.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에서 분자유전학과 항공우주공학 학위를, 하버드 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엑스프라이즈 재단 회장 겸 CEO로 있으며 구글과 3D 시스템스, 미 항공우주국(NASA)이 후원하는 실리콘밸리 소재 창업교육기관인 싱귤래리티 대학의 학장으로 있다.
공저자인 스티븐 코틀러는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많은 상을 수상한 기자이며 플로우 게놈 프로젝트의 공동설립자 겸 연구책임자이다. <볼드>, <어번던스> 등 다수의 저서를 출간했는데, 그의 책은 4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으며 뉴욕타임즈, 애틀랜틱 먼슬리, 와이어드, 포브스, 타임 등 80개 이상의 출판물에 게재됐다.
"우리는 기술이 교육, 의료, 기회 측면에서 모두에게 풍를 안기는 미래로 접어들고 있다" -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인간, 신의 영역에 닿다
1968년에 "인간은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고 말한 이가 있었다. 그는 <홀 어스 카달로그>란 책을 출간한 스튜어트 브랜드로 그 근거는 바로 '기술' 이었다. 당시는 우주시대의 초기이자 컴퓨터 시대의 여명기였다. 하지만 이같은 그의 흥분은 무리였다.
가히 신만이 펼칠 수 있는 경이로운 기술이 개발되던 초기(1968년)의 메인프레임 컴퓨터는 그 사이즈가 유조선만 했고, 마이크로칩이 막 개발됐고, 총천연색 컬러 TV는 신기한 물건이었으니 말이다. 이후에 기술들이 진전되었을지라도 1968년엔 신에 비할 존재는 아니었다. 견습생 정도였다.
이후 일정한 주기로 성능을 두 배로 높이는 반면 비용을 낮추는 컴퓨터 칩 기술은 브랜드의 선언이 있기 3년 전인 1965년에 고든 무어가 소위 '무어의 법칙'을 발표했었다. 그는 컴퓨터 칩에 들어가는 집적회로의 수數가 18개월마다 두 배로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었다. 이를 '기하급수 기술'이라고 말한다. 이는 기술의 가속이라는 폭주 효과를 발생시켰다.
이미 공저자들이 2012년에 출간한 <어번던스>에서 기하급수적 성장 곡선을 그리는 10개의 기술을 소개했는데, 이는 컴퓨터, 센서, 네트워크, 인공지능, 로봇공학, 3D 프린팅, 증강현실 및 가상현실, 생명공학, 블록체인이었다. 아무튼 이 기술은 컴퓨터 성능의 증가와 함께 '신과 같은 존재'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볼 수 있다. 2012년부터 2022년 사이엔 해마다 컴퓨터 성능은 매년 10배씩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이같은 기적의 시대를 살고 있음에도 우리 인간은 이를 체감하지 못한다.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의 뇌가 이를 대규모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20세기 들어서 신경과학 분야는 뇌와 컴퓨터를 비교하기 시작한 후 대도약을 이루었다. 우리는 인터넷을 '월드와이드맵', 유전자를 '코드', 우주를 '네트워크'라고 부른다.
정보 과부하는 뇌를 지치게 하고 정신을 위협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아마도 인간의 주의력을 침범하고 점령하고 식민지화한다. 인간의 주의력 대역폭은 50~120비트에 불과하다. 현실은 고작 수십 비트 폭의 채널을 통해 인식된다. 타인의 말을 청취하려면 약 60비트의 주의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얘기할 때 게임은 끝난다. 주의력이 모두 소진되기 때문에.
2024년 기준으로 사람들은 소셜 미디어를 하는 데 하루 평균 약 2.5시간을 소비한다. 금붕어의 주의력 지속 시간은 3.5초~9초 정도로 추정한다. 하루에 2시간 넘게 소셜 미디어에 빠져든 사람의 주의력 지속 시간은 이보다도 짧다. 이런 상태에 어울릴 법한 대상은 '배고픈' 곤충이다. 벌은 꿀을 찾아다닐 때 1~2초 만에 꽃에 머물지를 결정한다. 현대인의 뇌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갈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딱 그 정도다.
