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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랑은 늘 시험에 들 테지만
한시원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평점 :
책은 한시원 시인의 시집으로 우리 인간들의 영원한 화두話頭인 '사랑'을 주제로 다루는 듯하다. 처음 서평단에 응모할 때는 도서 제목만 보고 에세이인 줄 알았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다. 평소에도 시詩를 읽고 감상하길 좋아하는 스타일이니까. 최근 펀딩에 참여했던 도서 '시인의 청춘 청춘의 시' 또한 기형도, 이상, 백석 등 7인의 시인의 작품들을 묶은 시집이다.

시를 읽을 때면 늘 하는 생각이 있다. 시인의 감성과 시선은 범인凡人과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는 것을. 그 섬세함과 관찰력은 도저히 흉내를 내기 힘든 경지임에 틀림 없다. 시인 윤동주는 부끄러움과 다짐 사이에서 별星을 세었고, 김소월은 차마 놓지 못한 마음을 노래로 남겼다. 또 미당 서정주는 바람이 키운 스물세 해를 고백했으며, 기형도는 사랑을 잃고서야 비로소 쓰기 시작했다.
그대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을 본 일이 없다
그대만큼 나를 외롭게 한 이도 없다
그 생각을 하면 내가 꼭 울게 된다
- 김남조, '편지' 중에서
이 시는 김남조 시인(1927~2023년)의 시집 '사랑초서'(1974년)에 수록되어 있는 작품이다. 대구 출신 문인으로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규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한 후 서울대학교 재학 시절인 1950년 연합신문을 통해 등단했다. 인생 절정기를 숙명여자대학교에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 노력했던 대표적인 여성 시인이다. 몰래 하는 사랑이 느껴져서 내가 무척 좋아하는 시詩이기에 소개해 본다.

인천 출생의 한시원 시인도 예사롭지 않은 관찰력과 감수성이 그의 작품 속에 흐른다. 즉 평범한 일상의 시선이라면 그냥 놓치고 지나가 버릴 그런 소재를 시로 노래했다. 봄비, 가을, 복사꽃, 해바라기꽃, 숲, 간이역, 달팽이, 벙어리장갑 등이 그러하다.
이 책은 총 7부에 걸쳐 예순아홉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시집의 타이틀이기도 한 '우리의 사랑은 늘 시험에 들 테지만'이란 제목의 시詩는 다섯 작품이나 된다. 누구에게나 청춘 시절은 있다. 이때는 불안하고 미숙하다. 그래서 사랑은 시험에 든다는 표현이 무척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이렇게 아픈 사랑을 우리는 왜 하나요
아무리 애타게 그리워해도
엇갈리기만 하는 사랑을
왜 해야만 하나요
밤하늘에 별빛들이 아른거리며 빛나는 건
혼자 애태운 사랑 때문입니다
(중략)
봄비가 스치는 강 물결을 따라
사뿐히 거니시는 그대가
꽃이 지듯 저만치 어여뻐서
문득
눈물이 흐릅니다
- '봄비를 맞으며 그대를 그릴 때' 중에서

영국 시인 T.S. 엘리어트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 노래했다. 이는 그의 작품 '황무지'(1922년 발표)의 첫 귀절에 쓰인 표현이다. 왜 잔인하다고 했을까? 겨울은 망각의 계절이다. 대지의 생명들도 모두 망각에 빠져 잠이 든다. 그런데, 봄이 찾아온 4월은 겨울잠에 들어있던 대지를 깨운다. 그리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만든다. 그래서 시인은 '잔인하다'고 말한 거다.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라서 전쟁의 폐허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은 한없이 황폐한 반면, 봄의 대지는 새 생명의 꽃 라일락을 피우며 화사한 모습으로 변하니까 영국인들에겐 잔인하다는 것이리라.
며칠 전이 식목일이었다. 칠십 중반인 지금까지 살아온 경험에 비추어볼 때 이 날 전후로 꼭 봄비가 내린다. 내 눈에 봄비는 대지를 촉촉하게 적셔주는 감로수甘露水 같은 존재로 보인다. 반면 한시원 시인은 봄비를 바라보며 홀로 속앓이 사랑을 하는 자신의 눈물이 느껴진 듯하다. 그 아픈 사랑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고 반짝이는 별처럼 그 불빛이 아른거리며 곧 사라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안타까움을 노래하고 있다.
팔 하나가 없다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다리 하나가 없다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중략)
제가사랑하는 것은
당신의 겉모습이 아니라
모든 절망을 딛고 우뚝 설
당신의 굳건한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사랑은 늘 시험에 들 테지만 5' 중에서

이 시집의 시그니처 작품 같은 '우리의 사랑은 늘 시험에 들 테지만' 다섯 째 시를 감상해 보자. 시인은 사랑을 절규한다. 두 팔이 없어도 두 다리가 없어도 사랑할 수 있다고. 그리고 겉모습이 아닌 절망을 딛고 우뚝 설 굳건한 영혼을 사랑한다고 말이다. 앞서 소개한 김남조 시인의 완곡한 사랑과는 비교되지 않는가.
내 마음을 순화시키는 시詩를 사랑할 수밖에
이 리뷰 초안을 작성하는 새벽 시간에 봄비가 내렸다. 봄이 이미 성큼 다가온 듯한데 봄비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은지 빗물을 뿌려대며 시위를 한다. 새벽, 비, 시. 이 조합 참으로 어울린다. 베란다 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시각적으로 나를 정화시킨다면 새벽에 읽는 시집의 글귀는 나의 내면을 더욱 더 순화시킨다. 만물이 푸르게 변하는 이 시절, 시를 좋아하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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