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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과 책사 - 한국사의 명암을 가른 관계의 힘
김준태 지음 / 믹스커피 / 2026년 6월
평점 :
관계는 쌍방향이어야 한다. 어떠한 관계도 일방적으로 가꿔 갈 수 없다. 부모와 자식, 스승과 제자, 임금과 신하처럼 어느 한 편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바러잡아 주고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윗사람뿐만 아니라 아랫사람도 할 수 있는 일이다. 상대를 망치고 위태롭게 만드는 것도 양쪽 모두 가능하다. 리더십 못지않게 팔로워십이 필요하고, 관계의 질이 중요한 이유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책의 저자 김준태는 대학에서 한국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성균관대학교 유학동양학과 초빙교수로 있다. <이코노미스트>, <경기일보> 등에서 필진筆陣으로 활동했고, <동아비즈니스리뷰>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아울러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현대경제연구원, 전통문화연구회 등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있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책은 인재를 만나 나라가 바뀌는 순간(1장), 참모의 운명을 가른 군주의 선택(2장), 군신이 만들어 낸 빛과 그늘의 이중주(3장) 등을 통해 '관계' 자체에 초점을 맞추어 마흔 가지의 역사 이야기들을 소개하면서 우리 모두에게 현재 맺고 있는 관계를 돌아보는 거울이 되기를 바란다.
반대파의 목을 쳐서 내 신하를 지킨다
고구려의 고국천왕은 재야에 은거하고 있던 을파소를 국상으로 등용했다. 비록 왕의 결정이었지만 관행을 넘어서는 파격적인 인사는 반발을 불렀다. 을파소의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비판하는 사람이 있었고, 출신이 변변치 못한 주제에 국상이 되었다며 질시하고 헐뜯는 사람도 많았다.
이에 고국천왕은 “국상을 따르지 않는 자는 지위가 높든 낮든 씨족을 멸하겠다”라고 강하게 경고하며 을파소에게 힘을 실어 줬다. 시끄러운 게 싫어 물러섰다가는 개혁 역시 퇴보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을파소는 왕의 결단에 감격했다.
그는 “때를 만나지 못하면 은둔하고 때를 만나면 벼슬하는 것이 선비 된 자의 떳떳한 도리다. 지금 왕께서 나를 깊은 뜻으로 대우해 주고 계시니, 어찌 지난날 은둔했던 삶을 다시 꿈꾸겠는가!”라며 혼신을 바쳐 국정에 매진했다.
<삼국사기三國史記>는 을파소가 “정성을 다하여 나랏일을 수행하였으며, 정치와 교화를 밝히고 상벌을 신중히 한 덕분에 백성이 편안하였고, 온 나라가 무사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백성 구휼제도인 <진대법>(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수확기에 돌려받는 환곡제도)을 시행했다.
권위는 실력에서, 반역은 공포에서
왕건의 마음을 떠나게 하고, 나아가 쿠데타를 일으킨 정적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다름 아닌 궁예의 책임이다.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임금으로서 통치한 기간이 18년이다. 만약 궁예의 자질이나 능력이 부족했더라면 후삼국 중 가장 넓은 땅을 차지한 나라를 세우지도, 18년 동안이나 군주의 자리에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양길의 부하였던 궁예가 양길을 축출하고 임금으로 추대되었을 때만 해도 그는 “병사들과 더불어 즐거움과 괴로움, 어려움과 편안함을 함께하였고, 상벌을 내림에 있어 공정하고 사사로움이 없었다”라고 한다. “그리하여 뭇사람들이 경외하고 사랑하여 그를 옹립”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타락하고 오만해져 “제멋대로 부당한 형벌을 집행하였고, 처자식을 살육하였으며 신료를 죽이는” 등 잔혹한 정치를 일삼았다. “백성이 도탄에 빠져 편안하지 못한데도” 돌보지 않았다. 이런 임금에게 신하의 충성과 헌신을 기대하긴 어렵다.
