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랜드 메이킹북 - 매일의 일을 만드는 여정
소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예약주문


시작은 유튜브였다. 2019년, 나와 모춘은 비슷한 시기에 라인이라는 회사를 퇴사했다. 우리는 사내 커플이었고 함께 살고 있었다. 퇴사를 앞둔 어느 날 밤, 우리는 허름한 집 앞 카페에서 유튜브를 시작한다. 콘티도 계획도 없이 카메라를 켜고, 모춘은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출사표를 던진다. 그 유튜브 채널에 고군분투 브랜드 제작기를 날 것으로 담았다. - '회사원에서 자영업자로' 중에서



책의 저자 소호는 무비랜드 극장주로 2020년 2월 모춘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모빌스그룹을 창업했다. 자체브랜드 전개와 디자인/마케팅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로서의 일을 병행한다. 창업 초기에 브랜드 '모베러웍스'를 전개했으며, 현재는 '무비랜드'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총 일곱 개의 파트로 구성된 책은 사업 존폐 위기(파트1), 시양 산업과 수익 구조의 문제(파트2), 상상의 구체화(파트3), 건축과 공간 디자인(파트4), 영화적 경험 기획(파트5), 큐레이션 시스템의 검증(파트6), 운영과 접객의 시행착오(파트7) 등을 통해 2024년 2월에 개관한 30석 규모의 소극장 무비랜드를 만든 여정을 이야기한다.


"손해 보지 않는 선택만을 쫓는 세상에서 단단한 심지로 근사한 정원을 가꿔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기 있다" - 문상훈(코미디언)


사업 존폐 위기


유튜브 채널(MoTV)를 통해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작업하는 과정을 실시간 공개했기에 이에 따른 반응과 평가를 의식하게 되었고, 콘텐츠 제작이 건강하지 못한 구조로 흘러갔다. 문제의 정점은 2021년 연말에 열린 창업 스토어였다. 현대백화점 더현대 서울의 입점 제안을 받고 무리한 일정으로 백화점 팝업 스토어를 강행했다.


백화전점 영업 종료 후 밤샘 공사, 수천 개의 재고 관리, 디스플레이, 한달 간의 운영 인력 구성 등 어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팝업 종료가 다가올수록 재고 부담은 커졌고, 급하게 추진한 판촉 마케팅 기획은 물론이고 재고 소진에 몰두해야 했다. 결국 남은 것은 수억 원의 재고, 한 멤버와의 이별, 번아웃이었다. 2.5톤 트럭 6대를 불러 재고와 집기 등을 엘리베이트도 없는 5층 사무실로 날랐다. 2022년 1월의 추운 겨울이었다.   


한 달간 진행한 팝업 스토어의 매출은 우수했다. 그러나 외부적인 성과와는 별개로, 내부적으로 한계에 달했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리셋 버튼을 누르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 이상 ‘일’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없었다. 메시지가 모베러웍스 브랜드의 핵심이었기에, 메시지의 고갈은 곧 브랜드의 끝을 의미했다. 일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작업과 삶의 이야기로 시야를 넓혀야 했다.


오래 지속하기 위해선 흔들리지 않는 중심축이 필요했다. 먼저 공간부터 구했다. 2022년 초, 당시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있던 성수동에 터를 잡기로 했다. 애초부터 임대는 고려 제외였다. 2~3년 간 모았던 법인 잉여자금과 대출금으로 일종의 '내 집 마련'처럼 진행했다. 연무장길 골목에 오래된 2층 주택이 매물로 나와 32억 원에 매수했다.


이제 지속 가능한 사업 구조를 고민했다. 일본의 <브루터스Brutus>, 영국의 <모노클Monocle>, 한국의 <매거진 B>처럼 오래된 잡지들은 고유한 관점을 갖고서 매달 반복되는 틀 안에서 이야기를 담아낸다. 이에 아이디어를 얻어서 극장을 잡지처럼 운영하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잡지가 그달의 테마를 정하듯 매달 큐레이터를 선정하고, 그 사람이 고른 영화를 상영한다면, 그 영화들이 모여 우리의 관점이 될 것이라 믿었다. 잡지의 과월호가 한 권씩 차곡차곡 쌓이듯, 이야기가 극장에 축적되는 모습을 상상했다.(사진, 브랜드의 진화)




사양 산업과 수익 구조의 문제 


하고자 하는 일은 ‘극장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콘텐츠업’이기도 하다. 그 관점을 바꾸면 지금은 극장의 위기가 아니라 콘텐츠의 전성시대였다. 다양한 콘텐츠가 넘쳐나는 시대라서 콘텐츠 선별과 제안의 중요성도 커졌다. 같은 콘텐츠라도 어떤 플랫폼, 어떤 관점, 어떤 맥락으로 제시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경험이 된다. 

