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선택 - 고전 단편으로 알아보는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외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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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경계에 선 순간, 인간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드러냅니다. 어떤 이는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싸우고 떠나지만,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남습니다, 말을 아낍니다, 혹은 그저 지켜볼 뿐입니다. 이 책은 그 '하지 않는' 선택들에 대해 말합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어 총 여덟 명의 작가들이 쓴 고전 문학 작품들을 등장시킨다. 즉 남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1부)에선 이반 투르게네프의 '무무'와 토머스 하디의 '아들의 거부'를,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2부)에선 기 드 모파상의 '겁쟁이'와 셔우드 앤더슨의 '손'을.


이어서 지켜보는 쪽을 택한 사람들(3부)에선 안톤 체호프의 '내기'와 허먼 멜빌의 '필사원 바틀비'를,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4부)에선 에드가 앨런 포의 '심술궂은 악령'과 레프 톨스토이의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를 우리들 앞에 소환하여 각각의 작품 속 주인공들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를 보여준다.


남아 있기로 결정한 사람들


우리들은 때때로 '떠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마음이 움직이는 심리 반응을 보인다. 변화, 탈출, 저항은 항상 강한 이야기의 힘을 갖지만 떠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말없이 그 자리에 남기로 결정하는데 그렇다고 이들이 결정 장애를 겪는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들의 이야기는 조용하면서도 더 심오하다.


러시아 작가 이반 투르게네프(1818~1883년)의 '무무'는 강아지 이름이다. 러시아의 한 여주인은 농사짓는 노예들을 거느리고 쓸쓸하게 노후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시골에서 데려온 게라심은 듣지도 못하고 말도 못하지만 힘이 세서 일을 무척 잘하는 남자 노예인데, 하녀 타티아나를 엄청 좋아한다. 하지만 여주인은 술주정뱅이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에 화난 성질을 죽이고 게라심은 어쩔 수 없이 두 사람의 결혼을 받아들인다.


하루는 강둑에서 허우적대는 강아지를 발견하고 집으로 데려온 게라심은 '무무'라고 이름을 짓고 정성껏 돌본다. 지성과 사랑을 듬뿍받은 강아지는 8개월 만에 털이 수북한 스파니엘 품종의 멋진 개로 성장해서 게라심의 꽁무니만 따라 다녔다. 집안의 하인들도 무무를 좋아했다. 그러나, 여주인은 무무를 집밖으로 쫓아내라고 집사에게 명령했다. 


"오늘 안으로 치워버리게... 들었는가?"


이후 무무를 다른 사람에게 팔거나 또는 내버리라는 게 여주인의 뜻임을 알게 된 게라심은 스스로 어떤 선택을 한다. 무무를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게라심은 무무를 데리고 강으로 나가 익사시킨다. 그리고 그는 고향으로 떠난다.



말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


우리들은 진실을 말해야 할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이 순간에 어떤 사람들은 입을 다문다. 진실을 밝히는 게 두려워서일까? 아니다. 말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음을 이미 알기 때문이다. 진심을 감추고, 상처를 숨기며, 오히려 오해 속에 자신을 맡긴다. 누군가는 침묵 속에서 무너지고, 누군가는 끝까지 그 침묵을 지킨다. 이 침묵은 비겁한 선택일까?


프랑스 소설가 기 드 모파상(1850~1893년)은 단편 '겁쟁이'를 통해 인간의 선택 유형을 보여준다. 극한 상황에 처한 한 인간이 '말하지 않기로 한 선택'으로 인해 자신의 삶에 여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사교계에서 '미남 시뇰'로 불리는 공트랑조제프 드 시뇰 자작은 고아였으나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멋쟁이'로 통했다.


"결투를 해야 할 때가 온다면 나는 권총을 선택하겠소. 그런 무기라면 상대를 확실히 죽일 수 있으니까"


어느 날 저녁, 시뇰은 지인들과 함께 공연 구경을 마치고 식당에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한 남자의 시선이 끈질기게 지인의 한 부인을 향하고 이 부인은 불편한 기색으로 고개를 숙인다가 마침내 남편에게 어떤 남자가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음을 알리게 된다. 남편은 힐끗 그 남자를 보고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이를 무시하라는 말투를 내보였던 것이다.


"무례한 사람들 하나하나에 머리를 싸매다간 다른 일을 할 시간이 없을 거요"


하지만 자작은 그런 무례함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인들이 이 식당에 오게 된 것도 자신 때문이었기에 그런 결례에 대처하는 것이 자신의 몫이라고 판단하고 그 남자에게 다가가서 "무례한 짓을 그만두라"고 하자 오히려 상대는 "상관 말고 꺼지시지!"라고 반응했던 것이다. 이후 욕설이 난무하는 상대방의 뺨을 후려치고 말았다.


