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무너뜨리는 가짜 자존감 - 남의 기준에서 벗어나 나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법
노비뷰 지음 / 미다스북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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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더 신경 쓰고 남을 더 바라보며 살아가는 습관, 그것은 결국 삶의 주인이 내가 아니라 남이 되게 만든다.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을 위해 살지 못한 채, 후회만 남긴다면 그것만큼 허무한 인생이 있을까. 삶의 주가 '나'로 자리 잡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 할 일은 '나'의 가치를 인지하는 일이다. - '프롤로그' 중에서



책의 저자 노비뷰는 익숙한 하루에 낯선 질문을 건네는 '새로운 시선'에서 글을 시작한다. 선한 영향력을 지향하며 혼자 떠나는 여행의 고영한 시간 속에서 삶을 관찰하고 마음의 결을 문장으로 옮기는 중이다.


총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된 책은 잘 보이려다 나를 잃은 순간들(1장 굴곡), 처음 마주한 가짜 자존감의 얼굴(2장 인식), 남의 시선을 내려놓기로 한 그날(3장 각성), 내 중심을 다시 설계하는 시간(4장 재구성), 나를 지키는 거리두기(5장 단절), 단단한 나로 나아가는 길(6장 회복)을 통해 가짜 자존감은 자신을 지키는 힘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을 지우는 습관이 된다고 경종을 울린다.  


진짜 자존감 vs 가짜 자존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존감이 높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난 자존감이 높았을까? 생각해보게 만든다. 나이 칠십대 중반의 나는 지난 세월을 돌이켜볼 때 어느 누구보다 자존감이 높았던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다. 나의 사견私見으론 내적 감성, 그것도 긍정적이며 적극적인 감성이 확실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함으로써 자존감이 만들어지고 갈수록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나의 어린 시절은 부유한 가정 환경에서 성장했다. 그야말로 천방지축처럼 뛰어 놀기를 좋아했다. 교육에 엄했던 아버지께서 숙제로 할당한 한자와 고전 공부를 게을리한 탓에 내 종아리는 멍든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난 아버지를 한번도 원망하지 않았다. 비록 어린 나이임에도 이런 훈육 과정은 꼭 필요하다고 받아들였기에 가짜로 공부한 척 행동하진 않았다. 오히려 공부를 하지 못한 이유를 당당하게 밝혔고, 상응하는 매질을 순수히 받아들였다. 이런 성장 과정을 겪으며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자존감은 남과 비교해서 나를 판단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항상 남과 비교하며 살아왔다. 누군가가 나보다 조금만 더 잘나 보이면 마음이 흔들렸다. 여러 사람에게 칭찬을 들어도 '저 사람보단 못하지'라는 말 한디면 순식간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28쪽)



저자의 자존감은 타인의 평가에 따라 출렁거렸던 것이다. 즉 타인의 말에 따라 움직였다. 좋은 말 한 마디에 기분이 업up 되고, 사소한 비난 하나에 며칠씩이나 우울했다. 이는 저자 스스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저 남 앞에서 당당한 척하며 웃어 넘기고 실수해도 '다음에 잘하면 되지'라고 말했지만 , 그 속은 늘 불안했다. 가짜 자존감은 이렇게 작동한다. 반면 진짜 자존감은 '남 앞에서 당당한 척하는 힘이 아닌, 남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나를 지키는 힘'인 것이다.


비교라는 감옥


행복학자들이 흔히 하는 조언이 '남과 비교하지 마세요'이다. 우리 대부분은 마음 속에 '비교하는 씨앗'을 갖고 살고 있어서다. 사실 이는 욕심이란 환경에서 작동한다. 욕심이 없다면 굳이 남과 비교할 필요가 없기에 말이다. 예를 들어, 소유욕이란 뭔가를 더 가지려는 욕구이다. 더 가지겠다는 척도가 비로 비교 대상인 것이다.


국민학교 1학년 때, 내 짝인 여학생은 담임 선생의 친척이었다. 어린 나의 눈에도 그 차별 대우가 심했다. 상대적으로 난 짝의 비교 대상이 되어 뭐든 잘 못하는 학생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난 결코 주눅들지 않았다. 가정 방문 때 담임이 어머니에게 '와이로'(뇌물)를 요구한 나쁜 교육자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시절은 그런 분위기였다.


