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은 어떻게 삶을 변화시키는가 - 복종 본능에서 깨어나 주체성을 회복하는 행동과학
수니타 사 지음, 이윤정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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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사회운동은 단 한 사람의 선택에서 시작된다. (중략) 가정에서 일에서 인간관계에서, 집과 일터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학부모 회의에서, 우리 모두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을 날마다 마주한다.

순응할 것인가? 아니면 저항할 것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는지에 따라 우리 자신의 삶만 바뀌는 게 아니다. 그것은 세상을 바꿀 수도 있다. - '들어가며' 중에서


책의 저자 수니타 사는 미국 코넬대학교 SC존슨경영대학 교수로 조직심리학 분야의 권위자로 영향력, 권위, 순응과 저항애 대한 획기적인 연구를 주도한다.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의학과 심리학을 전공하고 런던경영대학원 MBA를 거쳐 카네기멜런대학교 테퍼경영대학원에서 조직행동심리학 석박사학위를 받았다.

총 3부로 구성된 책에서 저자는 당신의 '네'는 진정한 '네'가 아니다(1부), 진정한 '아니요'를 선택한다는 것(2부), 누구나 나만의 방식으로 저항할 수 있다(3부) 등을 통해 저항이란 개념을 단순한 반항 행위가 아닌, 개개인의 성장과 사회 변화를 위한 필수 도구로서 새롭게 조명한다.

'네'라는 대답의 의미와 '아니요'라는 대답의 의미, 그리고 두 가지 대답 중에서 반드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야기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자신의 가치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순응하도록 타고났다

순종과 선善함을 동일시하는 도덕적 공식이 늘 당혹스러웠던 저자, 엄격한 가정에서 자란 사람임에도 이 공식을 의심하고 거스르며 살아왔다. 어릴 적부터 복종하는 법에 관해서라면 세계 최고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말이다.

순종 = 착한 것
저항 = 나쁜 것

우리들은 어릴 때부터 복종하라고 배운다. 처음 일상에서 마주하는 권위자는 주로 부모로 우리를 돌보고 생존하도록 돕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런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후 등장한 교사들은 읽기와 간단한 셈 외에 가만히 앉아 있기, 손 들기 등 교실에서 지켜야 할 사회적 약속도 가르친다. 중학교에 진학하면 친구들이 하는 방식대로 따라야 한다. 이 압박도 상당하다. 이런 초기 훈련은 심리적, 사회적, 심지어 신경학적으로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긴장감에 귀 기울이라

긴장은 종종 의구심의 형태로 나타난다. 어쩌면 밀그램의 전기충격 실험에서 피험자被驗者들이 느꼈던 것도 의구심일지 모른다. 아마도 이렇게 자문했을 것이다. 이게 정말 괜찮은 걸까? 안전하긴 할까? 내가 정말 이걸 해야 하나? 등등. 긴장은 불안으로도 드러날 수 있다. 밀그램은 이를 직접 목격했다.

의구심과 불안이란 일반적인 증상은 저항에 저항하려는, 우리 깊숙이에 내재한 긴장감에서 비롯된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복종하라고 배우는 우리는 선택지에 저항이 있을 때 그것에 적극적으로 저항한다. 요청받은 것과 실제로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옳다고 배운 것과 옳다고 아는 것 사이에서 긴장을 느낀다. 

어떤 상황에 대해 의구심이 들 때 우리는 쉽게 권위적인 확신을 따르려 한다. 긴장감을 억눌러 갈등을 피하고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 조롱이나 판단을 회피한다. 단지 예의를 지키기 위해, 가해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소란을 피우지 않기 위해 상황에 순응한다. 타인들도 이미 이를 잘 알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예를 들어, 직장 회의에서 다른 모든 사람이 하는 대로 새 예산안을 승인하는 투표를 할 때 비록 확신은 없어도 이렇게 생각한다. 다들 이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게 맞겠지. 또 술집에서 나온 뒤 다른 이들과 함께 차에 올라탄다. 비록 운전자가 술을 두어 잔 마셨지만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하면서. 
우리는 저항 여부를 결정할 때 활용해야 할 가장 강력한 두뇌의 도구 중 하나인 긴장을 간과한다.


진정한 '네'를 말해야 할 때
 


한번은 저자가 동료로부터 '순종하기 싫은데도 어쩔 수 없다고 느낄 때면 ‘악어의 미소’를 짓는다'는 말을 들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상황에서 미소를 짓는 게 반직관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우리들의 모든 미소가 진짜 긍정적인 감정을 나타내진 않는다는 사실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회적으로 높은 권력자들(사회적 권한 및 지위가 높거나 주류 정체성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자신이 웃고 싶으면 웃을 가능성이 비교적 높은 반면, 낮은 권력자들(사회적 지위가 낮고, 권력이 약하며, 소외된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기분이 어떻든 웃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자주 느낀다.

억지웃음인 '악어의 미소'는 일종의 생존 전략이며, 특히 여성들은 상대를 회유하는 신호로써 이를 기본적으로 장착하고 있다. 이 미소는 오랜 세월 동안 당연시되어 온 순종과 동의의 산물이다. 진짜 동의를 의미하지 않더라도 주변 사람들에겐 그렇게 해석되곤 한다. 우리는 '위협하지 않아요, 당신의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양보할게요, 순순히 따를 거예요' 등을 말하는 대신 악어의 미소를 짓는다.


