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제국의 미래 - 전기차·탄소중립 시대에도 끝나지 않은 석유의 지배력
최지웅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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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에서 석유가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해왔음을 보여줍니다. 오일쇼크, 달러의 등장, 세계화, 9 · 11 테러, 금융위기, 미국의 중동 정책 그리고 중국의 굴기와 그 제약의 지점까지, 석유는 늘 중요한 요인이거나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중략) 오늘 우리가 직면한 정치적 · 경제적 · 환경적 문제들은 석유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온전히 파악할 수 없습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총 6부로 구성된 책은 석유, 오늘을 열다(1부), 석유, 무기가 되다(2부), 석유, 시장을 열다(3부), 석유, 오늘을 결정하다(4부), 석유, 전쟁을 지배하다(5부), 석유의 시대를 끝내는 법(6부) 등을 통해 현대 세계사의 중요한 사건들을 석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바라본다.

석유, 오늘을 열다 

1940년대 초반 중동의 석유 생산량은 전 세계 생산량의 5~10%에 불과했기에 미국이 중동 정세에 본격 개입하던 시기도 아니었다. 사실 미국은 1941년 12월 진주만 피습까지 2차 세계대전 참전을 유보하며 자국 운영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엔 미국이 세계 최대 산유국이어서 석유를 자급자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석유 확보는 많은 나라들의 안보 문제로 취급된다. 석유 공급이 끊기면 나라의 제조 시설은 물론이고 국민들의 일상 또한 마비 상태에 놓이기 때문이다. 덩달아 나라의 국방마저 위기에 빠질 수 있어서다. 그래서 석유라는 애너지 자원은 국제 질서의 결정 요소로 작용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집트 나세르 정권의 수에즈 운하 국유화 조치였다. 이는 중동 전쟁을 촉발하는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 중동 석유를 유럽으로 공급하는 통로였다. 1952년 군부 쿠데타로 이집트 실권을 장악한 나세르 대통령은 제3세계 국가들과 함께 비동맹주의를 주창했다. 즉 미국과 소련 어느 편에도 서지 않고 중립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러나 이후 그의 행보는 소련으로부터 무기를 구매하고 당시 적성국이었던 중국을 외교적으로 승인하는 등 미국의 의도와 다른 행동을 보이자 미국은 나일강에 건설하던 아스완 댐 건설 지원을 취소했다.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자 나세르는 영국과 프랑스의 자산이었던 수에즈 운하를 일방적으로 국유화했던 것이다. 

참고로 수에즈 운하는 1869년 프랑스 기술자에 의해 완성됐는데, 1875년 이집트 통치자 이스마일 파샤가 파산 위기에 처하자 이집트 소유 수에즈 운하 지분(44%)를 시장에 내놓자, 이를 영국이 취득함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이 운하를 공동 소유하면서 운하 운영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갔다. 

나세르의 수에즈 국유화 조치를 그냥 앉아서 당할 영국과 프랑스가 아니었다. 1956년 10월, 영국 -프랑스-이스라엘이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수에즈 운하를 점령했다. 당시 미국은 최대 산유국이었기에 중동 지역의 안정과 아랍 국가들과의 정치적 파장 및 소련의 개입을 우려해 이를 반대했지만 이후 소련의 런던과 파리 핵 공격 반응에 미국은 즉각 대응해 소련도 이에 상응하는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의 아이젠하워 정부는 영국과 프랑스 군대를 철수시키기 위해 미국산 원유 공급 계획을 취소하고 즉각 실행했다. 결국 1956년 11월 두 나라 군대는 조용히 철수했다. 소련의 핵 공격 엄포도 어느 정도 작용했겠지만 이 철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요소는 바로 '원유 공급' 취소라는 제재였다. 수에즈 위기 수습은 현대 국제 질서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은 영국과 프랑스를 이집트에서 철수시킴으로써 국제 질서에서 주도적 지위를 확립했다.

석유, 무기가 되다 

미국은 1970년대 초까지 자국 석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석유 수입 물량을 제한했다. 석유 생산량이 충분했고, 심지어 석유 생산 시설을 100% 가동하지 않고 여유 생산 능력을 남겨 두어 비상시를 대비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 수요의 증가가 공급의 증가를 앞지르면서 상황이 바뀐다. 

미국은 1968년 파리에서 열린 OECD 회의에서 “미국은 원유 생산 능력의 100%를 가동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생산 능력을 100% 가동하게 된 상황, 즉 잉여 생산 능력이 소멸된 상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 전까지는 텍사스, 오클라호마 등 미국의 주요 유전에서 언제든지 생산을 늘려 공급 공백을 방지할 수 있었다. 

