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5미터 세계사 - 방구석에 누워만 있었는데 역사 천재가 되어버렸다
히스토리카 지음, 김효진 옮김 / 더퀘스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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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 종이, 직물, 시계 등 역사는 언제나 사물들과 함께 움직여왔다. 내 반경 5미터 안에서 만날 수 있는 사물에는 어느 왕조나 국가의 흥망을 넘어, 때로는 그보다 긴 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거대한 흐름에서 시선을 돌려 역사의 곁길에서 이어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 사람과 기술, 시대와 자본이 얽히며 만들어낸 또 하나의 드라마가 보이기 시작한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히스토리카 크리에이터는 역사 콘텐츠 채널을 운영하며, 쉽고 재미있게 엮어내는 스토리텔링으로 주목받고 있다. 여섯 개 파트로 구성된 책은 유리의 역사(파트1), 세라믹의 역사(파트2), 종이와 책의 역사(파트3), 직물의 역사(파트4), 나무와 인간의 역사(파트5), 시간과 시계의 역사(파트6) 등을 통해 방구석 물건들에 담긴 역사를 풀어낸다.


독거노인인 내가 거주하는 원룸 안을 둘러본다. 책상, 책꽂이와 서재들, 수많은 책들, 데스크톱 PC, 시계, 필통, 옷걸이, 원예 화분, 옷장 등등 내 시야를 가득 채우는 물건들이다. 도대체 이 속에 무슨 역사가 숨어 있는지를 발견하고자 지금 이 책 '반경 5미터 세계사'를 읽고 있다. 우리 모두의 삶 또한 역사 그 자체임을 이해할 수 있다.   


유리의 역사


유리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거쳐 로마 제국의 핵심 교역품으로 자리 잡았다. 모래를 녹여 만든 작은 컵 하나가 어떻게 세계 무역과 도시의 풍경을 바꾸었는지를 따라가 보자. 기술이 세상을 연결하는 방식이 얼마나 강력한지 실감할 수 있다.


13세기 무렵엔 이슬람 세계에서 내열 유리가 등장, 고온에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 이 유리는 조리와 저장에도 활용될 수 있었기에 유리의 실용성을 한층 넓혀 주었다. 남송南宋의 문헌 <제번지諸蕃誌>(1225년)에도 기록되어 있을 정도로 중국에도 전파되었으며, 이슬람의 유리 기술은 유럽에도 영향을 미쳤다.


(사진, 14세기 이슬람의 유리 램프)    


베네치아 유리 장인무조건 무라노에 거주해야 했고, 자손 대대로 섬 밖으로 나가는 것조차 금지되었다. 사실상 연금에 가까운 조치였다. 왜냐하면 베네치아의 유리 공예는 국가를 지탱하는 핵심 산업이자 제조 기술은 국가 기밀이었기 때문이다. 유리 장인들에게 높은 지위와 특권을 보장하는 대신, 기술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을 막고자 했다.



(사진, 베네치아 무라노섬에서 제작된 고블릿 형태의 잔)

한편, 15세기 피렌체 공화국의 지배자 코시모 데 메디치는 여러 차례의 시도 끝에 유리 장인 바르톨로 데 루이지를 영입하는 데 성공했으며, 17세기 프랑스의 재무장관 장바티스트 콜베르도 베네치아 주재 영사를 통해 온갖 방법을 동원한 끝에 1664년 열두 명의 장인을 프랑스로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1682년에 완공된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에는 이런 숨은 이야기가 있었다.

기술 독점이 무너지자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향력이 약화됨에 따라 경제 번영과 문화적 우위도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후 유리 산업은 여러 지역으로 이동했다. 베네치아와 교류했던 보헤미아를 시작으로 네델란드, 북유럽 등에서도 유리 산업이 성장했다.

