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잠자리를 뒤척이다 허리가 불편해서 도저히 더 누워 있지를 못하고 좀 전에 일어나 앉아 정좌를 했다. 아직 새벽 4시도 되지 않았다. 그리곤 한 마리 고양이처럼 허리를 펴는 스트레칭을 한다. 이는 허리가 늘 불편한 나만의 의식 절차이다. 젊은 시절, 몸을 막 굴린 탓에 결코 유쾌하지 않는 보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갑자기 얼마 전에 읽었던 도서가 떠올라서 여기저기 쌓아올린 책탑 속에서 찾아 꺼냈다. 어린 시절, 소위 '2류 극장'이라는 동네 영화관에 여동생을 데리고 영화관람을 할 때면 앉은 자리에서 늘 2회 관람을 한 후 집으로 귀가했다. 내 마음을 움직였던 그 장면 그 대사를 다시 음미하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그 욕심을 다 채우면 영화가 아직 상영중일지라도 어두운 길을 더듬거리며 영화관 밖으로 나갔다. 지금 꺼낸 책이 바로 그런 심정이었다.
작가는 현직 교직 생활을 은퇴하고 마음 편하게 세계 여러 곳을 여행 다닌 그 추억을 책 속 내용에 담고 있다. 작가가 다닌 여행지 중엔 나 또한 가족여행을 갔던 곳도 여럿 있었기에 그 시절 추억 속으로 들어가려는 감흥이 또 일어났기 때문에 책을 펼치고 있다. 칠십대 중반을 넘긴 독거노인인지라 자꾸 추억을 먹고 살아간다. 황혼이란 말 그대로 해가 저물어가는 광경이다.
코타키나발루, 이곳은 보르네오 섬 북동부에 위치한 해변이다. 인도네시아가 아닌 말레이시아 영토인데, 그야말로 황홀한 석양 장면이 압권이다. 바다와 하늘이 경계를 잃어버리고 붉게 타 하나의 몸이 된 그런 모습을 연출하는 멋진 스팟이다.

제주도가 고향인 작가는 지인의 소개로 소위 '소개팅'을 가졌는데, 이 남성은 동향同鄕으로 첫인상이 매우 좋았기에 비록 나이 차가 있었지만 객지 생활이란 공통점이 있어서 교제를 이어가며 결국 결혼에 골인했다. 작가의 직장(학교) 근처에 집을 얻어 신혼살림을 시작할 때 남편이 들고 온 짐은 통기타와 영어 카세트 테이프였다고 한다. 낭만이 느껴진다.
내 총각시절의 코타키나발루는 무교동인가 다동인가에 위치했던 맥주 팔던 술집이었다. 친구 또는 직장 동료들과 종종 어울렸던 곳인데, 세종로에 위치했던 직장과 비교적 가까웠고 무엇보다 키가 늘씬한 여성 접대부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던 꽤나 큰 비어홀이었다. 그 당시 난 브라질 삼바 여인을 떠올렸지만 알고보니 보르네오 섬의 휴양지였던 거다. 나중에 꼭 한번 가서 실물을 영접하리라 했던 그 황혼이 물든 해변을 결국 가보지도 못하고 책 속에서나 감상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나의 추억은 여전히 술집에 머물고 있다.
"세월이 흐르면 빛나는 건 새 물건이 아니라 버리지 못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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