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
박정훈 지음 / 생각의힘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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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률이라는 말을 자주 썼지만, 그것은 인생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는 의도에서가 아니다. 인생을 겸손하게 바라보기 위해 빌려 쓴 것이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자신이 결코 의도하지 않았던 삶이 전개된다 할지라도 실패했다고 여기거나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그 이후에 다시 수많은 가능성의 길, 또 다른 확률의 세계가 동시에 열려 있기 때문이다. - '글을 마치며' 중에서



저자 박정훈은 MBC PD로 시작(1986년) 만 39년 넘게 다큐멘터리, 시사, 교양, 라디오, 편성, 예능, 드라마 등의 책임자를 거친 방송계의 기록 제조기로 평가받았던 인물이다. 한국방송대상의 대상 수상, 삼성언론상, 백상예술대상 작품상, 올해의 좋은 프로그램 대상, 방송프로듀서상 등 30여 차례의 수상기록이 이를 증명한다.

책은 열일곱 가지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는데, 저자는 이를 통해 그간의 삶에서 우연과 선택, 터닝포인트가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빚어내는지를 탐구하며, 현실은 예측 가능한 공식이 아니라 수많은 가능성이 중첩된 '확률의 이야기'임을 발견해간다.

"관찰의 영역에서, 우연은 오직 준비된 정신만을 선택한다"
- 루이 파스퇴르/세균학의 아버지

문과 출신인 내가 수학 공부는 재미없다고 느껴지는 첫 경험이 바로 '확률'이었다. 우리들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들이 확률로만 따질 수 있겠는가? 이는 과학자나 공학자 또는 건축가들이 미래에 발생할 어떤 위험을 따져볼 때 활용하는 수학적 사고법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자신의 인생이 미리 짜인 각본처럼 흘러가지 않았고, 그렇다고 완전한 무질서 속의 우연만으로 이루어지지도 않았으며, 오히려 수많은 가능성이 동시에 열려 있는 상태에서 어떤 선택과 어떤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며 현실로 펼쳐지는 과정에 더 가까웠다고 밝힌다.

성공할 확률이 높아 보이지 않았던 선택들이 결과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음을 경험함으로써 인생은 예측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현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어 준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1986년 9월, 대학 도서관에서 시간을 죽이고 있던 저자에게 친구가 MBC 입사시험 공고가 났다며 함께 시험보자고 제안, 요즘 TV 프로듀서가 인기 직종이라고 부추겼다. TV도 거의 안 보던 저자는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지만 '친구 따라 강남 가는' 격으로 응시했는데, 덜컥 1차 시험에 합격했다. 언론고시반에서 열심히 공부했던 친구는 낙방하고 말았다. 이후 2차 논술도, 3차 집단 토론도, 4차 최종 면접에도 합격하는 우연이 연속되었던 거다.

낙방한 친구에겐 사랑하는 여친이 있었는데, 가끔 직접 만든 김밥을 준비해 도서관에 찾아오곤 했다. 차가운 잔디밭에서 컵라면에 김밥을 함께 먹으며 웃고 지냈던 사이였다. 이런 즐거운 시간들이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친구의 부고 소식을 접했다. 그것도 결혼을 몇 달 앞두고 말이다. 대입 재수를 안 했으면 이 친구를 만나지 못했을 거고 직업도 다른 걸로 바뀌었을 것이다. 인생이란 이렇게 내 의지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2005년,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대학교 졸업식장의 연사로 초정되어 "인생은 점에서 점으로 이어진다"는 역사적인 명연설 장면이 있었다. 순간순간의 결정과 경험들이 미래로 연결된다는 의미이다. 저자도 첫 직장인 MBC를 떠나 SBS로 옮긴 후 첫 작품으로 '사랑의 징검다리'를 기획했다. 프라임타임인 저녁 7시에 정규 편성된 장애인 프로그램이었다.

점을 연결하면 직선이 되지만, 인생은 직선아 아닌 비선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열심히 도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게 되고, 엉뚱한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게 된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니 방향이 옳다면 시간이 지나면서 일정한 패턴을 보인다는 것, 그리고 그 패턴이 그리는 굵은 곡선 중 하나가 나에게는 ‘자업자득’이라는 사자성어로 다가왔다.

"미래가 정해지지 않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오히려 우리가 변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주기에, 희망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195쪽)

'세상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없고, 그 이후에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인생을 결정한다'는 문장은 저자가 환갑날에 깨달은 '에피파니'라고 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의 인생사는 좋은 일과 나쁜 일의 연속이다. 다시 떠올려 보면, 결국 그 일이 있고 난 뒤 어떻게 행동했는가에 따라 좋은 일이 다시 나쁜 일이 되기도 하고, 나쁜 일이었던 것이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되어 결국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인생은 확률 게임이 아니다

책의 저자가 확률이란 말을 도서 제목에 달았지만 인생을 수학적으로 계산하려는 의도는 아니었다. 태평양을 건너는 거북이 등에 낙엽이 떨어질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스스로 의도하지 않았던 삶이 전개될지라도 이를 실패로 결론내고 낙담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이 잘 안풀려 운명 탓을 하는 모든 이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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