세라믹의 역사

흙을 굽는 기술은 토기와 도기, 그리고 자로 발전하며 인간의 생활 자체를 비꿔놓았다. 특히, 동양의 도자기를 따라 만들려고 유럽이 수십 년 동안 기술 경쟁에 매달리고, 웨지우드 같은 브랜드까지 탄생시킨 과정은 마치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진다.

백자는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장기간 축적된 기술과 지역적 특성의 결과물이었다. 중국 남북조 시대인 6세기 무렵 처음 등장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당나라를 거쳐 송나라에 이르러 전성기를 맞이했다. 특히 송나라 자기는 완성도가 높아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지로 수출되었다.


(사진, 중국 북송 때의 자기 화병)

백자는 ‘백색 황금’이라 불릴 만큼 귀하게 여겨졌고, 연금술로 백자를 만들겠다는 시도로까지 이어졌다. 18세기 초, 독일 작센의 군주였던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는 열렬한 도자기 애호가로 많은 자금을 들여 동양의 도자기를 수집했다. 프로이센 국왕에게 쫓기던 젊은 연금술사를 보호 명목으로 데려와 연금술을 펼치도록 했지만 여의치 않자 황금 대신에 자기를 만들도록 급선회했다. 작센 지역에선 자기 제조에 필수 재료인 카올린이 산출되고 있었기 때문에 1709년 유럽 최초로 백자 제작에 성공했다.

영국의 '웨지우드' 이야기를 살펴보자. 영국의 도공 집안에서 태어난 조사이어는 11살에 천연두에 걸려 그 후유증으로 오른발에 장애가 생겼다. 당시 도공이 사용하던 물레는 오른발로 작업대 아래 원판을 차서 회전시키는 방식이어서 그의 발은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에 그는 새로운 도기 제작 방식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업을 이어오던 형제들은 이를 거절했다.

결국 그는 21살 쯤 집을 나와 다른 도기 공방에서 일하게 되었고, 곧 주목받아 24살에 공동 경영자 위치에 오르게 되었다. 품질 개선과 새로운 녹색 유약의 개발 등과 함께 상인들에게 판로를 개척하는 역량까지 내보였다. 마케팅 감각까지 갖춘 인재였던 거다.


(사진, 1809년 경 웨지우드 매장)

1760년 경 독립한 조사이어는 장인의 감에 의존하던 기존 방식를 버리고 실험 결과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반복해서 검증하는 과학적 방식으로 접근했다. 그 시기 영국의 산업혁명과 맞물리며 기계를 통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짐에 따라 일정한 품질의 제품을 효율적으로 공급할 수 있었다. 그가 제작한 티 세트는 국왕 조지 3세의 샬럿 왕비의 호평을 받아 왕실 납품업체로 지정되었다. 이에 그의 성 '웨지우드'는 영국을 대표하는 고급 도자기 브랜드로 상징되었다.  

종이와 책의 역사

종이와 책은 정보 시대의 시작점을 보여준다. 종이 한 장이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을 퍼뜨리고, 세상을 더욱 빠르게 연결하기 시작했다는 점을 보여준다. 종이는 중국에서 시작해 장기간에 걸쳐 서쪽으로 이동했다. 종이 제작이 막 시작된 하룬 알 라시드 시대의 바그다드엔 이미 100곳이 넘는 서점이 있었다고 알려진다. 우리가 매일 넘겨보는 노트와 책, 스마트폰 속 정보들 역시 그 흐름 위에 놓여 있다.

751년 이슬람 아바스 왕조와 중국 당나라 군대가 현재 키르기스스탄의 탈라스 강 유역에서 충동했다. '탈라스 전투'이다. 아바스 왕조의 승리로 인해 중앙아시아의 주도권이 이슬람 세력으로 넘어가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 붙잡힌 중국인 포로들 중 제지 기술자가 있었고, 이들에 의해 제지 기술이 전해졌다는 일화가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연구자들도 있다. 이 일화는 11세기 페르시아 작가 알타알리비의 기록에 근거하는데, 이 기록은 탈라스 전투가 일어난 지 한참 후에 작성되었고 동시대의 사료史料에선 전혀 확인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탈라스 전투 이전부터 사마르칸트에서 종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 아무튼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종이가 제작되고 있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사진, 종이의 전파 경로)

