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라순력도 1702년, 제주를 돌아보다 온그림책 26
윤민용 지음, 샤샤미우 그림 / 봄볕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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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1년 11월, 경상도 영천 금호강 변 호연정에서 조용히 지내던 이형상은 제주목사 겸 병마수군절제사에 임명하는 임금의 명령이 담긴 문서를 받았다. 제주도를 다스리고 제주도의 병사들을 지휘 통솔하는 일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한반도에서 멀리 떨어진 머나먼 섬 제주도는 음식과 풍속 등이 육지와 무척 다르기에 주변 사람들은 '제주도라니, 유배를 가는 거나 다름없다'라고 걱정했다.


(사진, 책표지)


1702년 3월 7일, 그는 한양으로 올라가 임금께 인사를 올리고 부임길을 떠났다. 한반도 땅끝인 전라도 강진항까지 말을 타고 이동한 다음,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제주도로 향한다. 바람이 잔잔할 때를 기다렸다가 출항했음에도 풍랑 때문에 보길도에 오래 머물었다. 3월 25일 늦은 오후에야 제주도 북쪽 조천항에 도착했다.


제주목사직을 수행하며 머무르는 제주목 관아는 제주도 북쪽 바닷가에 있는데, 입구엔 관덕정이란 정자가 서 있다. 1448년에 지어진 제주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건물이다. 이곳 앞마당에서 과거 시험이나 잔치 등을 열고 죄인들을 벌 주기도 한다. 관아 가장 북쪽엔 망경루가 있고 제주도 북쪽 바다가 훤히 보여 왜구의 침범을 감시하는 망루 역할도 한다.


(사진, 제주 읍성 성곽)


제주도에 도착한 지 한 달이 넘은 1702년 4월 15일, 제주도의 지형을 파악하려고 관리들과 함께 한라산에 올랐다. 초여름 날씨임에도 산 정상은 아직 춥고 눈雪이 남아 있었다. 산 아래로는 초록 들판과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오름이 곳곳에 솟아 있다. 해안가를 따라 지하수가 솟아 나오기 때문에 해안 주변엔 민가가 몰려 있다.


제주도에선 뱃길로 여러 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 제주목 서북쪽으로 배를 타고 나가면 청나라의 등주, 항주가 나오고 남서쪽으로 가면 안남국과 섬라국, 남동쪽으로 가면 여인국이, 정남쪽으로 가면 대유구, 동쪽으로 가면 일본에 닿는다. 거센 풍랑이 치면 제주도 사람들이 이런 나라들에 표류하기도 하고, 외국 뱃사람들도 제주도에 표류한다.


(사진, 제주도 지도)


6월 7일엔 관덕정 마당에서 한양에 공물로 보낼 말 馬를 점검했다. 제주도엔 나라에서 설치한 10곳의 목장이 있다. 이른 아침부터 병사들과 말을 보살피는 말테우리들이 수백 마리의 말을 끌고 왔다. 검은색, 갈색, 흰색 등 말 색깔도 종류가 무척 다양하다. 건강하고 힘센 말을 골라 한양에 보내는 일은 제주목사의 임무 중에서 아주 중요하다. 배에 태우기 전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참고로, 2026년도는 '흑마黑馬'의 해라고 한다. 


(사진, 말을 점검하다)


부임한 지 넉 달이 지난 윤달 6월 17일에 유학을 공부하는 제주도 유생들을 위한 특별 과거 시험을 치렀다. 목사인 나는 붉은색 관복에 사모를 쓰고 관덕정 중앙에 앉아서 시험을 치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날 총 12명이 응시했는데, 시 짓기와 글짓기에서 1명 씩 합격했다.


과거는 보통 3년에 한 번 열린다. 제주도 유생들이 과거 시험을 보려면 배를 타고 전라도를 거쳐 육로를 이용해 한양까지 올라가야 한다. 과거 시험엔 드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만약에 풍랑을 만나면 청나라나 안남국 등으로 떠밀려가는 경우도 발생한다. 그래서 관덕정 앞에서 치르는 시험은 정말 의미가 깊다.


(사진, 특별 과거 시험)


7월 13일, 제주도 동쪽 우도 목장에 말을 점검하러 길을 떠났다. 우도로 건너기 앞서 이른 아침에 성산일출봉에 올랐다. 성산은 이름 그대로 성곽을 쌓은 것같이 돌무더기가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나무와 덩굴이 우거져서 오르기가 쉽지 않았다. 지금껏 성산을 지명으로만 이해했는데, 이런 뜻이 있을 줄이야.  


돌을 깎아서 계단처럼 만든 다리를 겨우 기어 올라서 정상에 도착했다. 붉게 떠오르는 해와 푸른 바다를 바라보고 하산해서 배를 타고 우도 목장으로 건너갔다. 우도는 한쪽이 소머리처럼 삐죽 튀어나온 섬이다. 사람은 살지 않고, 1697년에 만들어진 목장에서 임금께 바칠 품종이 우수한 말 260여 마리를 기르고 있다.


(사진, 성산일출봉과 우도)


이밖에도 책은 선별한 감귤을 한양에 보내기, 한라산 중턱에서 임금께 올릴 짐승 사냥하기, 한라산 중턱 국마 목장의 말 점검하기, 제주 순력 시작하기, 별방진성을 점검하기, 정의현성에 도착, 정방폭포에서 잠시 휴식, 천지연폭포에서 활쏘기 구경, 산방산에서의 음주 즐기기, 대정현성 도착, 차귀진성 점검, 명월진성 점검, 용연에서 뱃놀이하며 해녀들을 물질 감상, 호연정으로 돌아가기 등에 관한 이야기가 계속 펼쳐진다.


1703년 여름, 이형상 제주목사는 화공 김남길에게 가을 순력을 비롯해 제주도에서 벌였던 여러 행사들을 그림으로 그리게 했다. 이를 엮어 만든 화첩이 바로 <탐라순력도>이다. 이 화첩을 만들기까지 제주에 유배 중이던 오시복 대감의 조언이 한 몫 거들었다. 죄인과 가까이 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어 이 일로 제주목사직에서 물어나게 되었다.



역사로 남긴 옛 문헌


<탐라순력도>는 오시복의 제안으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당시 명필로 이름을 떨치던 오시복은 제주에 유배중인 인물이었다. 화첩 제목과 서문, 각 그림의 글씨를 부탁한 듯하다. 원래 그림 40면으로 기획했으나, 화첩 마지막에 제주도를 떠나는 내용의 <호연금서>가 추가되었다. 원본(1703년)은 현재 제주특별자치도가 보물로 소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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