귀가한 후에도 너무 흥분한 나머지 한 가지에 골몰했다. 바로 결투 신청이었다. 아침이 오자 그는 입회인을 찾아야 했다. 지인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잘 알려진 인물들을 머리에 떠올렸다. 라 투르누아르 후작과 부르댕 대령이 딱 좋은 조합이었다. 입회인들은 권총 대결임을 확인하고 준비에 나섰다.


막상 결투를 신청하고 나니 불안한 마음이 엄습해 왔다. 때때로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떨렸다. 상대방이 권총 사용에 능숙할까란 생각에 사수射手들에 관한 책까지 들처보았다. 결투 상대의 이름은 없었다. 그는 탁자 위에 놓인 상지에서 권총 한 자루를 꺼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떨리고, 손 안의 무기도 흔들렸다.


"불가능해. 이런 식으로는 싸울 수 없어"


그는 불명예, 클럽에서의 수군거림, 친구들의 거실에서 터져 나올 미소, 여성들의 경멸, 신문의 은밀한 비웃음, 그리고 겁쟁이들이 자신에게 퍼부을 모욕 등을 생각했다. 만약 상대방 앞에서 자신의 확고한 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그는 겁쟁이라는 오명을 쓴 채 사교계에서 퇴출될 것임을 알았다. 그의 선택은 안타깝게도 자살이었다. 피가 흘러내린 책상 위엔 "이것은 나의 유언장이다"라는 글귀에 얼룩이 생겨 있었다.



지켜보는 쪽을 택한 사람들


삶의 어느 시점에서 우리들은 선택 앞에 선다. 행동할 것인가, 아니면 가만히 있을 것인가. 세상은 종종 행동하는 인간을 높이 평가한다. 정의 앞에 나서고, 진실을 외치고,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말이다. 반면에 어떤 선택은 그 반대편에서 작동한다. 말하지 않고, 움직이지 않고, 오직 지켜보는 쪽에 선다.


미국 소설가 허먼 멜빌(1819~1891년)의 단편 '필사원 바틀비'는 세계 금융의 중심지 월스트리트에서 일하는 어느 필경사의 이야기를 다룬다. 월스트리트의 변호사는 필경사 바틀비를 채용한다. 이 변호사는 배심원 앞에서 연설하기를 원하는 그런 야심적인 인물이 아니라 평온 속에서 부자들의 채권, 저당권, 부동산 권리증 사이에서 짭잘한 사업을 꾸려갈 뿐이다.


채용 초기엔 묵묵히 필사 업무를 잘 수행하던 바틀비가 어느 날부터 이를 거부한다. 필사원의 업무에서 단어 하나하나를 대조하여 사본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런데, 그는 문서 검토 요청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폭탄 발언을 내밷었던 것이다.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이후 그는 필사, 검증, 심부름 등 모든 업무를 거부하고 사무실에서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창 밖만 응시햇다. 이에 변호사는 과중한 업무 탓인지 그를 설득하기도 하고 나중엔 해고 시도를 하다가 결국 사무실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옮긴다. 그러나 바틀비는 떠나지 않고 머물다가 경찰에 체포당하고 만다.


스스로를 버리는 선택 


어떤 선택은 너무나 분명하게 자신에게 불리한 쪽을 향한다. 그건 이기심의 반대편에 있는 충동, 어쩌면 인간만이 지닌 가장 이상하고 슬픈 능력이다. 바로 스스로를 버릴 수 있는 용기다. 그 결단은 영광스럽지 않다. 그 선택은 이해받지 못할 것이다.


"엄청나게 넓은 땅을 표시할 수 잇을 거야! 그가 생각했다. '히루에 35마일쯤은 거뜬히 걸을 수 있어. 지금은 해도 길고, 그만큼 돌아서 표시한다면 엄청난 땅이 내 것이 되겠지!"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1828~1910년)의 단편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는 인간의 욕심을 주제로 다룬다. 탐욕을 버리라는 철학적 교훈을 담고 있다. 주인공 파홈은 하루 동안 걸은 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다소 황당한 제안을 받고 해지기 전까지 출발점에 되돌아오면 그 거리 만큼의 땅을 모두 가잘 수 있다는 욕심에 이끌려 더 멀리 가다가 결국 몸이 지쳐 더 이상 되돌아 올 수 없었다. 탐욕은 결국 자기파괴에 이른다는 도덕적 교훈을 담고 있다. 정작 그에게 필요한 땅은 자신의 시신이 묻힐 만큼의 땅만 필요했던 셈이다.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누군가는 스스로에게 불리한 결정을 내리고, 누군가는 끝까지 진실을 고백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주어진 질서에 저항하기보다 그 안에서 남아 살기로 선택한다. 조용하지만 단호한 그 선택의 순간을 마주할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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