생산 능력이 100% 가동되는 상황이라면 시장의 수급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없어진다. 수에즈 위기 때 미국이 중동의 원유 공급 중단을 크게 위협 요인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도 자국의 여유로운 원유 생산 능력 때문이었다. 그런데, 잉여 생산 능력이 사라지면서 공급 중단은 이제 공급 공백 현상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석유는 이전보다 귀한 자원이 되었고, 아랍 국가들이 이를 무기로 서구를 압박할 경우 치명적인 에너지 위기를 초래할 수 있었다. 결국 아랍은 생산물의 분배 문제에 도전하게 되었다. 마침내 1969년 쿠데타로 집권한 리비아 지도자 카다피는 미국 석유기업 옥시덴탈을 위협해 석유 수익 반분半分 원칙을 깨뜨렸다. 즉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옥시덴탈을 국유화하겠다고 압박을 가하며 자국의 몫을 기존 50%에서 55%까지 인상하는데 성공했다. 이리하여 1970년대 석유 질서의 주도권이 메이저 석유기업에서 중동 산유국으로 이전하는 전환점이 되었다.   

석유, 시장을 열다

1979년은 석유 시장을 불안하게 만든 사건들이 가장 많이 발생했다. 4월 팔레비 왕조를 붕괴시킨 이란 혁명, 11월 이란 주재 미 대사관 인질 사건, 11월 극렬 이슬람 무장세력의 사우디 메카 대사원 점거, 3월 미국 펜실베이니아 스리마일 섬 원전 사고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는 석유 시장의 심리를 크게 자극, 유가 상승을 부추겼다. 

특히, 12월에 시작된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미국의 중동 내 입지 약화를 우려하게 만들어 소련군에 대항하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탈레반과 오사마 빈 라덴 세력을 키워준 꼴이 되고 말았다. 이처럼 잘못된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은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셈이다. 1989년 소련의 철군 이후 아프간 공산주의 정부는 4년을 더 버티다가 무너지고 1996년 반미 성향의 탈레반이 권력을 장악했다.   

중동 지역 내 정세 불안에 의한 당시의 유가 상승은 1차적으로 구매자의 공포 때문이었지만 산유국의 탐욕 또한 크게 작용했다. 제4차 중동전쟁(1974~1974년)에 따른 1차 오일쇼크 이후 유가 결정 권한은 OPEC에 있었다. OPEC 회원국들은 유가를 인상하더라도 글로벌 석유 수요가 감소하지 않으므로 뒤로 담합한 이들은 공식 판매가를 계속 인상했다. 

1980년 OPEC 장기전략위원회는 유가를 지속적으로 올려 5년 내 배럴당 60달러로 만드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란 혁명 직전 유가가 13달러 수준이었음과 비교해 볼 때 60달러는 엄청난 욕심의 발로였다고 할 수 있다. 석유가 경제 무기임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아무튼 시장 수요란 실제 소비를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공포와 탐욕에 의해 왜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종종 주식시장에서도 나타난다.

석유, 오늘을 결정하다

2001년 9월 11일에 발생한 빈 라덴 세력이 주도한 미 무역센터 빌딩 테러 사태를 흔히 '문명의 충돌'이라고 표현한다. 새뮤얼 헌팅턴의 저서 <문명의 충돌>(1996년)에는 '국가 간 전쟁의 원인은 이념이 아니라 전통, 문화, 종교 때문'이라고 설명하는데, 빈 라덴의 테러 이후 책은 더 유명해졌다. 하지만 이슬람과 서구의 갈등은 문명의 충돌만으론 설명이 부족하다. 

서구와 다른 문화권인 일본은 서구에 대한 증오는커녕 근대 이후 '脫아시아 入유럽'을 외치며 서구화를 추진했다. 한국의 경우도 반미 정서가 있기는 했지만 서구 문화인 기독교를 적극 수용했으며 서구를 선진국으로 통칭하며 반감보다는 동경하고, 오히려 한국을 침탈했던 중국이나 일본에 더 강한 반감을 갖고 있다. 제국주의 시절부터 이어진 침탈의 역사에 대한 이슬람의 증오 또한 우리와 닮은 듯 보인다. 

미국 주택 가격의 급락으로 인해 촉발되었던 2008년 금융위기는 미국에만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의 위기로 확산되었다. 이는 기축통화인 달러 등 국제통화에 기반한 '금융 세계화'에 원인이 있었다. 금융 세계화는 미국에게 유리한 부의 축적 환경을 만들어 '역외의 부'인 석유를 최소 비용으로 도입하도록 만들었다.  그래서 그간 친미 기조였던 중동의 맹주 사우디의 행보는 점점 다른 면모를 보이고 있다.