저항은 성격이 아니라 연습이다


저항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며 또한 일관된 정체성이 아니라는 것. 어제 저항적이어도 오늘은 순응적일 수 있다. 저항은 하나의 행동이며 상황에 따라 가변적可變的이다. 타고나길 ‘선한’ 혹은 ‘악한’ 사람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도덕적이거나 비도덕적인 행동이 존재하듯, 세상에는 완전히 저항적인 사람도 완전히 순응적인 사람도 없다. 순응에서 저항으로의 움직임은 언제나 진행 중이다. 

그러나 타인에게서나 우리 자신에게서 목격하는 이러한 저항의 순간들은 우리의 핵심적인 자아 인식을 바꿀 힘이 있다.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며, 무엇이 가능하다고 인식하는지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이는 어떤 사회에서 살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도 형성한다.


부당한 상황에 매번 저항할 필요 없다


진정한 '아니요'는 자주 뉴스에 오르내린다. 넬슨 만델라가 대중을 이끌고 요하네스버그를 행진하며 흑인을 차별한 아파르트헤이트 정권의 통행금지를 어겼을 때, 마하트마 간디가 수천 명을 이끌고 영국의 소금세에 항의하며 아라비아해 바닷가로 향했을 때, 로자 파크스가 짐 크로 법의 '분리하되 평등'이라는 법제에 맞서 자리 양보를 거부했을 때처럼.

모든 저항 행동 앞에 수십 번, 수백 번, 어쩌면 수천 번의 의식적 순응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은 저항이 위축된 것이 아니라 잠시 유예된 것이었다.

만델라는 얼마나 많은 날들 동안 통금 한 시간 전에 문을 닫고 다음 날 아침까지 열지 않았을까? 
간디의 지지자들은 해안에서 약간의 소금을 손에 쥐기 전에 몇 번이나 어쩔 수 없이 소금세를 지불했을까? 로자 파크스는 1955년 몽고메리에서 자리 양보를 거부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날들 동안 분리 법규에 순응하며 살았을까?

평범한 사람들은 언젠가 순응하지 않을 날을 계획하며 매일 의식적으로 순응한다. 인종차별적인 농담 앞에서 삼켜버린 반박이나, 성차별적 발언이 나온 회의실 테이블 아래 아무도 보지 못한 채 꽉 쥔 주먹일 수 있다. 겉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듯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꾹 다문 입술과 평온해 보이는 악어의 미소 이면엔 때를 기다리며 준비 중인 진정한 ‘아니요’가 버티고 있다.

이건 내가 아니야

행동은 말보다 목소리가 크다. 특히 그 행동이 반복된다면 말이다. 또다시 부패를 모른 척하라는 지시를 받은 뒤 마침내 회사를 떠나기로 한 보조금 담당자 세라도 비슷한 깨달음을 얻었다. '
이건 내가 아니야.' 이 깨달음 이후 그녀는 사표를 냈다.

지난 몇 년간 저자가 저항에 관해 인터뷰했던 수많은 사람은 비슷한 표현을 떠올리곤 했다. 그들은 자신이 전적으로 동의하지 않는 일에 마지못해 따르거나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만 할 때 속으로 되뇌었다. '이건 내가 아니야. 나는 이런 사람이 아니야.'

이러한 내면의 독백은 근본적으로는 인지부조화의 순간에 드러나는, 그러니까 충돌하는 두 신념의 불일치에서 느끼는 불편함이다. 스스로 규명한 가치관에 따라 당신이 생각하는 나는 누구인가와 실제 행동이 반영하는 가치관이 부딪치는 것이다. 이 상반된 신념들은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해소되어야 하는 압박을 만들어낸다. '
지금 나는, 내가 생각하는 나 자신과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있다.'

더 나다운 사람이 되기만 하면 된다

다시 말해 다양한 목소리들이 저마다의 진정한 ‘아니요’를 부르는 합창이다. 어떤 목소리는 크고 우렁차고 어떤 목소리는 작고 조용하다. 이 목소리들이 항상 조화를 이루는 것도 아니고 같은 악보에 따라 부르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모두들 고유한 방식으로 하나의 저항 찬가에서 중요한 파트를 맡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저항은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수단일 뿐 아니라 우리가 지향하는 자아에 도달하게 해주는 여정이기도 하다.


저항은 우리의 가정, 일터, 지역사회 그리고 그 너머의 세상을 변화시킨다. 하지만 저항이 주는 가장 큰 선물 중 하나는 더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게 함으로써 우리 스스로도 변화시킨다는 점이다.

과감하게 저항하라

저항이 필요한 상황은 나날이 반복된다. 그러나 매번 같은 결말로 끝나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이 순간부터 그런 피할 수 없는 상황들에 대비할 수 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고, 상황을 판단하며, 책임을 받아들이고, 준비와 연습을 통해 능력을 키워가면, 자동 반응의 회로가 다시금 배선되어 예전에는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행동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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