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한의 세계사 - 6천 년 동서양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 최소한의 교양 수업
이다지 지음 / 프런트페이지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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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세계사를 처음 만나는 분, 학창 시절에 배웠지만 기억이 가물가물한 분, 알고는 싶은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한 분들을 위해 교양으로서 알아야 할 최소한의 세계사만 골라 담았습니다. - '들어가는 말' 중에서



책의 저자 이다지는 대학교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중고등학교 정교사로 근무하다가 EBS의 강사로 발탁되어 몰입감 넘치는 강의를 함으로써 학생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었다. 이후 메가스터디로 자리를 옮겨 한국사, 세계사, 동아시아 등 역사 통합 일타 강사로 자리매김했다.

총 2부로 구성된 책은 서양사(1부)에선 서양 고대사, 서양 중세사, 서양 근세사, 서양 근대사, 서양 현대사 등을, 동양사(2부)에선 서아시아사, 인도사, 중국사, 일본사 등을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간 순서에 따라 핵심 내용 위주로 다룬다.

고대 그리스

지중해 문명은 먼 동쪽에서 먼저 탄생한 문명의 영향을 강하게 받으며 시작됐다. 먼저 탄생한 동쪽 문명이란 바로 서아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유럽인들은 이 지역을 해가 뜨는 방향이란 의미로 '오리엔트'라고 불렀던 것이다.

그리스도 마찬가지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한 곳에 모여 살지 않고 규모가 크지 않은 폴리스(도시 국가)를 이루며 살았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 땅은 폴리스들이 지중해 곳곳에 세워진 식민지를 포함하면 오늘날의 그리스 영토에 비해 훨씬 넓었다. 시기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략 폴리스는 800~1,000개나 있었다. 우리들이 익히 알고 있는 아테네, 스파르타 같은 큰 규모도 있었다.(사진,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아테네의 특징은 바닷가에 위치한 지정학적 강점이었다. 이런 이점을 활용해 배를 타고 무역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 매우 부유해졌다. 자유인으로서의 시민 집단 비율도 54%에 육박함으로써 이들은 더 가치 있는 일, 정치에 참여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참정권參政權을 얻고자 전투에 참전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좋은 예로 유명한 철학가 소크라테스가 나이가 들어서도 보병步兵으로 여러 전투에 참가했다는 기록이 눈길을 끈다. 가수로서 인기를 먹으며 한국에서 온갖 영화를 누리다가 징집 소집을 회피하고자 미국 국적을 취득, 미국인으로 살았던 시티브 유 같은 인물은 역사 공부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서양 고대 사회에선 군대에 가는 것이 엄청난 특권으로 여겨졌다. ‘나라를 위해 목숨 걸고 싸웠다’는 게 정치 참여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전쟁에 필요한 장비를 개인이 챙겨야 했다. 그래서 먼 옛날, 전차가 전장의 중심이었던 시대의 그리스 귀족들은 기꺼이 비싼 전차를 사서 참전했다. 그 전차가 오늘날의 강남 아파트 한 채 값쯤 된다고 하니, 돈이 많은 귀족들만의 참전 특권이었다.


이후 평민들도 무역으로 부유해지자 스스로 중무장해서 전쟁터로 나갔다. 과거 귀족 중심의 전투 방식이던 패러다임이 평민 주축의 중장보병 방식으로 변하며 소위 '팔랑크스 전술'이 폴리스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방패와 긴 창을 들고 오와 열을 갖춘 진陣을 펼쳐 적을 밀어냈던 것이다. 이렇게 시민 병사들의 역할이 커지면서 아테네 남성의 정치 참여가 점차 확대되었다. 그렇다. 군대에도 가지 않은 사람은 정치인 자격이 없는 것이다. 신성한 국방 의무를 저버리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잡소리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치인들이여, 역사 공부를 좀 해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넓은 영토를 장악했던 기존의 오스만 제국이 해체되면서 서아시아의 지도는 다시 그려진다.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던 아랍 지역, 즉 오늘날의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요르단 등이 독립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 제국을 무너뜨리고자 했던 영국은 아랍인들에게 중대한 약속을 했다.

"우리 편에 서서 오스만 제국과 싸워주면, 전쟁 후에 아랍 국가들의 독립을 보장해 줄게!"

그런데, 장기전에 돌입하자 전쟁자금의 부족을 메우려고 유대인 재벌들에게 손을 내밀며 돈을 지원해주면 옛 고향인 팔레스타인에 국가를 세우는 일을 돕겠다고 약속해 버렸다. 또 영국은 프랑스와 비밀 협정을 맺어 아랍 땅을 나눠 차지하기로 했던 것이다. 요샛말로 하자면 '이중 분양 사기'인 셈이다. 

결국 전쟁이 끝난 뒤 유대인들은 ‘약속된 땅’을 찾아 팔레스타인으로 대거 몰려들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을 선포했다. 하루아침에 살던 땅을 빼앗기게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주변의 아랍 국가들은 이에 강력히 반발했다. 이런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이후 수차례의 중동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이스라엘은 수많은 이슬람 국가들에 포위된 채 유대교를 믿는 유일한 국가로 남아 있다.(사진, 6~7세기 무렵의 아라비아반도) 


이스라엘은 막강한 군사력과 서방의 지원을 바탕으로 위상이 강화되었지만, 고향을 잃고 난민이 된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철저히 고립되고 말았다. 이는 역사적으로 100여 년 전 영국의 무책임한 외교가 남긴 상처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중동 지역은 석유 산출에 힘입어 부국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현대의 화약고’라고 불릴 만큼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가벼운 입놀림은 외교에 있어서 금기시된다. 후폭풍이 너무나도 거세기 때문이다. 입이 가벼운 트럼프는 과연 이란과 평화 협정을 제대로 체결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역사 속에 그 답이 있다

이밖에도 책은 미국사, 인도사, 중국사, 일본사에 이르기까지 역사 지식이 현실 세계와 이어질 수 있도록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신생국가 미국은 어떻게 강대국이 될 수 있었는지, 인도의 힘이 왜 커지고 있는지, 중동에선 왜 분쟁이 끊이질 않는지 등에 대한 해답을 4백 여 페이지의 역사 속에 담고 있다. 이에 이 책의 일독을 모두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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