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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은 충분했을까 - 살아온 날들의 무게보다, 살아갈 마음이 더 중요하니까
이송이 지음 / 하모니북 / 2026년 1월
평점 :
누군가를 만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네죠. 늘 타인의 안부는 묻지만, 정작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안녕했니?” 하고 물어본 적이 있을까요? 가끔은 멈춰서, 그동안 살아온 시간들을 다시 묶고 매듭짓는 일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 '프롤로그' 중에서

(사진, 책표지)
에세이의 저자 이송이는 감정의 결을 오래 들여다보며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즉 흩어진 마음의 조각들 속에서 문장이 되는 순간을 붙잡아 하루를 천천히 이해해가는 글을 기록하고 있다. 저서로는 <진한 여운, 도쿄>가 있다.
이 책의 구성은 좀 독특하다. 총 11개 파트로 나뉘어져 있는데 한글의 자음들인 ㄱ, ㄴ, ㄷ, ㅁ, ㅅ, ㅇ, ㅈ, ㅊ, 트, ㅍ, ㅎ 등의 카테고리에 가족, 날씨, 다양함, 말, 사과, 약속시간, 저축, 청춘, 트라우마, 평범함, 헤어짐 같은 누구나의 일상 속에 들어오는 그런 단어를 주제로 삼아 글을 펼치고 있다.
독서하던 중 저자의 에세이 글 중에서 지난 내 삶에 있었던 경험이나 추억과 오버랩되는 내용들을 추려서 소개함으로써 책의 서평에 갈음하려 한다.
건강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줘서 고마워. 숨 쉴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밥을 맛있게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야"(29쪽)

우리 모두의 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 칠십대 중반인 이 몸도 어제와 오늘이 다름을 느끼고 있다. 사실 현재도 최근에 찾아온 몸살 기운이 좀처럼 호전되지 않아 책을 읽고 글을 써던 일들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방한防寒을 위해 현관 부근에 커튼을 설치해 보겠다고 망치를 들었다가 손을 다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일조차 다소 버거운 실정이다.
내 거주지는 원룸 임대아파트 1층이다. 산 아래에 위치헤 있어서 사전 입주 점검을 위해 현장을 방문했을 때엔 소규모 아파트 단지 주변에 산책을 즐길 수 있는 산이 있어 내 취미인 야생화 감상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 교통이 불편한 게 마음에 걸렸지만 입주하기로 결심했었다. 6월 초에 입주했는데 1층인지라 모기들의 극성에 곤란을 겪었다. 주위에 산이 있어서 시원할 줄 알았는데 1층은 산이 막고 있어서 오히려 바람부는 게 부족했다. 또 동절기엔 왜 그리 추운지 추위를 잘 타는 나에겐 최악이었다. 난방을 올렸더니 관리비가 많이 나온 것이다.
젊었을 땐 매주 주말엔 북한산, 청계산, 종종 이름난 강원도 산 등지로 동호인들과 함께 산행을 즐겼고, 또 한 때는 마라톤에 꽂혀서 전국 각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를 찾아 다녔다.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무리하게 움직인 만큼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 법임에도 전업투자자로 살다 보니 몸 관리는 뒷전이고 무리하면서 앞만 보고 달렸던 인생이었다. 지나고 보고 깨닫는 게 있다. 타인의 조언에 귀 기울이고 피곤하면 쉬어야 한다는 것을. 이를 게을리한 까닭에 몸은 망가지고 좋아했던 술담배 또한 완전 끊어야만 했다. 하루하루 숨 쉬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는 독거노인의 푸념이다.
날씨
사람들은 종종 "그날 날씨가 기억나?"라는 말로 추억을 꺼내곤 하잖아요. 결국 날씨가 감정의 기록장이었다는 뜻 아닐까요. 그날의 햇살, 바람, 온도가 기억의 표지처럼 우리 안에 새겨져 있었던 거예요.(54쪽)

저자의 글 중 검색창에 'ㄴ'을 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말이 '날씨'라고 하길래 한번 따라 해보았다. 정말이었다. 이 정도로 임팩트있는 키워드인지 새삼 알게 되었다. 사실 누구나 모두 날씨와 관련된 추억이나 에피소드들이 많을 것이다. 나 또한 그랬다. 슬픈 추억을 소환해본다.
고시에 낙방한 후 대학시절 교제하던 여성과 한동안 냉각기를 가졌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졸업 후 난 서울에서 중견행원으로 은행에서 근무 중이었고 상대 여성은 학업을 더 연장해 박사학위까지 염두에 두고서 경기도 소재 대학에서 조교 생활을 하고 있었다.
서로 바쁜 일과로 살다 보니 만남의 횟수가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어느 날, 여성의 모친이 은행을 방문해 결혼 얘기를 꺼내길래 둘이 만나서 이를 상의하겠다고 답하고, 이후 신촌의 한 커피숍에서 만나 현재 집안 형편이 어려워 나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임을 알려주며 결혼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당시 좋은 혼처가 들어와 여성은 부모로부터 맞선을 종용받고 있었기에 차마 기다려달라고 할 수 없어서 나를 포기하라는 매정한 말로 만남을 끝냈다. 이날 귀가길 버스 차창에 흘러내리는 빗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난 비가 오는 날을 좋아하지 않는다.
결핍
그런데 ‘제대로 된 연애를 몇 번이나 했냐’는 질문 앞에 서면, 저는 잠시 머뭇거리다 고작 한 번 정도라고 답할 것 같아요. 횟수나 길이와는 별개로, 제 안에 단단히 남겨진 관계는 손에 꼽혔으니까요.(34쪽)

난 사귀었던 그 여성의 결혼식에 조용히 참석했었다. 결혼식 소식은 그 여성의 절친으로부터 연락받아 알게 되었다. 혹시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곤란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가지 않으려다 근무지인 은행에서 가까운 거리였고 해서 발걸음이 나를 그곳으로 이끌었다. 우리들은 대체로 있을 때는 그 고마움을 잘 모를 수가 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처럼, 없어지면 그 빈자리가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좋은 혼처가 생겨 부모님들도 권하니 날 떠나도 좋다는 식의 호기를 부렸지만 막상 결혼식 소식을 듣고나니 내 마음이 몹시 흔들렸다. 흔들리는 내 마음의 뿌리엔 결핍이 있었음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사실 난 결혼이 많이 늦었다. 굳이 그 여성 때문이었다고 말하진 않으려 한다. 홀로 지내는 게 무척 편했고, 부모님께 생활비를 드릴 수 있다는 게 내 마음의 위안이었다. 나이 마흔에 결혼을 결심한 것도 승진 문제와 집안 막내 동생의 결혼 때문이었다. 내가 모시던 회사 대표가 사석에서 미혼자에게 임원 승진의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조언과 함께 나보다 열 살 아래인 막내가 결혼을 재촉받는다는 이런 압박이 없었다면 아마도 계속 비혼을 고집했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아무튼 결핍은 나를 흔들기도 했지만 결국 성장하도록 도와준 셈이다.
이밖에도 저자는 말, 스트레스, 인정, 죽음, 집착, 추억, 트라우마, 헤어짐 증과 같은 주제어로 자신의 경험과 감정들을 펼쳐 내보인다. 우리 모두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 속엔 다양한 모습을 한 후회, 행복, 외로움 등이 자라하고 있을 것이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쌓여 내 인생은 어땠는지를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