1040년대에는 북송의 관리이자 발명가였던 필승이 점토에 한자를 하나씩 새긴 활자 인쇄법을 고안했다. 이는 각각의 문자를 조합해 사용하는 현대적인 활판 인쇄와 가까운 방법이었다. 그러나 필승의 혁신적인 발상은 한자 문화권에서 적용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자는 필요한 활자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점토를 구워 만든 활자는 쉽게 깨지고 내구성이 떨어졌다. 이러한 한계로 인해 필승의 활자 인쇄법은 실용화되지 못했다.

이같은 한계는 13세기 한반도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그 실마리는 재료의 변화였다. 고려에서는 화폐 제작 기술을 응용해 청동으로 활자를 제작하는 금속활자 인쇄술이 고안되었다. 1377년에 인쇄된 불교 서적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은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릴 적 학교에선 쿠텐베르그의 금속 인쇄술이 성경을 제작하여 보급하는 일종의 지식 혁명으로 칭송받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배웠지만 이는 수정돼야 할 역사가 되고 말았다. 지금은 세계 여러 나라에서 고려의 금속활자 인쇄술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직물의 역사

사람들은 더욱 부드럽고 가벼운 옷감을 원했고, 더 빨리 만들기 위해 기계를 돌리기 시작했고, 그 욕망은 산업혁명을 불러왔다. 면직물 공장이 세워지고 도시에는 굴뚝이 솟아올랐으며, 노동자들은 기계에 일자리를 넘겨주지 않겠다는 러다이트 운동까지 벌였다. 

1804년, 프랑스의 조제프마리 자카르가 자카르 직기를 발명했다. 실은 1801년에 박람회에서 처음 선을 보였고 1804년에 특허를 취득했다. 자카르 직기는 펀치 카드라는 구멍이 뚫린 카드를 사용해 직물의 무늬를 자동으로 제어하는 기계다. 카드가 직기를 통과할 때 구멍이 뚫린 부분에 바늘이 통과해 날실을 들어올리고,구멍이 없는 부분은 바늘이 통과하지 못해 날실이 그대로 남는다.

이처럼 구멍의 배열에 따라 자유롭게 무늬를 만들 수 있었는데, 같은 카드를 길게 이어붙이면 반복되는 패턴을 짤 수 있고, 카드를 바꾸면 복잡하고 변화무쌍한 무늬도 짤 수 있었다. 입력 되는 정보에 따라 출력 결과가 달라진다는 점에서, 이 장치는 프로그래밍의 원리를 구현한 것이었다.

이밖에도 책은 '나무와 인간의 역사'와 '시간과 시계의 역사'가 이어진다. 나무는 집을 짓고, 배를 만들고, 도시를 확장하는 데 곡 필요했던 재료였다. 인류 역사상 나무(목재)를 많이 소비한 분야 중 하나가 배를 만드는 일이다. 중국 명나라 초기의 '정화의 대원정'을 위해 유례없이 많은 외양 항해선이 건조되었다. 정화 원정에 동원된 함대 규모는 평균 60척 이상의 선박이었다고 한다.  

인류는 언제부터 시간을 측정했을까? 이는 대부분 알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렇다. 과거라고 시간이 더 느긋하게 흐르지 않았을 것이다. 다만 사람들은 점점 더 정확한 시간을 알고 싶어 했다. 특히, 바다 위에서 시간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기술은 대항해시대의 지도를 다시 만들었다.


아직 인류 역사엔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가 많다. 새로운 유적이 발견되고, 유전자 분석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그동안 우리들이 당연히 믿어왔던 역사도 새롭게 쓰이고 있다. 미래의 역사 또한 하나의 역사임에 분명하다. 그 미래의 역사도 방구석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는지 모른다. 역사책 읽기를 즐기는 모든 분들에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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