명검을 호신용 칼로 쓴 리더
아버지 공민왕이 신하에게 무참히 시해당하고 열 살 어린 나이에 급작스레 왕이 된 우왕에게 조정은 믿을 만한 사람이 하나도 없는 공포의 공간이었다. 그 불안을 사냥과 유희를 통해 떨치려 한 것일 수 있다. 그 와중에 충성스러운 백전노장이자, 한결같이 자신이 잘 되라며 잔소리해 주는 최영을 우왕은 믿고 의지했다.
다만 최영을 나라를 위해 쓴 것이 아니라, 자신을 지키는 데만 썼다. 최영의 힘을 궁궐 안에 가둬 둔 것이다. 훗날 위화도 회군을 초래한, 이른바 ‘요동 정벌’ 때도 직접 출진해 정벌군을 지휘하겠다는 최영을 우왕이 굳이 자신 옆에 묶어 두지 않았다면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막강한 힘과 굳건한 충성심을 가진 신하가 있더라도 리더가 잘 활용해 올바른 방향으로 쓰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더욱이 최영처럼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명령에 절대복종하는 유형의 신하에겐 리더가 적합한 명령과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한다.
시스템 위에 군림하는 왕권의 벽
조선 개국의 장을 연 정도전의 비극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재상 정치라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었지만, 왕이라는 존재는 시스템 위에 있다. 오늘날 입헌군주제처럼 수상의 권한이 제도적으로 보장된다면 모를까, 정도전 시대의 재상 정치는 임금이 승인해야만 존립할 수 있고 임금이 마음먹으면 언제든 무너뜨릴 수 있는 위태로운 제도였다.
물론 재상을 통해 세습 군주제의 한계를 보완하겠다는 정도전의 노력은 의미가 있다. 정도전이 구상한 수준의 재상 정치를 시행한 것은 아니더라도 자신을 보완해 줄 재상, 자신과 다른 시야에서 반론을 해 줄 재상, 국정의 실무를 꼼꼼히 맡아 줄 재상을 등용해 적극적으로 권한을 위임한 군주들 대부분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지 않은가. 세종이 황희, 맹사성 등 명재상들과 함께 태평성대를 이룬 것처럼 말이다. 정도전의 말로는 결국 그의 욕심 탓이라고 볼 수 밖에.
독주가 낳은 비극, 시스템의 부재
권한과 임무가 집중되면 효율이 좋아질지는 모르나, 위험 역시 함께 증가한다.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조직 전체가 마비될 수 있다. 김종서가 쓰러지자, 조정 안에 단종을 지켜 줄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던 것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김종서가 혼자 모든 것을 떠맡지 않고 유사시 단종을 보위할 시스템을 구축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부재하더라도 역적을 신속히 제압할 수 있는 경호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면 어땠을까?
안타깝게도 단종은 김종서만 믿었다.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었다. 또 김종서도 권력이 자기 손 안에 있다고 안하무인 격 국정 운영을 한 결과가 아닐까? 왕위를 찬탈당했다는 감상적인 평가는 하고 싶지 않다. 리더는 나라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김종서의 탐욕과 단종의 무능함이 빚은 역사의 참극이었다.
당쟁 속에서 홀로 외친 올곧은 소리
높은 자리에 있는 리더는 늘 고독하다. 임금이 속내를 비치면 긴장하거나 이용하려 들지, 순수하게 공감해 주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다. 또한 모두가 임금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지만 무슨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으니, 임금은 늘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그런 영조에게 박문수는 답답한 가슴을 틔워 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위선이나 겉치레 없이 투박하지만 투명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박문수가 영조는 반가웠을 것이다. 임금의 기분이나 조정의 여론은 신경 쓰지 않고, 할 말을 하고 할 일을 하는 그의 존재가 영조는 소중했을 것이다. 영조에게 박문수는 단순한 신하가 아니라, 가면을 벗고 진심을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였다.
이밖에도 책은 고구려, 신라 등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넘나들며 우리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왕과 책사의 관계를 재미난 필치로 풀어내고 있다. 이속에서 우리는 삶의 교훈을 얻고, 나아가 진정한 리더십과 팔로워십을 성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역사 공부를 즐기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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