담임은 미술 수업 준비물로 크레파스를 준비해오길 원했다. 어머니는 학교 가는 길에 담임이 지정한 문방구에 들러 구입하라며 돈을 주셨지만, 난 평소 집에서 사용하던 크레용을 그대로 갖고 갔다. 결국 내 짝의 크레파스와 비교 당했다. 사실 그림을 그리는데 크게 차이가 없었고, 난 미술을 전공한 어머니의 지도를 받고 자란 탓에 이미 그림을 잘 그렸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비교를 성장의 자극으로 삼지 못하고 '항상 부족하다'라는 신념을 키워온 것이 나를 갉아먹고 있었다. 비교는 멈출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비교 앞에서 무너지는 건, 중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중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멀리서 바라볼 줄 아는 거리감이 필요하다. 누구의 삶도 완벽하지 않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모두 저마다의 속도로 버티고 있다. 그 사람보다 나은 삶이 아닌 어제보다 단단해진 나를 위한 삶, 그것이 내가 선택해야 할 방향이다.(72~73쪽)



혼자일 때 보이는 정체성


혼자일 때 두려움을 갖다 보면 시끌벅적한 모임에 합류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사교적 모임도 결국 끝나기 마련이다. 연극이 끝나면 텅 빈 무대만 보이는 것처럼, 이 모임이 끝난 후 귀가하면 결국 텅 빈 방에 나홀로 있다는 공허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누구일까?


이처럼 저자는 혼자 있는 시간마다 이런 물음에 마주쳤다고 고백한다. 또 고요한 분위기를 일부러 만들어 놓고 아무것도 하지 하지 않은 채 앉아 있었더니 무언가 들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포나 스릴러물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환청'을 얘기하는 건 아니다. 마음 속의 진짜 목소리였다. 사람들과 교류하며 '보여지는 나'에 몰두하느라 내면에 있는 '진짜 나眞我'와는 너무 오랫동안 대화 없이 지냈음을 깨달았다.


'신독愼獨'이란 말이 있다. 이는 '나홀로 있을 때도 몸가짐을 바로하고 언행을 삼가하라'는 말로 조선의 사대부 선비들이 지녀야 할 덕목이었다. 더구나 이 말은 <대학>이나 <중용>에서 유래한 유교적 개념이었기에 성리학을 추구하는 조선 양반사회에서야 오죽했겠는가.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항상 상대를 먼저 생각했고 이는 내 목소리를 뒤로 밀어냈다.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만큼은 누구의 기대도 아닌 내 마음의 중심에 섰고, 더 이상 예전처럼 고장 난 사람이 아니라 나로 돌아가는 중이었다.(131쪽)



진짜 나로 살아가겠다는 다짐


나답게 살아야 비로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많은 선각자들이 우리들에게 말해 왔다. 머리로는 이를 알면서도 현실에선 상당히 어렵다. 왜 그럴까?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그렇다. 무리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답게'는 인간관계에서 위험성을 키운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그래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이런 점을 알기에 우리들은 괜찮은 사람인 척 연기하게 된다.


나를 지키는 건,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아니라 나에게 건네주는 인정과 수용이다. 한 번의 거칭한 선언이 아니라, 작은 선택을 포기하지 않는 일상적인 힘이다. 즉 싫다고 말하는 연습, 피곤하면 거절하는 연습, 눈치 보지 않고 감정을 드러내는 연습 등 작은 실천이 쌓이면 자신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가 된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진짜 나로 산다는 건, 거칠고 미완성인 나를 그대로 끌어안는 일이다. 모난 감정, 서툰 말투, 부족한 결정들까지도 부정하지 않고 '괜찮아, 너답다'라고 말해주는 것. 이건 내가 나에게 건네는 가장 정직한 위로이며 가장 단단한 자존의 시작이다.(171쪽)



자신을 일으키는 진짜 자존감을 선택하라


타인의 기준이 만들어낸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망치지만, 자신의 목소리로 쌓아 올린 자존감은 자기 자신을 다시 살린다. 무너뜨리는 방향과 일으키는 방향,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지금부터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는 주변인이 아닌 오로지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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