최근 발생한 베네수엘라 사태로 중국은 석유 자원 확보에 심한 타격을 입게 되었다. 글로벌 제조업의 공장 역할을 자처하는 중국 경제의 가장 중요한 자원은 석유인데, 그간 밀월 관계를 유지했던 베네수엘라의 원유 공급 통로가 미국에 의해 원천 봉쇄되고 말았다. 중국은 운송 거리가 긴 단점에도 불구하고 남미산 원유 확보에 공을 들였다. 특히 최대 매장량을 보유한 베네수엘라에 중국 석유기업들이 대거 진출해 있었던 것이다. 트럼프가 신속한 군사작전을 통해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한 사건 이면엔 중국 견제라는 의도가 있었던 셈이다. 

석유, 전쟁을 지배하다 

국제유가는 2001년부터 중국의 수요 증가와 함께 장기간 상승 기조를 이어갔다. 누군가의 수요 증가는 다른 누군가에게 수익을 발생시킨다. 이것이 엄연한 경제 논리이다. 중국이 사우디에 적극 접근하려는 의도 또한 더 안정적으로 싸게 원유를 확보하고 싶기 때문이다. 2022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서방은 이를 방패로 삼아 적극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 그럼에도 러시아가 장기간 전쟁을 유지하는 배경엔 석유와 가스 자원의 급격한 가격 상승에 있다. 

지난 중동 역사를 돌이켜 볼 때 호르무즈 해협, 수에즈 운하 등이 위협의 수단이었다. 에너지 수송로의 차단은 에너지 위기에 직면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중국의 일대일로 정책의 의도 또한 이와 맞닿아 있다. 미국의 막강한 해군 함대가 중동 인근 해역에 주둔하는 점 또한 마찬가지다.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 수출로 먹고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안전한 수송로 확보는 중대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푸틴이 재임한 이후 러시아의 석유와 가스 생산량은 꾸준히 증가, 원유 생산량은 세계 3위, 가스 생산량은 세계 2위이다. 특히 가스는 전 세계 생산량 중 17%라는 비중을 차지할 정도이다. 이에 안전한 가스 수출로 확보는 러시아의 중요한 이슈다. 

천연가스를 수출하는 방법은 2가지로 하나는 지하와 해저에 설치한 파이프를 통해 운송하는 것과 다른 하나는 특수 화물선인 LNG선에 실어 수송하는 것이다. 수출하려는 러시아는 LNG 전용 선박의 확보가, 수입하려는 나라는 LNG 인수 터미널이라는 시설을 건설해야 한다. 양 당사자 모두 큰 비용을 투입해야 하는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으로 연결되는 대형 가스관을 확보하는 게 절실했다. 왜냐하면 가스의 주 수요처가 유럽이었기에 말이다. 기존에는 러시아에서 우크라이나를 거쳐 슬로바키아, 체코, 독일 등으로 연결되는 '브라트스트보' 가스관을 주로 이용했는데 외국의 영토를 지나야 하는 위협요인이 있었다. 또 우크라이나에 꼬박꼬박 통행료를 지불해야 했다. 

그래서 푸틴은 최대 수입국인 독일과 협상에 나서 해저 가스관 건설을 통한 공급을 제안했다.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할수록 자칫 유럽 안보의 위험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에 장고長考를 거듭했던 독일은 슈뢰더가 퇴임 직전 이 건설에 합의했다. 뒤이어 취임한 메르켈도 취임 중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노르트스트림' 가스관 건설을 지속했다.


(사진, 노르트스트림)  

석유의 시대를 끝내는 법

파리기후 협약 이후 세계 각국은 2050(또는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아울러 각국은 5년마다 스스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정해 발표했다. 또 유럽과 중국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보급 확대 정책이 이어졌고, 미국 또한 대규모 재생에너지 지원 정책이 집행되었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후 위기는 사기'임을 천명하며 파리기후 협약에서 탈퇴했다.   

안타깝게도 탄소를 감축하고 석유와 가스 소비를 줄이지 못했다. 2015년 이후에도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을 제외하고, 석유와 가스 소비는 매년 증가했다. 심지어 석탄 소비도 줄지 않았다. 세계 탄소 배출량도 매년 증가했다. 2015년 이후 세계 각국 에너지 부문의 역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교훈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에 대해 정부와 대중의 더 깊은 이해와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석유는 여전히 강력한 경제 무기이다


21세기 들어 중국은 석유의 힘으로 굴기했고,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 전기차와 재생에너지 산업에서 가장 앞선 국가가 됐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은 셰일 혁명으로 최대 산유국에 다시 복귀했고 이는 미국 우선주의의 배경이 됐다. 여전히 석유와 가스는 경제를 결정하는 요인이고, 가장 강력한 제재 수단이며, 상대국의 힘을 제한하는 무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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