그렇기에 콘텐츠의 범주를 배급사가 정한 개봉일에 따라 움직이는 ‘신작 영화’로 한정하고 싶지 않았다. 영화관이라는 말 대신에 극장이라는 단어를 의식적으로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특정 영화에 국한되지 않고, 주체적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다. 극장 이외의 공간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샌프란시스코의 애너하임 디즈니랜드는 사람을 동심童心으로 돌아가게 만드는 힘이 있는 곳이었다. 일본 도쿄 다이칸야마의 츠타야 서점은 편안한 공간으로 책을 구경하거나 앉아서 일기 좋도록 설계되어 있다. 에이스 호텔은 어느 지점이든 지역의 중심 커뮤니티 역할을 하고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지역 창작자들과 협업해서 민든 기념품이 지갑을 열게 하는 요소였다. 서울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톰 삭스 전시는 영상 콘텐츠를 보여주는 방식이었다. 지하에 위치한 상영관에서 10분 남짓 영상을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창업 초기부터 B2C, B2B를 병행하며 둘 사이의 균형을 지켰다. B2C에 치우칠 경우 팬층이 두터워지는 반면 수익적 성과와의 연결이 쉽지 않았다. 반면에 B2B는 수익률이 좋은 한편 파트너의 문제 해결에 집중해야 하므로 자체 브랜드의 개성을 드러내기 어려웠다. 그러다가 점점 모베러웍스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점차 해결되기 시작했다.(사진, 무비랜드 전략)



상상의 구체화

이야기를 쓰듯 기획했다. 기획이란 구체적인 상상이다. 쓸 수 있는 도구를 총동원해서, 가능한 한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일. 상상이 내 머릿속에서 그치지 않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형태로 표현되었다면, 그것이 좋은 기획이라고 생각한다.

기획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상상 단계에서 멈추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성동구에 거주하는 2030 직장인 여성이 주말에 찾고 싶은 공간이었으면 좋겠다’와 같은 기획은 하늘에 구름처럼 떠다니는 상상이다. 그 여성이 누구이며, 어떤 경험을 하고 무엇을 느낄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을 때 기획은 비로소 땅에 닿는다.(사진, 스토리만이 살길)


건축과 공간 디자인
 


공간을 만드는 동안 줄곧 ‘이야기’라는 키워드를 구현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했고, ‘수작업’은 그 고민의 결과였다. 모든 수작업은 작업자의 노고가 드러난다. 작업물을 감상할 때, 조형적인 완성도보다 그 이면을 상상하는 것이 더 재미있다. ‘이거 실수해서 덧댄 것 같은데 오히려 귀엽다’ 같은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왠지 작업자와 더욱 가까워진 것 같다.
 

극장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까지는 잃는 상황을 경계했다. 체력도 잃고, 돈도 잃고, 사람도 잃어버리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극장을 만든 후에는 오히려 반대의 상황을 경계한다. 아무것도 잃지 않는 상태로, 안전한 울타리에서 일하면 그 순간은 안락하지만 결과 역시 아무런 감흥이 없다. 기꺼이 잃을 수 있는 상태로 자신을 내던져야 함을 배웠다. (사진,혼신을 다하기)


큐레이션 시스템의 검증

모춘이 무비랜드의 첫 번째 큐레이터가 되어 영화를 골랐다. 이 영화가 향후 큐레이션의 기준이 되므로 오랫동안 공을 들였다. 여러 방식으로 진행해 보았지만 결국 개인의 취향을 기준으로 고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모춘은 영화 4편을 선장했다. <빽 투더 퓨처>, <대부>, <대취협>, <개들의 섬> 등이 바로 그것이다.

무비랜드에서 초대한 첫 큐레이터는 코미디언 문상훈이었다. 그가 속한 '빠더너스'와의 인연은 모베리웍스가 막 시작하던 2020년 무렵 빠더너스 측에서 모베리웍스의 마스코트와 비슷한 스타일의 캐릭터를 만들고 싶다며 연락해왔다. 두 번째는 '돌고래유괴단'의 선우석 감독, 이후 배우 박정민이 참여의사를 표명했다.

무비랜드의 프로젝트는 큐레이터 섭외, 영화 수급, 아트워크 등에 소요되는 시간을 감안해 약 두세 달 앞서 업무가 시작된다. 큐레이터가 섭외되면 먼저 10~15편 정도 큐레이션 영화 리스트를 받는다. 최종 상영작은 4~6편으로 결정되지만 수급아 어려운 영화가 있기 때문에 플랜B 리스트를 받는 거다.

"권투는 이상한 스포츠지. 모든 게 거꾸로야. 고통을 피하기는 커녕 그 안으로 뛰어드니까." -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영화 대사

무비랜드는 큐레이션 극장이다 

일을 좋아하니까 일에 대한 브랜드를 만들었고, 영화라는 마르지 않는 샘을 믿고 극장을 만들었다. 즐거움만이 기다리고 잇으리라 생각했지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전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숙제들이었다. 매주 극장에 나가 팝콘을 튀기고 손님을 만나는 지금, 꿈이란 계속해서 돌아가는 '원'의 형태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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