더 큰 문제는 확증 편향이다. 정보 과부하에 직면하면 이는 과속 모드로 전환된다. 뇌는 핵심적 신념에 부합하는 사실을 찾아내고, 다른 모든 상반된 증거들은 무시함으로써 정보의 홍수를 견뎌낸다. 이는 인류의 선조가 아프리카 초원에 살 적에 형성된 메커니즘이자 DNA로 후손에 유전된 결과이다.
AI와 기술 융합이 만드는 새로운 문명
AI를 로봇공학과 합성생물학 그리고 다른 융합적 기술들과 결합해 중대한 난관에 도전하려는 기업인은 AI와 장기 재생을 융합하여 장기 부족을 해결하려 한다.
장기 재생은 현미경으로 봐야 할 만큼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된다. 첫 단계는 환자의 피부 세포를 채취해 얻은 세포는 유도만능줄기세포로 재프로그램된다. 이후 이 줄기세포들은 유전적 호환성을 보존하도록 설계된 AI 기반 바이오리액터에 투입된다. 이때 AI가 조직 조립의 모든 단계를 모니터링한다. 다음 단계에선 3D 바이오프린터가 스캐폴드를 활용해 조직을 한 층씩 쌓아 올리면서 장기를 형성한다. 센서는 세포 성장을 위한 환경을 완벽하게 유지한다. 마지막 단계는 이식移植이다.
지금껏 노련하고 뛰어난 인간 의사가 성공적 이식을 위해 오랜 시간 사투를 벌였지만, 이젠 로봇 의사가 이를 수행한다. 단발성이 아니라 조립라인을 갖춘 산업으로 변모한다. 인간의 장기를 대량 생산하려는 발명가 딘 케이먼은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한 특허만 해도 1,500건에 달한다.
또 AI와 휴머노이드의 융합으로 노동의 한계를 넘어서고, AI와 합성생물학의 융합으로 멸종滅種을 되돌리기도 한다. 우리는 죽은 존재들과 공존하고 있다. 탈멸종脫滅種된 종들이 지금 우리 근처의 생태 보호구를 돌아다닌다. 태즈메이나 호랑이가 우리의 간을 먹어버린다 해도 딘 케이먼이 새로운 간을 배양할 수 있고, 아이로봇 마피아의 후손인 로봇 의사가 이를 제자리에 넣어줄 것이다. 우리는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
풍요의 디스토피아
풍요의 역설은 또다시 반복된다. 각가의 새로운 해결책은 일련의 새로운 문제를 낳는다. 다만 지금은 그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21세기엔 풍요에 따른 문제가 4천 년 뒤, 심지어 40년 뒤에 나타나지 않는다. 단 40일 만에 나타난다. 소셜 미디어가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기까지 대략 그 정도 시간이 걸렸다. AI가 가짜 음성을 만들어내고, 대규모 언어 모델이 '합성 소음'으로 웹을 뒤덮는 데 걸린 시간도 대략 그 정도다.
이제 우리는 풍요의 어두운 면, 가령 통제 불능 AI나 바이오 테러, 취약한 민주주의에 시선을 돌리려 한다. 우리는 새로운 문제들을 탐구해야 한다. 동시에 이런 문제들을 만들어낸 바로 그 힘들이 해결책도 품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풍요의 시대는 곧 중독의 시대다. 기술이 이 위기를 만들어냈다면 이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될 수 잇다. 휴스턴대학교에선 펜타닐이 혈액뇌장벽을 통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항펜타닐 백신을 개발하고 있다. 또한 중독 자체를 되돌려서 증상이 아니라 원인을 치료하는 심리 요법도 연구되고 있다. 새로운 AI 모델들도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소셜 미디어 게시물을 분석해 우울증의 초기 징후를 감지하고 위험군을 표시할 수 있다. 또한 블록체인 기반 처방 추적 시스템은 펜타닐 위기를 키우는 위조 공급망을 차단할 수 있다. 경주는 이미 시작되었다. 향후 10년 내에 중독을 초래하는 기계를 통제하게 될지 아니면 이런 시스템 때문에 정신이 망가진 최초의 종이 될지 판가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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